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98,70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사랑 받은 쥐 미국 어느 대학에서 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첫 번째 그룹은 한 마리씩 구분된 쥐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었다. 두 번째 그룹은 다섯 마리 쥐를 함께 지내게 하며 먹이를 주었다. 세 번째 그룹은 사람의 손에 쥐를 놓고 쓰다듬어 주면서 먹이를 주었다. 그 결과 첫 번째 쥐는 6백일을 살았도 두 번째 쥐는 7백일을 살았다. 그런데 세 번째 쥐는 무려 9백50일을 살았다. 또 학자들은 쥐를 해부하여 뇌를 살펴보았다. 세 번째 그룹의 쥐들이 다른 쥐들 보다 뇌가 크고 무거웠으면 잘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용기를 주는 말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영국의 계관시인 월터스콧은 어린시절 '멍청한 아이'로 놀림을 받았다. 그는 열등생이 쓰는 종이모자를 쓰고 교실 한구석에서 침울하게 지냈다. 그러나 스콧은 문학에 관심이 있어 좋은 시를 보면 열심히 외웠다. 그가 열세 살쯤 되었을 때 유명한 문필가 모임에 참석했는데 여기서 그의 운명이 변했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로버트 번주가 우연히 스콧의 시 암송을 듣고는, "꼬마야, 너는 언젠가 영국의 위대한 인물이 될 거다." 라고 칭찬했다. 번즈의 칭찬을 받은 이 '열등생'은 그때부터 용기와 꿈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 1800년대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시인, 소설가, 법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은 한 인격을 변화시킨 것이다. 체벌, 그 대안을 찾아서 체벌금지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면 금지로 인해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까지 기사로 접한다. 체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직 교사와 모범생(?)들이다. 학부모가 내놓고 체벌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말로 통하지 않는 아이들, 자식 같은 아이들이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며 이죽거리는 행동까지 보인다는 하소연들이 넘친다. 나도 그런 아이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6학년 영재반 교육 연임을 거절했다. 그런가 하면 체벌로 인해 피해를 본 학생과 학부모의 고소 고발로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아예 교단에서 내려서야 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한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교육하기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대안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안 없이 학교 현장에 내맡겨진 셈이다. 필자 또한 체벌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기에 체벌에 관한한 최대한 신중하게 처신해 왔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초등학교 고학년은 지금의 중,고등학생처럼 사춘기를 지나며 선생님이나 어른들께 버릇 없이 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것을 몇 번 제지하다가 고집을 부리는 우리 반 반장 엉덩이를 20대 가까이 때린 경험이 있다. 잘 하겠노라는 다짐을 받기 위한 것이었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그때 우리 반에서 가장 내 말을 잘 따르고 학급 일에 모범을 보인 반장의 반항이었기에 더 흥분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학생과 나쁘게 헤어지진 않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응어리로 남아 있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상처를 생각하며 체벌을 해야 할 때마다 여러 번 생각하여 그 방법을 바꾸기 위해 애썼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대화가 먼저 내 나름대로 정한 체벌 규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행동이 현저할 때, 여러 번에 걸쳐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날 때, 습관적으로 학습을 방해하거나 과제를 소홀히 할 때등과 같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고의성이 짙은 잘못에 대해서는 1차로 철저한 상담을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따로 남겨 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문제 행동 뒤에는 의외의 사정이 숨겨진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의 반항은 어찌 보면 관심을 가져 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1단계에서 해결이 되었으나 반복 될 경우에는 선생님도 장기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흡을가다듬고 본인이 쓴 반성문에 부모님이 친필로 답신을 쓴 것을 받아오게 하는 방법을 쓴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화를 내면 이미 게임에 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화를 내는 선생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이죽거림이나 뒷말로 뒤에서 무시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화를 먼저 내는 사람이 진다고 생각한다. 교육하는 일이 아이들을 이겨야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참음과 기다림을 밑바닥에 깔고 어버이의 가슴에다 냉철한, 그러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지녀야 가능한 선생의 길! 부모의 친필 싸인이나 편지를 받아오게 하는 방법은 매를 맞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체벌(매를 들거나 벌을 서게 하는 일)보다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법으로 통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었다. 초등학생이라서 이 방법이 순진하게 통했던 것일까? 세상이 날로 변해 집은 있으나 가정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물질을 앞서 가지 못한 정신 문명의 황폐함에서 기인된다고 생각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사는 지 근본적인 물음은 던져 두고 남들 따라 장에 가고 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어 부모된 자세나 교육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에서 기인되는 것은 아닐까. 법으로 규제하는 체벌 금지, 대안일 수 없다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육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체벌 또한 선생님의 역량이며 책임도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체벌할 수 있다고 해도 체벌하지 않는 선생님이 있을 수 있고, 체벌하지 말라고 법으로 정해도 체벌하는 선생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체벌금지를 하면 교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란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그럴 듯한 이유가 될 수 없으니 난감하다. 결국은 체벌금지는 법 규정 이전에 선생님 각자의 뚜렷한 소신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체벌을 하여 불이익을 보면서까지 할 바에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할 수 밖에 없지 않냐고 하는 말도 그리 좋게 들리지 않는다. 소극적으로 피난처를 찾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때려서라도 가르쳐 달라는 학부모도 있지만 그걸 진심이라고 믿지는 말아야 한다. 속으로는 때리지 않고도 잘 가르칠 수 있기를, 그렇게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뜻이 숨겨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자랑은 아니지만, 교직 경력 30년 동안 체벌을 하면서까지 열심히 정열적으로 가르쳐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한 제자는 한, 두명에 그친다. 대부분 자상하게 대화하고 함께 아파하며 참고 기다려 주며 가슴으로 가르친 제자들이 잊지 않고 자식처럼 찾아준다. 체벌이 뜨거운 태양이라면, 인내하는 방법이 훈풍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체벌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의 문 앞에 서 있다. 언제까지 구시대의 잔재인 독재 시대의 강압과 군사 문화의 전유물인 폭력이나 체벌 문화를 필요악으로 여기며 합리화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바야흐로 세상은 인권시대이다.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정에서 빠른 효과를 보겠노라고, 모범생들의 학습을 방해한다고, 선생님의 훈육에 대든다고 체벌을 합리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질 체벌문화라면 힘들더라도 함께 대안을 찾을 일이다. 가정 폭력으로 맞고 자란 아이들이 다시 때린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맞고 군대 가서도 맞으면서 체벌이 세습되는 것이다. 학교 폭력을 추방하자고 결의 대회를 하면서 선생님의 체벌은 어쩔 수 없으니, 필요악으로 용인하자고 하는 것도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이제는 정말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를 하고 그 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을 세워 놓고 가능한한 기록으로 남기며 대처하고 있다. 1.체벌이 아니면 그 학생을 지도할 방법이 없는가? 2.체벌이 그 학생에게 유익이 되는가? 3.문제 행동을 하기까지학생의 사정이나 형편에 관해 몇 차례나 기록을 남기고 상담을 했는가? 서두에 인용한 사랑 받은 쥐와 용기를 주는 말에는 체벌이나 사랑의 매는 없다. 선생님이 때려 주어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이제는 힘들더라도 '사랑의 매'는 괜찮다는 어설픈 교육철학은 던져버리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고통과 책임만 따를 뿐이다.
SBS드라마스페셜 ‘대물’이 시끄럽다. 그도 그럴 것이 ‘대물’은 26.3%로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며 ‘뜨고’ 있는 중이다. “‘여성대통령 드라마’ 관전법” 같은 칼럼 등 일간신문들이 앞다퉈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한창 방송중인 드라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종영까지 기다릴 수 없게된 이유이다. 논란의 한가운데엔 ‘여성 대통령’이 있다. 작가와 PD교체 등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위기다. 여야 정치권 반응도 제각각이다. 특히 민주당은 ‘박근혜 띄우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내 친이계 또한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불편한 심기가 완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웅 SBS드라마 국장은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드라마로만 보더라도 ‘대물’에는 두 가지 문제가 엄존한다. 이제 4분의 1쯤 나간 초반 전개이니 속단할 수는 없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캐릭터의 희화화다. 희화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트콤이 아닌데도 ‘대물’에는 웃기지 않는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순재)에서부터 지청장(이재용), 하도야 검사(권상우), 그리고 많은 국회의원들까지 딱딱하거나 엄격한 모습이 일반적·상식적일 인물들 희화화는 드라마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현실정치판의 ‘아니면 말고’식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하더라도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주인공 서혜림(고현정)을 돈키호테형 인물로 그려나가는 것은 진짜 심각한 문제다. 클린정치한다며 법정선거비용만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고, 공천받은 후보가 기획·전략 등 당의 지원을 거부한 채 ‘나홀로’ 선거 운동으로 당선되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방송시기이다. 2004년 MBC TV는 ‘영웅시대’를 방송한 바 있다. 100부작이었으나 조기 종영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띄우기 논란이 거셌다. 결국 드라마에서 영웅으로 부각되었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요컨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1년 6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여성대통령’ 드라마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모습이 비중있게 그려질 때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 여성 대통령 후보가 없다면 별일 아니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하기 쉬운 말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무릇 대중은 그렇지 못한 속성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도 선거에서 방송을 이용, 당선된 일이 많다. 방송은 원래 그런 것인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면 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 사례 S교사는 칠판을 낙서장처럼 사용한다. 마치 대학 강사가 강의 하듯이 설명하면서 이쪽에 날아가는 글씨로 썼다가 저쪽에 아무렇게 쓰기도 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름대로 정리를 하지만 아무래도 정리가 잘 안 된다. 때론 그림도 그리지만 그 것도 좀 대충 그려서 잠시 다른 생각이라도 했다간 무엇인지 잘 알아 볼 수가 없다. ▶ 무엇이 문제인가: 판서의 구조화가 요구됨 판서가 제멋대로 낙서하듯이 설명을 하게 되면(판서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학생들은 학습 내용을 당장은 이해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된다. ▶ 왜 문제인가: 학습 내용 전달 부정확 교사가 열심히 설명하면서 수업을 해도 시간이 지나 나중에 학생들이 공책에 정리된 것을 들쳐보고 공부를 할 때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생들도 학습장 정리를 대충하게 된다. 교사가 판서를 잘 해주지 않고 대충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도 당연히 따라하게 마련이다. 교사는 학습장을 구조화 하여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나는 설명하느라 이렇게 썼지만 너희는 바르게 쓰라고 해도 학생들은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 어떻게 개선하나: 논리적으로 압축된 형태의 구조화된 판서 학습한 내용을 핵심을 간추려서 논 리적으로 압축된 형태로 판서를 하면 학생들은 나중에 학습한 내용을 기억해 내기가 쉽다. 빈칸을 이용한 판서 판서의 내용을 모두 쓰는 대신 중요한 부분을 빈 칸으로 남겨두고 학생들에게 빈칸을 채우게 하면 흥미유발과 형성평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앞 글자만 적어주는 판서 학습문제 : 흉내 내는 말을 사용하여 말하여 봅시다.(2학년 국어) * 흉내 내는 말을 사용하면 좋은 점 - 구 - 실 - 재 (수업에서 이미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구체적이다. 실감난다.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학습 내용이 ‘구’, ‘실’, ‘재’만 말해도 척척 나온다.) 학생들의 발표를 교사가 정리해서 판서 학생들의 발표를 주의 깊게 듣고 간결하게 요약하여 판서를 해준다면 학생들은 더욱 발표 의욕을 갖게 하고 학습에도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발표를 위해 조사활동도 더욱 잘 해오게 될 것이다. 자료제공=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겠다고 응시원서를 낸 학생은 사상 처음으로 70만 명이 넘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시모집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과 무관한 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을 제외하더라도 이번 수능시험은 대략 60만 명 내외의 수험생들이 응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수험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한 학부모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초조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철저한 시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결국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지난 7일 삼수생 김모 씨가 경기 성남시의 수능시험지 인쇄 공장에서 시험지를 훔치려다 미수에 그쳤다. 다행히 경찰관 36명이 2교대로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기에 시험지 유출은 막을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보며 기억하기 싫지만 2004년 대규모 수능부정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휴대전화 메시지를 이용한 정답 전송과 대리시험 등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부정행위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을 산 일이 있다. 이후로도 수능시험은 아니지만 2007년 김포외고 입시와 2008년 고3 전국연합학력고사에서 문제지가 유출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수학능력시험은 수험생들이 적게는 일 년부터 많게는 십수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며 준비했기에 철저한 관리와 운영은 당연하다. 입시제도가 다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능은 대입전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능 결과에 따라 젊은이들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따라서 수능시험과 관련된 제반 사항은 티끌만한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교육 당국은 이번 수능시험지 절도 미수 사건을 접하며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유혹과 시도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험 출제, 시험지 인쇄, 시험지 배포, 채점 등 전 과정에 걸쳐 철통같은 보안책이 요망된다. 더불어 예방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수험생들은 부정행위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망치게 하는 일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9일 서울 서초구 양재고등학교 김종근 교장은 '특색있는 학교 만들기' 선도학교 운영 보고회를 가진 뒤 학생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국화꽃을 내빈들과 둘러보고 있다. 좌로부터 김종근 양재고 교장, 안양옥 교총 회장,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진익철 서초구청장. 양재고등학교는 2009-2010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자연친화적 창의.인성 함양을 위한 Eco-school 운영' 이란 주제로 선도학교 운영 보고회를가졌다.
서울․경기의 체벌 전면 금지로 일선학교가 학생지도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교과부가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다. 이렇게 되면 하위 법령인 조례나 지침이 사실상 사문화돼 서울 학교의 경우, 학생생활규정 재개정 추진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교과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의 체벌금지로 교실의 혼란상황이 교사의 수업권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침해받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조례에 의한 획일적인 금지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간접 체벌 여부 등을 학칙에서 정하도록 시행령에 위임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즉, 신체․도구를 이용한 직접적 체벌은 금지하되, 손들기나 쪼그려뛰기 등 간접 체벌을 포함한 모든 훈육․훈계 방법은 학칙에서 정하도록 명시한다는 것이다. 대체벌 매뉴얼에 손들기, 운동장돌기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연말까지 학교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대신 직접 체벌의 빌미가 돼 온 현행법의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규정은 삭제하기로 했다. 시행령이 구체적 훈육방법을 학칙에 위임함에 따라 앞으로 일선 학교는 조례와 관계없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들어 학칙을 개정할 수 있게 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이달 초 서울시교육청의 지시로 체벌 금지 생활규정을 마련한 서울 학교들은 재개정을 할 수 있게 되고, 경기도 학교들도 내년 학칙 개정시, 인권조례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학내 집회 등도 학칙에서 제한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위임근거를 두기로 했다. 학교 교육활동과 타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학생의 제반 권리를 일정 수준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징계의 종류에 ‘가정교육’을 추가해 사실상 정학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교과부는 15일 이 같은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2월 중 공포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교총은 “간접 체벌을 포함해 교사의 학생지도권 보장을 위한 보다 명료한 규정이 시행령에 담겨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현행법의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문구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총은 또 ‘강제전학’ 등 징계수단도 더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가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가을이라기보다는 만추(晩秋)다. 내일 모레면 12월이고, 올 경인년 달력도 이제 외로운 새색시 마냥 달랑 한 장이 붙어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 근처 느티나무로 이루어진 둔산 숲속 공원을 거닐면 그러한 표현도 정확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가씨를 위시한 많은 남녀노소들이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해서 늦은 가을을 맘껏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점심때 바람이 제법 불어서 그런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마치 노란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추풍낙엽이라고 하더니 바로 이런 장면을 말하나 보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기가 제법 좋다. 그런데 둔산 숲속 공원을 걸으면서 느끼는 단상이 있다. 숲속 공원에 자리한 느티나무의 수량과 그들이 떨어내는 낙엽의 양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져 쌓여 있는 낙엽은 상당하다. 즉, 바닥의 콘크리트 벽돌을 모두 가릴 정도로 쌓여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구청에서 다른 곳에 있던 낙엽들을 모아서 바닥에 깔아 놓았다는 것이다. 구청 입장에서야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 행정의 일환이겠지만 필자와 같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낙엽을 밟게 하면 될 것이지 이렇게 일부러 낙엽을 퍼 와서 바닥에 깔아야 할까.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콘크리트만 밟다보면 땅 한번 못 밟는 것이 우리네 도시인 삶인데 차라리 지기(地氣)라도 느낄 수 있게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맨땅을 밟게 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와는 별개지만 아침 7시경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보는 광경이 있다. 그것은 무슨 바람을 불어내는 분무기를 가지고 체신청 앞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도로나 한쪽으로 불어 모아서 쓸어 담는 모양이다. 분무기를 돌리려니 휘발유를 때야 할 것이고, 소음도 발생하는 동시에 매연도 상당하다. 아침의 고즈넉함을 즐기려는 필자에게는 상당히 눈에 거스른다. 그렇게 꼭 쓸어 담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그냥 놔두어도 자연스러운 일인걸. 낙엽이 휘날리며 뒹굴어 다니면 지저분하다고 보는 윗분들의 등쌀에 못 이겨 청소를 하는 모양으로 지레 짐작은 한다. 상황은 우리 청사도 비슷하다. 매일 아침에 현관 입구에서 빗질을 하는 청소용역 아저씨가 기계 대신 빗자루로 그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가을에 본 위 두 가지 모습을 보고 느껴본다. 만일 숲속 공원과 우리 사무실 청사의 바닥이 콘크리트 벽돌로 덮여 있지 않았다면 낙엽이 떨어져도 굳이 지금처럼 악착같이 쓸 필요는 없으리라 여긴다. 왜냐면 자연의 일부인 나무에서 나온 낙엽은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썩어서 다시 그들 나무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러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채 인위적으로 바닥에 돌과 콘크리트를 깔아서 깔끔하게만 보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자연은 별개 아니라고 생각한다.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두는 것이다. 거기에 자꾸 회색을 입히고, 반듯하게 잡으려고 하면 꼭 사단이 나게 마련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4대강 사업도 그런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재미를 많이 본 청계천 복원 사업도 그렇다. 자연스러움을 잊은 것은 그 자체로 자연이 아니다. 그리고 억지로 만든 인공물은 언젠가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기 마련이다. 자연(自然), 그것은 그대로 둘 때 아름다움을 발한다. 인간들이여, 자연에게 자유를 허하라.
축하합니다! 충남 서산 서령고 이상현 군, 2충1효 전국학생백일장대회에서 대상 수상! 지난 10월 23일(토), 태안군 남면 숭의사 일원에서 실시된 2충1효 전국학생백일장대회에서 충남 서산 서령고 1학년 5반 이상현 군이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이 군은 '화개고등학교 1학년 7반'이란 제목으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화개라는 고장에서 근무하는고등학교 교사의 시선으로 지역감정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해 심사위원들로부터 소재와 이야기 전개방식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2충1효 전국학생백일장대회는 올해로 2회 째를 맞고 있으며 전국에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초·중·고 학생 및 일반인 500여명이 참가해 각자의 필력을 겨뤘다.
중 고등학교 시절이 벌써 1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우려곡절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학교라는 곳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나열해 보자면 첫째는 폭력, 둘째는 왕따, 셋째는 흡연문제이다. 이 중에서 미래에도 가장 해결되기 어려울 거라는 흡연 문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의 흡연율은 아시아 1위이고 앞으로도 흡연율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 흡연 문제로 인해 청소년들의 건강문제에 까지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완전히 성숙하기 이전의 청소년의 흡연이 성인이 되어서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2배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의 흡연이 증가할 때 국가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교육으로 학생들의 금연을 촉구하고 있다. 흡연예방교육을 통해 흡연의 무서움을 고취시키게 만들고, 흡연동영상을 보여주며 흡연의 심각성을 촉구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흡연 학생들을 모아놓고 금연 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도 예전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정작 아직까지도 흡연은 막지 못했다. 오히려 증가했다. 그렇다면 결국 새로운 해결방안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어른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의 흡연을 자제해야 한다. 흡연에 대한 발언을 들어보면,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어른이니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니까, 스트레스 받으니까...’라는 이유로 흡연이 가능하다는 자기 합리주의 사고를 펼친다. 결국 그에 대항해서 학생들은 ‘입시에 스트레스 받고, 내신에 고통받고, 취업도 어려운데 미래를 도통 모르겠고...’하는 반박의 논리를 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듯이 선생님들의 모범으로 인해 학생들의 흡연 변명을 미리 막아야 한다. 둘째, 흡연 적발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 해야 한다. 흡연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선생님들의 흡연학생 감시가 우스울 수 있다. 선생님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는 장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그 학생들의 적발까지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몰래피는 간큰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노력만 조금 더 하신다면 충분히 적발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적발된 학생들에게는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오명을 남기는 일벌백계를 행하여 흡연학생들의 압박을 가해 주어야 한다. 셋째, 청소년 보호법을 강화 시켜야 한다. 현재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파는 가게가 적발시에는 몇 개월 영업정지로 경미한 처벌을 가하는 수준이다. 청소년 보호법을 강화해서 그런 가게들이 적발시에 더 강력한 처벌을 주어 다시는 청소년 들에게 담배를 파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결국 흡연 해결방안은 시대의 추세에 맞게 강경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실질적인 행동과 법안 개정은 필수라고 본다. 그리고 막무가내의 흡연학생들에게 억압적인 행동은 반발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온화하게 대응할 필요도 있다. 물론 필자의 해결방안도 100% 확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여러조건으로 인해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더러운 공기를 학교에서나마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아침은 겨울의 맛을 느끼게 하는 아침이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길가의 아름다운 가로수의 단풍잎을 앗아가고 있다. 이런 날일수록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도록 애를 써야 하겠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교내방송을 통해 명심보감의 문장이 흘러나온다. “知足者는 貧賤亦樂이요 不知足者는 富貴亦憂니라.” ‘지족자는 빈천역락이요 부지족자는 부귀역우니라.’ 이 말의 뜻은 ‘만족함을 아는 자는 가난하고 천하여도 또한 즐겁고,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는 부하고 귀하여도 또한 근심하느니라.’ 명심보감 안분편의 두 번째 문장이다. 만족(足)에 대한 가르침이다. 만족하냐, 만족하지 않느냐에 따라 즐거워질수도 있고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만족하지 않으면 즐거움도 없고 기쁨도 없다. 감사도 없고 편안함도 없다. 언제나 짜증스럽고 불평이 가득하고 마음이 우울하고 마음이 편치 못하다.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이 나의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만족할 줄 모르면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만족이 없다. 얼굴이 밝지 못하다. 마음은 항상 무겁다.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다. 만족을 하지 못하니 욕심이 가득 차게 되고 욕심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게 되고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고 운동도 잘 할 수 없게 되고 정신 건강은 더욱 나빠지게 된다.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다. 현재의 위치에 있음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환경이라도 좋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보다 못한 환경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면 만족이 나온다.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면 아무리 많이 가졌다고 해도, 아무리 직위가 높다 해도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낮아질 줄 아는 사람이다. 만족함을 배우는 학생들이 되었으면 한다. 안분편 첫 번째 문장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나온다. “景行錄에 曰 知足可樂이요 務貪則憂니라.” ‘경행록에 왈 지족가락이요 무탐즉우니라.’ ‘족한 것을 알면 즐겁고, 욕심을 부리면 근심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만족할 줄 알면 좋겠다. 성적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 성적에 대한 만족이 없으면 늘 마음이 불안하다. 정신이 맑지 못하게 된다. 두통이 오게 된다. 잠을 자지 못하게 된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성적에 자신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면 안 된다. 성적에 발목이 잡혀서는 학교생활이 윤택할 수가 없다. 수능을 앞둔 학생들에게도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근심도 사라지고 걱정도 없어진다. 욕심을 부린다고 성적이 더 올라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 착실히 정리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 된다. 그러면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잘 발휘해 더욱 만족함에 이르게 된다. 겨울이 다가오는 이 즈음에 육신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면에 만족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욕심, 탐욕, 더 가지는 것, 더 올라가는 것 등은 다 나를 해치게 하는 독이다. 적게 가져도 만족하면 부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않으면 늘 가난한 사람과 같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주인 되는 것도 좋지 않다. 탐욕이 나를 걱정하게 만들고 근심하게 만들면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도록 해야 한다.
세 가지 관문 어떤 현인의 제자 중에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이 사람은 말을 지어내 남을 험담하고 다녔다. 현인은 조용히 제자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은 생명의 수분이요, 파멸의 무기라네. 남을 판단하는 말은 삼대문을 통과한 후에 해야하는 법일세." "그게 도대체 어떤 문입니까?" "첫째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둘째로 자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문을 통과해야지. 셋째는 이웃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문을 통과해야 할 걸세." 선생은 그 업의 특성 상 학생들에게 늘 잔소리를 달고 삽니다. 교직원 간에도 업무의 특성 상 본의 아니게 충고를 하거나 불평 불만을 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매우 사소한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공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말을 달고 사는 직업입니다. 그러다보니 소통의 부재에서, 생각의 차이에서, 같은 표현이라 하더라도 전달 상황에 따라서 오래가 생기기도 하여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처음부터 듣지 않고 꼬리만 듣고 집에 가서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그것이 칭찬이라면 괜찮지만 혹시 꾸지람이나 질책을 주는 경우라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내용만 전달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아침에 위의 세 가지 관문을 읽고 느낀 바가 많아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올립니다. 학교도 엄연히 직장이기에 교직원 간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특히 매사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거나 태클까지 거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직장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니까요. 교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인간 관계의 망이 거의 다 노출되어 살아야 하는 학교도 이제는 더 이상 안전 지대가 아님을 실감합니다. 오랜 세월 거의 성역에 가까웠던 교직 사회는 정보 공개 시대를 지나며 먼지 하나 없어야 하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세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맡은 업무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일, 학부모를 비롯한 대민 관계에서도 세 가지 관문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러면서도 의연한 선생이고 싶습니다. 특히 모든 불행의 단초인 내 입에 세 가지 열쇠를 채워서 달고 살아야하겠습니다.
아이들은 꽃입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한 아이의 꿈을 위해 만 대의 조상들이 지켜주고 그를 위해 모든 어버이가 온 마을이 모든 선생님이 부지런히 가꿉니다 그러고도 오랜 기다림이 안으로 익어서야 꽃으로 피어납니다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꿈을 담은 순간의 '꽃'입니다 내 곁에 머무르는 동안 일곱개의 꽃잎이 되고 서른 개의 잎사귀가 되어 그가 피울 꽃을 위해 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졸시 (불교에서는 '꽃'을 가리켜 '만행화'라고 한답니다. 만가지 선행을 해야 꽃이 된다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꽃 중에서도 '사람 꽃'인 아이들을 날마다 가르치는 소중한 업이 교직임을 생각하면 교직의 아름다움과 엄정함에 깊은 숨을 몰아쉬게 됩니다.)
주말에 결혼식이 겹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결혼날짜로 길일에 해당되는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결혼식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세군데를 다녀오고 나서야 정신을 겨우 차릴 수 있었다. 하기야 요즈음이 결혼철이니 두세군데 다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바쁜 삶에 이런일이라도 있어야 예전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두번째 결혼식장에서 거의 4년이상을 만나지 못했던 예전동료를 만났다. 오랫만에 만나서 기쁨이 두배였다. 어느새 주름살도 많아졌고 머리고 거의 백발이 되어가는 모습이 요즈음의 교직생활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식사를 하면서 그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도 놀랍다는 생각밖에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체벌금지가 시작된지 겨우 1주일 정도 흘렀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어느 교사가 수업을 하는데 한 학생이 자꾸 분위기를 흐리기에 몇번 주의를 주었는데 계속해서 무시하길래,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로 데리고 내려와서 훈계를 하면서 야단을 쳤는데, 갑자기 그 학생이 '제가 선생님을 때리길 했어요. 아니면 욕을 했어요. 정말 왜 그러세요. 그냥좀 놔두세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위에 있던 교사들이 듣고 야단을 쳤는데, 도리어 그 학생이 어이없다는 듯이 교무실을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그일 이후에 결국 그 학교에서는 그 학생에 대한 징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지도하기 위해 매를 들었던 교사들이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대로 교칙을 적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학교의 특성상 정서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일의 빈도가 갈수록 많아질 수 있기에 우려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을 엄격한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은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급적 감싸안고 싶은 것이 우리나라 교사들의 정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규정을 철저히 적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형평성 문제등이 제기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들 지도가 정말로 어려워질 것이다.' 현재의 서울시내 학교들의 상황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설득력이 있다. 체벌금지조치가 내려진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서히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체벌금지가 세계적 추세라고 하지만 그들의 정서와 우리나라의 정서는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매를 비난하는 의견도 많지만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기본적인 사랑의 매는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폭력과 사랑의 매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폭력으로 인한 문제는 철저히 하되, 사회통념상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체벌이라고단정짓지 말고 많은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기본이 지켜지는 것이 더 우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수업 분위기가 더 흐려졌어요. 공부에 방해되니 친구를 때려주세요. 매를 들지 않는데 선생님 말을 누가 듣겠어요. 차라리 맞고 끝나는 게 편해요." 체벌 전면금지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의 학생이나 학부형들이 털어놓은 얘기란다. 손들기나 팔굽혀펴기까지 어떤 형태의 체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체벌 전면금지 지침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는 어렵다. 특히 대상자가 학생, 학부모, 교사로 구분되는 교육은 더 그러하다. 8일 머니투데이가 발표한 서울 시내 초·중·고교 체벌 전면금지 여론조사에 의하면 찬성 32.1%, 반대 64.9%로 반대 의견이 훨씬 높다. 맞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해주니 학생들로서는 당연히 좋아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체벌 당사자인 학생층의 반대 응답률이 75.8%로 평균을 10% 넘게 초과했다. 이 수치로 보면 아이들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체벌이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인 수단이냐를 떠나 체벌금지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극소수이더라도 체벌 없이 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이 존재하고, 그 아이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문제다. 오늘날의 교육현장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체벌금지가 다수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그냥 방치하는 교육방종이나 교육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주관이 뚜렷한 교사들이 어려운 일을 감수하며 속 깊은 정으로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가장 좋은 교육이고, 감정이 개입된 체벌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 다 안다. 그동안 일부 교사의 지나친 체벌이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도 감정의 동물이라 치미는 화를 못 참는 경우도 있다. 오냐오냐 받아주면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아이도 있다. 교사의 권위가 사라지면 교실의 질서가 문란해져 교사들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때도 많다. 교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성장통을 겪는 과정이지만 집에서 부모에게 반항하고, 학교에서 교사에게 대드는 아이를 말로 지도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더구나 부모가 자기 자식만 감싸거나 나는 포기했으니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며 발뺌하면 교사들은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학교가 소란스런 아이들과 무기력한 교사들이 공존하는 교육현장으로 전락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 지침이 발표된 후 체벌금지를 시행하지 않는 다른 시도의 학생이나 학부모들까지 체벌에 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상·벌점제, 상담교실, 교내 봉사활동, 학부모 소환제 등 여러 가지 체벌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체벌금지가 뿌리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체벌금지가 비타민 역할을 하도록 부작용을 최소화하하려면 다양한 공론과정을 통해 학생의 학습권과 인권, 교사의 교수권이 같이 보호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부 시간에 옷에 실수하는 아이들 우리 2학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책은 재미있는 제목들의 책이랍니다. 주로 똥이나 오줌, 방귀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지요. 공부 시간에 그런 단어만 나와도 금방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심지어 그런 종류의 책만 즐겨 읽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정규 시간이 끝난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마련하는 독서발표회 시간이면 똥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웃겨주기 때문이지요. 그런 아이들이 실제로 방귀를 뀌거나 뒷처리를 잘 못해서 교실에서 냄새를 풍기는 아이들을 보는 시각은 거의 '응징' 수준에 가깝습니다. 아직도 어린 아이들이라 때로는 본의 아니게 옷에 실수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학기 초부터 아랫도리 속옷과 바지를 여벌로 교실에 갖다 놓게 합니다. 아침식사가 잘못되었거나 우유가 몸에 맞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가끔 생기기도 하니까요. 개인별 지도를 하다가 내가 발견한 경우는 그래도 낫습니다. 아이들 몰래 얼른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들이 코를 그러쥐고 말합니다. "선생님, 이상한 냄새가 나요. 똥 냄새가 나요. 철수(가명)가 그런 것 같아요." "어허,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야, 아마 어떤 친구가 아침에 속옷을 못 갈아입었나 봐요. 그 친구가 미안할 테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은 그런 적 없어요?" 일단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얼른 쉬는 시간을 주어 밖으로 나가게 해서 문제의 아이를 심부름 보낸 것처럼 다른 곳으로 가게 합니다. 옷이 교실에 없으면 집에 얼른 연락해서 해결합니다. 2학년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라 친구가 안 보이면 기어코 찾습니다. "선생님, 철수가 안 보이는데요?" "응, 철수가 갑자기 배탈이 나서 아빠가 집에 데려갔어요. 곧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본의 아닌 거짓말로 둘러대지만 아이들은 그 아이가 올 때까지 자꾸 묻습니다. 왜 오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유심히 보거나 개별지도를 하려고 곁에 가서 코를 킁킁대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학교 공부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거나 학업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 아침 식사를 못하고 오는 결손 가정의 아이들은 좋아하는 음식은 과도하게 먹으려고 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매우 싫어해서 배탈이 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그야말로 학습 진도가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애들 몰래 처리해 주랴, 상처 받지 않게 숨겨 주랴, 혼비백산하여 공부를 어떻게 시켰는지 모르지요. 부모와 상담을 해 보면 자신의 욕구를 음식으로 해결하려는 보상 심리가 있어서 마구 먹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식사지도를 하면서 모든 욕심이 음식을 많이 먹으려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가르치고 음식에 감사하며 먹기, 적당히 남기지 않고 먹기, 좋아하는 것만 먹지 않기를 지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 수업 시간 40분을 참지 못하고 실수하는 아이들에게는 예외적으로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을 용인해 줍니다. 규칙을 준수하게 하는 엄격한 직선도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곡선을 가미하지 않으면 날마다 냄새와 싸우며 수업 시간 자체가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요. 선생님이 방귀도 못 뀌게 한다고? 냄새 이야기가 나오니 아주 오래 전 일이 생각납니다. 읍내 학교에서 6학년 36명을 담임할 때였습니다. 3월 중순을 지날 무렵, 2교시 중간쯤이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교실 뒤쪽 창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매서운 3월에 창문을 여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아직 추운데 왜 자꾸 문을 여는 거지? 어서 창문 좀 닫아요." "선생님, 냄새가 나서 공부를 못 하겠어요." "무슨 냄새? 누가 벌써 도시락이라도 먹은 거니?" "아니오, 영수(가명)가 방귀를 뀌어서 그래요. 그것도 여러 방을 뀌었습니다." "영수는 거의 날마다 이런답니다. 그래서 짝꿍하기가 싫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진지하게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킥킥대며 웃는 소리, 영수를 향해 쏟아지는 농담으로 금방 웃음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얘들아, 영수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니?" "아니에요, 영수는 5학년 때까지 쭈~욱 그랬어요. 방귀가 나오면 아무 때나 뀐답니다. 냄새 나서 싫어요. 선생님! 자기 엄마가 방귀를 참으면 병 된다고 아무 때나 뿡뿡 뀌라고 했대요." "영수야, 참말이니? 어머니께서 교실에서도 아무 때나 뿡뿡 뀌라고 했니? "예,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그러셨어요. 방귀를 참으면 병 된다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방귀를 참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수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오히려 억울하다는 말투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아무 때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귀를 뀌었다는 말에 웃음도 나오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하던 수업을 뒤로 미루고 그 상황을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수는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몸도 훨씬 작아서 4학년쯤 되어보일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별명이 '방구쟁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할 위험까지 내포된 그 애의 행동은 교육적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영수에게도 건강상 무슨 사정이 있어서,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쩌다 나온 방귀라면 모르지만 참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조용한 수업 시간에 친구들을 습관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것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영수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실은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공공시설입니다. 그러니 나 혼자 사는 곳처럼 행동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나에게는 자유스런 행동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뱃속이 불편하여 방귀를 꼭 뀌어야 할 상황이라면 교실 뒷문을 열고 살짝 밖으로 나가서 복도에서 처리하고 들어와도 됩니다. 선생님에게 눈짓만 하고 나가면 됩니다. 다른 친구들도 영수가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니 이상한 별명으로 영수를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지도한 뒤로 더 이상 수업 시간에 창문을 열거나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영수가 다른 아이들에게 방귀쟁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일도, 친구들이 기피하여 짝꿍을 하지 않으려는 일도 없었습니다. 황당한 오해, 가정방문으로 풀었어요 그런데 해결된 줄로만 알고 있던 '방귀 사건'이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3월 하순 전교생 가정방문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학급의 모든 어린이의 집을 방문하여 실태 파악을 했습니다. 먼 곳에 있는 아이들 집에 다녀오면 몇 시간이 걸리고 신발 굽이 다 망가지던 때였습니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이라 걸어서 다니다 보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도 생겼던 때였습니다. 영수는 학교 밑에 사는 아이라서 제일 늦게 방문했습니다.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은 방문할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방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아이들은 시간을 내기가 쉬우므로 가장 나중으로 남겨 두었지요. 영수네 집은 학교에서 제일 가까웠기에 가장 나중에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들은 영수 엄마의 첫마디가 나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우리 영수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방귀도 뀌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더군요. 방귀를 못 뀌니 뱃속이 편하지 않아서 공부 시간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합니다." 처음 만난 나에게 첫마디부터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이면 그동안 쌓인 불만이 얼마나 컸는지 알만했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공부 시간에 아무 때나 방귀를 뀌어서 아이들이 코를 막고 창문을 열어대니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그래서 다른 아이들 몰래 살짝 밖에 나가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집에 가서는 선생님이 방귀도 못 뀌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영수가 엄마 말씀대로 아무 때나 방귀를 뀌는 바람에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같이 짝꿍을 하지 않으려는 일까지 생기면 되겠습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는 습관을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6학년이나 되었는데 그런 일로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건 원하지 않으시지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아이 말만 듣고 오해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저도 주의를 주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려서부터 어른들보다 더 크게 방귀를 뀌어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몸도 약하고 아들도 저 하나뿐이라서 저 하는 대로 두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선생님이 얼마나 무섭게 하면 우리 아이가 방귀조차 뀌지 못할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을 계기로 그 학부모님과 더 친하게 되어서 허물 없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요. 영수도 아이들과 더 잘 어울리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영수가 졸업하던 날, 감사하다며 속옷 선물까지 안겨 주셨으니 '방귀 사건'이 맺어준 좋은 인연이었지요.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방귀 사건은 어제 일처럼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 일은 식사 시간이나 공부 시간에 교양 있고 예의 바른 행동을 가르칠 때 아주 좋은 예화 자료로 활용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면서도 자기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니 참 좋아합니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의 싹으로 그 뒤로 영수는 방귀를 뀌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웃기는 일이 없이 졸업하는 날까지 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만 믿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오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자기 잘못이나 실수는 쏙 빼놓고 친구나 선생님의 언행을 문제 삼아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한층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매우 당연한 교육 활동일지라도, 다른 아이들이 볼 때에도 객관적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매우 주관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가정방문도 없고 학부모의 학교 방문도 거의 없으니 학교 생활의 단면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가정통신문을 내기도 하고 전화나 문자로 알림장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오해가 생기는 것은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허심탄회하게 학부모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여야 아이들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학급 담임으로서 느끼는 애로 사항과 부모로서 느끼는 어려움이 서로 통해야 아이를 이해하고 더 나은 교육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자식을 둔 학부모로 살고 있을 영수(가명)는 자신의 자식에게는 이렇게 가르치리라 믿습니다. "얘야,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교실, 밥을 먹는 곳에서는 방귀를 함부로 뀌어서는 안 된단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 몰래 밖에 나가서 해결하는 거란다. 다른 사람이나 친구가 너를 방귀쟁이라고 놀리면 좋겠니?"
동사와 형용사를 용언이라고 한다. 용언은 문장의 주체를 서술하는 기능을 가진 말의 집합이다. 이는 문장에서 주로 서술어가 된다. 용언은 뜻을 나타내는 ‘어간’과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어미’로 나눌 수 있다. 즉 ‘어간+-다’의 형태인 기본형을 가진 말은 동사와 형용사뿐이다. 이는 쓰임에 따라 어미가 변하므로 용언은 고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사와 형용사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먼저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작 동사(가다, 오다, 노래하다, 사랑하다, 생각하다)와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용 동사(뜨다, 새다, 흐르다, 피다, 죽다, 늙다, 닮다)로 나눈다.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크게 성상 형용사와 지시 형용사로 나눈다. 성상 형용사는 성질(희다, 붉다, 깨끗하다)이나 상태(고프다, 아프다, 춥다, 싶다)를 나타낸다. 지시 형용사는 지시성을 띤 형용사로 ‘이러하다, 저러하다, 그러하다’ 등이 있다. 동사와 형용사는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구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몇 가지 편리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 중 ‘-아라’, ‘-어라’를 붙여서 명령형이 되면 동사, 감탄형이 되면 형용사다. 즉 ‘밥을 먹다.’는 ‘밥을 먹어라.’라고 명령형이 가능하므로 동사다. 그러나 ‘하늘이 높다.’는 ‘하늘이 높아라.’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형용사다. 동사와 형용사의 대표적인 구별법은 ‘-는다/-ㄴ다’의 결합 여부도 있다. 이것의 결합이 가능하면 동사고, 말이 안 되면 형용사다. ‘그리다’는 ‘그린다’가 되므로 동사고, ‘그립다’는 ‘그립는다’가 불가능하므로 형용사다. 그런데 ‘걸맞다’라는 형용사를 자주 잘못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경제플러스(2010년 10월 28일~11월 5일)의 ‘대우증권, 명성에 걸맞는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표제어의 ‘걸맞는’이 그 예다. 이뿐만 아니다. 언론 매체에 오류가 자주 보인다. ○ 얼짱 초콜릿녀, 미모에 걸맞는 호화저택 화제…‘진짜집?’(서울신문, 2010년 11월 4일). ○ 개그맨 이윤석이 국민약골이란 별명에 걸맞는 마른 몸매를 공개했다(뉴스엔, 2010년 11월 7일). ○ 5년간 정부 지원금 250억원, 순천향대 의약바이오 분야 11개학과는 이런 명성에 걸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한국일보, 2010년 11월 7일). ‘걸맞다’는 ‘두 편을 견주어 볼 때 서로 어울릴 만큼 비슷하다.’라는 형용사다. 따라서 ‘분위기에 걸맞은 옷차림/친구로 사귀기에 걸맞은 상대/그는 신붓감으로 집안 조건이 자기와 걸맞은 여자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우리는 서로 걸맞은 짝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라고 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알맞다’가 있다. 이도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는’이라는 표기는 안 된다. ‘학생 신분에 알맞은 옷차림/빈칸에 알맞은 말을 넣으시오./나들이하기에 알맞은 날씨다./걷기에 알맞은 거리다./이 글의 제목으로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라고 써야 한다. 반면, ‘맞다’는 동사다. 따라서 ‘엄마는 항상 맞는 말씀만 하신다./옛날 속담이 맞는 경우가 아직도 꽤 많다./내 육감은 잘 맞는 편이다./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맞는 내용을 담고 있다.’처럼 ‘-ㄴ다’의 결합이 가능하다.
*이 이야기는 69년도 담임을 맡았던 한 어린이의 가정사에서 일어난 일을 기초로 만들어진 새미다큐형식의 동화입니다.제 네번째 동화짐의 타이틀이 되기도 한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별나라 숙이는 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오늘 하루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청소 시간에는 내가 먼저 치워 주었어야 할 것을 내가 안 치운다고 트집을 부렸어. 그건 분명히 나의 잘 못 이었어. 나쁜 아이와 상대를 해서 다툰다는 것은 내가 잘 못한 것이겠지. 다음부턴 영수가 하기 싫다면 내가 해주어야지. 착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착한 일을 해야해. 내일부터는 꼭 내가 먼저 해 주어야지. 영수가 싫다고 말하기 전에 해 주어야지.’ 이렇게 생각한 숙이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 갑니다. ‘아, 난 정말 착한 소녀가 되어 가는 것일까? 틀림없이 착한 소녀가 되는 거야.’ 이렇게 혼자 좋아하며 대답합니다. 숙이는 눈알을 반짝이며 캄캄한 방안을 휘익 둘러봅니다. 수 십 개의 무서운 눈들이 숙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눈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위 아래로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눈, 어른들의 눈 모든 눈들이 반짝입니다. 세모난 눈도 잇고, 뱀 같은 눈, 토끼눈과 같은 동그란 눈, 잔뜩 부라린 성난 눈도 있습니다. 숙이는 무서워서 이불자락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들어가 버립니다. “아니야, 숙이는 착한 소녀이니까 무서워 할건 없어. 착한 숙이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어서 나와서 여기를 좀 보아요.” 가느다랗고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여 줍니다. “누구세요? 그렇게 속삭여 주는 사람은?” 숙이가 무서워서 빠끔히 이불자락만 들추고서 물어 봅니다. “숙이의 동무!” “숙이의 동무 ? 내 동무가 누굴까 ?” 숙이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내리고서 가만히 얼굴을 들어 쳐다봅니다. 무서운 눈들이 아직도 숙이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숙이는 다시 무서워졌습니다. 얼른 동무를 찾아야 하는데 나타나 주지를 않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숙이가 고개를 갸웃뚱거리면서 “어디 있을까?” 중얼거리면서 이리저리 둘러 봅니다. “여기야, 여기! 숙이야, 착한 숙이야!” 가느다란 목소리가 또 들려 옵니다. 숙이가 고개를 돌려보니 문구멍으로 가만히 얼굴을 내밀며 방긋이 웃고 있는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데 누구세요? 난 모르겠는데....?” 숙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어 봅니다. “나는 별나라에서 숙이 엄마의 심부름을 온 사람이에요.” 비단 같이 가느다랗고 해금 소리 같이 가냘프면서 엄마의 손길 같이 부드러운 소리가 어찌나 숙이는 저도 모르게 “예? 엄마의 심부름을 왔다구요? 우리 엄마는 어디 계셔요?” 숙이는 너무 반가워서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습니다. “저기, 별나라에 계신답니다.” 숙이는 올해 아홉 살로 서 3학년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숙이가 여섯 살이 나도록 숙이 엄마는 동생을 낳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 식구들은 엄마나 동생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논 다섯 마지기를 지으면서 초가 삼간에서 살망정 아무 걱정이 없이 사는 숙이네 집이건만 가끔가끔 아버지가 취하시면 어머니와 다투는 일이 생겼습니다. 더구나 숙이가 사내가 아니라서 더욱더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있는데 왜 또 동생이 필요할까? 왜 동생을 원할까 ?’ 숙이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도 친구들이 동생의 손을 잡고 아장걸음을 걸리는 것을 보면 “엄마, 엄마는 왜 아니 안나? 얼른 아기 하나 낳아.” 하고 졸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숙이를 꼬옥 껴안고 볼을 부비면서 귀여워 해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숙이는 ‘왜 동생이 필요해!’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숙이가 일곱 살이 되어서 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예쁜 달걀 모양의 얼굴 모습이며, 깔끔한 성격, 깨끗한 살결은 농촌의 아이 같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영리하여 공부까지 잘하니까 모두 귀여워 해주었습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가냘픈 듯한 숙이의 얼굴을 보며 유난히 귀여워하며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2학년에 올라 올 때는 6등이 되어서 5등까지 주는 우등상을 아깝게 놓치고 말아서 약간 시큰둥한 성격이 생겼습니다. 2학년이 되자 숙이는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숙이를 무척 귀여워하셨지만, 조그만 잘못도 엄하게 나무라시는 선생님을 숙이는 가깝게 대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아빠처럼 안겨 보고도 싶고, 엄마처럼 재롱도 부려 보고 싶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근엄하신 모습에 가까이 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럴 무렵에 숙이네 집에는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고대하던 동생이 생긴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숙이가 2학년이 되어 봄꽃이 피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엄마의 배가 불룩해 올수록 숙이는 동생이 생기기를 더욱 기다려졌습니다. 빨리 사내 동생을 하나 낳아 주셨으면 하는 것이 숙이의 소원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남자 동생을 업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기 때문에 어른들 보다 더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숙이의 소원과 다르게 그렇게도 기다리던 숙이의 동생이 태어나기 두 달쯤 전부터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원에도 가보고 약을 지어다 달여 먹어 보기도 하였지만, 큰 효과가 없이 자꾸만 야위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을이 되어서 집안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숙이는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뛰어가서 집안 일을 돌보았습니다. 그 조그만 손으로 할 수 있는 물도 긷고, 청소도 하고, 부엌에 불을 지치는 일도 거들었습니다. 엄마의 일이 걱정이 되어서 곁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웬일인지 엄마가 자꾸만 영영 어디론가 떠나시고 말 것 같아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잡수시는 것과 얼굴 빛을 살피는데 온 신경을 썼습니다. 어느 날 밤늦도록 숙제를 하다가 지쳐 쓰러져 누운 숙이는 잠결에 엄마의 심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에 취한 어린 숙이는 꿈결 속에서 들리는 엄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비명 같은 신음 소리를 지를 때에야 겨우 숙이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엄마는 몹시 아프신지 몸부림을 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도 엄마를 부축하고 등을 쓸어 드렸습니다. 숙이는 어쩔 줄 모르고 엄마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숙이야, 걱정 말아라. 동생이 태어나려고 그러는 것이란다.” 하시며 아버지는 걱정말고 자라고 말씀 하셨지만 숙이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곁에 붙어 앉아서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12월 중순이었습니다. 엄마는 새벽녘에 밝은 빛이 점점 퍼져오는 시간에 아기를 낳으셨습니다. “으앙, 으아앙.”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매우 기쁜 낯으로 어머니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들이다 ! 아가 고생 했다.” 할머니와 아빠는 매우 기뻐하셨고, 집안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숙이도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엄마도 야윈 얼굴로 누우셔서나마 기쁜 미소를 띄우시고 계셨습니다. 곁에 누워있는 어린 동생을 바라보시는 엄마의 눈빛은 한없이 사랑스런 인자함을 담뿍 머금은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병세는 날마다 점점 더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밥도 잡수시지 못하고 자꾸만 피를 흘리시기 때문에 아빠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와서 주사도 맞고 약도 주셨지만, 엄마는 끝내 다시 못 오실 세상으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어린 동생을 낳으신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숙이는 싸늘해진 엄마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무작정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도 없었고, 철부지인 숙이의 마음 속에 무엇인지 모를 불안이 한없이 울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숙이가 애처롭게 우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집안은 싸늘하고 쓸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린 젖먹이 동생 때문에 할머니는 항상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젖 달라고 울 적마다 할머니도 따라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빨리 새 엄마를 구해 들여야지 어떻게 저 어린 아이를 기를 수 있느냐 ?” “날마다 울음으로 보내는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하시면서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숙이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 마저 병이라도 드시면 어쩌려구 ?” 하고 마을 사람들과 집안 어르신들이 야단을 하시자 마지못해 아빠는 새엄마를 맞아들이기로 하셨습니다. 엄마가 돌아 가신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새 엄마가 오셨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그래도 모두 반가워하고 기뻐했지만 한편으로 숙이 엄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숙이 엄마의 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불쌍한 것,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더니만....” 하고 혀를 차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새엄마는 아직 젊고 아이도 없이 남편이 죽은 뒤 혼자서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새엄마는 숙이를 더욱 예쁘게 가꾸어 주셨습니다. 남보다 더 고운 옷을 사다 입히려고 애를 쓰시고, 더욱 곱게 차려 주시며, 머리도 예쁘고 멋지게 빗겨서 예쁜 핀으로 다듬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새엄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참으로 정성껏 숙이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엄마와 살던 때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단정해진 숙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숙이는 엄마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새엄마는 정말 나를 귀여워 해주세요. 그렇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새엄마가 속상해 하실까 봐서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 이렇게 울었습니다. 이럴 때면 아빠가 숙이를 꼭 껴안아 달래 주시곤 하였습니다. “우리 숙이 착하지? 숙이가 아빠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살면 말이지. 엄마가 숙이를 저 멀리 별나라로 데리고 간단다. 숙이 엄마는 저기 별나라에 가서 계신단다.”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시며 숙이를 달래는 아빠의 말씀을 듣던 숙이는 “아빠! 엄마가 계시는 별나라는 어디야 ? 알려 줘........” 하며 눈물을 닦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매달렸습니다. “엄마가 계시는 별나라를 알려 주면 나 안 울고 착한 소녀가 될 테야. 엄마에게 날마다 빌 테야, 착한 소녀가 될 테니 별나라로 데리고 가 달라고....” 숙이가 너무나 야무지고 분명하게 말하자 아빠는 숙이가 너무나 똑똑한데 공연히 불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숙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엄마는 저기 저 별나라에 계신단다.” 하고 은하수 곁에 있는 직녀성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숙이에게 몇 번이고 들려주었던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숙이가 알기 쉽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 뒤로 숙이는 가끔 밤하늘의 직녀성을 쳐다보면서 엄마를 생각하는 듯 두 손을 마주 잡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엄마 ! 저는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어요. 정말 착한 아이가 되겠어요. 나를 엄마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어쩌면 숙이는 이렇게 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숙이는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였습니다. 거짓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는 일은커녕 조금이라도 남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은 하려고 하지 않을 만큼 애를 썼습니다. 별님의 이야기를 들은 숙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님, 저를 엄마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 손을 잡으세요.” 하며 별님은 가느다란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숙이가 별님의 손을 잡자 이상하게도 몸이 공중으로 둥둥 뜨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고무 풍선이라도 되는 듯 무게를 잃은 몸뚱이는 머언 하늘 나라로 날아 올라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찌이이잉.” 하고 귓속이 울리면서 정든 집과 마을이 까마득하게 멀어져갑니다. 까만 밤에 묻힌 마을들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고, 희미한 호롱불빛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 갑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거나 땅을 봐도 어느 곳이 마을이고 땅이고 하늘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불빛이 하나로 모아지며 수많은 마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다가 영영 한 개의 별덩이가 되어 보입니다. 아득한 발아래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이 진주처럼 반짝이며 땅과 바다들이 유리 구슬의 무늬처럼 아롱져 보입니다. 숙이의 몸은 제트기보다도 더 빨라 저 멀리 은하수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잠자리에서 그냥 나와서 잠옷차림인 숙이었지만 밤바람이 도무지 춥지 않습니다. 동쪽으로 얼마나 날아갔는지 모릅니다. 날아가기를 계속하던 숙이는 은하수에 닿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은하수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파아란 가을 하늘처럼 흐르는 것 같지 않은 물소리는 웅장한 교향악을 피아니시모아주 여리게라는 음악 용어로 연주하는 것처럼 온 은하 세계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은하수 줄기가 뻗친 곁에 자리잡은 오리온 궁전은 마치 물 속에 서 있는 용왕님의 궁전인냥 찬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궁궐의 군데군데엔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런 장식과 수천 수만 개의 보석으로 장식된 휘황한 등불이 마치 밤늦게 남산에 올라 내려다본 서울 시내의 불빛인양 빠끔한 틈도 없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은하수 소리와 찬란한 오리온 궁전, 그 불빛이 은하수에 비친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면서 숙이는 마치 자신이 옛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공주라도 되어서 꿈의 궁전을 찾아온 듯 황홀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황홀한 오리온 궁전에 눈을 팔면서 얼마쯤 은하수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자, 은하수 언덕의 풀밭에는 커다란 황소가 눈알을 부라리며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아유, 무서워 !” 숙이는 별님에게 꼭 매달렸습니다. “걱정 말아요. 저건 별이랍니다.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 거예요.” 별님이 숙이에게 속삭이었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금빛이 찬란한 마차를 끌고 있는 마차꾼이 나타났습니다.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번쩍이는 모자까지 쓴 마차꾼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 숙이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마차꾼 아저씨 고맙습니다.” 숙이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벌써 마차꾼 아저씨는 아스라이 멀어져 버렸습니다. 기치를 타고 가면 전봇대가 뒤로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 듯 갖가지 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들 있었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들을 자랑하고 있었고, 제각기 갖가지 특징을 지닌 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몇 분쯤 달렸을까 ? 건장한 몸집의 무서운 철퇴를 치켜든 페르우스가 마치 수문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억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오른편으로 저 멀리 작은 곰이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엄마 곰에게 매달려 재롱을 부리는 보송보송하고 귀여운 강아지 새끼마냥 보드랍고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빠가 숙이에게 가르쳐 주었던 북두칠성이 있는 큰곰이 바로 작은 곰 곁에 커다란 몸집으로 무엇을 금방 덮칠 듯 서 있었습니다. 번쩍 번쩍 빛나는 일곱 개의 별이 국자 모양으로 빛나고 있는 별자리입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에는 엄마와 함께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하며 세어 보기도 하였고, 위에서 두 번째 별의 바로 옆에 매달리듯 있는 조그만 별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며 보인다는 숙이의 대답에 “숙아 눈이 아주 밝구나 !” 하며 칭찬을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큰곰을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던 숙이는 깜짝 놀라서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옛날 에디오피아의 왕비였다는 카시오페이아가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 왕관에 보석이 밤하늘의 별처럼 박힌 옷을 입은 채 인자한 웃음을 띄우면서 서 있었습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캐패우스왕과 카시오페이아 왕비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카시오페이아공주가 무서운 괴물에게 붙잡혀 있을 때 용감한 캐패우스 왕자님께 구원을 받던 그 카시오페이아가 늠름하게 보여 숙이는 얼른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별님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해서 왕비곁을 떠나자마자 금방 용감한 캐패우스 왕이 수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궁궐 저 멀리에는 바위틈에 숨어사는 도마뱀이 징그러운 몸체는 바위틈에 숨긴채 뾰족이 내어다 보면서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숙이는 온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습 니다. ‘하늘 나라에는 참으로 별의별 것들이 다 있구나.’ 생각을 하면서 하늘의 한 복판을 달리던 숙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우뚝 멈춰섰습니다. 무서운 독수리가 날개를 펴며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걱정 말아요. 저건 별이라니까요. 갈수록 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을 거예요.” 별님이 속삭여 줍니다. 숙이는 아름다운 별들의 모습에 기쁘면서도 서울 구경을 나선 시골 아이처럼 자꾸만 두리번거려지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얼마쯤 달렸을까 ? 눈앞에는 아름다운 백조가 우아한 보습을 뽐내면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백조로군요.” 숙이는 별님께 속삭이면서 가까이 갔습니다. 백조의 곁을 지나자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가 황홀하게 해줍니다. 숙이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별님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집들은 모두 훌륭한 궁궐 같고 푸른 숲에 사여 절간처럼 조용했습니다. 거문고 마을에서 가장 큰집인 직녀네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직녀의 집에 들어선 숙이는 안내하는 별님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황홀한 꽃들이 가득찬 정원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아직 꽃이 피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일년 내내 아름다운 꽃과 열매 속에 묻혀 사는 천당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숙이는 본 채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숙이 엄마가 하얀 옷을 입고 아름다운 검은머리를 묶어서 늘어뜨린 채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습니다. “엄마 !” 숙이가 반가워서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습니다.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두 볼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미친 듯이 엄마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비비대면서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엄마의 다리를 움켜잡았습니다. 엄마의 가슴에 안길 적마다 콧속에 스며들던 향긋한 엄마의 냄새가 가슴속에 가득 스며들어 옵니다. 가슴이 터질 듯 부풀은 마음에는 더욱더 엄마의 냄새가 퍼져 옵니다. “엄마 ! 아빠가 일러 줬어. 엄마가 여기에 살고 있다고......” 숙이가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으나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숙이를 만난 것이 기쁘지 않으세요? 엄마...?” 숙이는 울었지만 엄마는 아무 대꾸고 없으십니다. 숙이는 엄마가 정말 반갑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물이 그칠 줄 모릅니다. “엄마, 나빠 ! 엄마, 나빠 ! 난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 엄마가 보고 싶어서 얼마나 울었다구.....” 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던 숙이는 흐르는 눈물을 양팔로 닦으면서 원망스런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 향기롭던 냄새로 가득 차 부풀었던 기쁨은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듯 숙이의 가슴은 텅 비어 찬바람이 휑하니 스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무 대답도 없이 엄마는 천천히 숙이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소리도 없이 천사인 양 옷자락만 펄럭이면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 갔습니다. “엄마 ! 어디로 가세요 ? 엄마아 !” 숙이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없었습니다. 캄캄한 방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문구멍 사이로 별님이 살며시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뱁새가 와서 창살에 앉더니 문구멍을 뚫기 시작하였습니다. “코콕, 코콕코코.” 숙이는 약간 화가 났지만 만약 소리라도 치면 뱁새가 놀랄까봐 그냥 가만히 놓아두고 말았습니다. 그 문구멍으로 별님이 미소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쥐고 멀리 서쪽 하늘을 향하여 직녀성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엄마, 숙이는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렵니다. 엄마의 곁으로 갈 때까지 아빠의 말씀대로 착한 아이가 되겠습니다.” 조용히 기도를 마친 숙이는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도 닦지; 않은 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불자락을 들추고 자리에 듭니다. “엄마, 제가 아직 착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못되었습니까? 더욱더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엄마, 이 다음에는 그렇게 모른 척 하지 마시고 한 마디라도 말씀해 주세요. 엄마, 이렇게 진심으로 빌께요.” 문구멍으로 미소를 보내던 별님도 벌써 자리를 옮겨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숙이는 두 손을 모아 잡고 가슴 위에 얹어 놓으면서 조용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를 만났을 때의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을 되새기며, 엄마의 인자하신 모습과 웃음을 띈 모습이 눈앞에 선해 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일반인들은 이것을 잘 모를 것이다. 교원들은 이것을 줄여서 '창체'라고 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고시(제2009-41호)하였는데 아마도 대국민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창의적 체험활동이란 무엇일까? 정의를 내리면 '20011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창의·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교과 이외의 활동'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국어, 영어, 수학, 음악등 교과 이외의 모든 활동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2011학년도에는 초교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동시에 적용된다. 그 다음해에는 초교 3, 4학년, 중 2, 고2에 적용이 되고 2013학년도에는 초,중,고 학교급 전학년이 동시에 적용이 되는 것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과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창체는 앎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나눔과 배려를 할 줄 아는 창의성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기본적으로 자율성에 바탕을 둔 집단 활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도 아울러 고양하려는 교육적 노력을 포함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각 영역별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학생, 학급, 학년, 학교 및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게 학교에서 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교과부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http://www.edupot.go.kr)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교사가 직접 학생의 교과학습과 학교생활 결과를 기록하지만 이 시스템은 학생 스스로 작성하고 선생님이 승인, 보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누적된 포트폴리오는 학부모도 확인할 수 있다. 고입이나 대입에 자기소개서,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인성과 창의력이 중시되고 있다. 또 3개년간의 활동 실적을 포트폴리오로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며칠 동안에 작성되는 것이 아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은 이것을 중요하게 본다. 이것에 의해 입시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기도 한다. 교육과정에 의한 창제배당시간은 학년군으로 기준이 제시되었다. 연간 시간을 보면 초교 1, 2 학년272시간, 초교 3,4학년204시간, 초교 5,6학년 204시간이다. 중학교는 1, 2, 3학년 합하여 306시간이다.고등학교는 24단위(1단위는 50분을 기준으로 하여 17회 이수하는 수업량)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에 배당된 시간(단위) 수는 영역별로 학생의 요구, 학교 및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교의 재량으로 배정하되, 학생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학교 급별, 학년별로 활동 영역 및 내용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또, 지역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별로 활용 가능한 인사, 시설, 기관, 자료 등의 자원 실태를 파악하고,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창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각급 학교에서는 내년부터단계적으로 적용되는 창의적 체험활동 출발 준비는 다 되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참고로 여기 창체 활성화를 위해여성가족부와 경기도가 주최하는워크숍를 소개하고자 한다.창체 관계자는주관처에 사전 접수하여 참석할 수 있다. □ 행사명 : 경기도 창의적 체험활동 관계자 워크숍 □ 일시 : 2010.11.10(수) 10:00-13:00 □ 장소 : 경기교육종합복지센터 □ 주관 :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 강연 주제 : 1.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적 체험활동 정책방향(교과부 이상조 교육연구사) 2.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 편성의 이해(서호중 이영관 교장) 3. 창의적 체험활동 사례(수정청소년수련관 김준혜 상담사) 4. 창의적 체험활동연계를 위한 청소년 프로그램 활용(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김태훈 부장)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가을이 끝난다. 내장산에는 단풍놀이 인파가 10만명이 몰렸다는 뉴스도 들린다. 그렇다고 거기까지는갈 수 없고 토요일 오후가까이 있는 광교 저수지(수원소재)를 찾았다. 광교저수지는 1943년 완공되었는데 1953년부터는 수원시민의 상수도원으로 비상시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몇 년전까지는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였으나 지금은 수변산책로가 개방되어 수원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원시에서는 산책로를 정비하고 곳곳에 안전시설을 설치하였고 벤치등 휴식공간도 마련하였다. 노약자의 경우, 광교산 등반은 약간의 무리가 따르지만 광교저수지 산책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체력을 단련하면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가을철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과 그 단풍이 수면에 비친 모습은 가히 절경이다. 저수지와 광교산 사이의 산책로는 곳곳이 단풍터널을 이루고 있어 가족단위로 가을 단풍 놀이를만끽할 수 있다. 당단풍 나무의 붉은 단풍잎은 얼마나 붉은 지 그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얼굴까지 붉게 물들게 한다. 붉은 색만 단풍이 아니다. 생강나무의 노란 잎은 정겹기만 하다. 수변 산책로를 1시간 정도 걸으면서광교 저수지의 가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전국초중등수석교사회와 한국교총은 4일 공동성명을 내고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시범운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는 국회가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석교사제는 현재 2정→1정→교감→교장의 단선형 승진체제와 별도로 2정→1정→수석교사로 나가는 교수직 트랙을 만들어 능력 있는 교사들이 관리직이 아닌 교사로서 상위 자격을 취득하며 좋은 수업을 제공하고 충분히 대우받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2008년부터 시범운영 돼 왔다. 현재 333명인 수석교사는 주당 10시간 이상의 수업을 하며 동료교원 수업컨설팅, 신규교사 멘토링, 교내연수 활성화 역할을 맡아 교단의 수업역량 강화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2008, 2009시범운영 성과분석에서도 관리직의 71%, 교사의 64%가 수업전문성 신장에 도움이 크다는 반응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위상, 역할, 처우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시범운영이 3년째 지속되면서 제도정착에 한계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범운영자라는 ‘눈총’ 속에서 근평과 성과급에서 되레 불이익을 받고, 미미한 수업감축에 업무까지 과중하다보니 역할수행이 어렵다는 게 현장의목소리다. 수석교사회와 교총은 “수석교사제가 관리직 승진경쟁이 아닌 수업전문성 제고에 교사들을 끌어들이고,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려는 취지에 맞게 기능하고 있으며, 교단도 이를 인정한 상황”이라며 “더 이상 법제화를 미뤄 시범운영의 비효율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어 “국회 교과위 등 국회가 2010년에는 반드시 법제화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교과부는 법제화 추진과는 별도로 4년차 수석교사 시범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인원도 2000명으로 대폭 늘릴 예정이다. 교과부는 내년 2000명을 시작으로 매년 1000명씩 늘려 10000명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도 법제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수석교사회는 “수석교사에 매력을 느끼고 도전하려는 교사들이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범운영이라면 응모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석교사회 등은 공동성명에 이어 국회의원 전원에게 법제화 촉구 서한문을 보내고, 국회 앞 공동 기자회견 등도 열어 국회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