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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우리 학교에는 한 가정에서 4남매가 다니고 있습니다. 1,2,4,6학년에 재학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밝고 명랑한 아이들이랍니다. 우리 반에 다니는 아이는 `김미심`이라는 귀여운 아이인데, 처음 학급을 맡았을 때 제일 먼저 이름을 외운 아이이기도 합니다. 8살밖에 안된 1학년 아이였지만 의젓하게 일을 도우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모습에 감동했지요. 1학년 아이들 20명이 공부를 하고 간 교실 청소는 늘 담임인 내 몫이었기 때문에 온통 어질러 놓고 간 교실은 날마다 대청소를 하고 청소기를 대서 먼지를 흡입시키지 않으면 실내 공기가 혼탁했습니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다 옮기면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기까지 대고 나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게다가 칠판을 물걸레로 닦아 분필가루가 교실에 날리지 않게 정리하는 일을 날마다 반복할 때, 선생님을 돕겠다며 자청하는 아이가 바로 우리 미심이었습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킬 수도 없고 청소를 도운다고 찾아오는 2명의 4학년 아이들이 3일에 한번 정도 쓰레기통을 비워주는 심부름만 해줘도 고마울 정도입니다. 날마다 교실 청소를 마치고 나서 후줄근하게 땀에 젖어 쉬고 있으면 우리 미심이는 한 동네에 사는 선영이와 함께 나를 도와준다며 자료바구니를 정리해 주곤 했습니다. 이름이 미심이니 (美心) 마음이 아름다워서 이름 값을 한다고 칭찬을 해주곤 했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미심이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긴 것입니다. 아직도 발음이 정확하지 못한 1학년 아이답게 내놓고 아버지 걱정을 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말수가 줄어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인 김일남씨가 최근에 간암 판정을 받아서 큰 수술을 해야할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강진신문 11월 8일자 : 8 남매 가장을 살려 주세요)부족한 살림으로 8남매를 책임지며 택시 운전을 해온 가장으로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 앞에 망연했을 그 심정. 수술비와 치료비 감당은 물론이며 가족의 생계마저 막연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할 지..... 3월초에 가정방문을 가서 미심이네 가족이 사는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8남매가 사는 집은 형편이 넉넉해 보이진 않았지만, 택시 기사 일을 하는 아버지 김일남씨(52세)와 자활후견기관에서 간병인으로 활동하는 어머니 곽성복씨(46세), 76세의 할머니까지 오붓하게 살며 화목한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장성한 오빠는 대학생도 있고 중,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건강한 몸이 보배여서 참 열심히 사는 가족의 모습은 여러 차례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인 곽성복씨의 자녀교육관이 투철함에 감동했습니다. 자식은 하늘이 주는 것이니 한 생명도 거절하거나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명에 대한 철저한 외경심으로 그들 부부에게 주어진 생명을 모두 낳아 기르면서도 열심히 일하며 가족사랑의 모범을 보여온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헌신과 사랑을 받아서인지 자녀들도 공부도 잘 하고 활달하며 열심히 산다고 합니다. 자녀 교육과 양육이 힘들어서 자식을 포기하거나 거절하는 세태에 비추어 볼 때, 8남매를 둔 그분들의 삶은 결코 평범한 모습은 아닙니다. 매달 국가에서 지급되는 생계보조금 80여만원과 어머니가 간병인 활동으로 벌어오는 60여만원으로 11명의 대가족이 생활하며 자녀교육까지 감당하면서 질병을 치료할 여력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막대한 수술비와 치료비 앞에 망연한 가족들을 바라보며 가장의 무거운 굴레 앞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김일남씨와 8남매를 위하여 강진군민들도 마음을 보태고 있습니다. 강진교육청 산하의 모든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들이 성금 모금에 나서서 고사리손들이 날마다 성금을 보태고 있으니, 마음과 정성이 하늘에 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서서 8남매를 낳아 자녀 부족에 시달리는 이 나라의 애국자인 김일남씨가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막내인 우리 반 미심이가 아버지의 품에서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날마다 자기 용돈을 들고 오기도 하고 부모님이 보낸 성금을 자랑하느라 숙제 검사 시간마다 시끌벅적하답니다. 한번 내는 것도 부족해서 며칠 째 저금통을 열어서 동전을 가져오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바로 천사들이랍니다. 한 사람의 소원과 기도가 아니라 모두 함께 염원하고 바라는 아름다운 이 일이 8남매 가족이 세상의 따뜻함 속에서 예전의 웃음을 되찾아 다시금 행복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음 글은 마량초등학교에 다니는 8남매 가족인 6학년 김형미 양이 문예반 시간에 가족사랑을 주제로 쓴 글입니다. 6학년 소녀의 눈에 비친 가족 사랑을 생각하며 이 땅의 어버이들과 자녀들이 함께 따뜻한 세상을, 그 눈에 눈물을 함께 닦아 주실 손길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마량초등학교 6학년 김형미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라. 아침에 일어나서 안녕히주무셨어요? 잘 잤니? 이런 사소한 말들은 누구 못지않게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합니다` 라는 다섯 글자 밖에 되지않는 이 단어는 꺼내기가 쉽지않다. 이 단어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내주위에는 무수히 많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은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다. 며칠 전 생각지도 못했던 큰일이 터져 버렸다. 몸이 안 좋다 하시는 아버지께 어머니께서는 병원에서 검사 한번 받아 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꾸 단청을 피우셨지만 어머니께서 `요새 당신처럼 몸이 안좋은데 병원 안 가도 된다고 고집이라는 고집은 다부리며 아직도 병원 안 갔는데 그게 진짜 병 나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 제발 말 좀들어요.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에요.`라고 똑 소리나게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알았어. 내가 졌다` 라며 장난 섞인 말을 꺼내시고는 일을 하시러 갔다. 마침 우리들도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터이라 아버지와 같이 나섰다. 학교가 끝난 후엔 서둘러 집에 왔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기쁜 마음에 소리까지 지르며 달려갔다. 그런데 전 같았으면 웃으시며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냐며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러 부엌에 들어가셨을 텐데 오늘은 부모님의 표정이 예전과는 달랐다. 무슨일이라도 난듯 어두운표정을 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낮선 모습이 두렵기 부터 하였다. 정말 무슨일이 터진것만 같았다. 오빠 언니도 다 오고 동생들과 할머니까지 다 모이고 나니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오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말끝을 흐리시는 아버지를 보니 이젠 정말 무슨일이 있는것이라고 느꼈다. `간암 판정 받았단다.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셔서 .. ` 내가 생각해도 아버지께서 술을 너무 과하게 마시는듯 하였지만 그게 간암까지 갈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우리힘으로는 그저 열심히 금연이라고 써서 담배를 끊게 해드린 것뿐이었다. 난 아직 어려서 암이라고 해서 몇달 밖에 살지 못하는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심한건 아니라고 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울음이 쏟아 져 내릴것만 같았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갑자기 아버지께 짜증내고 화냈던게 정말 죄스러웠다. 그땐 왜그랬을까. 아버지께 얼마나 상처가 됬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아버지는 며칠후 큰병원에서 항암 치료라는 시술을 받으셨고 뼈가 녹아 내리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전보다 많이 좋아지셨다고 어머니께서는 하셨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그고통을 내가 대신 받을수만 있다면 받고싶다는 생각을 할정도로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머니께서도 힘들어보였다. 병원에서 아버지 뒷처리 해주랴, 집에 와서 우리 보랴, 그러는사이에 주름이 20개쯤 더 늘었던 것 같았다.그런데도 엄마는 한번도 우리앞에서 우신 적이 없다. 항상 웃으면서 힘든척 하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나도 아무리 힘들어도 꾹꾹 참아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의료원에 입원 하셨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동안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해서 많이 보고 싶어졌다. 12년동안 아버지 얼굴이 닳고 닳도록 봐왔지만 오늘은 정말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병문안을 갔는데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철없는 동생들은 지금까지 병문안 오신 사람들이 아버지 드시라고 사온 음료수나 과자를 마음껏 먹으면서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편지를 보여주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며칠 동안 못본 아버지 얼굴을 오늘 봤는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하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아버지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쳐다보니 그동안 힘들어도 꾹꾹 참았던 울음이 오늘 다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울지않고 병원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나에게 위로라도 해주듯 윙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소리를 들으니 안 울려고 참고 참았지만 그만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계속 울었다. 정말 이대로 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지 못 하시면 어쩔까 하는 생각도 하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족은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도 하였다.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이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하였다. 병원으로 들어가서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불행과 행복을 번갈아 가면서 겪는 것 같다. 우리에겐 지금까지 불행만 가득했으니 이제는 행복이 올차례이다. 그 행복이 아버지의 건강을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하느님 ..저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아빠 없으면 저도 못 살 것 같아요. 열심히 교회다니고 전보다 착한 일도 더 많이 하고요. 아빠께 사랑한다는 말도 해야 되는데....아직 할 것 많은데.....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저희 아빠좀 살려주세요. 하느님 ......하느님....하느님
아베 수상은 교육 문제해결을 위한 조치로 교육 재생회의를 조직하였다. 수상 직속의 교육 재생 회의(노요리 료우지 단장)는 29일, 수상 관저에서 총회를 열어 집단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한 8개 항목의 긴급 제언을 정리해 발표했다. 집단 괴롭힘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는 사람도 가해자」라고 하는 한편, 집단 괴롭힘을 이유로 하는 전학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주지하는 등의 내용이다. 수상은 이 회의에서 「즉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한다」라고 말했다. 단지, 제언에는 지금까지의 시책을 넘는 것은 별로 없고, 강제력도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지 어떨지는 향후의 과제다. 제언에서는 괴롭힌 측의 아이에 대해서 「지도, 징계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여 의연하게 대응을 취한다」라고 해, 사회 봉사나 개별 지도, 별도 교실에서의 교육 등을 예시하고 있다. 당초는 출석 정지 등 처분의 적극적인 적용을 포함시키는 일도 검토되었지만, 위원으로부터 「교육에는 애정이 필요하다」라는 신중 의견이 나온 것이나, 1948년에 「징계의 수단으로서 수업을 받을 수 없게 하는 조치는 용서되지 않는다」라는 당시의 법무청장관의 견해가 있는 것 등을 근거로 보류되었다. 이케다 모리오 단장 대리는 기자 회견에서 「사회 정세를 보면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검토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 집단 괴롭힘을 방치·조장 한 교원에게는 「징계처분을 적용한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학교에 집단 괴롭힘 해결의 팀을 만들고, 교육위원회에도 지원 팀을 결성해 학교를 지원하는 것 ▽집단 괴롭힘이 있었을 경우, 학교는 학교 평의원이나 보호자등에 보고해, 가정이나 지역과 일체가 되어 해결에 임하도록 한다 ▽집단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책임도 중대하다는 등을 포함시켰다.
매스컴에 의하면 학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또 벌어졌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고양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담임선생님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폭력을 행사한 어린이가 여학생이고, 폭행당한 교사가 얼굴을 다섯 바늘이나 꿰매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입원까지 했었단다. 급변하는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문제를 일으킨 학생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스무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했으면서도 또 다른 애를 때릴 만큼 자주 폭력을 행사했다. 다른 어린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행동이 반복되니 담임으로서는 당연히 훈계를 해야 했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불순하니 장구채로 옷 윗부분을 두세 차례 때렸을 텐데 고맙게 받아들기는커녕 선생님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쓰러진 선생님의 뒷목을 구타했다니 당사자가 받았을 정신적인 충격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교권이 추락했다지만 정말 씁쓸한 소식이다. 교권이 흔들리면 아이들이 말을 들을 리 없고, 덩달아 가정교육도 어려워지게 되어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므로 같은 교사의 입장을 떠나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라도 그런 행위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 뒤늦게나마 부모가 자식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이가 뉘우치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비슷한 일이 잦아지며 이런 일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무관심한 사회가 문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그동안 주5일 수업제 전면실시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던 학교현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2007학년도에도 월 2회의 주5일 수업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현재 주40시간 근무제 근로자수가 전체의 29.8%에 불과해 주5일 수업 전면실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나홀로 학생의 비율이 14.1%에 달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현재 주40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는 근로자수가 29.8%라고 하는데, 타당성이 별로 없는 수치이다. 토요일의 실제모습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정황으로 볼때 자영업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휴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다. 최소한 50%이상은 토요일에 휴무한다고 보는 것이 좀더 타당할 것이다. 이런 통계가 주5일 수업제의 전면실시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홀로 학생의 비율이 14.1%에 달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영업자등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를 거듭해도 그 비율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지 않다. 자영업자들은 상황에 따라 주5일 근무를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주4일 근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홀로 학생의 비율을 주5일 수업제를 늦추는 이유로 들었지만 이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더 큰 문제는 14.1%의 학생들 때문에 주 5일 수업제의 전면실시를 미룬다는 것이다. 나머지 85.9%의 학생들은 주5일 수업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토요휴업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거나,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이유라면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으나 이런 단순한 통계수치만을 가지고 주5일 수업제의 전면실시를 뒤로 미루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또한 나홀로 학생들을 위한 토요 프르그램을 지역사회와 학교가 공동으로 개발하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무조건 학교에 학생들을 등교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논리이다. 주5일 수업제 실시를 위한 여건조성에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자연적으로 여건이 조성되기를 기다린다면 향후 10년이 지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교육부가 9월 현대리서치연구소를 통해 설문조사한 결과 주5일 수업제에 대해선 학생의 78.3%, 학부모 60.7%, 교사 86.2%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교육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의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좀더 신중한 검토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 산동성의 위해시에 있는 성리중학교라는 곳을 방문하였다. 연수일정의 첫번째가 바로 중국의 학교견학이었다. 방문전에는 대부분 교사들이 '중국의 교육은 우리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대식 학교건물이 첫번째 놀라움이었다. 밖에서 본 건물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내부시설들이었다. 동시에 1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 13개나 되는 과학실험실, 우리나라 대학수준의 강당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운동장에는 천연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후에 방문한 학교도 운동장에는 천연잔디와 우레탄 트랙을 갖추고 있었다. 육상강국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놀랍게 한 것은 또 있었다. 학교건물 내부, 외부 할것 없이 단 하나의 휴지도 찾을 수 없었다. 의심스런 마음에 혹시 학생들이 휴지를 버리면 큰 벌을 받는 것인지 물었지만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또한 건물내부 어디에도 낙서를 찾을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낙서를 찾기 위해 화장실까지 가 보았지만 역시 낙서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이드에게 문의한 결과 중국의 아이들은 휴지를 버리거나 낙서를 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행위로 생각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휴지도 많이 버리고 낙서도 많이 했지만 현재는 그런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버리지 않고 낙서도 없었다가 최근들어 이런 행위가 증가하고 있는 우리학생들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수업모습도 보았다. 학생들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이 부분은 우리학생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운동장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체육수업은 우리가 자주 접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즉 일정한 거리를 이어달리거나 농구공을 등 뒤에서 들고 이어 달리는 형식의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게임형태 였다. 그런데 그 수업에서 꼴찌를 하는 학생이나, 농구공을 떨어뜨리는 학생들이 발생하면 모든 학생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면서 격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야유를 퍼붓는 경우는 수업내내 찾아볼 수 없었다. 최소한 운동을 잘 못하는 학생들도 편안히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참여한 교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교육을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체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더라도 산동성이면 중국의 변방인데, 우리나라의 서울시내에 있는 학교보다 시설이 우수하다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그 정도의 시설을 갖추려면 엄청난 예산투입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는 뭔가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우리도 중국의 교육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과감한 예산을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우리도 그냥 보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산 투자없이 교육발전을 이룰 수 없다. 중국의 교육에 놀랄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교육을 따라올수 없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내적인 교육은 우리가 한수 위라고 자부한다. 그렇더라도 언젠가는 경쟁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준비와 대책을 세워햐 할때가 아닌가 싶다.
교권실추 또는 교권추락이라는 이야기가 일상화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사건이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릴때만해도 관심이 높았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대책을 세우느니 어쩌니 하면서 며칠동안 사회적 관심사로 자리잡았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그런 뉴스도 단지 뉴스로만 끝나가고 있다. 이번의 초등학생에 의한 교사폭행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포털을 비롯하여 공중파방송까지 보도가 나갔지만 이전의 사건만큼 이슈화 되지 않고 있다. 일반화된 사건을 접하는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조치없이 시간만 흐르게 되고 제2, 제3의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교사들의 몫이다. 최소한 학생이 학교에 등교해 있을 때만이라도 그 학생의 교육은 교사의 몫임에 틀림없다. 결국 학교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어느정도는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교사들에게 돌리는 것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최근의 국가적, 사회적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부각된 학생의 인권문제로 인해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있다. 두발단속을 하면 마치 학생들의 인권을 심하게 침해한 것으로 오인되고, 교사가 체벌하는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 당연히 해당교사만 죄인취급받게 된다. 언론에서도 이런 장면을 촬영해서 제보하도록 청소년들을 유도하고 있다. 촬영된 장면은 언론사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어 보도된다. 당연히 교사만을 문제삼게 된다. 이런 뉴스를 접하는 학생들은 교사가 체벌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더욱더 굳건히 갖게 된다. 교육부의 자세는 더 큰 문제를 가져온다. 문제의 근본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가 자꾸 발생해도 더이상 내놓을 대책이 없는 모양이다. 그저 교사들이 이를 감수하고 교육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겨우 내놓는다는 것이 단기적인 대책일 뿐이다. 장기적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교사들에게 자율적인 학생지도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지도권을 하루빨리 인정하고 여기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느 여교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제는 학생들이 무섭다. 언제 어떤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걱정된다.' 이런 현실에서도 교육부는 대책없이 일관할 것인가. 학생들의 인권만 인정하고 교사들의 교권추락은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하루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연구가 필요하다. 그냥 지켜보기에는 요즈음 학생들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교권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분명 교육부의 몫이다.
초등학생이 훈계하는 선생님에게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폭행을 가해 물의를 빚고 있다. 29일 고양시 교육청과 이 지역 A초등학교에 따르면 지난 21일 방과 후 청소 시간인 오후 3시10분께 이 학교 6학년생인 B군이 앞서 다른 학생과 싸운 것과 관련, 자신을 훈계하던 담임 여교사 C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3∼4차례 때렸다. B군은 이어 C교사가 잠시 고개를 숙인 사이 목 뒷부분을 2차례 때렸다. 놀란 다른 학생들이 B군을 말렸고 이 학교 보건 교사가 C교사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C교사는 입주위가 찢어져 5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으며 정신적 충격으로 일주일 동안 입원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B군은 지난달 12일 같은 반 친구를 폭행하는 등 지난달에만 두 차례에 걸쳐 같은 학교 학생을 때려 학교측으로부터 봉사활동 20시간과 상담 등의 징계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학교측은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B군을 학교 부적응 학생들 상담 기관인 고양 청소년지원센터에 보내 12월28일까지 교육받도록 했다.
저는 최근부터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학교 홈페지에 들어갑니다. 오늘의 급식 즉 오늘의 중식과 오늘의 석식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 위주라 음식이 전혀 맞지 않을 때는 고민합니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요. 그만큼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아니고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중식 메뉴를 보니 그런 대로 먹을 만하였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게 학생들이 싫어하는 팽이된장국과 콩나물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좋아하는 모닝빵과 샐러드가 보여 영양사님께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학교 점심시간은 오후 1시부터입니다만 식당은 좁고 학생들은 많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선생님과 직원을 위해 12시부터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12시 조금 지나서 식당에 갑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언제나 수고하시는 식당직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음식을 미리 장만해놓고 식사를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정신이 없습니다. 손이 바쁩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분들의 식사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우리학교에는 중식과 석식에 수고하시는 분이 다릅니다. 영양사님도 다릅니다. 모두 25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부지런하십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아주 성실하십니다. 뒷마무리까지 철저하게 하십니다. 학생들의 위생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흰 가운을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음식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완전 무장해서 음식 장만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십니다. 오늘 식당에 들어가니 배식구에 ‘수요일은 다 먹는 날’이라는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음식을 다 먹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서 음식을 담을 때부터 신경을 씁니다. 밥도 평소 때보다 적게, 김치도 마찬가지, 소고기도 적게 담았습니다. 하지만 저가 좋아하는 콩나물무침은 배로 많이 담았습니다. 국도 적게 담았습니다. 모닝빵과 샐러드는 아예 담지 않았습니다. 배는 한 조각 담았습니다. 수요일은 다 먹는 날인데 저가 모범을 보이야지 하는 생각으로 먹기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습니다. 문제는 콩나물이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남았습니다. 억지로라도 다 먹었습니다. 국물도 다 마셨습니다. 위에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다행히 저가 식사할 때는 학생들이 없기 때문에 별 부담이 없었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이 계시고 행정직원들이 계시는데 싶어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게 된 것입니다.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선생님들은 자유배식을 해도 다 먹기가 어려운데 학생들은 자유배식이 아니라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식욕이 왕성하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소에 보면 학생들은 콩나물무침 같은 것은 많이 남기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오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학교와 같이 ‘수요일은 음식을 다 먹는 날’로 정해 하나도 남기지 않으면 많은 식물쓰레기를 줄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며칠 전 우리학교 송 영양사님께서는 ‘식물쓰레기 왜 줄어야 하나’ 하는 메신저를 보내왔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렇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귀중한 식량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소각이나 매립의 방법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환경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1만 1,237톤으로 8톤 대형 트럭 1,400대 분에 이릅니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재활용은 우리 자녀에게 물려 줄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하 생략-” 그렇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게 되면 매립이나 소각으로 인한 2차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만큼 국가경제에 이득이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일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시는 송 영양사님의 기획과 노력과 애씀이 눈에 돋보이는 날입니다. 오늘 아침 지방신문 교육칼럼에 어느 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쓰신 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교육은 원초적으로 '본보이기'와 '본받기'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어른들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 세대는 여러 형제자매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 협조하고 참고 기다리며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본받기'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렇습니다. 교육은 본보이기와 본받기입니다. 집에서는 어른들이 본보이기를 해야 자녀들이 본받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본보이기를 해야 학생들이 본받기를 합니다. 수요일만이라도 음식 다 먹기에 본을 보였으면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도 선생님들께서 음식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 보고 본받아 다 먹을 것 아닙니까? 수요일은 다 먹는 날입니다.
9월 1일자로 교장이 바뀌더니 채 3달도 안 돼 학교 앞 구멍가게 세 곳 중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안 된 일'이지만 학교 입장에서 볼 때는 '잘 된 일'이다. 그들은 왜 가게문을 닫았을까? 한 마디로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정상식품보다 불량식품을 판매할 때 이익이 많이 남는데 학교에서 아침시간에 학생들 등교지도를 하고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 학생들의 무단 출입을 통제하니 "영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 참으로 군것질이 심하다. 기본생활 습관 지도가 안 된 탓이 크다. 자기 건강해치는 줄도 모르고 입에 달콤한 저가의 불량식품을 꺼리낌 없이 마구 사 먹는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먹으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또 먹고난 뒷처리는 잘 할까? 아니다. 교감과 교장은 쉬는 시간, 쓰레기 줍기에 바쁘다. 복도와 계단에 껌 종이, 사탕 막대, 빵 껍질, 과자 봉투 등이 널부러져 있다. 선생님들이 생활지도를 하건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1학기 때보다는 나아진 것이 이 모양이다. 때마침 한국교총에서는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에도 건강유해 경고문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 청원을 하였다.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바람직한 시도다. 법률개정 청원 내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덧붙여 '불량식품 군것질'을 못하게 하는, 아니 아예 근원적으로 '불량식품 유통'을 막는 국가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 우리가 한 눈에 보아도 '이것은 먹어서는 아니 되는데'하는 유해식품들이 버젓이 학교앞 가게에서 유통되고 있다. 업자들은 국민 건강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익만을 탐하고 여기에 당국의 무관심이 합해진 결과가 아닌가 한다. 이 불량식품들은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보다 더 해로운 것임은 자명하다. 각종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지방과 당분의 과다섭취는 비만증가의 원인이 되며 만성병을 불러오게 된다. 여기에 사용되는 트랜스 지방은 콜레스테롤을 높여 심혈관계질환 유발로 연계되어 전 세계가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근절대책이 시급하다. 오늘, 문닫은 가게를 보니 이런 말이 떠오른다. "학생생활지도를 강화하면 가게가 문을 닫는다?" 경제를 생각하면, 그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안 된 일'이지만 학교 생활지도와 교육적 측면, 그리고 건강관리면에서는 '잘 된 일'이 아닐까 싶다. 문을 연 가게 주인 아주머니를 보니 얼굴 표정이 울상이다. 1학기 때에는 교감에게 음료수 하나를 권하더니 지금은 냉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종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은 29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원격영상시스템을 이용해 전국의 초ㆍ중ㆍ고등학교 학교장 1천여명과 영상회의를 가졌다고 교육부가 밝혔다. 이 차관은 영상을 통해 '교육정책의 방향과 학교장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하고 2008학년도 대입, 논술교육 지원, 방과후학교 시행, 교육양극화 해소, 교원평가제 실시, 교원정책 개선방안 등 교육계 현안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차관은 특강에서 "교원승진제도 개선, 교장공모제 및 수석교사제 도입 등을 통해 경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를 조성하겠다"며 "교원평가제 역시 공교육 내실화를 도모하고 교직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교육인적자원연수원이 2000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는 학교장 원격연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설마 그런 교장이 있을라고?"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다. 모 초교 저학년 담임인 A교사. 오늘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하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교직에 회의감이 든다. 이런 교장 믿고 그 학교에 출근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교육철학이 부재한 교장 밑에 있는 교사는 교단에서 슬픔을 맛보아야 하는 것일까? 사건은 교육청에서 예산을 배부하는 '기초학력 희망 캠프' 신청을 하는데 교장이 제동을 걸면서 하는 말에 정나미가 그만 확 떨어지고 말았다. "가르쳐도 소용없는데 왜 가르치려 하느냐?" 교사가 교육을 포기하면 그것을 말려야 할 교장이 앞장 서 어린이 지도를 포기를 하라고 한다. 아마 그런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교장의 말을 선의로 해석하면 교사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교사가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엉뚱(?)한데 에너지 소비하지 말라고 일깨워 주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가 A교사에게는 마치 "뭐하러 힘들게 고생해. 겨울방학 때 푹 쉬지. 지도해도 안 되는 아이, 해 보았자 헛일이지."하는 것 같다. 그 반의 한 어린이. 한글미해득이고 한자리수 덧셈도 못한다. 부모는 없고 조부모 슬하에서 기초수급대상자 가족이다. 그 어린이를 이번 방학 때 담임이 직접 지도를 하여 구제하고자 15일간의 캠프를 신청한 것이었다. 이번에 구제하지 못하면 영영 구제하기 어려울 것 같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을 전혀 못 따라갈 것 같기에 방학을 반납해서라도 지도해 보려는 것이다. 누구라도 교사로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괜히 죄책감에 사로 잡히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여 구제하는 것이 교사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사의 사명감을 불러 일으켜 열정을 불태우도록 하는 것이 교장의 일이다. 일하려는 교사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이나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 교장이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런 교장 때문에 교육이 바로 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교장 때문에 무사안일이 판치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이 마음에 들어, 학교운영 방식에 배울 점이 많아, 교장선생님의 인품이 존경스러워 학교 만기가 될 때까지 계속 함께 근무하고 싶다는 교사가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런 학교가 많아질 때 우리의 교육현장은 살아나는 것이다.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무관용 정책)’,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해서 ‘학교에서만은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미국식 체벌주의’ 정책이다. 지난 11월 28일자 J일보에 실린 ‘싸움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교내 폭력과 기물 파손, 교사에 대한 거친 반항, 심지어는 갱단에 가입한 학생 등 ‘실패 예정 인생들의 대기소’였던 학교를 정상화시켜 모범학교로 변화시킨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 교장 얘기였다. 이 학교가 폭력이 난무하는 ‘문제학교’를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범학교’로 변화시킨 과정은 비록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학생들에게 ‘잘못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학생들에게 각인시키는 ‘제로 톨러런스’를 적용한 것, 결국 잘못한 정도에 따라 ‘교실에서 쫓아내기’ ‘부모호출’ ‘교장지도’ ‘가정근신 및 정학’ 등 엄격하고 강한 벌을 가하는 등 교내생활에서 ‘죄와 벌’의 상관관계가 확고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를 보자. 지난 1999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최근 미국식 체벌주의 ‘제로 톨러런스’ 정책으로 성공한 미국 시카고의 한 학교를 방문한 후 학교에서 문제학생을 엄격히 처벌하는 등 ‘영국식 체벌주의’인 ‘문제학생 영구추방 정책’을 입안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사들이 학교 내에서 비행학생 지도에 엄격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교외 생활에서의 학생 규율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사법경찰에 준하는 지도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新교육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등 학원 범죄로 고심하던 문부성이 의무교육 과정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미국식 ‘제로 톨러런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매년 3만 건 이상 터지는 학생 폭력, 교내에서의 마약 복용과 거래, 교사에게 폭력 행사 등 이른바 심각한 ‘교실붕괴’를 뽑기 위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금 어떤가. 최근 국회 교육위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학교에서의 비행 정도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작게는 학업 부적응으로부터 음주․흡연, 폭력, 절도, 성범죄, 교사에게의 반항 등 그 유형이 다양화되고 비행 정도 심각해지는 추세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학생의 인권 존중을 우선하는 사회적 추세에 따라 비행학생에 대한 징계 수위는 ‘훈계’, ‘교내봉사’, ‘사회봉사’ 등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이마저도 과하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엄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는 잘못을 반성하고 교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징계를 받아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등 교칙을 비웃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우리 정부도 나설 때다. 심각한 비행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서야 ‘특단의 조치’를 내렸던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험을 교훈삼아야 한다. 필요하면 미국, 일본의 ‘제로 톨러런스’나 영국의 ‘문제학생 영구추방 정책’과 같은 제도를 참고하여 교육공동체 모두가 공감하는 ‘한국식 체벌주의’ 도입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방관하고 있는 청소년의 일탈행위, 이제 학교에서만은 청소년들에게 ‘잘못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심어줌으로써 붕괴되는 교실, 신뢰를 잃어가는 공교육, 약화되는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유리창 한 장이 깨지면 그 유리창 한 장을 갈아 끼우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남아있는 모든 유리창이 더 이상 깨지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더 중요하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이론이다.
11월 25일 토요일 오후 2시, 전국 16개 시·도에서 모인 교육가족 5천여명이 국회앞에서 '교육자치 말살저지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정치권의 교육자치 말살 법안 통과를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11월 7일, 시·도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 상임위원회로 통합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재석의원 16명 중 찬성 12, 반대 2, 기권 2명으로 가결하였는데 이 법안은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교육계는 이구동성으로 '위헌적인 교육자치 말살 법안'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헌법 31조 4항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위배하는 법률로 이 법안이 시행되면 학교 교육이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게 될 것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재정이 국가 부담에서 지방부담으로 전가되어 시·도간 재정자립도에 따라 교원수급, 보수, 근무환경 등 교육격차가 심화되고 이것은 공교육 부실화로 이어져 결국엔 학생들의 학습권 피해로 귀결이 된다. 그리고 이 교육자치법은 교원의 지방직화와 교육자치 말살로 이어져 교원의 지위는 약해지고 교육감의 지위는 시·도 국장(局長) 수준으로 전락하여 교육의 설 자리는 없어져 교육망국으로 이어지게 됨이 명약관화하다. 한국교총, 전교조, 한교조, 한국국·공·사립초·중·고 교장협의회, 전국교육위원협의회 등 25개 교육관련 단체와 40만 교육가족은 정치권의 개악 교육자치법을 막기 위해 '교육자치 말살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법의 개정을 철회하고 교육계의 의견이 반영된 제대로된 법 개정을 원하고 있다. 교육계의 주장은 이렇다. 교육자치가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도록 교육위원회를 '독립형 의결 기구화'하라는 것. 시·도 의회 교육위원회를 현재의 교육위원회로 일원화하는 것이 그 동안의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교육자치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야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치권은 교육계와 헌법에서 요구하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여야가 힙을 합쳐 교육을 말아먹고 나라를 말아먹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들은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17명 중 15명의 초선의원으로 구성된 초보 교육위원회는 무식(?)하고 용감무쌍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바로 이들이 40만 교육가족을 성나게 하고 울분을 토하게 만든 것이다. 이들이 5천여 교육가족을 국회앞에 모이게 하고 차가운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에 앉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인 것이다. 이렇게 되도록 방조한 교육부 장관도 공범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교육수호를 위해 개악법을 누구보다 막아야 할 사람이 교육부장관이기 때문이다. 이 날 5천여 참가자들의 함성을 국회의원들과 국민들은 제대로 들었는지 묻고 싶다. "위헌적인 교육자치 통합 즉각 중단하라!" "교육자치 말살하는 위헌적인 통합추진 즉각 중단하라!"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교육을 제대로 모르고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교육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기에 리포터는 걱정과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해마다 가을 정기국회가 열릴 즈음이면 정부 각 부처와 행정기관에서는 국회의원 요구 자료 제출에 정신이 없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및 각급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시기에는 전 공무원이 국회의원의 요구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학교의 경우 가르치는 일보다 급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겨우 하루 이틀 시간을 주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 몇 시간 만에 자료를 제출하라는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 이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개혁하려고 몸부림을 하였건만 이것만은 혁신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 현장의 혁신 과제 중에는 “수업저해 요인 줄이기”라는 과제도 있다. 그러나 이맘때쯤이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업이야 어찌 됐든 상급기관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만들어 대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급하니까 공문으로 요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긴급”이라는 업무 연락을 하여 재촉하기도 한다. 문제는 해마다 같거나 비슷한 통계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2, 3년 전의 통계 자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학교 현장에서는 난리가 난다. 케케묵은 공문서철을 뒤져야 하고, 그 해의 업무 담당자를 찾아야만 한다. 이런 큰 소란이 한 달 내내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해마다 되풀이 되면서 말이다. 또한 이런 자료 요구를 국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위원들이 요구하고 지방의회의 교육복지위원회에서도 한다.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자료와 교육위원, 지방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가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복잡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구미가 까다로워서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현장교사들은 진땀을 흘려야만 한다. 이 때쯤이면 교단 교사들의 기분은 저기압이다. 온갖 일이 짜증이 난다. 학교에서 애들 가르쳐야지, 중간고사 시험문제 출제해야지, 국회의원, 교육위원, 지방의원 요구 자료 만들어야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또한 교육 해당기관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 학교 선생님들의 전화 등쌀에 견뎌낼 수가 없다. 유권해석(?) 하느라고 진땀을 빼야만 한다. 때로는 그 짜증스런 내용들로 서로 언성을 높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도와 가야할 교육의 동반자가 국회의원 등의 요구 자료 작성하다가 파트너십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 따위 자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냐? 또는 그런 것 하나도 막지 못하냐? 한참 동안 이런 식으로 실랑이를 하고 나면 기운이 저절로 빠져 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현장의 선생님들은 과중한 업무에 지쳐 있다. 해마다 교원 사기 진작을 위한 방안으로 ‘교원업무경감’을 들고 있다. 얼마나 업무가 많으면 해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할까. 그런데도 뚜렷한 개선책이 없다. 이러한 불필요한 업무 개선을 위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통계 연감”을 제작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현재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 “교육통계 연감”같은 자료를 제작 보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있다면 이런 자료들은 학교장이나 기관장실의 서가에 꽂혀 있어 금빛으로 찬란하게 반짝거리고만 있을 것이다.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고 활용하지도 않는다. 서가에 꽂아 놓기 위한 자료라면 이는 예산 낭비일 것이다. 활용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이 교육통계 연감에는 교육에 관한 모든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도록 구안하여야 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를 통해서 교육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 제시 및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자료들이 데이터베이스로 집적되어 있다면 정책 입안자는 물론, 현장의 행정가들에게 적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교육위원들이, 지방의회의 교육복지위원회 의원들이 필요한 자료는 이를 통해서 얻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연감에는 교육에 관한 모든 자료가 집적되어 있어야 한다. 해마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례를 모아 “교육통계 연감”을 만들어 각 기관에 배포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물론,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여 정책도 마련하고 비전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감사 및 행정감사가 시작되면 교육부에서부터 시작되어 저 산골 학교까지 해마다 난리가 나는데, 이는 구태의연한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변화하지 않은 것이 이 풍경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의 정책담당자와 함께 해야 할 국정감사 또는 행정감사가 되어야 한다. 교실 현장의 교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할 선생님까지 각종 감사에 동원하여 허둥거리게 해야만 감사의 신바람이 나는 것인가. 차제에 교육부 또는 시도 교육청에게 “교육통계 연감” 제작을 거듭 제안하고 싶다. 국회의원, 교육위원, 지방의회 의원들이 학교를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교육통계 연감”을 검토하고 분석하여 교육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으면 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 이라고 하는 까닭은 사람이 두뇌․ 사고․ 언어․ 손재주 등 여러 면에서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월등한 능력을 소유함으로서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까닭의 하나는 사람은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일가 친척관계를 이루고 이를 아주 중요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에 사람만이 유지하고 있는 이 친척관계를 그 구성원들이 잘 모르거나 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래서 정상적인 일가친척의 관계가 허물어져 버린다면 만물의 영장은커녕 다른 동물과 다를 게 없을 것이며 아니 오히려 그 뛰어난 지능으로 다른 동물보다 더욱 타락한 존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의 우리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친척관계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촌수로는 ‘아저씨’ 인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야,자’ 하지를 않나, 분명히 자기 조카 항렬(行列)인데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아줌마’ 로 부르기도 하고 ‘고모’ 를 ‘할머니’ 로 ‘외삼촌’ 을 ‘형’ 으로 부르는 등 친척관계와 그 호칭법을 몰라서 범하는 오류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를 그때그때 자상하게 지도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어른들이 이쪽에 무관심하거나 그런 것쯤 모르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 크면 다 알게 될 것인데 공부나 잘하면 되지 하면서 오히려 설명하는 걸 귀찮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어른조차도 복잡한 친척관계 와 그 호칭법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현직교사도 예외는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이를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이 젊은 현직교사도 어릴 때부터 이방면의 교육을 철저히 받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조부모님을 모신 가정이나 특별히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 말고는 입시공부에만 전념해온 그들에게 누가 이 분야를 챙겨서 가르쳐 주었을 리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학교교육의 크나큰 맹점이다. 초중고 교육과정 어디에도 이 분야를 중요하게 다룬 곳이 없고 누구하나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일차적으로 가정교육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한 일이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므로 초․중학교 어느 교과에서든 ‘친인척의 개념’ ‘친인척의 촌수관계’ ‘친인적 상호간의 적절한 호칭’ 등을 체계화하여 한 영역으로서 교육과정에 반영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범위를 초․중학교의 발달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도하도록 하면 된다. 그리하여 기본적으로 민법에서 규정하는 친척(親族/外戚/姻戚) 즉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등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이 문제를 안타까이 여겨 나름대로 간단한 교재를 만들어 담임재량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지도를 해보았다. 물론 복잡한 단계까지 가지는 않고 기본적인 수준의 지도였지만 그 반응은 꽤 좋은 편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친척관계에서의 나의 위치와 촌수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호칭에 흥미를 보였으며 특히 자기의 일가친척계통에 실제로 존재하는 친척이 있는 사람은 자신과 친척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그 호칭에 대해서도 비로소 실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요즘엔 대부분 가정이 하나의 자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사전에서 ‘형제자매’ 란 단어마저 사라질 위기이고 보니 실제로 자기 일가친척이 많지 않고 그와 같은 친척관계나 호칭법을 일상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데에도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어른들 특히 후세를 기르고 가르치는 이들이 이를 자기소관이 아니라고 해서, 교육과정에 없다고 해서, 번거롭다고 해서, 혹은 별로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대로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나가자. 이것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람이 지키고 유지해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인륜도덕(人倫道德)이기도 하다.
청년 시절에 읽은 청천 김진섭의 수필 한 대목에 나는 공감했다. 일생을 즐겁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면 만년에 죽는 자리에 누워 있어도 유유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의 일생을 귀중한 예술품의 완성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 젊은 시절에 읽은 이 구절이 영 잊어지지 않고 삶의 고비마다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런데 어떤 노 정치가가 기자와의 대담 중에 정치를 또 예술에 비유하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모 원로 인사가 시장 직에서 퇴임하며 행정이 예술과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평소에 인생은 예술이라는 생각은 줄곧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가가 정치는 예술이라고 하고, 서울시장을 했던 분이 행정이 예술과 같다고 했을 때 나는 아주 신선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교육도 바로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시를 읊조려 보기도 했다. 정치도 예술이라고 노정치가가 말했다 인생도 예술이라고 한 수필가가 말했다 성공한 행정가는 또 말 하네 행정도 예술이라고 교육도 예술이다 청소 안하고 그냥 간 영희 반성문을 쓰게 할까 화단 풀 뽑기를 하게 할까 오늘도 지각한 철수 벌 청소를 하루만 시킬까 이틀을 시킬까 영희가 해야 할 일 지가 하도록 철수가 시간을 잘 지키도록 이리저리 궁리하는 선생님은 예술가 교육도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였다. 백년의 앞을 내다보고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계획하는 일이라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이고 예술은 무엇인가. 교육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그 개념이 너무 복잡하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바르게 가르쳐 그 개인에게도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하고 국가와 민족에도 이로운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니 오늘은 통상적으로 일컫는 교육에 국한하여 생각해보기로 한다. 정치가가 정치는 예술이라고 하고 행정가가 행정은 예술이라고 말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야에서 연륜을 쌓아오면서 직관적으로 얻게 된 깨우침인 것이다. 전문가의 직관엔 깊은 성찰에 버금가는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마치 오랜 역사를 두고 전래되어온 민간요법이나 생활 속의 속설들이 현대에 와서 그 과학성이 입증되는 예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육은 예술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경험에서 얻어진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예술엔 문외한이니 예술의 영역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 우리의 인생에 다양성과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이란 초보적 상식만으로도 교육은 예술이라는 명제가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 교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술적 성과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처럼 아름답고 조화롭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처럼 유연하고 다양하게 교육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예술처럼 아름다운 교육이 되는 것인가. 나는 오랫동안 시를 써온 터이니 시 창작의 예를 들어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기로 한다. 나의 지론은 시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시는 세상을 보다 낫게 바꾸려는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선과도 무관할 수 없다. 시도 예술의 한 갈래이니 예술은 곧 진실하고 사랑과 선이 내포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즉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엔 반드시 진과 선의 기본골격이 있어야 한다. 이로써 예술의 개념이 명확해졌고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도 설정된 셈이다. 곧 교육은 진선미의 추구하여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엔 방법상의 문제가 진지하게 대두될 것이다. 방법상의 문제는 학문적으로는 교육공학일 것이지만 현장교사에겐 이론보다 더욱 절실한 문제가 따로 있다. 인류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의 증진에 이바지할 사람을 배출하기 위해 현장교사가 힘써야 할 일이 자명해진다. 각 교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럴 때 수십만 명의 교육자가 펼치는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대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국민을 감동시키고 미래가 보장되는 대향연이 될 것이다. 나는 28년째 교편을 잡고 있다. 시골학교에도 있었고 도회지 학교에도 있었다. 남학교에도 있었고 여학교에도 있었다. 실업계 학교, 인문계 학교, 또 사립학교, 공립학교에 두루 근무하였다.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교육활동을 해온 셈이다. 사반세기가 넘게 교육계 동향을 몸소 겪어 오는 동안 이제 어렴풋이 교육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된 듯도 하다. 어떤 면에서 발전 했으며 어떤 면이 과거의 관행이나 폐습을 답습하고 있는지 상식적인 선의 안목을 갖게 된 것도 같다. 철필로 줄판을 긁어 일일이 수작업으로 등사를 하고 채점을 하고 통계를 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교사들의 신분보장이 상당히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보수체계가 다소 개선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이 발전하고 있느냐 하는 데는 동의 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다. 교육이 예술이 되기 위한 당면과제고 시대의 요청이다. 대안교육이 모색되고 특성화 학교의 필요성이 날로 증대되는 이 시점이 바로 교육에 예술적 접근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임을 깨닫게 된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지금의 교육은 전혀 예술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며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의 발로이며 맹목적인 교육열이다. 과욕과 경쟁심과 이기주의가 진선미를 추구하는 예술이 될 수는 없다. 교육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절제와 여백이 있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깊이와 폭이 있어야한다.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도 안 되고 자율성과 유연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자율성과 유연성이 모든 생명력의 고양을 가져오고 바로 예술성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의 열풍, 일류 대학을 향한 총 진군, 평준화로 인한 획일성 모두 교육의 경직성이다. 이런 경직성이 타파되고 교육이 유연하게 작동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또 교육의 다양성이 확보되어 개성이 신장될 때 교육은 진정한 발전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예산의 문제이거나 관리능력의 부족이거나 누적된 병폐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전인교육을 하여야 되고 특기적성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을 다 알면서도 입시에만 총력을 경주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 까닭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정되지 않는다. 시정되지 않는 원인까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시정하기엔 너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장엄한 음악을 연주하려면 반드시 제도의 정비와 조율이 필요하다. 정부와 교육계, 학부모와 학생이 모두 나서서 개인의 행복을 창출하고 국가의 번영을 약속할 새 교육의 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개혁도 부작용을 낳고 교원단체의 정당한 주장에도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다 함께 지혜를 모아 산적한 난제들을 슬기롭게 풀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국민들에게 일파만파로 충격을 주고 있다. 미리 알아챈 청와대 참모들까지도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계로썬 임기는 고사하고 교육현실과 교육정책의 역주행으로 교육을 황폐화시킨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노 대통령은 ‘나홀로’ 방식으로 자수성가하여 마침내 대통령까지 오른 ‘성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임기 내내 교육수장 임명도, 교육정책 추진도 현실을 도외시한 ‘나홀로’ 방식이었다. 현장의 교원, 교육단체,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논리’, ‘경제논리’에 따라 교육을 정치화·시장화 함으로써 결국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모두 망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교육피폐화의 원조 이해찬 씨는 정치인, 한 술 더 떠 대통령과 함께 경제를 망친 장본인 중의 하나인 김진표 씨에 이어 김병준 씨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하는 ‘깜짝쇼’를 했다가 결국 조기불명예 퇴진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교육적․도덕적 ‘눈높이’였다. 결국 정권 내내 교육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와중에 교육개혁은 ‘교육개악’으로 이어졌다.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를 내세워 대학입시에서 수능을 약화시키고 학생부를 강화했다. 거기다가 내신·수능고사와는 별도로 대학 입학에서 당락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통합논술’을 도입함으로써 사교육비 경감은커녕 대학의 논술 강화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사교육 시장 폭발 사태를 불러왔다. 학교교육력 제고라는 가면을 쓴 채 반교육적 경쟁을 강요하는 교원평가제는 교사를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무자격 교장초빙공모제 강행함으로써 교육부가 앞장서 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는가 하면 법원으로부터 학교 시험 문제가 지적소유권 보호 대상으로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문계 고교 시험지를 인터넷에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최근에는 현재 전국 각 시도별로 분리돼 있는 교육위원회와 시도 의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교육현안을 심의하는 교육위원회 위원을 정당명부비례 대표제로 선출하는 법안을 추진함으로써 교육자치와 지방교육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육재정 파탄, 교원임용정책 실패, 특목고 정책 혼란, 현실을 무시한 교원성과급제, 초등학생부터 해외로 내모는 영어과잉정책 등 현 정부의 교육황폐화 정책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공교육은 존재의의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교육계는 물론 국민들은 정부가 뭐라고 하든 믿지 않는 ‘청개구리 심리’가 퍼져가고 있다. 대통령의 오만한 코드정치와 정부의 이상주의적 탁상행정이 가져온 결과다. 제발, IMF 위기로 ‘경제를 망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김영삼 대통령처럼 노대통령과 참여정부가 ‘교육을 망친 대통령과 정부’로 기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일본 지방정부가 한국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열도의 중앙에 위치한 야마나시현, 나가노현, 기후현은 지난달 20~25일 한국 교육관계자 9명(고교장 6명, 청소년연맹 1명, 본지기자 1명, 한나라여행사 1명)을 처음으로 초청해 3개 현의 관광, 견학, 체험코스를 소개했다. 각 지방정부 관광진흥부 부․과장 등은 “한국이 미국․대만에 비해 일본에 오는 수학여행 인원이 적다”며 한․일 학생교류 활성화 방안을 물었다. 한국 측 참석자들은 “무엇보다도 경비 문제가 최대의 걸림돌”이라며 “특히 3개 현은 내륙에 있어 한국 학생들이 주로 활용하는 선박을 이용한 수학여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소년연맹 관계자는 해외 수학여행 코스로 중국에 비해 일본이 인기가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단체들에 의한 해외여행에 국한해 보더라도 한 해 7000여 명 정도의 초중고생 중 63%가 일본, 37%가 중국을 찾는다”며 “일본은 청결과 질서의식 등 배울 점이 많아 학부모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매년 400여 명이 선박을 이용한 일본 수학여행에 참여한다는 서울 염광여고 김혜선 교장은 “항공을 이용한 수학여행은 경비가 과도할 수밖에 없어 현 단계에서 무리”라며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학생들 일부가 참여하는 단기 어학연수 코스는 별도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도 경비 문제 등 이유로 공립학교 보다는 사립학교에서 해외로 수학여행을 보내는 사례가 많다. 다까야마시 관광과의 한 직원은 “올해 다까야마에는 국내외 429개교에서 7만여 명이 수학여행 왔는데 이들 중 한국 학생은 1200명 이었다”며 “보다 활발한 교류를 위해 홈스테이, 유스호스텔 이용 등 비용 절감을 위해 양국의 관계자들 사이에 정보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누마 세이지 야마나시현 관광부장은 “창의적 세계인을 육성하기 위해 한․일 학생교류가 활성화되도록 지혜를 모으자”고 말했다. 이번 초청 행사를 통해 한국 교육관계자들은 일본의 수학여행은 관광과 견학 외에 다양한 체험학습 코스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후현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서의 헬리콥터 운전 체험, 3~4백년전 가옥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제이기도 한 히다다까야마 추억관 관광 후 전통인형 만들기 체험, 만년설이 덮인 해발 3000m 이상 산들로 둘러 싼 북 알프스와 에도시대의 주막을 재현한 츠마고쥬쿠 관광후 소바 만들기 체험, 스와시 스하꼬 호수 관광 후 사과농가 체험, 일제시대 한국의 도자기 문화와 산림보호를 도운 노리타카와 타쿠미 형제 자료관 견학 후 키프협회에서의 환경교육 체험, 이찌가와 고교 방문 후 후지산 에코투어로 박쥐동굴 주변 지질과 생태체험 등 관광과 견학 후 체험학습이 뒤따라 여운을 진하게 했다. 관광지 마다 수십 종의 다양한 체험상품들이 즐비하고 잘 훈련된 은퇴 노인들이 자원봉사 가이드로 활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에서는 자판기 탄산음료의 판매를 규제하고 있고, 미국 의사단체에서는 맥도널드, 버거킹 등 미국의 7개 패스트푸드 업체를 대상으로 위험한 발암성 물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제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영국은 학교에서 ‘JUNK FOOD 추방을 위한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인도에서는 탄산음료 캔에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경고문 삽입을 위한 법 규정이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우리나라 역시 어린이 비만 3명 중 1명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고, 특히 비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비만을 전 세계적인 건강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초․중․고 전체 학생 수는 832만 3567명으로, 이 숫자는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시대를 우려하면서도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학생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나 정부차원의 대책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2년마다 학생들의 식생활 종합에 관한 ‘청소년 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건강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매년 학생신체검사 결과를 교육부가 종합하여 키와 신장 등의 신체검사 결과만을 발표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최근 학생․교원․학부모 교육공동체가 앞장서 ‘건강한 몸, 좋은 교육’ 운동을 주창하면서 학생들의 영양섭취 불균형과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에 대해 유해 경고문 의무표기를 입법 청원한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구조 속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학생건강 문제를 전 국민들의 관심 사항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불과 1 개월 만에 입법청원에 학생․교원․학부모 50만 6567명이 연명한 것은 2세들을 위해 해야 할 우선적인 책무가 무엇인지를 재삼 강조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7일 국회교육위원회에서 교육자치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식상한 정치에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는 판에 그나마 정치에 물들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걸고 2세 교육에 전념해오면서 교육 자치를 지켜왔는데 이제 교육마저 진흙탕 정치판에 밀어 넣는 꼴이 연출되고 있어 안타깝다. 큰 나라처럼 땅덩이가 커서 인구규모나 지역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주마다 법이 다르고 제도가 다르게 운영하려는 것도 아니고 한 개의 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무엇을 쪼개고 나누어 어쩌자는 것인가?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는 어쩌라는 것인가? 작은 곳 소외된 곳에도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정치권에서 할 일이 아닐까? 여권의 교육위원 8명 전원이 찬성하였으니 지지도가 더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지방자치가 만병통치처럼 교육을 지자체에 흡수하려는 논리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통과된 법안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교육의 재정확충 등 외적인 면의 발전만 기대하고 있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2세 교육을 잘 할 수 있는 희망보다는 교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정치적 논리에 교육계가 혼란을 가져올 것은 예상도 안 해보고 만든 법안 인 것 같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선출하는데 현재 학교운영위원 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간선제라서 불법선거 시비에서 자유로운 주민직선제로 한다는 것인데 현재 운영위원들도 막상 선거를 하려면 어떤 후보가 교육위원으로 마땅한 인물인지도 잘 모르고 투표에 참여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뽑아야하는 지방자치 선거에는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 단체장, 기초의원을 뽑아야하기 때문에 헷갈리는데다 학부모도 아닌 주민들에게 교육감과 교육위원까지 뽑아달라는 것도 혼란스럽고 무리가 따르지 않겠는가? 광역단체장이 교육까지 장악하고 교육 자치를 말살하려는 이 법안은 시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교육감과 교육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판에 줄을 서지 않으면 당선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광역자치의 교육수장이 교육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당선된다면 교원들의 존경을 못 받을 것이며 교육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혼란이 초래 될 것이라고 본다. 교육수장 한명이 비전문가가 앉으면 요직도 비전문가가 앉게 되어 교육이 전시행정에 치우치고 정치 쪽에 눈치만 보게 될것이므로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째, 지방자치가 되면서 기초단체만해도 10 여개 이상의 축제가 개최되어 공무원들이 축제에 매달려서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축제를 치르다가 한해가 가고 있다는데 교육이 지방자치 밑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행사에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강제동원 등을 피할 수 없을 텐데 교육과정운영이 제대로 되겠는가? 셋째, 경기도나 서울처럼 인구가 집중되고 있어 학생이 계속 늘고 있는 시도는 재정 자립도가 높아 교육여건이 더 좋아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시도의 경우 교육격차가 더욱 심화되어 자녀교육을 위해서 대도시로 이주를 하는 현상이 지금보다도 더 가속화되어 학생들이 없어서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날 것이며 인구의 도시집중을 부추길 것이다. 넷째, 국가공무원인 교원들을 지방직화 하면 신분보장이 안 되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아 마음 편하게 교육에 전념할 수 없게 되어 교육의 질도 떨어질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도의 경우 보수격차가 크게 날 것이며 교원의 대도시 집중화현상이 나타나면 교육의 균형이 깨지고 황폐화를 가져 올 것이다. 다섯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 헌법 31조에 위배 되고 교육의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위원회에서 조례제정권과 예산 최종 의결권도 부여하는 독립형의결기구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교육계의 반대 이유이다. 법적인 시비는 또 있다. 평균 12만 명을 대표하는 시의원과 평균 120만 명을 대표하는 교육의원이 동일하게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위배된다고 하니 위헌시비까지 예상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것은 숫자의 의미뿐이 아니라 그만큼 신중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제도도 바꿔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교원의 수급문제도 생각하지 않고 단칼에 3년을 자른 정년단축의 후유증으로 교육의 질이 저하된 것도 큰 잘못이었는데 교육 자치를 말살하고 지방자치의 정치판에 흡수시키려는 것은 어마어마한 잘못 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100년이 지나도 후회보다는 잘 한 일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찬성표를 던진 국회교육위원들의 반성을 촉구하며 지금이라도 교육계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본 회의 통과를 막아야 한다. 언젠가 후회할 일은 사전에 막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