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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의 식사, 인생을 뒤흔들다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단 한 끼의 근사한 식사를 함께하는 것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베트의 만찬>. 이 영화에서 주인공 바베트는 말한다. 아이들과 진솔하게 만나고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거창한 교육 논리나 철학 보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덴마크의 외진 시골 마을에 청교도적인 신앙의 목사와 그의 딸들인 ‘마르티나’와 ‘필리파’ 자매가 살고 있었다. 세속을 멀리하고 다만 구제와 말씀 그리고 예배 모임만을 삶의 전부로 알았던 자매의 아버지는 신앙을 이유로 딸들의 사랑이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에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자매는 오히려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전해주는 일체의 즐거움이나 기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신에 대한 헌신과 이웃에 대한 봉사 속에 살아온 두 여인의 일상에 어느 날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1871년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밤, 초라한 몰골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한 프랑스 여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이다. ‘바베트’라는 이름의 그녀는 필리파가 젊은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오페라 가수 ‘아킬’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용인즉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나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인이니, 부디 그녀를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었다. 모든 재정을 봉사하는 일에 써야 했던 자매는 바베트를 요리사로 고용할 여력이 없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다만 머물기를 간청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 욕망의 노예일 뿐

이렇게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베트는 검소하고 숭고해 보이는 삶이 마치 매일 계속되는 말린 생선과 약간의 빵을 넣어 끓인 멀건 죽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 순박하고 경건한 듯 보이던 평온한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실상은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서로를 향한 서운한 마음, 증오와 분노, 질투 등의 감정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이나 오지의 사람들이 탈속한 천사와 같은 심성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낭만주의적 감상에 빠진 일부 도회지 사람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 살아갈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이기적인 욕망에 쉽사리 유혹되고 넘어지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두 자매는 찬양과 기도로써 이러한 불화를 가라앉혀 보려 애쓰지만, 이미 근본부터 깨져 버린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도를 더해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에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프랑스를 떠나 있는 대신 고국을 잊지 않기 위해 친구에게 매년 사주기를 부탁했던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자매는 이제 1만 프랑의 상금으로 부자가 된 바베트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근심에 잠긴다. 그동안 그녀는 자매들의 삶은 물론 마을 전체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상금을 받은 바베트는 한 가지 엉뚱해 보이는 부탁을 한다. 작고하신 목사님을 기념하는 만찬을 자신의 솜씨와 비용으로 준비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프랑스 요리로 말이다.

만찬 준비는 몰라도 그 비용까지 감당하게 할 수 없다는 두 자매의 만류에도, 바베트는 지난 세월 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므로 들어줄 것을 간청한다. 결국 자매는 그녀의 청을 수락하고 바베트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14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베트는 외진 마을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귀한 식재료들과 함께 돌아온다. 최고급 포도주와 각종 새와 짐승들, 그리고 거대한 거북이에 이르는 낯선 식재료들에 충격을 받은 자매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하면서 그녀의 만찬 준비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본다.


근심스런 것은 두 자매뿐만이 아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여 사악한 음식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맹세하기를 음식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바베트를 생각해서 혀를 악물고 부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삼키기는 하겠지만, 결코 그것을 감탄하거나 칭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식으로 준비되는 만찬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을 사람들이 다시 의기투합하는 계기가 된다.

타인을 위한 정성, 마음을 여는 묘약

드디어 만찬의 날. 서로 간의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불현듯 마을을 방문한 왕실 근위대 장군 일행, 그리고 자매가 함께 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정식 요리 만찬은 시작된다. 음식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마을 사람들의 침묵은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온 장군의 감탄에 허물어져 간다. 1846년산 클로 부조(프랑스 부르고뉴 부조 지방산 포도주), 최고급 거북이 스프, 블러디 드미로프(원래 러시아 요리, 흰 빵에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얹어 낸 러시아 요리), 카유 엉 사르코파주(메추라기를 페스트리로 싸서 여섯 가지 이상 소스를 끼얹어 먹는 요리) 등 연이어 나오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음식들의 미묘한 맛과 색 그리고 향은 단조로운 음식으로 굳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입술을 부드럽게 풀어내 버린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음의 빗장을 열고 오래전 목사님의 훌륭했던 가르침을 되새김질 하며 나누기 시작한다.

장군은 이들에게 새로 나오는 요리에 얽힌 사연과 각각의 미묘한 맛의 조화를 계속 설명해 간다. 점차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는 요리가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깨달아가면서, 그저 먹어 배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음미하고 즐기며 향유하는 태도로 변화를 거듭해 간다. 자기만 아는 인생의 각박함이란 여유 없이 분주히 살아가는 일상의 태도로부터 생기게 마련이다. 설령 그러한 여유 없음이 ‘신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에서 기인한 것일지라도 때로 그것은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될 수 있다. 좋은 음식을 통해 새삼 몸과 마음을 여유를 가지게 된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어제의 고통과 상처, 의심과 회의의 생각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나간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복잡한 구성이나 심오한 철학적 논설 없이, 다만 음식을 준비하고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단순히 같이 먹는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어렵지 않게 뚝딱 끓여주시던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들어가 있다. 늘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변화를 고민하고 기대하는 교사를 향해 아마도 바베트는 이렇게 말할 는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끼의 좋은 식사가 무수한 교육적 장치들 이상으로 아이들과 교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필자 역시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방황하던 시절, 총각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자취방에 불러 손수 끓여 주신 라면 한 그릇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다. 필자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한 그릇의 라면이 아닌, 선생님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응원의 마음 그 자체로 다가왔다. 물론 그것이 꼭 음식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받은 상금 전액을 이 한 차례의 만찬을 준비하는데 다 써버린 바베트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자매에게 정색을 하고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예술가의 마음속 진실한 외침은 온 세상을 울립니다.” 그렇다. 누구든 정직한 예술가와 같이 장인 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준비한 시나 음악, 이야기와 춤, 음식 그리고 돌봄을 실천하는 삶은 결국 이를 보고 들으며,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 아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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