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은 ‘수학을 한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수학을 ‘수학답게 한다’는 의미이다. ‘수학답다’는 말을 이해할 때 ‘수학을 한다는 것’과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으며, 이 기준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바탕에는 공통되는 흐름이 있다. 이 공통되는 흐름이 수학을 하는 동기로서, 수학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새로운 문제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한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숙제도 하고 참고서 문제도 푼다. 선생님께서 어떤 내용을 가르쳐주면, 학생들은 그 내용을 열심히 익힌다. 또 그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풀고 또 푼다. 때로는 공식을 암기하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하여 암기장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무술 도장에서 무술을 배울 때, 사범의 시범을 보고 그대로 흉내를 내며 잔기술부터 몸에 익히고 또 익히듯이.
한 학생이 ‘수학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해 보자. 이 질문을 한 학생은 친구들의 눈총과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는 분위기에 몸둘 바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학생을 배려하는 교사는 ‘이 문제를 풀면 남보다 좋은 성적을 얻어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서 칭찬을 들을 것이며,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대학을 졸업하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자상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이며, 수학을 공부하는 동기이다. 그러나 처음 질문을 한 학생은 그 문제를 풀기 전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물은 것이며, 이 학생의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푸는 이유와는 상관없이 문제를 풀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상하여 가능성을 대답해준 것일 뿐이다.
수학자들은 ‘수학을 한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수학을 수학답게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수학답다는 말을 이해하여야 ‘수학을 한다는 것’과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수 있다.‘○○답다’는 말을 알기 위하여 먼저 ‘여자답다’는 말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여자를 보고 여자답다고 한다면, 먼저 마음속에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으며, 그 여자가 이 기준에 적합하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여자의 기준이 있고, 어떤 여자가 이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여자답다고 말을 하는데,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면 여자답다는 말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여자답다는 말이 있으며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것은 여자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준의 바탕에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를 ‘수학답다’라는 말에 적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으며, 이 기준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바탕에는 공통되는 흐름이 있다. 이 공통되는 흐름이란 수학을 수학자가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수학자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해결되었을 때의 즐거움과 노력하고도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공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해결하는 절차가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수단이나 방법도 동원하였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 문제로부터 새로운 문제에 도전할 수 있다. 이것이 수학을 하는 동기이다. 앞서 말한 수학을 공부하는 동기는 외적 동기이고, 지금 말한 수학을 하는 동기는 내적 동기이다. 내적 동기를 우리는 본질적 동기라 하며, 수학의 본질적 동기는 수학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새로운 문제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등산을 한다고 가정하자. 산에 가기 싫다는 아들에게 산에 가면 맑은 공기도 마시며, 몸도 튼튼해진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산에 갈 것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아들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맑은 공기를 마실 이유도 없으며, 몸이 튼튼하기 때문에 더 튼튼해야 할 까닭도 없다. 더욱이 앞으로 더 건강할 것이라는 설명으로 아들을 산에 데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타이르고 강요하며 함께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매주 가까운 산을 다니고, 어느 때는 멀더라도 정말 아름다운 산을 다녀왔다. 아들은 점점 산이 좋아졌고, 산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산행의 즐거움을 알고부터 몸은 더욱 튼튼해졌고, 마음도 건강해졌다.
아들과의 산행을 예로 들은 것은 이 속에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수학을 하는 것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수학을 처음 학습하는 아동에게는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들이 수학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타이르며 때로는 강요하며 아동이 수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동이 수학을 재미있어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로 그쳐야 한다. 산행의 즐거움을 아는 아들이 어느 산을 갈 것인지,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복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켜봐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높은 산을 올라가다가 중간에 하산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 아들이 훌륭한 등반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조그만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삶이 더 보람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