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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는 큰 돈을 물려주지 않는다 -빌 게이츠 가문-

5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으로 세계 최고의 갑부자리를 지키고 있는 빌 게이츠. 그의 가문은 여느 성공가문의 이야기처럼 바닥부터 극적으로 올라 오지는 않았다. 그의 가문은 이미 증조부 때 은행가로 성공해 변호사, 사업가로 4대째 부와 명예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부를 세습하며 안주하지 않고 재산을 사회와 나누면서 ‘돈을 잘 버는 방법’만을 물려오고 있기에 그 가문의 청부(淸富)가 더욱 빛난다. 빌 게이츠 가문의 돈 잘 벌고, 잘 쓰는 방법을 들여다보자.

“조용, 조용, 우리 아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빠가 너에게 앵무새를 사줄게. 만약 앵무새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아빠가 너에게 다른 걸 사줄게… 응, 뭐가 좋을까…유럽?”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딸 제니퍼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세계에서 돈이 제일 많은 갑부에 대한 일종의 조크인데, 기분이 참 묘하다. 빌 게이츠의 재산이 50조 정도 되는데, 그 돈이면 아마도 조그만한 나라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가난한 집 출신에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대은행가인 미국 서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2세는 워싱턴주립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로 시애틀에서 법률회사를 경영했으며 주(州) 변호인협회 회장이었다. 할아버지는 대은행가였고 증조부는 시애틀은행인 내셔널시티뱅크(National City Bank)의 설립자로 시애틀시가 생겨날 때부터 시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시애틀 은행가의 딸로 워싱턴대학교의 사무처장을 지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자선사업가로 시애틀의 사교계를 주름잡을 만큼 활발한 활동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자선단체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빌 게이츠는 3대에 걸쳐 시애틀 최고 명문가였고 지금은 세계 최고 갑부가 된 것이다. 이름도 대물림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 아버지는 윌리엄 게이츠 주니어, 그리고 빌 게이츠는 윌리엄 게이츠 3세가 원래 이름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이 이름이 같다는 것은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을 존중할 수 있어야 그 이름에 흠이 가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오히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물려준 이름이 부담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돈 잘 쓰는 방법을 더 고민하는 가문

빌 게이츠가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보다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 더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미 3대에 걸쳐 돈에 대한 모든 것을 소유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증조할아버지는 은행을 설립할 정도로 막대한 돈을 소유했고 할아버지도 그랬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돈뿐만 아니라 변호사로서 사회적 명예도 얻었다. 그야말로 3대에 걸쳐 재물과 명예를 모두 얻은 것이다.

빌 게이츠는 증조부나 할아버지, 아버지 등 3대가 이룬 부와 명예보다 더한 것을 이루고 있다. 4대째 빌 게이츠는 이제 자신의 선조들이 못다 한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빌 게이츠에게 돈은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쓰느냐에 있는 것이다.

티베트의 라마승의 이야기기인 영화 ‘삼사라(Samsara)’를 보면 주인공은 스승에게 이런 말을 한다. “5살 때부터 중이 된 나에게 또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뭘 가져보지도 못했는데 무엇을 버리라는 것입니까.” 이는 재물이든 결혼이든 가져보거나 경험해본 후에 그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빌 게이츠가 돈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은 그의 가문이 더 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대대로 부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겠다.

돈벼락을 맞을 정도로 부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다. 예컨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강재벌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부모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해주자 돈이 싫다면서 형에게 그 돈을 주고 평생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또 케임브리지대 교수직도 마다하고 노르웨이의 시골에서 보냈다. 그의 철학은 돈을 돌같이 본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돈을 벌려고 직장을 전전했다면 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은행가 가문인 빌 게이츠 집안은 돈에 대한 갈증이 더 이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갑부가 아직도 돈에 대해 미련을 두고 있다면 그것 또한 난센스일 것이다. 이제 게이츠 가문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 즉, 이제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골몰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빌 게이츠를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갑부이지만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자선사업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의 전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상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빌 게이츠는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에게도 우상이 아닐 수 없다. 빌 게이츠는 그야말로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탁월한 세계 최고의 CEO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최고였지만 이제는 공부만 잘하다가는 평생 부모 속을 태울 수 있다. 요즘은 공부도 잘하고 ‘이재’에도 밝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78년 찍은 11인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멤버. 아래 맨 왼쪽이 빌 게이츠, 맨 오른쪽이 폴 앨런.

그렇다면 오늘날 빌 게이츠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첫째, 돈에 대한 부모자녀 간의 원칙 공유를 꼽을 수 있다. 만약 빌 게이츠가 ‘부자 아버지’에 의지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도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 아버지’ 의지않고 사업 키워

빌 게이츠 아버지가 한번은 기자들로부터 “당신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했을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빌 게이츠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면 아들은 아마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애가 아주 안락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의욕을 갖고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적어지기 마련이다. 빌 게이츠 아버지는 부자였지만 아들에게 창업자금마저 주지 않았다. 빌 게이츠 또한 부자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아닐 수 없다. 빌 게이츠는 자기의 재산 가운데 99%를 자선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대부분 집안에서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면 필시 큰일이 일어날 게 뻔하다).

빌 게이츠를 있게 한 두 번째 요인으로는 ‘두 명의 똑똑한 친구’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중·고와 하버드대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 덕분에 컴퓨터 황제에 오를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두 친구는 빌 게이츠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준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사립명문인 레이크사이드에 다녔는데, 여기서 컴퓨터광인 폴 앨런을 만나 컴퓨터를 알게 되었다. 폴 앨런은 빌 게이츠에게 컴퓨터에 눈을 뜨게 해준 친구로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함께 창업했다. 또 하버드대에서 만난 스티브 발머(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 수 있었다.

빌 게이츠는 어릴 시절 부잣집 아들답게 모난 성격으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돈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 기술로 백만장자가 될 궁리를 일찌감치 했다. 특히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한 번 사귀면 깊게 사귀는 편이어서 주변에 자신의 일을 도와 줄 충직한 친구들을 둘 수 있었다.

그의 운명을 결정한 동반자를 만난 곳은 다름 아닌 레이크사이드 중·고와 하버드대이다. 명문학교에서 만난 똑똑한 친구들 덕분에 빌 게이츠가 오늘날 컴퓨터 황제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와 함께 컴퓨터 황제 올라

빌 게이츠의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친구는 먼저 고등학교에서 만난 2년 선배인 폴 앨런이다. 폴 앨런은 그때 이미 게이츠보다 훨씬 컴퓨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면서 앞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에 매진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고교시절의 이러한 경험으로 그들은 몇 년 후인 20살에 사업의 동반자로 다시 만나게 됐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폴 앨런은 워싱턴주립대를 중퇴하고 197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이다. 그는 폴 앨런이 컴퓨터와 컴퓨터 칩에 대해 가르쳐주기 전까지만 해도 장차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거나 과학자가 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아직 십대였을 때, 폴 앨런은 나에게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목숨을 걸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친구 때문에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완전히 매혹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빌 게이츠는 폴 앨런을 만난 것을 최대 행운이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의 부모님은 빌 게이츠를 될수록 질문하기를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크도록 했다. 질문을 잘했던 빌은 폴에게 “가솔린이 어떻게 차를 움직이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끔 요령 있게 설명해주었다. 이들이 우정을 맺게 된 것은 가솔린에 대한 게이츠의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던 빌 게이츠가 선배와 같은 아이에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을 잘 설명해주자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게 이들을 사업동반자로 만들었고, 세계적인 갑부가 되게 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이츠와 앨런이 각각 60%,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창업한 지 11년 후인 1986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이들은 억만장자가 된다. 빌 게이츠의 나이 31살 때이다. 앨런은 아직 미혼으로 세계 갑부 서열 4위이다. 앨런은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는데, 현재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사업을 하면서 미국 프로농구단과 미식축구단 등을 운영하며 자선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또 공상과학박물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우주에 대한 연구 및 투자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수학영재였던 게이츠는 대학에 들어갈 때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프린스턴, 예일대에서 국립 장학금으로 입학 허가를 받기도 했다. 하버드를 선택한 그는 그곳에서 스티브 발머를 만난다. 그는 게이츠에게는 폴 앨런에 이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번째 친구가 된다.

하버드대 시절에 풋볼팀 선수에 문학잡지 편집장, 교내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스티브 발머는 같은 기숙사에서 빌 게이츠와 만나 인연을 맺었다. 빌 게이츠가 법학과에 들어갔다 수학과로 전과를 했지만 1학년 때 학업을 그만둔 것과 달리, 발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해 일하던 발머는 다시 스탠포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으며, 1980년 친구 게이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다. 빌 게이츠 회장이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 사이인 발머는 영업력이 떨어지는 게이츠 회장을 대신해 지난 20여 년간 판매 영업을 담당했고 2000년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신문을 통해 관심분야 넓혀

오늘의 빌 게이츠를 있게 한 세 번째 요인을 꼽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책과 신문이었다. 빌 게이츠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책을 읽는 습관을 유지해오고 있는 독서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날마다 신문과 잡지를 읽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요즘 신문을 안보는 추세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충고를 들어보면 신문은 관심분야를 넓혀주는 ‘지식의 창고’ 역할을 한다.

빌 게이츠는 “우선 신문을 보면 또 어떤 기사가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뉴스가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온라인을 통해 관심 있는 기사만 읽는다면 읽기 전이나 읽은 후의 자신은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문을 통해 기사를 읽으면 자신의 관심분야 이외의 기사도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고 흥미 있는 기사를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신문의 장점이라고 빌 게이츠는 말한다.

“최소한 나는 일주일 동안의 신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다. 신문이 나의 관심분야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과학면이나 경제면 등 관심이 있는 기사만 읽는다면 읽기 전이나 읽은 후의 나는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기사를 다 읽는다.”

컴퓨터황제인 빌 게이츠이지만 그는 컴퓨터가 책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느끼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갖게 하기 전에 먼저 책을 갖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는 부모들이 마음속에 새겨놓아야 할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은행가 가문출신답게 이재에 관심이 컸던 것을 꼽는다. 빌 게이츠가 부자집에서 태어났지만 돈에 대한 관심으로 일찍 비즈니스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 회사에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1972년에 여름방학 동안 국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한 국회의원 후보가 공천에서 떨어지자 게이츠는 그 후보의 선거 캠페인 배지를 개당 5센트에 사들였다. 이 배지는 곧 수집가들의 애호품이 되어 개당 25센트에 되팔았다. 또 빌 게이츠와 친구 폴 앨런은 회사에 취직해 근무하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회사의 급료지불기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로 계약을 하고 성공적으로 끝내 큰돈을 벌었다. 게이츠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해 18살인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그는 컴퓨터광에 수학교사보다 더 수학계산을 잘하는 수학천재로 평가받았다. 그는 학교의 추천으로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결국 아이가 빌 게이츠처럼 자라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아이에게 결코 큰 돈을 줄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반면에 돈에 대해 부모와 자녀 간에 원칙을 공유하라. 똑똑한 친구를 사귀게 하고, 책과 신문을 읽어라. 이것이 빌 게이츠의 오늘을 만든 비결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빌 게이츠가 말한 다음의 문장은 세상을 밝혀주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 아닐까.
“현명하게 돈을 쓰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내 돈의 대부분을 내가 믿는 대의를 위해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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