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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최근 영국에서는 일부 학교에서 공공연히 실시되고 있는 비공식적 정학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아동위원회 매기 앳킨슨(Maggie Atkinson) 박사는 일부 문제 학생들이 공식적인 절차 없이 정학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대부분 학교들은 문제 학생들을 학교에서 방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소수의 학교에서 일시적인 기분에 따라 학생들에게 비공식적 정학 처분을 내린다”고 덧붙였다. 이에 영국 교육부는 비공식 정학은 불법이라고 공표했으나 여전히 일부 학교 교장들이 비공식 정학 처분을 승인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한 교장은 일부 학생들에게 비공식 정학 처분을 내릴 계획을 밝힐 뿐 아니라 학부모들이 학교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공식적인 무기정학을 통보하겠다고 했다. 이 교장은 또 해당 학생들을 코드 ‘C'(허가 받은 결석)로 분류하면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현 상황에 대해 영국 아동위원회의 학생 정학 보고서는 이런 관행이 엄연히 불법이며 용되지 않는 것이지만 대부분 기록 없이 은밀하고 비공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또 교육부의 지침서에 명백하게 ‘공식적인 정학’만이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보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권리를 잘 알고 있지 못해 학교 측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실정임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정학 처분도 경우에 따라 필요하나, 이는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다른 학생의 학습에 방해가 될 때에만 해당된다고 경고했다. 더불어 불법 정학 처분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조사가 필요하며 시급히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진단했다. 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 중 적발되는 학교는 부적격 학교로 평가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전국교장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Head Teachers) 러셀 하비(Russell Hobby)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교장들은 전문직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문제학생들까지 다함께 포용해 교육하고 있다”며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중시하는 목표지향적인 문화의 압박에 굴복해 비공식 정학을 시행하는 학교는 극소수”라고 주장했다. 극소수라고는 하나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교육을 포기하는 교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영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교육 상황에서도 문제 학생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회적인 여건 때문에 교육을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이 필요하다.
최근 새로운 폭력현상인 사이버 따돌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이버 따돌림”이란 인터넷,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학생들이 특정 학생들에게 지속적·반복적으로 심리적 공격을 가하거나, 개인정보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상대학생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사이버 따돌림은 직접적인 신체적 고통이 드러나지 않고 때론 행위자체를 유머러스하게 보기 때문에 가벼운 문제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이버 폭력은 결과적으로 물리적 폭력과 유사하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전파성, 신속성, 가상성, 시각적 충격성 등의 특징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사이버 따돌림을 당한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현실의 제한된 공간과 시간, 그리고 특정인에 의해 가해지는 상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그 결과 자존감의 심각한 감소와 우울감이 나타나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초래하게 된다. 폭력은 어떤 형태든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이다. 사이버 따돌림도 집단이 개인에게 부당하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이므로 반사회적 행위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런 행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모든 행위에는 다양한 원인이 내재돼 있고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행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되, 인간이성의 성숙함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이버폭력에 대한 대응책이 요구된다. 미국은 사이버폭력에 무관용정책 사이버공간은 현실공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때론 현실을 지배하는 실제적 공간이라는 인식 하에 처벌 역시 현실 공간에서의 폭력에 대한 처벌과 같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사이버 따돌림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무관용정책(Zero Tolerance Policy)을 채택하는 주가 늘고 있다. 부분실명제를 모든 포털사이트로 확대하고 주요 포털들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악성 댓글이나 사이버 따돌림을 방지하기 위한 거름장치 개발, 실시간 모니터링 등을 시행하도록 하며, 악성 댓글 및 사이버 따돌림 방지 캠페인 활동을 펼치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 사회문화적으로는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무조건적인 비판보다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올바른 토론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나와 동일한 생각이 아닌 경우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대립적 시각에선 언제나 사이버폭력과 사이버 따돌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는 사이버 따돌림이 피해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질적인 의식교육, 가해자 처벌과 학부모 상담 등을 엄격하고 일관성있게 할 필요가 있다. 예방을 위한 공감과 공존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꾸준히 하고 문제 발생 시에는 갈등해결이나 분노조절 프로그램, 또래상담등을 연계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들이 부모나 교사 등에게 피해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고 싶은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자녀의 온라인 활동에 관심 가져야 무엇보다 사이버 따돌림 예방을 위해 부모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가 자녀의 온라인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가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를 확인하고, 거실과 같이 가정의 공적인 공간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며, 핸드폰이나 게임 이용에 규칙을 두고 제한하고, 자녀에게 개인적인 정보는 교환하면 안된다는 것을 교육할 필요가 잇다. 나아가 자녀가 사이버 따돌림을 당했다면 학교에 알리고 가해 내용을 프린트하거나 저장해 놔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긍정적 정체성을 인식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이버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 스스로 인간이하의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의식과 사이버공간 내에서의 인격적 관계가 결국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라는 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다면 규제는 물론 그에 대한 요구조차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신적·육체적 능력이 쇠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연령이 많으면 업무 수행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정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정년은 교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에서 적용하고 있다.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삼은 강제 퇴직제도인 셈이다. 교원의 정년은 교사와 교수를 구분하고 있으며 근거 법률인 교육공무원법 47조에 따라 초·중등교원의 정년은 62세이고 대학의 교수는 65세다. 이와 같은 차별 적용이 평등의 원칙을 비롯한 교사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 11조의 평등의 원칙은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절대적 평등이 아니고 법을 제정하거나 적용함에 있어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상대적 평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도 지난 2000년 초·중등교원과 대학교원의 정년을 다르게 한 것은 상대적 평등의 원리를 적용하고 합리적 근거에 의해 차별한 것이므로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여건 변하면 판결 달라져야 당시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합리적 근거는 세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교사와 교수는 임무, 자격기준, 임용과 승진의 세 가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 가지 합리적 근거를 평등의 원칙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첫째, 헌법재판소는 법령에 정한 교사의 임무는 학생을 교육하는 일이고, 교수의 임무는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일이므로 교사와 교수는 임무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즉 교사는 교육의 임무만 있지만 교수는 교육 외에도 지도와 학문 연구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교수는 교사보다 직무가 더 많다고 해석하면 인간은 연령에 따라 직무 수행능력이 감퇴된다는 관점에서 교사보다 직무가 더 과중한 교수의 정년이 더 길어야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둘째, 헌법재판소는 교사와 교수의 자격기준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교사는 대학을 졸업하면 자격요건이 충족되지만 교수는 자격요건도 더 엄격하고 교수와 부교수의 경우 기간을 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임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교사로 임명되는 것은 옛말이다. 임용시험의 관문을 통하지 않으면 교사가 될 수 없다. 임용시험은 엄격할 뿐 아니라 경쟁도 치열해 대학교원의 임용보다 더 엄격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 또 자격기준으로만 본다면 교사는 교원자격증이 요구되지만 교수는 자격증 없이도 임용될 수 있다. 셋째, 임용과 승진에서 차이를 언급하면서 교수의 경우 최초 임용 연령이 교사 보다 상대적으로 고령이라고 했다. 그러나 임용경쟁 때문에 최근에는 수년 또는 10여년 가까이도 교사로 임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결코 교수보다 어린 연령에 임용된다고 볼 수 없다. 법률조항의 의미와 목적에 비춰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별한다면 평등권을 침해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당시에는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여건과 사회적 상황의 변화로 현재는차별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합리적 근거는 없다고 볼 수 있다. 판례를 변경할 만큼 상황이 바뀌면 판례도 바뀔 수 있다. 현시점에서 정년차별로 인한 초·중등교원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적 재조명이 필요하다. 정책적 해법도 필요 아울러 정책적으로는 교사와 교수의 정년을 동일하게 적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평균수명의 연장과 연금지급개시 연령이 상향조정되고 통상 65세 이상에 이르는 세계적 교원정년 추세 등을 감안한다면 시의적절하고 합리적인 법안이라고 본다. 이제 법률적 판단에 따라 정년차별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을 재론할 시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정책적 결정으로 입법부에서 교사와 교수의 정년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의결하는 것이 또 다른 해법일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교사들은 봄의 시작과 함께 새 학기를 맞으면 언제나 설렘에 빠진다. 누구든지 해가 바뀌거나 새 봄을 맞으면 좋지 않은 지난 기억은 떨쳐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교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사들의 마음은 새로 옮겨 간 학교, 새로 맡은 학년, 새로 맡은 학급에서 신나고 멋진 교직생활을 하고 싶은 기대로 가득 찬다. 그런 기대 중 가장 큰 것이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 좋은 수업을 하고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수업이야말로 학생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활동으로서 교사들이 하는 일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즉,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통해 배운다. 그런데 학생은 교사가 가르친 대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대로만 배운다고 하면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학생은 교사가 가르친 것 이상으로 배우기도 하고, 가르친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배우기도 한다. 이 점에서 교사가 가르친 것을 학생이 제대로 배우도록 하는 수업이 바로 좋은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수업은 어떤 특징을 보이는가? 우선,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준비도를 고려해 가르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준비도를 넘어서는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는 내용을 어렵게 생각하게 만들고, 학습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떨어뜨린다. 물론 학생들의 학습준비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업도 학습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기는 마찬가지다. 요즈음 널리 강조되는 맞춤형 수업이란 결국 학생들의 학습준비도에 적합한 수업을 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학생들의 이해방식과 눈높이에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교과내용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다음으로, 교사와 학생 상호 간에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훨씬 잘 배우게 된다. 교사의 질문은 학생들로 하여금 대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을 더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때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 정도를 고려해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려 줘야 한다. 교사의 충분한 기다림은 교과내용에 대해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을 촉진하고 격려하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과 내용에 대해 계속하여 교사에게 질문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배운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질문은 교과지식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식의 원리에 따라 배워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미숙하지만 질문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나름의 탐색 활동을 시도한다. 교사가 진도 나가기에 조급해 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허용적 교실 분위기를 조성할 때 학생들은 더 잘 배우게 된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의 지속적 성장과 성취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고 높은 기대를 할 때 수업은 활기가 넘치며 역동적이 되고, 학생들은 보다 잘 배우게 된다.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교사의 기대는 대화와 행동으로 알게 모르게 다양하게 표출되고 학생들은 이를 곧잘 알아차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내면화한 교사의 긍정적이고 높은 기대는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좋은 수업은 방법상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학습준비도를 잘 고려하는 것, 질문을 세련되게 하는 것은 방법적 기술이나 기법을 연구하고 연습함으로써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자발적 탐색을 가능하게 하고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 학생들의 성취와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높은 기대를 하는 것은 교사가 진정으로 학생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좋은 수업은 교사의 효과적인 수업의 기술과 진정한 학습자 존중의 마음과 태도가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 학기에는 학생들은 좋은 수업을 통하여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교사들은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다.
우리를 웅크리게 했던 꽃샘추위도 봄기운에 한 풀 꺾이고 이제 완연한 봄이다. 교실 밖 창가로 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어제는 과수원 길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했다. 밭고랑엔 온몸에 푸른 색소를 갈아입는 냉이들이 한창이다. 봄의 청명함 때문일까. 문득 대청소를 하고 싶어졌다.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시시콜콜한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뭐가 아까워서인지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아온 것들이 얼마 만큼인가! 때가 타고 낡은 문들은 새롭게 페인트칠 하고, 비가 새는 외벽을 손질하기로 했다. 페인트칠하는 분과 방수하는 분, 두 분을 모셨다. 방수하는 사람은 집의 외벽을 살피더니 이내 나가서 쓱싹 쓱싹 일을 시작했다. 둘 다 전문가여서 일하는 모습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 듬직한 모습에 나는 잠시 외출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방수 기술자는 벌써 일을 끝냈는지 돌아간 뒤였다. 점심이나 대접하려고 서둘러 왔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방수는 잘 해결했는지 모르지만 일을 한 흔적을 너무 흉하게 남겨놨다. 실리콘 나부랭이와 흙 묻은 발자국, 까만 방수액 등으로 외벽 언저리가 엉망이었다. ‘왜 마무리를 함부로 하고 갔을까’하는 마음에 평안함이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또 한 분, 페인트칠 하는 기술자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 일이 더디다싶어 가만 보니 지나칠 정도로 일을 꼼꼼히 하고 있었다. 사포로 표면을 닦고 흠집이 난 부분은 퍼티로 메우며 마치 자신의 집을 수리하듯 그렇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수 업자가 더럽히고 간 외벽의 얼룩까지 지우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그 분이 고마웠다. 나는 그 분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 분의 손은 사포보다 거칠어 보였다. 장갑이라도 끼고 작업하시라니까 그냥 웃는다. 그는 오히려 장갑을 끼면 일이 더뎌지고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마디 굵은 손가락을 식탁에서 슬그머니 거두었다. 열다섯부터 환갑이 넘도록 배운 게 이 일이라며, 그리고 일을 할 때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못 견디게 되었다며 허허롭게 웃었다. 언제부터인지, 직업에 대한 선호도와 만족도를 조사하면 교사가 상위 직종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 인기는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아이들 대충 가르치고 대충 업무처리하고 대충 시간 보내다 퇴근한다면 편하기 그지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아이와 학교 현장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죄스럽지 않은가. 주변을 둘러보면 보인다. 실눈 뜨고 교육의 현장을 보면 환부가 드러나지 않는가. 이러한 판국에 스스로 인내하지 않으면 그게 어찌 교사일까. 걸음을 걸어도 죄다 풀려버린 걸음들, 자조적인 한숨, 허술한 차림새, 안일무사, 이것이 삶의 안락함이고 행복이라면 그래 그 행복 인정하겠다. 그러나 한 번 뿐인 우리 인생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교사는 사랑과 성찰의 중심에 자신을 둘 줄 알아야 한다. 세상물정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아이에게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자본의 퇴폐적 문화 속에서 어린 아이들의 방풍림이 되어 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훗날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우뚝 서야 한다. 세상에는 변해도 좋은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물질은 나날이 새로워져도 봐줄만 하지만 인간적 가치는 변해서는 안 된다. 요즘 뉴스를 보면 패륜적인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도덕의 실종, 휴머니즘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도 이제는 무뎌져 간다. 나는 밤늦어서야 페인트칠을 다 마치고 귀가하는 기술자의 손을 잡아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나직이 “아저씨의 손이 지금까지 제가 잡아 본 손 중 제일 아름다운 손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분이 “선생님 손도 따뜻하네요.” 하고 손을 놓는다.
필자는 시간 관리법에 관한 책을 매년 초마다 한두 권씩 사서 밑줄 그어가며 읽곤 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내가 늘 이 모양 이 처지’라는 자책. 그런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책이 플로리안 오피츠의 ‘슬로우’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수많은 일을 처리하며 고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 오피츠. 그에게 늘 시간은 부족하기만 했고 시계바늘에 떠밀려 산다는 느낌뿐이었다. ‘효율성으로 절약한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속도전을 치르며 살면 더 나은 세계와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먼저 시간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들었다. 시간관리 전문가 자이베르트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작은 단위로 쪼개 중요한 일부터 집중하라 말해주었지만, 이는 수많은 시간 관리법 책들이 늘 반복하는 내용 아닌가. 반면 시간 연구자 가이슬러 교수의 조언은 유익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누구나 하나의 인생을 살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여러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피츠는 속도 경쟁의 승리자인 유명 기업 컨설턴트도 만나고 100만분의 1초를 다투며 돌아가는 로이터통신 유럽 본부도 방문했다. 그 결과 그는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냈으며, 경쟁을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람직한 삶을 위해 어느 만큼의 속도가 필요한가? 무엇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가?’라는 것. 오피츠는 속도 경쟁에서 탈출한 사람들과도 만났다. 노스페이스와 에스프리를 창업한 더글러스 톰킨스는 회사 지분을 정리하고 칠레 남부 해안 마을에 살면서 광대한 황무지를 매입해 나무를 심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험한다. 초 단위로 계획되는 시간의 세계에 살던 톰킨스는 이제 수백 년, 수천 년 세월의 세계에 살고 있다. 톰킨스가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나무를 키웁니다. 지금은 2~3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1000년 뒤에는 아주 아름다운 숲을 이룰 겁니다. 처음 200년 동안은 50미터 높이까지 위로만 자랄 겁니다. 그런 다음 재질이 단단해지면서 옆으로 자라겠지요. 그러면서 수천 년의 수명을 누릴 겁니다. 이 나무들은 수명이 4000년이나 됩니다.” 오피츠는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을 선언한 나라, 부탄도 방문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부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돈이 아니라 생명으로 보는 거죠. 국민총생산과 성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목표가 되면 사람들의 생활도 분주하고 빨라집니다. 그러면 점점 더 오랜 시간을 고되게 일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건강을 잃고 불행해지죠. 그래서 부탄에서는 다른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평균 소득 세계 137위, 인간개발지수 135위지만 행복지수는 13위인 부탄. 물론 부탄은 가난한 나라이고 문제도 많으며 최근에는 서구 문물과 생활습관이 빠르게 침투하고 있지만, 국민총행복 개념을 중심으로 부탄만의 개성과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저자 오피츠는 ‘시간은 곧 돈이고 빠른 것이 풍족한 것이며 풍족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피츠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시간 절약은 헛소리이며 시간을 관리한다고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포기하는 삶의 전환이다. 그는 국가가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독일의 경우 우리 돈으로 약 200만 원이 적합할 것이라 한다. 물론 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원 마련 문제부터 노동 의욕 상실 가능성까지. 이에 대해 그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크지만 돈이 되지 않아 하지 않던 일들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 낙관한다. 저자가 성공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 그런지 취재와 인터뷰와 저자 자신의 생각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무겁다면 무거운 주제이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과 주제는 ‘슬로우’지만 책 자체는 속도감 있게 술술 읽힌다.
학교폭력 및 집단 따돌림 예방을 위한 범국민 캠페인 ‘2012 가족사랑 친구사랑 봄길 걷기대회’가 4월14일 오후 5시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된다. 서울시와 한겨레신문이 주최하고 한국교총, 서울시의회, 서울지방경찰청 등이 후원하는 이번 걷기대회는 ‘Hi Friends!, Hi-Five’를 슬로건으로 초․중․고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이 함께 참여해 서울시청 앞 광장, 숭례문, 남산순환로, 청계천 등 약 10㎞ 코스를 걸으며 학교폭력 현실과 대책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걷기대회 중간에는 ‘사랑의 도미노 메시지’ 행사가 진행된다. 참가자들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학교폭력 예방에 관한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으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10명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면, 전달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10명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참가신청은 2012 가족사랑 친구사랑 봄길 걷기대회 홈페이지(www.hifriends.net)에서 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무료다.
배용숙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상명고 교장)이29일 한국교총 안양옥 회장, 박찬수 부회장과 협의회를 갖고 사립 중․고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충호 충북 옥천상업고 교장이 최근 ‘일제 암흑기 의사교육사’를 증보판으로 출간했다. 이 교장은 책에서 “식민지 의사교육의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의과대학에서는 일제가 사용했던 ‘학용 환자’라는 비인도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러한 용어는 의학계에서 속히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상진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장은30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정기총회를 갖고, 정태범 전 문교부 편수국장에게 ‘제2회 자랑스러운 편수인상’을 수여했다. 또 이날 회원들에게 제6회 교과서의 날을 기념해 펴낸 ‘교육과정 교과서 연구지’와 ‘편수의 뒤안길 11집’을 배포했다.
김성로 미술동아리 NooN 회장(경기 금릉중 교감)이20일부터 4월1일까지 일산 현대백화점 갤러리에서 ‘제12회 작품 전시회’를 개최했다. 경기 고양․파주 지역 미술교사 11명으로 구성된 NooN은 매년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박춘배 前 인하공업전문대 총장이 22일 인하대 제13대 총장에 취임했다. 박 총장은 1980년부터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한국항공우주학회 부회장 등을 지낸 바 있다.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 소장은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 등 5개 학회와 31일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전국교육자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학교폭력을 법․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근본적 원인 분석과 대안 모색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김영길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동대 총장) 회장은 28일 연세대에서 ‘대학 국제화의 현황과 발전방안’을 주제로 ‘대학 국제화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각 대학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화 사례를 살펴보고 외국인 교원의 의견을 통해 한국 고등교육의 현황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은21일 경기과학고에서 ‘과학기술 꿈나무들과의 만남’을 개최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과학계 멘토로서 학생들과 소통하며 미래사회 과학기술의 역할과 중요성, 이공계 비전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개방과 협력의 자세로 다른 분야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라”는 뜻을 전했다.
교육을 개혁하고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한 까닭에 정부차원에서 수많은 교육개혁 정책이 도입되었고,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정책의 파급과 착근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는 학교 현장에 거듭된 변화를 요구하며, 도달해야 할 표지석이 가까워졌다 싶으면 이내 저만치 멀어져버린다. 마치 무지개를 쫓아가는 형국과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학교 현장에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나라에 연구학교 제도가 도입되어 시행된 지 60년이 넘었다. 1951년부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연구학교 제도를 통해 교육현장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다. 연구학교의 운영 주제는 당해 정부의 장학 정책의 무게 중심에 따라 달라졌으며, 학교 현장에 새로운 교육 사조를 몰고 왔고,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연구학교 제도의 초기에는 반공사상을 중심으로 한 정신교육, 과학기술 습득 중심의 생산교육 측면이 강조되었고, 1960년대부터는 새마을 운동, 향토교육 중심의 연구학교가 운영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방화와 다양화, 그리고 국민정신교육, 학교정화교육의 주제가 부각되었고, 1990년대부터는 세계화, 정보화, 다양화 측면에서 열린교육, 인터넷 활용 수업, 이동식 수업이 강조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줄곧 디지털 교과서, 학교 특성화, 맞춤형 교육 등 수요자 중심의 주제가 연구학교 운영 주제로 확산되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 교육, 창의·인성교육, 학교자율화, 교과교실제 등이 연구학교의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시도교육청이 지정한 연구학교를 통해, 당해 지역의 장학방침과 정부차원의 교육개혁의 어젠더가 연구되고,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시작으로 일반화된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연구 과제를 해결하느라 학교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교육 본질적인 측면의 변화보다 시설 및 환경 구비와 보고회 운영 등에 따른 비효율성이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어 왔다. 연구학교의 공과는 학교 교육의 개혁에 대한 공과로 이해될 수 있을 만큼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 연구학교의 축소 운영과 폐지에 관련된 의견이 많이 개진되고 있다.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지난 한 해 동안, 필자가 담당해 온 연구학교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대부분의 학교의 구성원들은 연구학교 운영에 따른 자부심을 갖고 학교변화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역할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개선을 요구하는 문제점 또한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연구학교를 위해 주어지는 연구기간도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 좀더 체계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 지원과 운영 기간의 확대가 필요하며, 연구학교 종료 이후에도 추수지도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연구기간 동안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교과부나 여러 정부기관의 요청에 의해 지정되는 경우, 연구학교 구성원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자율적 연구학교 운영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과보고회는 권역별 합동보고회를 권장하여 학교의 부담을 줄이고, 세미나와 토론 등과 같이 새롭게 열린 보고 형식을 찾아나가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반세기가 넘은 연구학교 제도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학교 현장의 진정한 변화, 학교 구성원의 내재적 동기에 의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교육연구기관에게는 연구학교에 대한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연구학교 구성원들은 학교 변화의 선도자라는 긍정적 자각이 요구되는 때이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기 지도, 오래전부터 내려 온 교육의 과제다.그 과제를 해결하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교실에 쓰레기통이 있건만 교실 바닥과복도에 함부로 버린다. 결국엔 학생들이 자기 교실 청소를 하면서도. 그러나 실외가 문제다. 창밖으로 버리고 등하교시 버리고. 가정 통신문이 나가는 날이면 비행기를 만들어 날린다. 담당부장교사,당직자,주무관, 학교 안전 지킴이, 교장도 줍고. 끝이 없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작년 이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결론은 학생들의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한다. 그러려면 함부로 버리지 않아야겠다는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투명 쓰레기통. 학생들이 등하교 시 제일 많이 통행하는 동쪽 현관에 쓰레기통을 비치하는 것이다. 표어도 붙인다. '율전중, 쓰레기 제로에 도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실외에 버린 쓰레기다!' 누구라도 실외에서 쓰레기를 주운사람은이곳에 쓰레기를 버린다. 보이는 쓰레기가 적을수록 우리들 학생 습관이 올바로 잡혀 가는 것이다. 등하교 시 새로 설치한 이 쓰레기통을 보면서 쓰레기에 대해, 함부로 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강압적인 방법보다 학생들의 자율적 실천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학교라는 곳, 교육을 하는 곳이다.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교육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이디어도 있어야 한다. 또 교사가 학생들을 꾸준히 지도해야 한다. 때론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지도하면서 성과에 따른피드백도 필요하다. 율전중의 새로운 실험, 성공할까? 교직원이 이 아이디어 실행의 의미를 공유하고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는가에 달렸다. 어디서나 생각이 문제다. 함부로쓰레기 버리는데 대해 문제 의식이 없으면아무런 효과가 없다. 학생들의 자율적 참여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투명 쓰레기통, 김포공항 쓰레기통에서 힌트를 얻었다.
우리 교육이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교의 모습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흐트러져 있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지만, 교실의 학생들은 학습 의욕이 없다. 학교 내에서 폭력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일부 아이들은 피해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학교와 정책 당국은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게 결과가 좋아지지 않는다. 한국 교육은 산업 사회에 혁신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풍요로움은 교육이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을 못한다. 미국의 오바마도 한국의 교육을 칭찬을 한다(정확히는 한국의 교사를 국가 건설자라고 했다). 교육계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학교는 부정적인 대상이다. 공교육은 사교육과 비교하면 늘 처진다고 한다. 교사도 학원 강사와 비교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비난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입시 교육이라는 데는 같을 것이다. 입시 교육에 치중하면서 우리 교육이 본질을 잃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가면 명문대 입학생을 자세히 보고한다. 마치 교육의 목표가 여기에 있었다는 듯이 명문대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 목표 달성을 이룩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는 학교 정문에 현수막으로도 걸렸다. 이런 풍조에 대해 학부모는 물론 사회 일각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 매체는 오히려 이러한 통계 발표 집계를 즐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교육이 입시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시 교육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몰입은 모든 것을 지나치게 한다. 학교와 학생은 오직 내신, 수능, 논술 점수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된다. 앨빈 토플러(2008)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한 것도 결국 이런 교육 풍토를 두고 한 말이다. 글로벌 시대는 세계의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우물에 있는 친구들과 점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끼리 경쟁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잘못된 흐름 속에서 학교는 방향을 잃었다. 학교는 정작 필요한 가치는 파괴되고, 부정적인 모습을 만들어 낸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양산한다.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 학생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당연히 학교는 재미가 없고, 친구들을 괴롭힌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간의 교육적 소통도 없다. 특정 대학교 합격 현수막을 거는 관행은 최근 ‘학교 정보 공시제’ 등과 맞물려,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통계내기는 값싸고 촌스러운 문화다. 핀란드 교육이 널리 이야기되는 이유는 학교에서의 서열을 매기는 평가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초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경쟁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대신 공부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형성된 다음부터 경쟁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토마나부 교수도 낙오자를 가려내는 교육이 아니라 누구나 최소한 30세 이전까지는 아무런 사회적 제약 없이 교육을 받고 도전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했다. 같은 새도 차이가 있다. 독수리는 새끼를 기를 때 낭떠러지에서 밀어서 높이 나는 법을 가르친다. 참새는 먹이를 주고 날 때까지 돌봐주어야 한다. 병아리는 어미 뒤를 따라 다니면서 큰다. 독수리가 창공에 높이 나는 모습이 부럽다고 새끼를 밀어낸다면 죽는다. 하물며 인간은 모두 능력이 다르다. 독수리 나는 모습이 멋지다고 아이에게 힘든 공부를 강요한다면 잘못된 교육 방법이다. 경쟁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낳는다. 경쟁은 사고력을 약화시켜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는다. 아울러 협동의 능력도 기를 수 없다. 학벌 중시의 교육은 자연 독창적인 접근이나 창의성의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우리 교육도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를 헤쳐 나갈 잠재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과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개별화 교육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고, 좋은 교육이다. 교육은 미래 삶의 가치를 키우는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교과를 교육과정의 중심축에 놓고 있다. 우리는 최근 교육과정 개편을 하면서 이미 배정된 예술교과조차 밀어내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은 인간관계, 의사소통, 예술 향유와 세계문화에 대한 이해가 능력이다. 글로벌 리더는 영어를 잘한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공익 광고가 생각난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라는 문구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된 교육의 시작이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 계절이 만든 수채화는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바람과 햇살, 그리고 호수의 물결. 봄철의 대청호는 수면에 반짝이는 은빛물결이 아름답다. 자연과 교감을 이루며 사람들에게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 예술이다. 예술은 공익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예술가의 고집과 열정으로 탄생한다. 대청호 주변에 사람들과 소통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관, 창작마을, 갤러리가 여러 곳 있다. 1900년대 초까지 옥천의 중심지였던 구읍에 현대시의 시성이라 불리는 정지용 시인의 문학관이 있다. 마을 곳곳이 100여 년 전에 그린 풍경화처럼 옛 모습 그대로인 옥천구읍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커다란 문학관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옥천읍 하계리의 생가는 노래 가사로 잘 알려진 '향수'의 시구(詩句)처럼 옆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사립문과 돌담‧초가와 부엌‧우물과 장독대 등 모두가 소박해서 정이 간다. 생가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옛 이야기를 펼쳐놓듯 시인의 삶과 문학을 음미한다. 물레방아와 동상이 있는 작은 공원 옆에 전문해설사가 상주하며 문학여행을 돕는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은 문학전시실, 문학체험공간, 영상실, 문학교실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에 들어서면 시인의 밀랍인형이 안내데스크의 오른쪽 벤치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기로 흥미롭게 체험하고, 정지용의 시를 직접 낭송하는 등 대표적인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하며 시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공간이다. 피반령 고갯길 아래의 한적한 시골마을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에 오장환 시인의 문학관이 있다. 시인은 1918년 이곳에서 태어나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휘문고등학교시절 정지용에게 시를 배우고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한 천재시인이었지만 월북 작가라는 꼬리표를 떼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종환 시인이 명예관장을 맡고 있는 오장환문학관은 전시실‧문학사랑방‧영상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전시실에는 동시액자‧사진자료‧동시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른 문학관에 비해 공간이 좁고 전시물이 적지만 오히려 작고 아담해서 정이 간다. 미리 전화(043-540-3776)하면 임선빈 문학해설사의 사랑이 넘치는 친절에 감동받으며 문학을 공부한다. 〈눈물은/ 바닷물처럼/ 짜구나// 바다는/ 누가 울은/ 눈물인가〉 문학관에 전시된 시들을 읽노라면 시인의 숨결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회인은 감나무가 많아 골목길의 돌담 사이로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해마다 10월이면 목화가 하얗게 꽃을 피우는 이곳에서 오장환 문학제가 열린다. 생가는 문학관 맞은편에 예쁜 초가집으로 복원되어 있다. 문의면 소재지의 호반도로를 벗어나 산길을 굽이굽이 돌다보면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진군을 멈춘 채 쉬어 갔다는 마동리이다. 이곳의 마을 입구 회서분교 터에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 마동창작마을이 있다. 창작마을을 예술과 현실이 만나는 창작과 소통의 공간으로 만든 이흥원 화백은 늘 누구나 제대로 대접 받으며 사는 세상을 꿈꾼다. 이 화백의 인사말을 읽어보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5명의 작가가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한다. '~작업실은 꾸질꾸질하지만 그곳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럴싸합니다. 원시적인 듯 하면서 현대적이고 지역인 듯 하면서 세계적입니다.~' 일상이 창작이고 창작이 일상인 작가들이 오픈스튜디오 등 작업공간을 개방하며 이곳을 찾은 일반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농촌 사람들이 동참하는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빈집이 많은 30여 호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문의면 대청호반에 '선우야, 바람 보러 가자'로 전국에 알려진 한지공예가 이종국씨와 명상가 이경옥씨 부부가 운영하는 평범하지만 아주 특별한 갤러리가 있다. 문의중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마블갤러리는 오지 벌랏마을에서 직접 닥나무를 재배하며 한지를 만들고, 자기가 만든 한지로 그림을 그리거나 공예작품을 만들며 중단되었던 전통 한지의 맥을 이은 이종국씨가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자연과 대화하는 예술 공간이다. 마블갤러리의 작품들은 독일, 캐나다 등 외국의 전시회에서 한지의 일반화와 세계화에 일조하고 있다. 갤러리에 부채와 액자, 불을 밝히는 등, 복을 담는 그릇, 항아리 등 한지로 만든 작품들이 많다. 한지 공예를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한지공예교실(043-222-5808)도 운영한다. 한지는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볼수록 멋과 정감이 묻어난다. 여유와 느림, 나눔과 따뜻함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는 우리의 정서가 한지의 소박함과 투박함 속에 담겨있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구설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진보’라는 타이틀 때문 그들의 구설이 더 거역스럽게 다가오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가령 서울시 교육감은 정식 공고 없이 국보법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자 등 교육공무원 임용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들을 일반고 교사로 특채했다. 교과부는 즉각 그들의 교사 임용을 취소시켰다. 전북 교육감은 3월 1일자 인사에서 본청 과장을 개방형교장공모학교 교장으로 임용·제청했다. 교과부장관이 승인, 본청 과장은 이미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교장 발령자는 지원 자격 미달인 것으로 보인다. “본교 재직 교원 지원 제한 및 현임학교 2년 미만 근무 교장 지원 불가”로 되어 있어서다.교장임용자는 전북 교육청 과장직에 2010년 9월 1일자로 부임했다. 재임 기간이 2월말 기준으로 1년 6개월이다. 2년 미만인 것이다. 설마 ‘현임 교장’이 아니고 도교육청 장학관이라서 지원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내부형교장공모의 경우, 지역교육지원청의 교육전문직을 관내 교장공모에 지원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점과 비교해봐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다. 본청 근무자만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공모학교의 재직 교원 응모를 제한하고, 현임학교 근무 2년 미만의 교장도 지원못하게 한 것이 2년 미만의 본청 과장을 임용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임 2년도 안된 본청 과장의 교장 임용은 외부의 전문 인사나 유능한 교사를 뽑으려 도입된 개방형교장공모제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모교장심사위원회’가 교육감에게 2배 수 추천한 자중 다른 한 명이 평교사였다니 더욱 그렇다. 절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이 떠오르는 이유이다. 도교육청에서 구성·운영하는, 사실상 임용 후보자를 결정하는 기구가 된 ‘공모교장심사위원회’의 2차 심사가 공정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알려진 대로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에서 도입한 교장공모제 본래 취지인 내부형 교장공모의 씨를 말리다시피했다. 자격증 있는 초빙형 위주로 교장공모제를 확대해왔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하자 이런저런 꼼수를 지침으로 만들어 내려보내기도 했다.가령 교장공모 신청 학교의 15% 이내에서 내부형 교장공모를 하게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7개 학교가 교장공모하겠다고 전원 신청했을 때 그중 한 곳만 내부형으로 하라는 얘기다. 아예 하지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선 학교의 신청 기피 현상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전북 교육청의 그런 ‘반칙’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지원자격 미달인 점이 이의제기됐는데도 “교육청 전문직을 고려한 규정이 아니다”는 동문서답식 답변과 함께 반칙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본청 과장을 교장으로 발령낸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의 교사임용에 대한 취소와 다른 결정이라 의아스럽기도 하다. 반칙에 있어선 교과부나 교육청이 한통속인가? 진짜 문제는 두 기관의 잦은 충돌로 인해 빚어지는 일선 학교에서의 혼란이다. 그걸 지켜봐야하는 국민의 피로감이다. 차제에 진보교육감들에게 권유한다. 필자 역시 지난 선거에서 진보교육감에게 기꺼이 표를 주었다. 말할 나위 없이 각종 비리로 피멍이 진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인사문제 따위로 구설에 오르내리라고 찍어준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청탁받지 않고 금품수수를 하지 않는다고 그게 다는 아니다. 일반의 상식을 벗어나고 많은 이들에게 상실감을 안기는 구태의 인사, 그 ‘전횡’으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면 이미 진보가 아니다. ‘어디 한번 잘해보라’며 표를 준 유권자에 대한 도리는 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