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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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 보기가 겁난다. 교사의 학생지도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언제 학교로 달려와폭력을 행사할 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 뉴스로 변했다. 국민들도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하고 무덤덤하게 대한다. 위정자들이 교육자를 홀대하니까 학부모, 학생도 덩달아 선생님을 깔보고 제멋대로 함부로 대한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이 망가지는지 모르고 위정자들은 국가의 미래가 어두컴컴해지는 줄도 모르고 자기 앞날만을 생각하고 있다.과연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 있고 우리나라는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학교본관 계단 좌우에 있는 스테인레스 기둥.망가진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학생들이 장난으로 잡아 당겨서 부서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발로 힘차게 억지로 걷어차면 부서져 나간다. 그러니까 일부러 부순 것이다. 학교 기물 망가진 것은 이 뿐만 아니다. 화장실 변기, 유리창, 출입문 등이 매일 부서져 나간다. 수리비만도 엄청나다. 학생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지를까? 학교에 불만? 선생님에 불만? 아니면 공부에 불만이 있어서? 세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학원공부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돌파구가 없어서? 그도저도 아니면 기본생활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시험기간 중 실내를 순회하면서복도와 계단에 있는 껌과 껌종이, 사탕껍질, 휴지뭉치 등이 수십개다. 10분 동안 주운 것이 음료수 종이 박스로 가득 찬다. 학교교육을 학부모가 앞장서 망치고 있다. 제 자식 잘못을 나무랄 줄 모르고 책임을 교사에게 뒤짚어 씌운다. 잘못한 자식을 감싸고 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인 줄 착각에 빠져 있다. 식당 등 다중 이용시설에서질서를 어지럽히는 어린이를 바로 잡다가는 어른들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자식의잘못된 기(氣)를 살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인지? 학교 사랑이 나라 사랑이라는 것을 지도해야 한다. 요즘 잘못된 세태 탓인지 '애국'이라는 말이 사라져가고 있다. 학교에 늘상 있었던 월요일 애국조회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학생 조회를 아예 갖지 않는 학교도 많다. 국가 정체성 교육이 엉뚱하게 매도되고 있는현실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가정교육도 문제다. 부모는 돈벌이에 바쁘고 그 돈은 자식들 억지 공부 뒷바라지에 몰아다 넣으면서 그것이 부모의 도리인 줄 안다. 잘못된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닐까?어떻게 하는것이 자식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잘못된 자식 사랑은 자식을 망치는 것이다. 교육의 양축은 학교 선생님과 가정에서의 부모라고본다. 선생님과 부모가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부모가 선생님을 존경할 때 교육은 바로 서는 것이다. 선생님이 잘 나서 하는 말이 아니다. 훌륭한 부모는 제대로된 자식교육을 위해 선생님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교교육도 바로 설 수 없는 것이다.
4월이 지나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T.S 엘리엇이란 시인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개인의 이혼 같은 내면세계와 더불어 어려운 시대상황을 결부지은 시 "황무지"에서 표현한 가장 잔인한 달 4월이 지나갔다. 이제 계절은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로 접어들었다. 달력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것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라는 글자다. ‘어라. 노동절이라는 말은 많은 들어 봤는데 지금까지도 생경한 근로자의 날이라?’ 애초 노동절은 일제시대인 1923년 5월1일 우리나라 최초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전국 규모의 노동절 행사를 열었고, 그 전통은 해방 뒤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그런 것이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때 “잔인무도한 공산정권과 같은 날에 행사를 치를 수 없다”는 이유로 3월10일(대한노총 설립일)로 바꾸었고, 한술 더 떠 박정희 군사독재정부는 그 이름도 현행과 같은 ‘근로자의 날’로 바꿔 1994년까지 이른 것이다. 그나마 문민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1994년 5월1일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을 지키게 되기까지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5월1일의 명칭은 아직도 '근로자의 날'이다. 기념 일 날 하루 쉬면되는 것이 이름 하나 바꾼 것이 그리 중요한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알고 있다. 단어 하나에 녹아들어가 있는 그 오묘한 언어의 진리를. ‘백성’이라는 중세시대의 수동적인 단어 대신 근대화된 개념의 ‘국민’을, 시절이 민주화되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인 ‘민중’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그런 개념으로 불리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수동적인 '근로자'만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를 위시한 잘못된 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그렇게 깊다. '참여정부'가 그 작은 흔적조차 지우지 못한 데에는 ‘공부 안 하면 공장가서 공돌(순)이 된다’는 말이나,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라는 우리 사회에 그릇되게 만연된 '노동'에 대한 몰이해 현상이 교실의 급훈까지 침투하도록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굳이 전교조 결성때 거론되었던 이상한 이데올로기인 ‘聖職인 선생님이 무슨 노조냐?’라는 말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한때는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며 살인에 가까운 야근과 잔업을 밥 먹듯 시켰던 그 공돌(순)이와 같은 부류로 전락하여 그렇게 창피했다는 말인가? 전문계고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 전문계고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양심껏 해줄 수 있겠는가? 사회현실을 도외시한 채 교과서적인 얘기를 한다면 정보화 사회에 수많은 정보를 들었던 그 아이들이 사회가 가르치는 거짓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이상한 논리는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다. ‘국민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부터 ‘철밥통이라 배가 불렀다’는 비아냥거림까지 고스란히 듣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바 ‘무노조 경영’이라는 타이틀로 일류기업을 이끈다는 소리를 듣는 국내 굴지의 삼성기업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떤 노동전문가는 무노조 경영이 일류 기업을 이끌었다기 보다는 일류기업이라는 자부심과 그에 상응하는 다른 기업 보다 나은 노동조건이 그 결과물을 얻지 않았나 말한다. 그러므로 노동조건이 그 업체 보다 못할 경우에는 그 신기루는 언제나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사례는 삼성 계열사인 이마트와 삼성SDI 등의 여러 계열사에서 노조를 만들려다가 회사 측의 위치추척 등 협박과 한 가정을 파괴하는 살인적인 손배소에 못 이겨 좌절된 사례를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노동자가 노동한 것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노동과 사회현상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초등학생 때부터 필요하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노동교육과 사회현상에 대한 교육이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커리큘럼에는 노사간 협상 실습, 노사관계 까지도 들어 있다고 하니 부러움을 느낀다. 이런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회를 올바르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까지는 무비판적인 학생으로 사육되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극단적인 이론과 이념으로 무장하게 만드는 사회적 괴물을 낳게 하는 사회풍토는 어떤가? 지하철 파업때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들이 노조에 보낸 적대적인 시각과 짜증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연이어 방송한 것과 달리,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 철도 파업때 성숙한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똘레랑스 정신을 방송한 사례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을 키우는 교육의 힘이 아니었을까?
“학교장이 단위학교 경영에 책임을 지고 소신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격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학교장의 인사권과 재량권은 더욱 강화되고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울국ㆍ공립중학교장회 신임 회장에 선출된 박종우 대청중 교장(사진)은 “학교장의 책임과 의무는 강조되지만 그에 걸 맞는 위상과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학교장의 위상을 높이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됐다. 중등교감회장과 교장회총무 등을 역임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는 평이다. 박 회장은 전국국ㆍ공립중학교장회장도 겸한다. 앞으로 2년간 중학교장회를 이끌 박 회장은 “우리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초등교장회와고교교장회를 비롯해 교육 유관기관 등과 긴밀히 협조하는 한편 자체 연수를 강화해 교장의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학교장이 지역사회는 물론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아야 공교육도 튼실해 질 것”이라며 “교육공동체간의 갈등해소와 신뢰회복을 위한 단합과 성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며칠 전, 경기도 안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또 학부모가 담임교사를 폭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정부에서 무리하게 교육 개혁을 실시하며 교단의 권위를 급격하게 추락시킨 결과다. 현재 이런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앞으로 더 많아지며 교육황폐화의 주범이 될 것임을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사 폭행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미 교권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교사들이 본연의 의무를 다하게 하려면 교권을 보호해줄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교사로서 지녀야 하는 권위나 권력으로서의 교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줘야 하듯 교육자도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따라 교육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기사에 의하면 여러 명의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담임교사를 폭행했다. 폭행 이유도 단순하다. 자기 자녀를 꾸지람했다는 것이 이유지만 폭행당하는 교사가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야 했다. 폭행 방법도 과격하다. 무슨 원한관계라고 교사가 바닥에 쓰러졌으면 그만둘 일이지 옆 반 교사의 제지를 받고 나서야 폭행이 중지되었다. 폭행 학부모가 폭행사실을 부인하며 했다는 '폭행을 가하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이라는 말이 교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학생들이 칭찬과 사랑을 먹고 자라듯 교사에게는 명예가 소중하다. 아이들 앞에서 폭행당한 교사가 무슨 수로 실추된 명예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앞뒤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사는 신이 아니다.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기도 쉬운 세상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칭찬이 보약이라는 것을 알지만 단체 생활은 가끔 꾸지람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미워서가 아니다. 꾸지람도 교육의 일부분이다. 학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는 교육은 참다운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으면 학부모는 화날 일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는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합리화가 많다. 그래서 현명한 학부모는 아이의 이야기를 걸러서 듣고 서운한 감정은 대화로 조용히 해결한다. 서운한 게 뭐 그리 많다고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를 폭행하는가? 교사를 동네북으로 만들어 해결할 게 뭐가 있는가? 교사에게 화풀이 한번 진하게 하고 득 본 학부모 어디 있는가? 학생과 교사 사이만큼이나 학부모와 교사에게도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만 잘 되어도 참교육은 저절로 이뤄진다.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학부모는 골이 깊어지기 전에 담임교사와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뜻이 통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교사 폭행 사건은 자녀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번 교사 폭행 사건의 발단이 된 음식물도 그렇다. 아이들의 생일이나 학교 행사 시 불쑥 학교로 음식물을 보내오는 학부모가 있다. 학부모의 성의를 생각하면 거절하기도 어려운 이 음식물이 교사들에게는 골칫거리다. 학교에서 공동 급식을 실시하고, 행사에 맞춰 식단을 조절하기에 아이들에게는 간식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간식을 먹는 날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어렵고, 급식시간이 억지로 이뤄지며, 교실이 쓰레기로 넘쳐난다. 물질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세상이지만 아이들에게 음식물의 소중함과 청결의 중요성은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돈을 지출하며 억지로 나쁜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참 우스운 일이다. 제발 학교에 먹을 것을 보내지 말자. 교사와 정상적으로 소통이 이뤄진다면 교실로 간식을 보내지 않는다. 불쑥 보내온 간식을 교사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것도 알자. 간식 사올 성의면 아이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다.
학생들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한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숙제도 하고 참고서 문제도 푼다. 선생님께서 어떤 내용을 가르쳐주면, 학생들은 그 내용을 열심히 익힌다. 또 그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풀고 또 푼다. 때로는 공식을 암기하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하여 암기장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무술 도장에서 무술을 배울 때, 사범의 시범을 보고 그대로 흉내를 내며 잔기술부터 몸에 익히고 또 익히듯이. 한 학생이 ‘수학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해 보자. 이 질문을 한 학생은 친구들의 눈총과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는 분위기에 몸둘 바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학생을 배려하는 교사는 ‘이 문제를 풀면 남보다 좋은 성적을 얻어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서 칭찬을 들을 것이며,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대학을 졸업하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자상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이며, 수학을 공부하는 동기이다. 그러나 처음 질문을 한 학생은 그 문제를 풀기 전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물은 것이며, 이 학생의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푸는 이유와는 상관없이 문제를 풀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상하여 가능성을 대답해준 것일 뿐이다. 수학자들은 ‘수학을 한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수학을 수학답게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수학답다는 말을 이해하여야 ‘수학을 한다는 것’과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수 있다.‘○○답다’는 말을 알기 위하여 먼저 ‘여자답다’는 말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여자를 보고 여자답다고 한다면, 먼저 마음속에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으며, 그 여자가 이 기준에 적합하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여자의 기준이 있고, 어떤 여자가 이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여자답다고 말을 하는데,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면 여자답다는 말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여자답다는 말이 있으며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것은 여자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준의 바탕에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를 ‘수학답다’라는 말에 적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으며, 이 기준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바탕에는 공통되는 흐름이 있다. 이 공통되는 흐름이란 수학을 수학자가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수학자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해결되었을 때의 즐거움과 노력하고도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공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해결하는 절차가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수단이나 방법도 동원하였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 문제로부터 새로운 문제에 도전할 수 있다. 이것이 수학을 하는 동기이다. 앞서 말한 수학을 공부하는 동기는 외적 동기이고, 지금 말한 수학을 하는 동기는 내적 동기이다. 내적 동기를 우리는 본질적 동기라 하며, 수학의 본질적 동기는 수학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새로운 문제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등산을 한다고 가정하자. 산에 가기 싫다는 아들에게 산에 가면 맑은 공기도 마시며, 몸도 튼튼해진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산에 갈 것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아들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맑은 공기를 마실 이유도 없으며, 몸이 튼튼하기 때문에 더 튼튼해야 할 까닭도 없다. 더욱이 앞으로 더 건강할 것이라는 설명으로 아들을 산에 데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타이르고 강요하며 함께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매주 가까운 산을 다니고, 어느 때는 멀더라도 정말 아름다운 산을 다녀왔다. 아들은 점점 산이 좋아졌고, 산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산행의 즐거움을 알고부터 몸은 더욱 튼튼해졌고, 마음도 건강해졌다. 아들과의 산행을 예로 들은 것은 이 속에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수학을 하는 것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수학을 처음 학습하는 아동에게는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들이 수학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타이르며 때로는 강요하며 아동이 수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동이 수학을 재미있어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로 그쳐야 한다. 산행의 즐거움을 아는 아들이 어느 산을 갈 것인지,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복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켜봐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높은 산을 올라가다가 중간에 하산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아들이 훌륭한 등반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조그만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삶이 더 보람있기 때문이다.
“조용, 조용, 우리 아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빠가 너에게 앵무새를 사줄게. 만약 앵무새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아빠가 너에게 다른 걸 사줄게… 응, 뭐가 좋을까…유럽?”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딸 제니퍼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세계에서 돈이 제일 많은 갑부에 대한 일종의 조크인데, 기분이 참 묘하다. 빌 게이츠의 재산이 50조 정도 되는데, 그 돈이면 아마도 조그만한 나라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가난한 집 출신에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대은행가인 미국 서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2세는 워싱턴주립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로 시애틀에서 법률회사를 경영했으며 주(州) 변호인협회 회장이었다. 할아버지는 대은행가였고 증조부는 시애틀은행인 내셔널시티뱅크(National City Bank)의 설립자로 시애틀시가 생겨날 때부터 시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시애틀 은행가의 딸로 워싱턴대학교의 사무처장을 지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자선사업가로 시애틀의 사교계를 주름잡을 만큼 활발한 활동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자선단체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빌 게이츠는 3대에 걸쳐 시애틀 최고 명문가였고 지금은 세계 최고 갑부가 된 것이다. 이름도 대물림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 아버지는 윌리엄 게이츠 주니어, 그리고 빌 게이츠는 윌리엄 게이츠 3세가 원래 이름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이 이름이 같다는 것은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을 존중할 수 있어야 그 이름에 흠이 가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오히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물려준 이름이 부담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돈 잘 쓰는 방법을 더 고민하는 가문 빌 게이츠가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보다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 더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미 3대에 걸쳐 돈에 대한 모든 것을 소유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증조할아버지는 은행을 설립할 정도로 막대한 돈을 소유했고 할아버지도 그랬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돈뿐만 아니라 변호사로서 사회적 명예도 얻었다. 그야말로 3대에 걸쳐 재물과 명예를 모두 얻은 것이다. 빌 게이츠는 증조부나 할아버지, 아버지 등 3대가 이룬 부와 명예보다 더한 것을 이루고 있다. 4대째 빌 게이츠는 이제 자신의 선조들이 못다 한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빌 게이츠에게 돈은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쓰느냐에 있는 것이다. 티베트의 라마승의 이야기기인 영화 ‘삼사라(Samsara)’를 보면 주인공은 스승에게 이런 말을 한다. “5살 때부터 중이 된 나에게 또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뭘 가져보지도 못했는데 무엇을 버리라는 것입니까.” 이는 재물이든 결혼이든 가져보거나 경험해본 후에 그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빌 게이츠가 돈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은 그의 가문이 더 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대대로 부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겠다. 돈벼락을 맞을 정도로 부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다. 예컨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강재벌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부모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해주자 돈이 싫다면서 형에게 그 돈을 주고 평생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또 케임브리지대 교수직도 마다하고 노르웨이의 시골에서 보냈다. 그의 철학은 돈을 돌같이 본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돈을 벌려고 직장을 전전했다면 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은행가 가문인 빌 게이츠 집안은 돈에 대한 갈증이 더 이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갑부가 아직도 돈에 대해 미련을 두고 있다면 그것 또한 난센스일 것이다. 이제 게이츠 가문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 즉, 이제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골몰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빌 게이츠를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갑부이지만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자선사업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의 전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상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빌 게이츠는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에게도 우상이 아닐 수 없다. 빌 게이츠는 그야말로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탁월한 세계 최고의 CEO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최고였지만 이제는 공부만 잘하다가는 평생 부모 속을 태울 수 있다. 요즘은 공부도 잘하고 ‘이재’에도 밝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78년 찍은 11인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멤버. 아래 맨 왼쪽이 빌 게이츠, 맨 오른쪽이 폴 앨런. 그렇다면 오늘날 빌 게이츠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첫째, 돈에 대한 부모자녀 간의 원칙 공유를 꼽을 수 있다. 만약 빌 게이츠가 ‘부자 아버지’에 의지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도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 아버지’ 의지않고 사업 키워 빌 게이츠 아버지가 한번은 기자들로부터 “당신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했을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빌 게이츠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면 아들은 아마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애가 아주 안락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의욕을 갖고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적어지기 마련이다. 빌 게이츠 아버지는 부자였지만 아들에게 창업자금마저 주지 않았다. 빌 게이츠 또한 부자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아닐 수 없다. 빌 게이츠는 자기의 재산 가운데 99%를 자선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대부분 집안에서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면 필시 큰일이 일어날 게 뻔하다). 빌 게이츠를 있게 한 두 번째 요인으로는 ‘두 명의 똑똑한 친구’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중·고와 하버드대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 덕분에 컴퓨터 황제에 오를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두 친구는 빌 게이츠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준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사립명문인 레이크사이드에 다녔는데, 여기서 컴퓨터광인 폴 앨런을 만나 컴퓨터를 알게 되었다. 폴 앨런은 빌 게이츠에게 컴퓨터에 눈을 뜨게 해준 친구로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함께 창업했다. 또 하버드대에서 만난 스티브 발머(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 수 있었다. 빌 게이츠는 어릴 시절 부잣집 아들답게 모난 성격으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돈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 기술로 백만장자가 될 궁리를 일찌감치 했다. 특히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한 번 사귀면 깊게 사귀는 편이어서 주변에 자신의 일을 도와 줄 충직한 친구들을 둘 수 있었다. 그의 운명을 결정한 동반자를 만난 곳은 다름 아닌 레이크사이드 중·고와 하버드대이다. 명문학교에서 만난 똑똑한 친구들 덕분에 빌 게이츠가 오늘날 컴퓨터 황제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와 함께 컴퓨터 황제 올라 빌 게이츠의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친구는 먼저 고등학교에서 만난 2년 선배인 폴 앨런이다. 폴 앨런은 그때 이미 게이츠보다 훨씬 컴퓨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면서 앞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에 매진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고교시절의 이러한 경험으로 그들은 몇 년 후인 20살에 사업의 동반자로 다시 만나게 됐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폴 앨런은 워싱턴주립대를 중퇴하고 197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이다. 그는 폴 앨런이 컴퓨터와 컴퓨터 칩에 대해 가르쳐주기 전까지만 해도 장차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거나 과학자가 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아직 십대였을 때, 폴 앨런은 나에게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목숨을 걸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친구 때문에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완전히 매혹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빌 게이츠는 폴 앨런을 만난 것을 최대 행운이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의 부모님은 빌 게이츠를 될수록 질문하기를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크도록 했다. 질문을 잘했던 빌은 폴에게 “가솔린이 어떻게 차를 움직이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끔 요령 있게 설명해주었다. 이들이 우정을 맺게 된 것은 가솔린에 대한 게이츠의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던 빌 게이츠가 선배와 같은 아이에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을 잘 설명해주자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게 이들을 사업동반자로 만들었고, 세계적인 갑부가 되게 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이츠와 앨런이 각각 60%,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창업한 지 11년 후인 1986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이들은 억만장자가 된다. 빌 게이츠의 나이 31살 때이다. 앨런은 아직 미혼으로 세계 갑부 서열 4위이다. 앨런은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는데, 현재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사업을 하면서 미국 프로농구단과 미식축구단 등을 운영하며 자선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또 공상과학박물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우주에 대한 연구 및 투자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수학영재였던 게이츠는 대학에 들어갈 때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프린스턴, 예일대에서 국립 장학금으로 입학 허가를 받기도 했다. 하버드를 선택한 그는 그곳에서 스티브 발머를 만난다. 그는 게이츠에게는 폴 앨런에 이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번째 친구가 된다. 하버드대 시절에 풋볼팀 선수에 문학잡지 편집장, 교내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스티브 발머는 같은 기숙사에서 빌 게이츠와 만나 인연을 맺었다. 빌 게이츠가 법학과에 들어갔다 수학과로 전과를 했지만 1학년 때 학업을 그만둔 것과 달리, 발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해 일하던 발머는 다시 스탠포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으며, 1980년 친구 게이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다. 빌 게이츠 회장이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 사이인 발머는 영업력이 떨어지는 게이츠 회장을 대신해 지난 20여 년간 판매 영업을 담당했고 2000년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신문을 통해 관심분야 넓혀 오늘의 빌 게이츠를 있게 한 세 번째 요인을 꼽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책과 신문이었다. 빌 게이츠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책을 읽는 습관을 유지해오고 있는 독서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날마다 신문과 잡지를 읽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요즘 신문을 안보는 추세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충고를 들어보면 신문은 관심분야를 넓혀주는 ‘지식의 창고’ 역할을 한다. 빌 게이츠는 “우선 신문을 보면 또 어떤 기사가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뉴스가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온라인을 통해 관심 있는 기사만 읽는다면 읽기 전이나 읽은 후의 자신은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문을 통해 기사를 읽으면 자신의 관심분야 이외의 기사도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고 흥미 있는 기사를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신문의 장점이라고 빌 게이츠는 말한다. “최소한 나는 일주일 동안의 신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다. 신문이 나의 관심분야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과학면이나 경제면 등 관심이 있는 기사만 읽는다면 읽기 전이나 읽은 후의 나는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기사를 다 읽는다.” 컴퓨터황제인 빌 게이츠이지만 그는 컴퓨터가 책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느끼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갖게 하기 전에 먼저 책을 갖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는 부모들이 마음속에 새겨놓아야 할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은행가 가문출신답게 이재에 관심이 컸던 것을 꼽는다. 빌 게이츠가 부자집에서 태어났지만 돈에 대한 관심으로 일찍 비즈니스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 회사에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1972년에 여름방학 동안 국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한 국회의원 후보가 공천에서 떨어지자 게이츠는 그 후보의 선거 캠페인 배지를 개당 5센트에 사들였다. 이 배지는 곧 수집가들의 애호품이 되어 개당 25센트에 되팔았다. 또 빌 게이츠와 친구 폴 앨런은 회사에 취직해 근무하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회사의 급료지불기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로 계약을 하고 성공적으로 끝내 큰돈을 벌었다. 게이츠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해 18살인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그는 컴퓨터광에 수학교사보다 더 수학계산을 잘하는 수학천재로 평가받았다. 그는 학교의 추천으로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결국 아이가 빌 게이츠처럼 자라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아이에게 결코 큰 돈을 줄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반면에 돈에 대해 부모와 자녀 간에 원칙을 공유하라. 똑똑한 친구를 사귀게 하고, 책과 신문을 읽어라. 이것이 빌 게이츠의 오늘을 만든 비결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빌 게이츠가 말한 다음의 문장은 세상을 밝혀주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 아닐까. “현명하게 돈을 쓰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내 돈의 대부분을 내가 믿는 대의를 위해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외진 시골 마을에 청교도적인 신앙의 목사와 그의 딸들인 ‘마르티나’와 ‘필리파’ 자매가 살고 있었다. 세속을 멀리하고 다만 구제와 말씀 그리고 예배 모임만을 삶의 전부로 알았던 자매의 아버지는 신앙을 이유로 딸들의 사랑이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에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자매는 오히려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전해주는 일체의 즐거움이나 기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신에 대한 헌신과 이웃에 대한 봉사 속에 살아온 두 여인의 일상에 어느 날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1871년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밤, 초라한 몰골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한 프랑스 여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이다. ‘바베트’라는 이름의 그녀는 필리파가 젊은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오페라 가수 ‘아킬’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용인즉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나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인이니, 부디 그녀를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었다. 모든 재정을 봉사하는 일에 써야 했던 자매는 바베트를 요리사로 고용할 여력이 없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다만 머물기를 간청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 욕망의 노예일 뿐 이렇게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베트는 검소하고 숭고해 보이는 삶이 마치 매일 계속되는 말린 생선과 약간의 빵을 넣어 끓인 멀건 죽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 순박하고 경건한 듯 보이던 평온한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실상은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서로를 향한 서운한 마음, 증오와 분노, 질투 등의 감정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이나 오지의 사람들이 탈속한 천사와 같은 심성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낭만주의적 감상에 빠진 일부 도회지 사람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 살아갈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이기적인 욕망에 쉽사리 유혹되고 넘어지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두 자매는 찬양과 기도로써 이러한 불화를 가라앉혀 보려 애쓰지만, 이미 근본부터 깨져 버린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도를 더해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에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프랑스를 떠나 있는 대신 고국을 잊지 않기 위해 친구에게 매년 사주기를 부탁했던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자매는 이제 1만 프랑의 상금으로 부자가 된 바베트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근심에 잠긴다. 그동안 그녀는 자매들의 삶은 물론 마을 전체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상금을 받은 바베트는 한 가지 엉뚱해 보이는 부탁을 한다. 작고하신 목사님을 기념하는 만찬을 자신의 솜씨와 비용으로 준비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프랑스 요리로 말이다. 만찬 준비는 몰라도 그 비용까지 감당하게 할 수 없다는 두 자매의 만류에도, 바베트는 지난 세월 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므로 들어줄 것을 간청한다. 결국 자매는 그녀의 청을 수락하고 바베트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14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베트는 외진 마을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귀한 식재료들과 함께 돌아온다. 최고급 포도주와 각종 새와 짐승들, 그리고 거대한 거북이에 이르는 낯선 식재료들에 충격을 받은 자매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하면서 그녀의 만찬 준비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본다. 근심스런 것은 두 자매뿐만이 아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여 사악한 음식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맹세하기를 음식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바베트를 생각해서 혀를 악물고 부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삼키기는 하겠지만, 결코 그것을 감탄하거나 칭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식으로 준비되는 만찬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을 사람들이 다시 의기투합하는 계기가 된다. 타인을 위한 정성, 마음을 여는 묘약 드디어 만찬의 날. 서로 간의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불현듯 마을을 방문한 왕실 근위대 장군 일행, 그리고 자매가 함께 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정식 요리 만찬은 시작된다. 음식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마을 사람들의 침묵은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온 장군의 감탄에 허물어져 간다. 1846년산 클로 부조(프랑스 부르고뉴 부조 지방산 포도주), 최고급 거북이 스프, 블러디 드미로프(원래 러시아 요리, 흰 빵에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얹어 낸 러시아 요리), 카유 엉 사르코파주(메추라기를 페스트리로 싸서 여섯 가지 이상 소스를 끼얹어 먹는 요리) 등 연이어 나오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음식들의 미묘한 맛과 색 그리고 향은 단조로운 음식으로 굳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입술을 부드럽게 풀어내 버린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음의 빗장을 열고 오래전 목사님의 훌륭했던 가르침을 되새김질 하며 나누기 시작한다. 장군은 이들에게 새로 나오는 요리에 얽힌 사연과 각각의 미묘한 맛의 조화를 계속 설명해 간다. 점차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는 요리가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깨달아가면서, 그저 먹어 배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음미하고 즐기며 향유하는 태도로 변화를 거듭해 간다. 자기만 아는 인생의 각박함이란 여유 없이 분주히 살아가는 일상의 태도로부터 생기게 마련이다. 설령 그러한 여유 없음이 ‘신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에서 기인한 것일지라도 때로 그것은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될 수 있다. 좋은 음식을 통해 새삼 몸과 마음을 여유를 가지게 된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어제의 고통과 상처, 의심과 회의의 생각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나간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복잡한 구성이나 심오한 철학적 논설 없이, 다만 음식을 준비하고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단순히 같이 먹는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어렵지 않게 뚝딱 끓여주시던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들어가 있다. 늘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변화를 고민하고 기대하는 교사를 향해 아마도 바베트는 이렇게 말할 는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끼의 좋은 식사가 무수한 교육적 장치들 이상으로 아이들과 교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필자 역시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방황하던 시절, 총각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자취방에 불러 손수 끓여 주신 라면 한 그릇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다. 필자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한 그릇의 라면이 아닌, 선생님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응원의 마음 그 자체로 다가왔다. 물론 그것이 꼭 음식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받은 상금 전액을 이 한 차례의 만찬을 준비하는데 다 써버린 바베트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자매에게 정색을 하고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예술가의 마음속 진실한 외침은 온 세상을 울립니다.” 그렇다. 누구든 정직한 예술가와 같이 장인 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준비한 시나 음악, 이야기와 춤, 음식 그리고 돌봄을 실천하는 삶은 결국 이를 보고 들으며,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 아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일년 내내 꽃길로 단장되는 섬진강길! 섬진강에서 태어나 섬진강에 기대어 살며 아름다운 글로 노래하는 한 시인에 의해 더 널리 알려진 이 길은 봄에는 매화꽃, 벚꽃, 그리고 배꽃이, 여름에는 밤꽃과 코스모스가, 가을에는 산국과 쑥부쟁이를 포함하는 국화꽃과 단풍꽃이, 겨울에는 차나무꽃과 눈꽃이 피는 아름다운 길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길을 떠난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에 몸을 풀기 까지 212.3킬로미터를 굽이쳐 달리는데 이는 나라 안에서 아홉 번째로 길게 달리는 물길이다. 대체로 강폭이 좁고 강바닥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뱃길로 이용하는 데는 불편하나 화개장터에서 하동읍까지의 강변 고운모래는 전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금빛의 모래밭에는 금빛의 껍질을 가지는 재첩이라는 조개가 살고 있어 하동하면 재첩으로도 유명하다. 섬진강의 이름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어 두꺼비섬(蟾)에, 나루진(津)을 사용하여 ‘나루터에 두꺼비가 나타난 강’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말 하동에 침입한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하는데, 다압면 섬진마을의 나루터에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섬진강물길은 좌우로 산길을 가지는데, 이는 하동에서 구례로 가는 19번국도와 매화마을인 다압에서 구례로 가는 861번지방도로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느 길이나 품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 외에도 많은 문화유적과 이야기를 품고 있어 19번국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추천한다. 이 길은 구례 화엄사와 운조루, 연곡사와 피아골, 영호남을 아우르는 화개장터와 화개나루, 화개동계곡의 10리 벚꽃길과 쌍계사 및 칠불사, 차밭과 푸른 섬진강물, 화개장터에서 하동읍까지의 하동포구 80리길,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와 동정호 및 악양루, ‘백사청송’으로 불리는 하동 송림과 금빛의 백사장 등을 품고 있다. 섬진강 따라 ‘가장 아름다운 길’ 열려 홍수 시 만들어진 모래와 진흙이 섬진강물에 실려 오다가 물의 흐름이 느려지는 곳에 쌓이면서 자연제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연제방은 섬진강의 물길에서 둑의 안쪽에 고립된 호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동정호이다. 이 동정호에는 악양천에서 내려온 물이 모여 호수를 일정한 크기로 유지시켰다. 삼한시대에 하동읍을 한다사(韓多沙, 큰 모래밭)로 불렀는데, 이곳에도 넓은 모래밭이 있어 소다사(小多沙)로 불렸다. 그러다가 신라 경덕왕 시절에 지금의 악양으로 불려지게 된다. 동정호가 위치한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지형이 비슷하게 닮았다고 하여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고소성에서 바라본 악양은 지리산의 줄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넓은 호수가 있어 소정방의 눈에 언뜻 중국의 악양이 보였으리라. 지금은 몸통의 대부분이 악양들(무딤이들)로 변해버린 호수를 동정호라고 부르고, 섬진강변의 금빛 모래밭을 금당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동정호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악양루를 세우고, 중국의 소상팔경(소수와 상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져 중국의 동정호를 만듬)에 버금가는 악양의 소상팔경(악양팔경)을 만들었다. 팔경은 소상야우(瀟湘夜雨), 산시청람(山市晴嵐), 원포귀범(遠浦歸帆), 어촌낙조(漁村落照),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한사모종(寒寺暮鐘), 강천모설(江天暮雪) 등이다. 이 속에 소개된 동정호의 모습은 섬진강과 악양천의 사이에 위치하고, 맑고 아늑한 동정호에 가을 달이 비치며, 섬진강과 동정호 사이에 넓은 백사장이 위치하여 그곳에 많은 기러기가 앉아 있다. 악양루에서 바라보면 식물로 뒤덮인 동정호는 잘 보이지 않고, 더 넓은 악양벌과 금빛 모래 반짝이는 섬진강변을 잘 볼 수 있다. 섬진강 주변에는 작은 규모의 자연늪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었으나 하천둑을 만들거나 농경지 개발로 대부분이 사라지고 현재는 유일하게 동정호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동정호도 저수지의 기능이 거의 없어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호소의 바닥이 경작지의 높이와 비슷하여 육상화로의 천이가 크게 진행된 상태이다. 평사리 외둔마을 앞쪽에 위치하며, 1990년대 초반에는 물이 찬 부분이 약 2헥타르 정도를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버려져 늪의 전 지역에 키가 큰 정수식물과 왕버들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수생식물의 관찰은 힘들고, 물가에 주로 사는 습생식물을 관찰하기엔 좋은 장소이다. 섬진강이 만든 자연늪 ‘동정호’ 동정호 주변에서는 식물 230종류, 수서곤충류 9종류, 척추동물류는 43종류가 나타났다. 식물의 분포를 알아보면, 농수로와 일부 물이 고인 곳에는 개구리밥, 검정말, 통발, 마름, 말즘이 자라고 있었다. 늪에는 줄이 가장 넓게 분포하였고, 그 사이에 갈대, 골풀, 달뿌리풀, 매자기, 물꼬챙이골, 부들, 미나리, 세모고랭이, 소귀나물, 솔방울고랭이, 송이고랭이, 쇠털골, 애기부들, 질경이택사, 큰고랭이, 낙지다리, 고마리, 여뀌류가 나타났다. 물이 거의 말라버린 농수로에는 고마리와 나도미꾸리낚시가 가을이면 분홍색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한다. 또 논둑과 동정호의 둑에는 봄이면 파릇한 냉이와 쑥이 싹 트고, 여름에는 분홍색의 부처꽃이, 가을에는 흰색의 가새쑥부쟁이가 꽃을 피운다. 또, 일부 고여 있는 물에는 소금쟁이가 헤엄을 치고, 아름드리로 자란 왕버들 숲에는 매미가 구슬프게 울면, 두꺼비와 유혈목이 및 무자치가 가끔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농경지 옆에 위치한 동정호에는 우리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동정호 주변에는 경작을 멈춘 많은 묵논이 있는데, 이 묵논에도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묵논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개간 전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처럼 일종의 습지인 묵논이 육상화될 때, 가장 먼저 묵힌 논에 들어오는 식물이 부들이다. 부들은 ‘부드럽다’에서 온 말로 식물 전체가 부드러워 예전에는 신발이나 자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또 부들의 꽃으로 이불이나 옷을 만들기도 하였다. 20년 전에는 동정호에 부들이 넓게 자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내주고 줄이 가득 자라고 있다. 세월 따라 대부분 농경지로 변해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다가 젊음을 뽐내고, 다시 세월이 흘러 죽어서 흙의 일부분이 되듯이 늪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땅이나 강에서 어떤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호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적당한 조건이 되면 늪으로 변한다. 늪이 다시 땅으로 되는 과정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 무리도 달라지는데 이런 식물 무리의 변화를 통해 일어나는 호수의 변화 과정을 호수 생태계의 천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호수는 파도 작용에 의해 암석이 깎이면서 호수 넓이를 넓히면서도 동시에 물이 가져온 퇴적물이 쌓여 점차 호수는 얕아져 유년기 호수에서 장년기 호수로 변한다. 계속적인 퇴적과 주변 영양분이 호수로 들어와서 영양이 적은 빈영양호에서 영양이 풍부한 부영양호로 바뀌면서 많은 생물들이 살 수 있는 노년기 호수로 바뀌게 된다. 호수의 깊이가 얕아짐에 따라 예전에 살 수 없었던 물 속에 잠겨 살아가는 식물들이 자라게 되고, 다시 계속 얕아져 잎이 물위에 떠서 살아가는 식물이 자라면서 또 이곳에 늪 주변에 서서 살아가는 식물이 자랄 수 있게 되어 늪으로 변한다. 늪은 수심이 얕으므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물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많이 자라게 된다. 늪의 기슭과 중심부에 식물이 더욱 많이 자라게 되면 늪 전체가 식물의 찌꺼기로 쌓이게 되고, 식물의 찌기는 물 속에서 세균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분해되지만 독성이 있는 물질이 생겨나서 결국 세균 자신도 살 수 없게 된다. 그 후 계속 쌓여진 식물들은 썩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 모여서 이탄을 형성하게 되고, 늪의 수위가 주변의 높이와 같아지고 사초류, 골풀 등이 밭을 이루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곳에 초원이나 습지산림이 형성되고, 결국에는 육상식물이 가득 자라는 산림으로 변하게 된다. 섬진강의 물길에 의해 만들어진 동정호는 그동안 사람들의 간섭에 의해 그 몸의 대부분을 농경지로 바꾸게 되었다. 일부 남아있던 부분도 저수지의 기능을 잃게 되어 현재는 손바닥 만하게 남아 있는데, 앞으로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즉 동정호는 자연적인 힘에 의해 천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해 늪이 변하고 있어, 앞으로 늪의 운명이 어찌될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다. 동정호 주변의 문화와 문학 그리고 역사 악양천과 동정호의 맑은 물로 몸을 적시던 악양벌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은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광복까지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최참판댁의 변화 과정을 통해 그리면서 민족애를 담고 있는 대서사시이다. 만석꾼인 최참판댁의 힘은 악양벌에서 나왔고, 또 악양벌의 풍요로움은 동정호에 의해 살찌워졌다. 평사리에 위치한 최참판댁의 한옥에 서면 더 넓은 악양벌과 한 구석으로 밀려난 동정호가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이처럼 문학이든 문명이든 풍요로움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평사리에는 3헥타르의 부지에 최참판댁 한옥 10동과 초가집 29동을 복원하여 두었다. 이곳에 가면 그 당시 생활모습을 일부나마 담은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또 평사리문학관에는 하동과 관련된 문학 작품인 박경리의 ‘토지’, 김동리의 ‘역마’를 비롯하여 다수의 하동 문학인을 소개하고 있다. 통영에서 출생해 진주에서 학교를 다닌 작가가 1960년대 화개마을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길에 만난 악양벌은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되게 하였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악양벌과 더 넓은 산자락, 동정호의 푸른 물결, 금빛 모래로 뒤덮인 섬진강변, 지리산에 안겨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손놀림을 더욱 쉽게 하였을 것이다. 사국시대 가야의 땅이었던 이곳에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아들들이 와서 처음으로 불국정토를 연 섬진강은 여러 고찰들을 품고 있다. 화개동계곡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칠불사는 김수로왕의 아들들이 성불이 된 곳으로 한번 장작불을 붙이면 한 달 동안 열기가 지속되는 아자방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화개장터에서 10리 거리에는 쌍계사가 있는데,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선사가 중국 선종의 육조대사인 혜능의 초상화를 모시면서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비문을 최치원이 적은 국보급인 진감선사 태공탑이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가까운 곳에 피아골의 연곡사, 화엄사골의 화엄사와 천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섬진강과 지리산의 정기와 이슬을 먹고 사는 차나무밭이 지천에 즐비하다. 이곳의 녹차 재배는 사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로 사신 간 대렴공이 차 씨를 가져와 쌍계사 근처인 화개계곡 근처에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평사리 뒷산인 형제봉의 중턱에는 사국시대에 축성된 고소성이 있다. 둘레가 350미터인 이 성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에 위치하여 먼 옛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 평사리에서 묵계재를 넘으면 운둔과 비기의 땅인 청학동이 나타난다. 이처럼 동정호 근방의 강토는 아름다움과 문화 및 문학의 땅이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더 발전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절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정호가 지금 사라지고 있다. 늪의 기능이 물을 저장하여 생물들에게 삶의 보금자리만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자연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심성과 살아감의 의미도 주기에 작은 자연물이지만 보존할 값어치가 있다.
문제1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학급경영의 방침과 담임의 역할에 대해 논술하시오. 1) 序論 학급경영이란 학급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인적·비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계획, 조직, 지도, 통제하는 일련의 활동을 통하여 학급을 운영하는 협동적 활동이다. 그런데 학생은 교실에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성장·발달하기 때문에 학급은 학생의 교육활동의 장이고, 학급경영은 학교교육의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교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바람직한 학급경영을 해야 한다. 2) 학급경영의 방침 즐겁고 효율적인 학급경영활동을 위해서는 우선, 모든 학급경영활동이 교육의 본질과 목적에 부합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즉,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성장·발달한다는 신념 하에 학생 개개인의 지적, 정서적, 신체적 능력을 최대로 계발하여 자아실현된 인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둘째, 학급경영의 구상과 전개가 학생의 이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의 발달단계에 따른 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발달의 특징과 학습능력 및 준비도, 그리고 집단의 역학과 사회적 심리의 이해를 근거로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학급경영은 민주주의의 이념, 즉 인간존중, 자유, 평등, 참여, 합의 등에 입각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학생 구성원 개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자유로운 학급분위기가 조성되며, 학생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율적 행동이 조장되어야 한다. 넷째,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학급이 운영되어야 한다. 학급의 자원을 경제적으로 사용하여 학급의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학급구성원의 심리적 만족을 충족시키는 학급운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학급집단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협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적 조건을 마련해 주고 지도해야 한다. 일상의 학급생활 중 혼자의 활동보다 여러 사람이 협동하여 활동함으로써 보다 유익한 성과가 나타나는 경험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밖에 자유의 원리, 협동의 원리, 노작의 원리, 창조의 원리, 흥미의 원리, 요구의 원리, 접근의 원리, 발전의 원리에 입각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3) 담임의 역할 첫째, 학급담임으로서의 역할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급담임은 교육자로서, 그리고 학교라는 조직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자각과 더불어 학급경영관리의 책임, 학생지도의 책임, 학년 간의 연계와 조정, 부모와의 협력체제를 통한 지도가 필요하다. 둘째, 학생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해는 객관적·발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애정은 차별적 사랑과 평등한 사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자유로운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셋째, 자기 자신의 인격과 식견을 높이고, 항상 연수에 힘써야 한다. 학급담임은 개성 있는 학생을 지도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넓은 교양과 인간성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4) 結論 학급이 학생들의 차이를 낳는다. 교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효과적인 학급문화와 풍토를 조성할 수 있고 이는 학생들의 행동 지침이 되어 학급 간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만큼 교사는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사랑과 믿음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안내해야 한다. 학생의 모델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교사는 자기성찰과 전문성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제2 아래 글에서 밑줄 친 수업의 이론적 근거와 단위학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서술하시오. 학부모 1 : 우리 아이는 배우는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학교 수업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학생들에 맞게 수업을 하실 수는 없나요? 학부모 2 : 그건 잘하는 아이들이나 그렇죠. 우리 아이는 수업이 어려워서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던데요. 교 사 1 : 한 학급에 학생 수도 많고, 학생들 간의 학력차도 크다보니 개별지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교 사 2 : 7차 교육과정에서 이것을 구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수업을 해야 하지만 실천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1) 序論 수준별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학습능력 수준과 요구에 대응하는 차별적, 선택적 교육과정을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습결손을 최소화하고,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써 교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제7차 교육과정도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해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고 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수준별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프로그램 부족과 교사들의 노력 미흡 등 기타 학교여건이 열악하여 학교현장에서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 수준별 교육과정의 이론적 근거 Piaget의 인지발달이론에 의하면 적정수준의 인지적 갈등이 학습동기를 유발한다고 한다. 이에 근거하여 학생의 수준과 발달단계를 고려한 개별화된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학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Vygotsky는 발달과 학습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근접발달영역(ZPD)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 또한 교육의 적합성과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학생의 근접발달영역을 파악하고, 다양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효과적인 수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드너(H. Gadner)의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지능은 여러 문화권에서 가치있게 인정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창조해 내는 9가지 다양한 능력으로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교육 심리적 요구에 따라 학생들의 능력, 적성, 필요, 흥미에 대한 개인차를 고려한 교육과정의 차별화, 다양화를 기함으로써 학생들의 성장 잠재력과 교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3) 단위학교에서의 실천방안 따라서 수준별 교육과정을 단위학교에서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우선, 효율적인 반편성과 선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수준별 반편성으로 인해 낙인되었다는 인식으로 부정적 자아개념이 형성되거나 우열반으로 인식된다면 교육과정의 취지와 달리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수준별 반편성의 취지와 자신에 적합한 반 선택에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 적성이나 흥미에 적합한 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강사 선발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체계적인 개별화 프로그램이나 교재 등을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교육시설의 확보, 교육 콘텐츠 개발 등 교육여건 개선을 통해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의 전문성 신장과 실천의지이다. 교사가 학생에 대한 높은 기대와 평가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도한다면 열악한 교육여건도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結論 수준별 교육과정은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을 위한 방안이다. 취지에 맞는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학교 실정에 맞는 탄력적인 운영으로 학생들의 개별 학습 기회를 확대하고 개인차를 최대한 반영함으로써 학생들의 잠재 능력이 충분히 계발, 급변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선학교의 개선 의욕과 실천 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교육 실천가인 교사의 의식변화와 학생 이해를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문제3 신규교사인 K교사는 A중학교 2학년 3반 담임을 맡게 되어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려고 한다. 아래의 조건을 참고하여 학급경영방침과 구체적 실천방안을 포함시켜 가정통신문을 작성하시오. 조건 ○ 학급구성 : 남학생 18명, 여학생 17명 ○ 학교위치 : 신흥택지지구(상업지구 인접) ○ 학부모의 교육수준 : 낮다. ○ 특이사항 : 맞벌이 부부가 많다. 1) 序論 학급경영은 교육활동의 장인 동시에 생활의 장인 학급의 교육적 환경을 바람직하게 정비하고 운영하는 봉사활동입니다. 학급경영의 책임자인 교사의 경영방침과 언행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은 물론 학급풍토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교사는 다양화, 민주화 사회에 대응하여 지역사회의 특성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한 창의적인 학급경영으로 교육의 효과성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2) 학급경영 방침 본 교의 특성은 학부모들의 교육수준이 낮고 맞벌이 부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업지구가 인접한 남녀공학의 학교입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자칫 학부모의 무관심으로 학생들의 학습지도가 소홀해질 수 있고, 방과 후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특히 PC방이나 게임방, 만화방 등 학생들을 유혹하는 각종 유해환경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인터넷 게임 중독이나 비행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교사는 정규수업은 물론 방과 후의 다양한 교육활동 운영과 생활지도를 통해 전인적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3) 실천방안 이를 위해 우선 학습지도를 강화하겠습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학력은 개인의 발전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수준별 교육과정의 효율적 운영이나 방과 후 보충지도를 통해 학습부진아를 최소화하고 특히 토픽이나 프로젝트 학습과제 제시와 수행평가를 통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협력학습능력을 신장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을 통해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 계발을 위해 방과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진로상담이나 지도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도록 조언할 것입니다. 끝으로 생활지도를 강화해서 건전한 학교생활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호기심이 많은 중학생들을 유혹하는 각종 유해환경을 감시하고 지역주민들을 설득해서 교육적 환경조성에 협조하도록 계도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다양한 놀이공간을 마련해 주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건전한 청소년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4) 結論 다원화 시대에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학교나 교사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양성을 위해 가정과 학교가 상호신뢰를 가지고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본 교는 교육의 전문가로서 교수·학습방법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가정,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스승을 존경해야 공교육이 살아납니다” 5월은 교사들이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달이지만 교사들에게는 골치 아픈 달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승의 은혜를 기리고자 제정됐다는 이 날 전후로는 어김없이 ‘촌지’ 문제로 교육계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존경받는 스승’보다도 ‘촌지 받은 교사’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화려하게 장식하곤 한다. 우리 교육이 왜 이렇게 됐을까. 하지만 교사들이 이런 세태를 탓하며 한숨을 쉬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사람이 있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선생님 섬기기’를 학교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강남초 김철규 교장이 바로 그 주인공. 김 교장을 만나 요즘의 스승 존경 풍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해 강남초에 부임하신 이후로 ‘선생님 섬기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계십니다. 왜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개교 60주년을 맞은 강남초에 부임하면서 학교 발전을 위한 새 목표를 미래의 리더를 기르는 ‘초일류 강남초 만들기’로 정하고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기본이 바로 선 교육’을 하자는 것입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생님을 믿고 존경하는 ‘기본’이 갖춰져야 교육이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달라지려면 무엇보다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곳, 즉 교실이 달라져야 합니다. 교사가 그 변화의 리더여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학교는 99.9%가 선생님의 영향력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은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선생님 섬기기 운동’은 이렇게 중요한 우리 교사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자는 것입니다.”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요즘, 교사라면 누구나 가장 바라는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동안 교사의 열정을 가로막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까. ‘철밥통’이라 불리기도 하고, 일부 교사들의 일이 전체 교사의 잘못으로 비춰져서 교육에 열정적인 교사들의 사기까지 꺾어 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사가 움직이지 않고는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세태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을 우리 사회에서 미성숙하고 나쁜 사람으로 바라봐서 좋을 게 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교사는 비난,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 마음속에 선생님을 따르고 섬기는 마음이 있을 때 학생들의 배움도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는 것, 그것은 돈이 들지도 큰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는 일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보태면 교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을 언제부터 계획하셨습니까? “1998년 IMF 시절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할 때부터입니다. 그때 정년단축이 되면서 함께 교육을 펼치던 일선의 교사들이 교육현장을 떠나게 됐을 때 극심한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고, 일부는 외면해버렸습니다. 교육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공교육 정상화에 내 모든 노력을 다하자고 결심했죠. 특히 공교육 정상화의 키, ‘교사 존경 운동’을 펼쳐야겠다는 로드맵을 세우게 됐습니다.” -‘선생님 섬기기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난해와 올해 3월 학부모, 어린이, 동창회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생님 섬기기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120명의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선생님 섬기기 학부모회’도 조직되어 있고, 동창생들과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선생님 섬기기 운동 상도동 본부’도 추진중입니다.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가 한마음으로 이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스승은 있기 때문에 좋은 취지를 설명하면 공감하고 함께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에서 교사들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등 벌써 학교에서 변화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상도동에서 펼쳐진 운동이 동작구로 서울로 전국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합니다. 선생님 섬기기 운동이 활성화된다면 공교육 정상화도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진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또 운동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혼자 스승 존경 운동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부모의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죠. 지난해에 처음 운동을 전개하면서 학부모에 대한 설득과정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올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교육공동체, 학부모,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할 예정입니다. 미흡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운동을 펼쳐오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해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선생님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해주기 시작했죠. 아주 의미 있는 변화라 생각합니다.” -더 존경받는 스승이 되려면 선생님들도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교사들에게 항상 ‘평생 공부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존경과 믿음을 받으려면 교사 스스로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본교에서는 ‘선생님 세상 알기 연수’를 실시하는 등 다방면으로 선생님들의 잠재성을 끓어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구조적으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교사의 산 경험이 어떤 것보다도 수업에서 값지다는 것을 교육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교사들의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자발적 세상 알기 연수입니다. 세상 보는 눈이 트이도록 스스로 공부하는 선생님이 되자는 것이죠. 배우면 배울수록 가르치고 싶은 열정이 살아나게 마련입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무엇보다 ‘바탕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교육입니다. 초등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해 탐구해서 자아 존중감을 기르고, 남과의 차이를 알아가며, 또 그 사이에서 관계를 배우면서 꿈을 키워 실천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학생들의 잠재력도 깨어나는 것이죠. 아이들의 정체성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김영삼 전 대통령,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사회 저명인사들을 여러 번 강남초의 특별 강연에 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일류 학교를 만드는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 동창 그리고 지역주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앞장서서 이들을 공부할 수 있게 교육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미래의 리더를 기르려면 본받고 싶은 인물이 있어야 하고, 이런 분들의 말 한마디가 천 마디의 공부하라는 말보다도 확실히 교육 효과가 더 높습니다. 강연을 통해 아이들과 교사 모두 목표와 꿈, 비전을 확실히 그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교직생활을 해오시면서 남다른 교육철학이 있다면. “아이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선생님이 되자는 것입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닙니다. 적어도 교육전문가라면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학생마다 잠재력이 발현되는 시기와 계기는 다 다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사의 위치입니다. 교사들에게 ‘교육의 베스트셀러를 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서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하게 하는 것, 저는 이것이 바로 교육의 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교육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교육이 발전하면 국력이 신장되고, 아이들 걱정이 없으면 가정이 편해집니다. 갈수록 돈이 강조되고 있지만 그보다 마음을 보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에는 교육공동체가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교, 선생님, 학부모, 지역사회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 말입니다. 또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성교육은 학교 교육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학부모 연수를 실시해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16개 시·도 교육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교육 사랑방’이라 이름 붙여봤는데 정보화 시대인만큼 교육자라면 누구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또 ‘영원한 교사 프로젝트’도 구상 중입니다. 순수하게 교육을 사랑하는 은퇴한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 봉사 프로그램입니다. 교육에 대한 궁금증이라면 무엇이든 상담을 해주는 것이죠. 또 은퇴한 후에도 선생님 섬기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가고 싶습니다.”
고등교육 개선의 출발점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이라면 누구든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다니기를 바랄 것이다. 이는 학교교육이 보편화 된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고려하고 있는 정책 요소이기도 하다. ‘학교선택권’ 문제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에서는 고교평준화 이래로 학생의 거주지 중심으로 학생을 배정함으로써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이 일부 제한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배정된 학교가 좋은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라면 불만이 없겠으나, 만약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학교로 배정되었을 경우에 학부모와 학생은 학교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그만큼 없을 것이고, 그 결과로 학교교육의 성과도 높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그 동안 수많은 논란이 있어왔고,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선택권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의 입시과열, 교육과열의 풍조가 고등학교 선택이라는 것과 맞물려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역기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정책적 선택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서울특별시 후기고등학교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장차 서울시 고등학교 교육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되리라고 믿으며,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 욕구가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이러한 제도의 변화가 각 단위학교의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필자는 학교 개혁을 연구1)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깨달았다. 성공적인 교육 개혁은 국가 전체의 교육을 한꺼번에 바꾸려는 전면적인 시도가 아니라 ‘학교 하나하나를 좋은 학교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들이었다는 점과 교육 개혁의 동인이 위부로부터, 그리고 위에서부터(top-down)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 자체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점차 확산되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나라에서 ‘좋은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알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제 우리의 교육 개혁은 무엇보다도 ‘학교 하나하나를 좋은 학교로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학교의 변화를 유도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동인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학교선택권 확대도 하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교육청이 알아서 학생들을 배정해주었는데, 앞으로는 학교들이 스스로 학생과 학부모들이 선택하고 싶은 학교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이번 정책을 환영하면서 성공적인 정착을 기대해 본다. 지식과 인성의 효과적인 교육필요 서울시교육청의 이러한 정책 추진은 오늘날 학교교육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단 서울시 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전국의 1만 개에 달하는 모든 학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학교들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학교, 만족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우리 학교들은 ‘좋은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학교’란 어떤 학교인가? 일반적으로 미국 등에서는 학교를 평가하는 관점으로 ‘효과적인 학교(effective school)’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효과적인 학교란 학교교육의 주 기능인 학력을 향상시켜주는 학교를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국가 혹은 주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수한 결과를 얻거나 높은 향상도를 보이는 학교들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좋은 학교’는 이러한 학력 향상,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높은 우수 대학 진학률이라는 변인과 더불어 학생들의 인성지도를 잘한다고 알려진 학교들이 ‘좋은 학교’이다. 다시 말해, 좋은 학교란 학생들의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하여 그 결과로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학교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국 단위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력만을 비교하여 좋은 학교인가 아닌가를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경우에 학교들에 대한 엄밀한 양적인 자료는 없지만, 학교들의 성과에 대해서는 학부모나 지역사회가 놀랍도록 잘 알고 있다. 필자가 전국에서 선정된 좋은 학교 연구를 할 때에 알게 된 사실 중의 하나는 이러한 좋은 학교들은 순식간에 학부모들에게 알려져서 그 학교로 전학하려는 대기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학교들의 성공 요인들을 분석하여 학교가 개선되기 위한 몇 가지 측면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공부하는 분위기’ 조성 학교에서 먼저 노력해야 할 점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므로 학교에 오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학교들은 공통적으로 좋은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고, 교사들은 한마음으로 이를 실천한다. 좋은 학교는 교문을 들어서면 벌써 분위기가 다르다. 무언가 정돈되어 있고, 활기 있고, 학생들은 안정되어 있다. 사실, 학교라는 공간은 여럿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서 학교의 문화, 에토스(ethos) 자체가 학구적인가 아닌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연구한 바 있지만, 우리 학교들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좋은 학교를 위한 ‘학구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학교 규율(discipline)에 대한 학교장과 교사들의 확고한 아이디어와 일관성 있는 실천이 요구된다. 첫째, 학생들이 따라야 중요한 규칙들은 반드시 학생들이 참여하여 함께 만들고 이를 학생, 교직원, 학부모 모두가 알고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 휴대폰을 가지고 오면 안 된다’거나 ‘가져오더라고 수업 시간에는 휴대폰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실제로 지켜지기를 기대한다면 다소 시간이 걸리고 어렵지만, 그러한 규칙을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동의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특히 고교 수준에서는 학생들의 동의가 매우 중요하다. 둘째, 일단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규칙은 학교 구성원들 모두가 예외 없이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곧 실천에서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장, 교사의 솔선수범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학교 공부와 관련된 규칙들(work ethic)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풍토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해야 하고, 다른 친구의 수업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숙제를 베껴 내거나(저작권 위반), 시험 때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규칙들은 학교교육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것으로 학교의 면학 분위기 조성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학교들에서 이러한 규칙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학교 지식교육의 성공은 이러한 기본적인 인성교육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2) 효과적인 수업 운영 방안 실천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나감과 아울러, 학교들이 노력해야 할 점은 이미 실천하고 있는 교육 활동 특히, 교과 수업의 효과를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과 관계자들의 동참이 요구된다. 첫째, 학교 수업의 생태적 환경을 변화시킨다. 고등학교에서는 교과 교실을 확대·활성화시키고 연속수업시간표(block scheduling)를 운영함으로써 교과 수업을 심화시킨다. 둘째, 교사들의 수업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한다. 고교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항상 나름대로 선생님의 수업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생들은 ‘재미있고 배울 것이 있는 수업’을 좋아한다. 이를 위해서 교사들은 교과의 내용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는 교수방법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교과 단위로 이러한 자체적인 수업 연구와 개선 노력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하면 효과적이다. 수업 개선을 위해 어떤 고교에서는 교과목별로 여러 종류(검정교과서 교과목들은 여러 종의 교과서가 있다)의 교과서를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자체적인 교과서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담당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공개하고 좀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셋째, 학생들의 학습 동기와 학습 습관을 길러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교생들은 이제 교사들의 지도만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학생 스스로 자율적인 학습자로서 자신의 학습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학습하는 방법의 학습(learning to learn)을 지도해야 한다. 넷째, 이러한 효과적인 수업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평가와 연계하여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계속하여 탐색하고, 평가 결과는 개별 학생들에게 피드백 하여 발전의 출발점으로 삼도록 하여야 한다. 3) 특성화된 프로그램 운영 학교선택권이 확대되면 어떤 학교가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은 인기 학교가 될까? 이런 학교는 학생들을 좀더 잘 지도하는 학교일 것이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에게 필요한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일 것이다. 장래 학생들의 진로, 적성, 흥미, 시대변화 등을 감안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그리고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함으로써 학생들이 모여들게 하는 학교가 그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이미 집중이수 과정 운영, 계열별이나 과정별 특성화 운영, 예술계 등 선택과정 중심의 운영, 방과 후 프로그램의 특성화 등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예시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교사진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자체적인 노력과 더불어 전문가나 전문 연구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특성화 프로그램을 구안할 때에는 학교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심화 과정을 편성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4) 학교 구성원의 참여와 협력 유도 필자가 연구했던 ‘좋은 학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학교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지도성을 갖춘 교장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학교 교사들이 학교장의 개혁에 동참하여 꾸준히 노력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학교의 노력에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참여와 협력은 학교가 좋아진 결과로서 얻어진 성과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가 동참함으로써 학교는 더욱 좋아지고 힘차게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 운영의 과정에서 학부모나 지역사회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학교에서는 지금부터라도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학교교육 관련 사항들을 공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동참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교 운영이 학교운영위원회나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외국의 학교들은 학교가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가장 중요한 학교 운영을 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는 주체 형성 이상과 같이 학교선택권 확대를 계기로 학교 단위로 교육 개혁을 펼쳐 나가는 것은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 개혁은 개혁을 이끌어 나갈 주체가 요구된다. 필자가 연구를 위해 전국의 ‘좋은 학교’를 찾다보니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사립 고등학교들이 뽑혔다. 따라서 공립 고등학교는 좋은 학교의 사례로서 다루지 못했다. 물론 연구 사례가 2개로 극히 제한되어 많은 학교들을 다룰 수 없었다는 제한점도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진 좋은 학교로는 주로 사립 고등학교가 많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는 중요한 한 가지 변수로 교장과 교원의 안정성 면에서 공립학교가 사립학교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책임지고 학교를 일관성 있게 개혁해 나갈 주체가 없거나 있다 해도 자주 교체되어 그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립학교들의 경우에는 교육청의 직할 체제로 운영되어 학교의 자율성이 현저하게 위축되어 있어서 자체적인 개혁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좋은 학교들을 만들어 가지 위해서는 개별 학교들이 자체적으로 개혁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청이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학교장의 선출과 임명에서 전문성과 개혁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학교의 운영은 학교장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학교에는 열심히 일하는 지도성이 높은 교장이 있었다.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장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학교장을 맡고 있는 분들이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재교육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좋은 학교를 만든 성과가 분명한 교장의 경우에는 임기를 연장하고, 해당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하면 좋겠다. 둘째, 학교별 교원의 안정성이 요구된다. 서울시의 예를 들면, 고등학교의 교사들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자질과 자격(qualification)을 갖추고 있다. 대학은 물론이고 대학원을 졸업한 교사들도 많다. 이러한 교사들이 함께 근무하는 학교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교사 전보 제도이다. 교사들은 대체로 4년 정도 한 학교에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옮겨간다. 이러한 전보 제도는 교사들의 인사 형평성에는 맞을지 몰라도 학교교육의 운영과 책무성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취약한 구조이다. 학생들을 입학시켜 그 학생들을 졸업시킬 때까지 열심히 지도하고 그들의 교육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기관이 바로 학교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립 고등학교의 운영, 특히 교사 배치를 보면, 이러한 책무성은 아무에게도 물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교장도 바뀌고, 교사도 바뀌는 구조 속에서 책임지지 않는 교육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기 위해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교사 전보의 구조부터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육청은 단위학교를 지원하되, 간섭은 최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학교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거나 교사에게 잡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한 가지 변수가 ‘교육청의 다양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교육청은 학교 하나하나가 좋은 학교로 변모해 나갈 수 있도록 학교의 자율성을 제고시키고, 필요한 지원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월 ‘서울특별시 후기일반계고등학교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이하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는 지난 2004년 2월 교육부가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 일환으로서 선지원·후추첨 배정 비율 확대와 2005년 4월 서울시교육청이 ‘서울교육 발전 계획’ 과제의 하나로 고등학교 배정 시 학생·학부모 희망 반영 비율 확대를 제시한 것에 더하여 국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한 학군 광역화에 대한 결론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계획에 대해 총론적 입장에서 찬성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제한받아 왔던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의 폭을 넓혀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에서 ‘서울특별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번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은 이른바 평준화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고교입학 체제에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고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방안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도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해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비선호학교에 대한 현장 책임은 늘어 학교별 교육과정의 특성화 및 비선호학교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 강화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만 비선호학교의 책무성 강화라는 명목 하에 학생의 선호도를 잣대로 취하고 있는 제반 내용들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일차적으로 학교별 학급수를 감축하고 3년 후부터는 감축된 학급수로 인하여 발생하는 초과 교원에 대한 재정결함보조를 중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학교원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교원지위 법률주의 정신에 전적으로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사립학교를 국·공립학교와 같이 평준화 제도에 묶음으로써 학생선발권 및 수업료책정권 등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따라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책임만을 사학에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공립학교에 있어서도 비선호학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교원 쇄신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발표해 이는 순환근무제라고 하는 교원인사 정책의 기조가 갖는 한계, 그리고 학교 자체의 교육력 못지않게 주변 교육환경이 학생·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하는 선호도의 중요 요소가 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또한 정책은 국민들의 이해 가능성이 높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방안들은 과연 일반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신 또는 자녀의 입학 학교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를 쉽게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개선안을 구성하는 요소 준거들의 복잡함과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면 그 복잡성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각 방안들이 좀 더 단순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통합학교군의 개념과 그 적절성은 개선방안의 복잡성을 가중시켜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와 같은 통합학교군이라는 새로운 추첨 및 배정기준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학군광역화는 왜 수용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계획은 앞서 기본적으로 평준화 제도의 본질적 문제점을 해소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특히 평준화 제도에 근간한 현행 거주지 기준 고교입학제한 정책은 학생·학부모 학교선택권과 관련하여 ‘원칙적 제한 예외적 허용’이라는 태도를 취해 학교선택권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요인이 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 계획의 시행과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평준화 제도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평준화 제도 전제요건 우선 충족 평준화 제도는 학생의 평준화, 교원의 평준화, 교육여건의 평준화를 전제로 학군을 설정하고, 추첨을 통해 학생을 임의 배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거주지 기준 입학제한을 통한 평준화 정책 특히 강제적인 추첨배정제도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정 대상이 되는 학교들이 학생의 성적분포, 교육과정, 교사 수준, 교육시설 등에서 동일할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최소한 교육여건에 있어서의 유사성은 갖추어져야만 강제 추첨배정제도가 국민들에게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지 30여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은 결코 이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즉, 현재의 학군별, 학교별 그리고 공·사립별로 학교의 교육시설과 교육환경의 차이는 국민들의 수인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육여건의 차는 교육효과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교육결과의 평등은 물론 교육기회의 평등 자체까지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평준화 정책은 거주지 기준의 고교입학 제한정책으로서 결국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요소를 중요한 기준으로 하여 교육여건에 대한 차별을 통해 결과적으로 교육기회균등 전반을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선지원 비율이나 대상을 일부 늘렸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교육당국에서는 학교들의 교육여건을 평균적인 국민과 지역주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균등화하는 노력을 선행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교육여건은 단순히 학교 시설 및 교육용 기자재뿐 아니라, 재직 교사들의 평균 연령 및 경력 그리고 학교밖(최소한 스쿨존 내)의 환경 여건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부수적인 시도들도 평준화 제도 그 자체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는 평준화 대상에서 배제해야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는 현 고교입학제도를 개선하는 가장 빠른 길은 평준화 제도와 같은 거주지 기준 입학제한정책을 폐지하는 것이다. 즉, 모든 학교들에 대한 개별적인 학생선발권 부여를 전제로 학생·학부모의 교육적 필요에 따른 자율적 선택을 완전히 보장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현 체제도 나름의 장점이 있고 보완적 유지라는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이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면서 평준화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군, 거주지 등의 제약조건 없이 희망에 따라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고 사립학교들은 지원자를 대상으로 건학이념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사립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전적으로 배제하면서 국가가 학생을 임의 배정하는 우리와 같은 사례는 사학제도를 두고 있는 국가들에 있어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사학제도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가 공학과 달리 학생·학부모의 자율 선택권을 중심으로 국민들의 다양한 교육적 수요에 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일반계고에서 사립이 차지하는 비중이 학교수로는 46.5%, 학생수로는 49.5%이며, 전체 일반계사립고 중 64.0%(학생수 기준 77.3%)가 학군별 추첨배정제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립학교를 그 대상에서 제외함은 거주지 기준의 학군별 추첨배정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립학교를 일시에 거주지 기준의 추첨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어렵다면 일정한 조건과 절차에 따라 희망 사립학교를 우선적으로 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추첨배정 대상에서 제외된 사립학교의 자체 입학전형 방법을 지필고사 이외로 한정한다면 평준화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방안이 충분히 검토되고 수용된다면,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거주지 기준 학군별 추첨배정제도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도 대폭 확대해 줄 수 있으며 추가적으로 사립고교에도 나름의 학생선발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학제도의 본질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와 같은 방안은 학군별 배정 등 평준화정책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학에 지급하고 있는 사학재정결함보조금의 규모를 줄이거나 폐지함으로써 공립학교의 교육여건 개선에 투입할 재정적 여유를 확보하는 더욱 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평준화, 교육의 다양한 요구 감당 못해 평준화 제도와 관련해서는 지난 1974년 제도 도입 이래 그 공과에 대하여 무수히 많은 논의를 거듭하여 왔다. 따라서 평준화 제도의 존폐 문제는 더 이상 이론적인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은 무의미하며 국민의 그리고 정책결정자의 선택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평준화 제도의 속성상 제도의 일차적 피해집단이라 할 수 있는 우수집단이 일반인에 비해 절대적으로 소수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국민들의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의한 정책 결정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지론자의 상당수 역시 ‘절대적 유지’가 아닌 ‘보완적 유지’를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현재의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문제인식은 상당 수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의 교육경쟁력은 해가 갈수록 뒷걸음질하고 있다. 이는 교육을 하나의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집중 육성하고자 하는 세계적 추세를 우리나라가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 학생들의 주요 조기유학처가 미국·캐나다·호주·영국 등의 국가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로까지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논할 수 있으나, 그 중심에는 우리 교육이 국민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은 학생·학부모들의 교육·학교선택권이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을 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여 줌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마음부터 붙잡을 수 있는 방안들이 앞으로도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