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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김병산(경기 구리 토평고 교사)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행정의 효율적 정보화로 교육행정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교육행정기관의 업무를 경감함으로써 교육행정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국민 만족도를 제고하고자 하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NEIS)’을 2000년 9월부터 계획하여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1997년 ‘S.A(Stand Alone)’ 시스템을 도입했었고, 1999년부터는 ‘C/S(Client-Server)’ 시스템으로 변경하여 학교생활기록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NEIS’ 시스템을 도입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기존의 시스템과 비교하여 여러 가지의 장점이 있다. 학교의 모든 업무가 전국단위로 통일이 된다는 점, WEB 방식의 시스템으로 학교 이외의 시간과 공간에서 업무의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 교육인적자원부와 시·도교육청의 공동 참여로 표준화된 시스템이라는 점, 학교 단위의 하드웨어 시스템 관리가 필요 없어진 점, 학생의 전·출입시에 온라인으로 가능하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핵심업무인 교무·학사부분은 2003년 3월로 시행시기를 연기하였다. 담당교사로서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 도입되는 시스템이 정말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고, 시스템 연기 발표로 인하여 그동안에 투자한 시간과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허탈한 마음까지 든다. 담당교사로서 바라본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의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앞으로 추진시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생각해 보았다. 현실적이고 편리한 시스템 첫째,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시스템이 학교에서 사용하기에 현실적이고 편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스템은 매 시간 수업 후에 담당교사가 출결을 인터넷을 통해 입력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학교 상황을 도외시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매일 10여 건이 넘게 수업교환과 결보강이 생기고, 학생이 등교하지 않는 경우 집에 연락이 안 되어 결석 사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매 시간마다 출결처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으로 이렇게 진행이 된다면 쉬는 시간은 교재연구, 교재·교구 준비와 학생지도는 뒷전이 되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인증을 받고 출결 마감하는 시간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스템 개발자들은 학교의 상황을 잘 알고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자문교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 개발 시에 지원했던 교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형식적인 형태만 취했다고 보인다. 이 시스템의 교무·학사 부분은 학교의 교사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현장의 요구가 최대한 받아들여진 시스템이어야 한다. 학교 업무를 잘 알지 못하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면 담당교사들은 또 수없이 많은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이는 이미 ‘C/S’ 운영 시에도 나타났던 문제점이었다.[PAGE BREAK] 시스템 운영의 지원체제 둘째, 시스템 운영의 지원체제가 확실해야 한다. 잦은 시스템의 변경으로 인해 담당교사들은 이중 삼중의 업무부담이 있었다. 지금까지 변경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숙지하는데 걸린 시간과 ‘S.A’에서 ‘C/S’로 자료를 변경하고 ‘C/S’에서 ‘NEIS’로 변경하면서 DB변경에 따른 오류를 수정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학교에서 생활기록부 시스템을 담당하는 교사는 교재연구나 학생지도보다는 프로그램을 숙지하고 학교행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지원 센터에는 전화상담 10명, 인터넷 2명, 관리자 1명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인원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지원해 줄 수 있을까. 이는 ‘C/S’에서 ‘NEIS’로 자료변환 시에도 드러났다. 각 학교의 문의 전화가 많아서 3대의 전화를 나중에야 증설했었다. 본격적인 시스템이 운영되면 더 많은 문의가 있을 것이다. 각 학교별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려면 먼저 각 시·도교육청 단위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지원센터를 운영하여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원활한 지원과 상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담당교사들의 분야별 연수 셋째, 담당교사들의 분야별 연수가 필요하다. 이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담당교사들에게 방학동안 2∼3일간의 연수를 실시하였으나 연수해주는 교사도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서버의 접속도 원활하지 않아서 실습은 거의 하지 못하고 메뉴얼만 보는 실정이었다. 이는 오히려 ‘C/S’ 시스템을 도입할 때보다도 부족한 연수였다. 이러한 형식적인 연수로는 시스템에 대한 확실한 숙지도 어렵고, 담당교사들조차도 불신만 더해간다. 현재 대부분의 담당교사들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해서 정확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http://edusys.moe.go.kr)의 ‘Q&A 게시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와 교사들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운영 담당교사와 몇몇 교사들에게만 한정된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이번 시스템은 ‘C/S’처럼 몇몇 담당하는 교사들만 고생하는 시스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교무·학사 부분을 몇 개의 분야로 나누어서 보다 실질적인 연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또한 각급 학교에서도 학교 내 전달연수를 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확보가 필요하다. 교사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시스템의 성과는 미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범운영학교의 확대 넷째, 각 시·도교육청 단위로 시범운영학교가 확대되어 시스템이 충분히 검증된 후에 시행되어야 한다. 5개 시·도교육청의 15개 학교에서 시험적으로 운영을 하였지만 기간이 짧아 형식적인 검증이었다. 2003년 2월까지 확보된 시간도 시스템을 검증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완벽하게 준비한 프로그램도 실제 적용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시범운영학교가 아닌 미리 학교에서 시행해 보고 생기는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프로그램을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PAGE BREAK]지난 ‘C/S’ 시스템의 경우 경기도교육청은 19개의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시범운영을 하였지만 이때도 충분한 검증은 아니었다. 이는 이미 ‘C/S’ 시스템에서의 많은 버그들을 해결하기 위해 패치 프로그램을 설치했고, 설치 후에 생기는 오류들을 해결하기 위해 담당교사가 여기저기 수없이 전화 통화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다소 시행 시기가 늦춰지더라도 서버와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확보한 다음 시행되었으면 한다. 프로그램의 오류 해결을 담당교사의 몫으로 돌리는 일이 다시 생겨서는 안될 것이다. 하드웨어의 지원 다섯째, 하드웨어의 지원이 완벽해야 한다. 담당교사 연수 시에도 서버에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시스템이 개통되면 잘될 것이라고 했지만 전체 교사가 서버에 접속하였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서버의 용량과 처리 속도가 의문스럽다. 또한 시스템을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의 학교들이 많다. 4∼5년 전에 들어온 컴퓨터로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권장 운영사양은 윈도98 이상, 익스플로러5.5 이상, 1024×768의 최적해상도이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에서는 16Mb 램과 2GB 이하의 하드디스크, 윈도95의 운영체제를 쓰는 교사가 70%가 넘는다. 사양이 부족한 컴퓨터로 서버에 접속하려면 업무 처리에만 걸리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특히 지방의 학교들은 더 열악하다. 학교별 회선속도의 불충분 문제, 노후된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불능 문제 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인식 여섯째, 각급 학교의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인증서 발급이 이루어지면서 논란이 많은 사항이다. ‘시스템 관리자’란 학교를 대표하여 모든 권한을 가지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업무의 권한을 분배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학교 단위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시작은 ‘시스템 관리자’에서부터 시작된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각급 학교 내 업무분장을 통해서 ‘시스템 관리자’를 임명하라고 하지만 왠지 어려운 일에 대한 책임을 학교로 전가하는 듯이 느껴진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가 ‘시스템 관리자’로 정보부장을 지목하고 있다. 예전 ‘C/S’에서도 그랬듯이 부서간 업무의 협조가 원활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정보부의 한 업무로만 인식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하지만 이번 시스템은 ‘C/S’ 시스템보다는 광범위한 범위의 업무가 될 것이 틀림없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시스템 관리자’는 교감선생님이든 행정실장이든 교무부장이든 정보부장이든지 교육청 단위에서의 임명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학교 단위에서도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잡음 없이 학교 단위의 업무를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안상 완벽한 시스템 일곱째, 보안상 완벽한 시스템이어야 한다. 교사들은 ‘해킹은 사업자인 삼성SDS가 기술적 보안장치를 마련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만약 학생들의 성적이 노출된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PAGE BREAK]보안의 문제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 공인인증서를 발급 받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공인인증서 발급을 단지 귀찮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다. 교사들의 인식 부족도 문제지만 이 시스템에 대한 충분하지 못한 홍보가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또한 학생의 신상관리 입력의 경우 학생의 주민번호,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뿐 아니라 부모의 주민번호, 직업, 학력, 휴대폰 번호까지 입력하고 있어 불필요한 정보까지 전산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정보의 입력 작업은 단순한 잡무로 끝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연기 결정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현장 교사들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연기 결정을 한 것에 대해서는 희망을 느낀다. 여름방학 내내 전전긍긍하던 교사들은 어디서 정신적·시간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그 동안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며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그토록 많은 글을 올렸는데도 교육인적자원부의 공식적인 답변은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아 선생님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최근에 모 행정사무관이라는 분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름으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답변을 하시면서 선생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누그러졌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진작 이렇게 교사들 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연기 발표를 하면서도 이유부터 명시하였어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일부 교사들이나 교육단체들이 반대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한 이유들이 타당했기 때문이었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일부 교사, 일부 교육단체가 반대한다고 정말 해야 할 일을 연기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연기를 결정했다는 것은 실패, 혹은 실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분명히 시기적으로나 내용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9월에 맞추어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무리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했던 것도 실수다. 기존 ‘C/S’가 수많은 패치 작업과 오류를 불러 일으켰지만 그럭저럭 운영돼 왔던 것처럼 교육행정정보시스템도 일단 가동되면 그럭저럭 흘러갈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신중해야 하고, 완벽한 준비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담당교사들은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도 방안도 방법도 없이 그냥 9월부터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시작한다는 말만 들었고, 그 다음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전화해서 묻거나 행정정보 시스템에서 동료교사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버텨 왔다. 교육인적자원부 차원의 정확한 답변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마다 말이 달랐고 홈페이지 답변자마다 답이 다른 것도 있었다. 뚜렷한 지침이 없어 대부분의 담당교사들은 아침부터 멍하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앞에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었는지 그리고 뒤늦은 연기 결정으로 당분간 얼마나 혼란스러울지는 담당교사만 아는 사실이다.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의 연기 발표로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당장 7월말부터 9월까지의 누적된 생활기록부 업무를 다시 해야 하고, 앞으로의 연수와 ‘C/S’의 자료변환에도 준비하여야 한다. 또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27개 영역 중에서 교무·학사 부분은 연기되었지만 다른 22개 영역들은 시행되므로 이것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하는 교육행정의 전산화는 시대의 흐름에서 볼 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달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시스템 활용 계획을 사용자 편에서 현실적으로 추진하여 이를 활용하는 교사들의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구축으로 ‘교원 잡무의 경감 및 교무업무처리 등 교육행정의 효율화를 통해 교수-학습 및 연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교육의 질 제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의 말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 나이를 잣대로 한 방식에서 탈피 W세대는 한국문화사에서 유래가 없는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W세대는 2002년 서울에서 열렸던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사건으로 '재미있게 즐겼던' 집단을 지칭한다.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이 특수한 집단의 이름을 W세대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미국의 반전세대나 유럽의 68세대, 우리 현대사의 4.19세대나 6.10세대와 같은 문화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업주의의 질펀한 잔치에 불과한 월드컵에 온 나라가 들썩인 것도 그리 달갑게 느끼지 않는 이들도 많다. 철없는 W세대를 계급 없는 사회, 전쟁 없는 사회,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싸운 반전세대나 68세대,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4.19세대나 6.10세대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며 문화사적 의미를 운운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W세대는 축구놀이나 신나게 즐겼던 철없는 젊은애들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로 이 '재미'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기 때문에 W세대는 여타 다른 세대만큼 중요한 문화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재미'라는 가치와 아울러 W세대라는 호칭이 가지는 문화사적 의미는 우선 나이라고 하는 참으로 설득력 없는 세대구분방식을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통한 집단 구분은 근대적 사고의 핵심이다. W세대라는 호칭은 한국 사회가 근대적 사고의 틀을 벗어난 21세기적 사고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태의연한 연령에 의거해 규정하자면 W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충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이제까지 세대구분으로 나누자면 청소년기 혹은 청년초기에 이르는 이들이다.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는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도 증명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란 단어 뒤에 아무런 단어나 연결시키라고 하면 대부분 '청소년범죄' '청소년문제'와 같은 단어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뒤쪽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단어의 앞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라고 하면 '비행청소년'과 같은 단어 이외에는 달리 어울리는 표현이 없는 듯하다. 심리학자들이 청소년 문제와 관련하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자아 정체감 또한 청소년의 부정적 사회적 표상을 확립하는데 일조를 한다. Erikson의 정신분석학적 발달이론은 청소년기는 자아정체감이 확립되어야 하는 불안정한 시기로 규정한다. 즉 자아가 없는 아주 황당한 시기라는 것이다. 청소년의 사회적 표상이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는 배후에는 18세기 이 후에 나타난 순수한 아동으로서의 개념과 발달 또는 진보, 성숙이라는 근대적 이념이 버티고 있다. 우리 청소년이 얻은 새로운 이름 프랑스 문화사가인 Aries는 아동의 개념이 18세기 유럽에서 만들어 진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동의 개념이 구성되고 아동에서 성인에로의 이행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시기로서 청소년 개념이 만들어 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행과정을 어떠한 논리로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동-청소년-성인의 이행논리는 근대의 구성물인 발달, 또는 진보의 개념에서 얻어 진다. 근대성의 핵심은 이성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적 사유에 대한 신념은 보다 진보한 세계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 객관적인 방식으로 성취해 낼 수 있다는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즉 변화를 진보로 이해하고 이 진보를 성취하겠다는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철학자의 과제를 기억해 보라. 이 때 세계사는 미개에서 문명으로 이어지는 단선론적인 발전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유럽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진보 이념의 발견은 불평등, 억압, 착취의 구조를 개혁해 나가는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방식의 억압과 착취를 가능케 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이를 변증법이라 하는 것 같다. 문명발달이라는 보편적 설명 틀에 따라 인종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이 인종을 문명화 정도에 따라 일렬로 배치하는 문명화론의 배후에는 생물학적인 '발생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이 자리잡고 있다. 개체의 발생은 종족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학 이론이 사회진화론으로 변조되면서 진보의 이념은 또 다른 억압의 도구가 되기 시작한다. 아동/성인, 여성/남성, 미개/문명의 이분법이 단선론적인 진보의 논리에 따라 재배치된 것이다. 물론 성인은 아동을, 남성은 여성을, 문명은 미개를 계몽해야 할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다.[PAGE BREAK] 나이에 따라 발달과정을 배치하는 심리학 이론 역시 이러한 발생반복설의 또 다른 얼굴이다. 흔히 계단으로 떠올리는 발달의 메타포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나이에 따라 일렬로 나열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나이에 따른 발달이 문명화 정도를 측정하는 동일한 척도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아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청소년은 미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문명화되지도 않은 고약한 존재로 인식한 것도 바로 생물학의 발생반복설을 인간 개체발달과정에 적용한 Hall이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에서부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로서의 청소년 개념을 고안해 낸 것도 바로 그다. 결국 이행기로서의 청소년은 갖가지 문제를 포함하는 불안정한 시기로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다. 이제까지 청소년이라는 이름은 발달과정에서 불안정한 시기로 인식되어 왔다. 개화 초기, 소년, 청소년, 청년 등의 단어들은 희망과 연관되어 있었다. 당시 청소년은 근대적 교육의 객체이면서 계몽의 주체였다. 브나르도 운동과 같은 농촌계몽운동에서 청소년은 불안정한 문제의 시기로 인식되기보다는 사회변화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러했다. 그러나 근대의 단선론적 진보이념이 교육제도로 구체화되고 기능적 체계를 갖춘 이 후 청소년에 대한 우리사회에서의 사회적 표상은 서구의 그것과 동일한 부정적 내용을 갖게 된다. 그 후 우리사회의 청소년은 몇 명이 함께 몰려있기만 해도 불량청소년이 되었다. 밤길에 한 무리의 청소년을 마주치면 건장한 성인도 흠칫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청소년이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W세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차이 W세대는 이전의 청소년 세대 개념에서 필수적인 발달, 진보를 위한 교육의 강박적 내용이 빠져있다. 물론 비슷한 다른 이름도 있었다. X세대, N세대 등등.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가 더 강한 이들 이름에 비해 W세대는 전혀 새로운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재미'라고 하는 차원이다.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재미, 즐거움과 같은 단어들은 왠지 내놓고 추구해서는 안 되는 가치였다. 엄숙하고 진지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웃는 표정은 왠지 경박해 보였다. 즐거워도 즐거운 내색을 내놓고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오죽하면 변소에서나 맘놓고 웃을 수 있었을까. 재미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와 결합된 W세대는 이전의 미성숙하고 교육받아야 하고 언제든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 그 청소년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재미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를 가르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착각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이 같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W세대가 빨간 옷을 입고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광화문으로 몰려들 때 청소년세대가 항상 걱정스러웠던 기성세대는 기뻐했다. 국가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철없던 것들이 드디어 애국심이 생겼구나. 87년 광화문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던 40대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과 이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W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재미'의 기호일 따름이다. '대∼한민국' 대신 H.O.T가 되었든 G.O.D가 되었든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은 분단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이 수 십년에 만나 우느라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그 '대한민국'이 아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은 더 더욱 아니다. 그저 재미있는 '대∼한민국'이면 족할 뿐이다. 우연하게도 '재미'의 코드가 '대∼한민국'이었을 뿐이었다. 착각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거리응원이 선수들을 격려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축구장과 한참 떨어져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응원이란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투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하는 일이다. 즉 우리편이 이기기 위해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축구경기의 승리가 목적이고 응원은 수단일 따름이다. 거리응원은 사정이 좀 다르다. 도대체 무엇을 응원한단 말인가. 선수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말만 응원이지 응원이 아닌 것이다. 선수들이 응원을 통해 힘을 얻어 축구경기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응원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응원하면서 즐기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 때 전광판에서 보여지는 축구는 이 재미를 매개해 주는 수단일 따름이다. 물론 축구를 이기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이겨야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즐길 수 있다면 축구경기는 어찌 되었든 그리 큰 상관이 없었다. '재미'의 주인이 되는 '재미' 발견 거리응원은 놀이의 주체가 되는 즐거움이 어떠한지를 경험케 해주었다. 축구선수들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 빨간 옷 입고 얼굴에 태극문양 그리고 아무 때나 '대∼한민국'을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엇박자로 장단을 맞춰주는 그들은 경기장에서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어야만 기뻐하는 기성세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TV앞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다가 골 못 넣으면 욕설을 퍼붓는 것 이외에는 달리 축구를 즐길 줄 몰랐던 그들은 관객, 즉 객체에 불과했다. 한번도 재미의 주인인 적이 없었던 그들에게 그 철없는 W세대는 '재미의 주인이 되는 그 재미'가 어떤지를 가르쳐 준 것이었다.[PAGE BREAK] 기성세대들도 나름의 재미를 찾아 헤맸다. 마라톤이 그 중 하나다. 최근 마라톤 행사는 개최하기만 하면 남는 장사가 된다고 한다. 42.195㎞를 뛰는 괴로움을 즐기겠다는 마조히스트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대개 30, 40대의 중년 남자들이다. 건강을 생각하여 뛴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년남자들에게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은 건강에 오히려 해롭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런데 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중년의 마라톤 중독자들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세상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믿을 것은 내 몸으로 느끼는 이 고통뿐이라는 것이다. 하도 믿을 수 없는 험한 세상을 살아와서 이제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몸 하나뿐이라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또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선 이들이 있다. 노사모가 그들이다. 이들은 마라톤을 즐기는 마조히스트들보다는 약간 젊다. 20, 30대가 주를 이룬다. 아직도 정치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인 이들은 한 정치가의 팬클럽을 자처하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심지어는 가족을 총동원하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가며 한 정치인을 후원한다. 가만히 보면 무척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아주 새로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 후원하는 일이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운 변화인 것 같다. 그러나 적이 분명하고 승패에 따라 희비가 너무 분명한 노사모는 여전히 재미가 목적이 아니라 승리가 목적인 것 같다. W세대는 재미가 목적이다. 이는 이전 세대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차원이다. 축구나 여타의 것들이 수단이 되고 재미가 목적이 되는 수단-목적 뒤집기는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원숭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원숭이도 말할 수 있다는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발견했다. 물론 발성구조가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음성을 통한 말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기호를 이용한 말하기는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의도와 남의 의도를 구분하는 능력 등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단 원숭이들 사이에서 자란 원숭이는 이런 능력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 원숭이들만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 사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뜻이다. '수단-목적' 뒤집기가 낳은 결과 '눈길맞추기(joint attention)'는 물건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기가 눈을 맞추는 행위를 뜻한다. 이 눈길맞추기가 바로 인간에게만 있는 뭔가 특별한 것이다. 언어는 물건의 이름을 익히는 것부터 출발한다. 물건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서는 엄마와 아이가 같은 물건을 바라보는 과정, 즉 눈길맞추기가 있어야 한다. 같은 물건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하는 물건의 이름을 익히는 것이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 우리가 같은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대화가 되는 것처럼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약간 어려운 말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형성이라고 한다. 눈길맞추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엄마가 수단이 되고 물건이 목적이 되는 '지시적 눈길맞추기(imperative joint-attention)'가 있다. 아기가 엄마에게 물건을 달라고 눈짓하는 경우이다. 이 때 아이의 관심은 엄마가 아니다. 물건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두 번째 눈길맞추기는 '의사소통적 눈길맞추기(communicative joint-attention)'이다. 낯선 물건을 보면 아이는 엄마와 눈을 마주친다. 엄마의 설명을 원하는 것이다. 즉 목적은 엄마의 설명이고 물건이 수단이 된다. 의사소통적 눈길맞추기의 전형적인 형태는 엄마와 아이가 물건을 가지고 놀 때이다. 물건을 가지는 것이 아기의 목적이 아니다. 물건으로 매개되는 엄마의 이야기, 정서적 반응을 즐기는 것이다. 이 과정이 인간만이 가진 의사소통능력의 기원인 것이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근대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이 한참일 때, Habermas는 꽤나 용감했다. 다들 이성에 대한 신화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데 그래도 이성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하자면 하버마스는 근대적 이성이란 포스트모던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몹쓸 것이고 당장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근대성의 문제는 도구적 이성이 비대해져 일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 뿐, 이성자체가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성의 진정한 완성은 '의사소통적 합리성(kommunikative Rationalitaet)'이 구현될 때 가능하다고 한다.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기원이라는 주장에 그리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면 W세대의 수단-목적 뒤집기는 하버마스가 무척 행복해할 현상이다. 재미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놀이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고 놀이에서 의사소통적 행위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와 엄마의 눈길맞추기 놀이의 목적은 재미이고 이 현상을 우리는 '잘 논다'고 한다. 잘 노는 사람이 남도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도 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드러운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 재미를 추구할 줄 아는 W세대가 주인이 될 사회는 상당히 부드러운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탱해 온 힘은 노동을 통한 성공, 성취에 대한 욕망이다.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성공시대의 주된 내용은 그들이 얼마나 자기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했었나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재미를 희생하고 일에 몰두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뤄내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로 강요되었다. 노동을 통한 성공, 성취가 절대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의 특징은 불안과 적개심이다. 앞에 있으면 불안하고 뒤에 쳐져도 불안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예쁘게 보일 리 없고 나를 제치고 앞에 끼어 드는 이에 대한 적개심은 이로 말로 다 할 수 없다. 도로는 이런 현상이 가장 잘 관찰되는 곳이다. 아무도 앞에 끼어 드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단순히 늦어지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뒤져있는 것도 견딜 수 없는데 도로에서까지 뒤쳐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말이 되는 사회이다. 재미는 정서적 현상이다. 정서는 전염성이 강하다. 또 정서는 공유할 때 그 내용이 풍부해진다. 빨간 옷 사 입고 모두 광화문으로 나섰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서가 공유되는 것은 의사소통행위의 핵심이다. 아기와 엄마의 눈길맞추기가 끊임없는 '정서조율(affect attunement)'과정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소통행위란 메시지의 교환이 아니다. '의도(intention)'를 공유하고 '정서(emotion)'를 공유하고 '주의(attention)'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함께 즐기면서 우리는 의사소통능력을 배운다.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는 함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문화란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서로 인사하고 손을 잡고 눈을 맞추는 방식이 각 문화마다 다르다.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리츄얼화 된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이 문화로 존재하는 사회가 살만한 사회다. 그래서 놀 줄 아는 W세대가 주인이 되면 적개심보다는 서로 말이 통하는 부드러운 사회가 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대중매체와 소비 시장의 합작품 우리는 최근 들어 무수히 다양한 세대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변화에 민감한 시선을 갖고 있는 대중매체와 구매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가진 소비시장이 힘을 합해 끊임없이 다양한 세대 군(群)을 창출해온 때문이다. 소비문화와 대중매체의 합작품으로써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는 X세대를 들 수 있다. X세대란 용어는 더글라스 쿠플랑(Douglas Coupland)이 쓴 동명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쿠플랑 자신은 당시 영국의 펑크 록 그룹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라 한다.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던 X세대는 1961년∼1975년 기간 중 태어난 동년배 집단을 지칭한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는(restless) 냉정한(disaffected) 세대'로서 정치적 무관심을 통해 정치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쇠락하는 미국의 영향력 속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X세대의 뒤를 이어 등장한 세대로는 N세대, i세대를 들 수 있다. 먼저 컴퓨터-정보통신의 발전 속에서 성장한 N세대는 PC나 휴대폰 접속을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세대로서 편지 대신 전자메일을 보내고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보다는 모니터와 컴퓨터를 매개로 한 채팅을 즐기며 막강한 정보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인터넷 세대를 지칭하는 i세대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N세대 및 PC세대와 구분 짓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1994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인지능력이 생길 때부터 인터넷에 친숙한 이들은 전자책(electronic book)에 막대한 분량의 정보를 담아 가지고 다닐 것이며 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현실세계 못지 않게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단 이들 다양한 세대군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兩價的)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곧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이들은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창조력에 있어서 이전 세대와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개성이 넘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복제화된 개성이 대부분이고 정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세대란 무엇인가.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세대에 관한 한 모든 학자들을 만족시켜주는 개념 정의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세대 개념의 모호성을 통해 인간경험의 다중(多重)성을 추론해보는 것이 더욱 현명한지 모를 일이다. 학자들마다 다양한 세대의 개념 단순한 일대기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한 세대란 평균적으로 개인의 출생에서부터 그 개인의 첫 자녀가 태어날 때까지를 지칭한다. 이 경우 한 세대는 출생율과 사망율의 변화에 따른 가족주기의 변화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략 15년부터 30년 사이라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세대란 이처럼 단순한 시간 개념에 입각하여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가장 포괄적인 동의를 확보하고 있는 세대 정의는 독일의 사회학자 칼 만하임(Karl Mannheim)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 "사회 변화의 역동적 과정 속에서 생물학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현상"이 곧 세대라 본다. 여기서 세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정 동시대인이라는 의미를 갖도록 만들어주는 주요한 요인"에 대한 해석이다. 더불어 세대가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묶어주는 힘(generation bond)이 필요한데 이는 어린 시절부터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곧 17세를 전후하여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는 동일한 역사적 상황을 지나오면서 차후 동일한 시대정신을 구성하게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단 만하임의 세대 개념은 탁월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보다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분석적 도구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만하임의 뒤를 이어 세대 개념에 관심을 집중한 N. 라이더는 세대 개념을 동년배(cohort) 개념으로 치환하였다. 라이더는 만하임의 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바 '역사적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세대 개념 대신 동년배 집단은 동일한 역사적 경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코호트의 단순 비교야말로 사회구조적 변화를 연구함에 있어 매우 유용한 전략이라 주장하였다.[PAGE BREAK] 만하임에 충실한 세대 개념이 다시 등장한 것은 M. 릴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이다. 릴리는 '연령의 사회학'을 통해 사회는 연령에 따라 구조화되고 사회구성원은 연령에 따라 층화되며 자원과 기회의 분배방식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연령이 매우 중요한 구분기준이 된다는 소위 '연령 계층론'을 발전시켰다. '연령 계층론'은 동일 코호트가 동일한 노화 과정을 거치는가 하는 문제와 코호트별 노화과정의 차이가 사회구조적 변화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여기서 개인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이 교차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생애주기(life course) 접근법은 연령 계층론이 추적하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는데 매우 유용한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세대 개념을 설정하는 작업의 다양성과는 별도로 세대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세대 구분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세대구분 방식은 인구학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으로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대표적 세대구분은 1900∼1926년 출생한 '진동(Swing) 세대', 1927∼1945년 출생한 '침묵(Silent) 세대', 1946∼1964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 1965∼1979년 출생한 '부머랭 세대', 그리고 1980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자녀 세대'가 그것이다. W세대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 인구학적 패러다임과 중첩되면서도 다소 방식을 달리하는 세대 구분의 예로는 정치적 접근이 있다. 이 구분 방식은 10대 20대에 경험했던 정치적 사건이 이후의 가치관 형성에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치사회화 이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1899∼1910년에 출생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1911∼1926년 출생하여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1927∼1942년 출생하여 냉전과 스푸트니크의 충격을 경험한 세대, 1943∼1958년 출생하여 흑인민권운동·베트남 전쟁·워터게이트를 목격한 세대, 그리고 1959∼1973년 출생한 레이건 세대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들 각각의 세대가 정치적 활동이나 정책 선호도에 있어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방 이후 '압축성장 과정(농축된 변화)'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세대간 경험의 단절과 세대갈등의 증폭이 일상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세대구분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는 물론이고 세대 개념에 대한 논의조차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은 반성을 요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다만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사건을 동시에 고려하여 회자되고 있는 세대로는 해방과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 곧 이어 정치적 독재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적 빈곤을 경험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4.19세대, 경제개발계획과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주역을 담당한 5.16세대, 굴욕적 한일외교에 반대하여 민족 자주권과 자존권을 주창하던 6.3세대, 경제성장으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를 지켜보면서 정치적 민주화를 희생해야했던 유신세대, 광주 민중항쟁을 거쳐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낸 6.29 세대 등이 '세대의 정치학'을 구성해왔다 하겠다. 최근 우리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W세대'는 과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일단은 2002 한일 월드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세대 정의의 필요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이 경험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더불어 W세대로 지칭되는 경험의 특수성이 향후 사회변동의 원동력으로 기능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W세대 논의의 핵심은 그 출현 자체가 대중매체의 구성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덕분에 개념이 먼저 출현하고 이 개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체를 찾아가는 작업이 뒤따랐다. 이는 비단 W세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앞서 예를 들었던 대중매체와 시장자본주의의 합작품으로써의 세대 대부분이 유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과연 실체를 갖고있는 집단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W세대를 구성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면 W세대의 신바람은 대회기간 중 열정적 에너지의 아낌없는 분출, 자발적 공동체 형성, 개방적 세계관 과시 등 가시적인 특징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한국인의 문화적 공통 체험이 되는 과정에서 W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해 우리 젊은 세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동시에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W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재미를 가르쳐 준 세대이고 재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세대로서 '수단-목적 뒤집기'를 통해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 수단을 확보한 세대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 의미를 부여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데 궁금한 것은 왜 우리가 W세대를 향해 이토록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는 바로 W세대가 실체로서의 세대이기보다는 의미 구성물로서의 세대이기 때문이요, 존재로서의 세대이기보다 당위로서의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곧 W세대 논의는 W세대가 진정 그러한 특성을 갖고 있는가 실증적 검증을 하는데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W세대는 그러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wishful thinking)의 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PAGE BREAK] 이 과정에서 W세대가 등장하게 된 배경(왜 대중매체는 W세대를 부각시켰는가?)에 숨어있는 정치적 논리가 희석되고 W세대의 특성에 대한 실증적 차원의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른바 신세대 및 386세대의 논의에서도 반복된 우리의 나이브함이었다. 앞으로 W세대 논의가 이들의 특징을 스케치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공고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적 맥락에서 세대 개념이 갖는 의미를 치밀하고도 심층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W세대라는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데이터 확보가 따라야 할 것이다. 정작 W세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W세대를 구성하는 행위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긴 했으나 매우 취약함은 W세대 논의가 필히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나아가 W세대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필히 여타 세대와의 비교 작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W세대의 특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특성이 연령효과인지 세대효과인지에 대한 구분도 필요하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동일한 역사적 시간과 이질적 개인적 시간의 만남의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때 '현대성'이라는 맥락이 W세대의 경험에 어떠한 방식으로 투사되고 있는지 여부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가장 중요하게는 W세대가 의미 있는 사회변동의 축으로 작용할 것인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후속 작업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세대와의 비교 수반되어야 W세대 논의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에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근저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W세대 논의 속에서 점차 그 중요성을 확대해가고 있는 자아 정체성과 관련해서 그 구성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현대성을 특징짓는 현상의 하나로 자아의 확장과 더불어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Identity)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원천이자 나의 경험의 총체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바로 이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 개인은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행위양식에 있어 일관성을 결여한 모순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정체성과 역할을 둘러싸고 개념상의 혼돈을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역할이란 사회제도 및 조직에 의해 기대되는 바 행위규범을 구조화한 것으로서 규정을 따르면 역할 수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하기에 역할은 동시에 다중의 역할 수행이 가능하며 역할갈등이 발생할 경우엔 협상 전략을 활용하여 해소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반면 정체성의 경우는 역할과 달리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물론 정체성과 역할은 중복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자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임을 내면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정체성은 존재 이유를 제공해주고 개별자로서의 주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역할보다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고 개인에게 다가온다. 이들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에는 다음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합법적(legitimizing) 정체성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둘째, 저항적(resistance) 정체성은 지배질서로부터 소외되고 낙인찍힌 행위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서 이들의 생존 전략은 지배구조에 반대하거나 지배질서로부터 자신을 차별화 하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구사하게 된다. 셋째, 투사적(project) 정체성은 행위자들이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정체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 개인에게 허용해주는 긍정적 의미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W세대에게 부여된 다양한 긍정적 의미 곧 '파격적 옷차림과 열광적 응원을 통한 개성의 발휘'에서 감지되는 '자신감'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를 이루어낸 디지털 세대의 '융합적 잠재력' 등은 지금까지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채색되어온 청소년들에겐 새로운 저항적 정체성을 넘어 투사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풍부한 토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긍정적 정체성 발견 더 더욱 W세대의 등장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정체성 구성 과정이 보다 다이내믹하게 진행된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엘리트층이 합법적 정체성을 부과하는 작업이 점차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주장했던 '성찰적 자아 개념' 역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대신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성향에 기초한 저항적 정체성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기회로부터 부당하게 배제 당해온 경험의 공유'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집단적 경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의 가치 및 지배질서를 전복해 가리라는 것이다. 이 때 물론 배타적 집단주의는 경계해야할 것이나 W세대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청소년 세대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포함시키는 가치에 대해서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할 것이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를 통해 흑인의 정체성에 내재되어 있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 구성에 성공한 예나, 가부장제하의 정체성을 부인함으로써 여성 자신은 물론 남성과 어린이의 해방까지 모색한 페미니즘의 시도 등은 앞으로 W세대 정체성 구성에 있어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역사적 교훈이라 하겠다. W세대의 의미를 교육 현장과 관련시켜 논의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민족국가의 중요성이 감퇴되는 자리에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 문화적 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의 씨앗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른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민족국가의 등장과 쌍생아를 이루던 민족주의의 쇠퇴를 가져온 이 시대에 오히려 '대∼한민국'으로 상징되는 민족 개념의 부상은 단순한 흥미를 뛰어 넘어 귀추가 주목되는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에 W세대를 주도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족의 의미를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정리해낼 것인가가 우리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PAGE BREAK] 지금까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민족주의의 쇠퇴를 기정사실화 해온 입장에서는 민족이란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민족국가 건설을 주도하던 일부 엘리트층이 고안해 낸 '상상의 공동체' 내지 '인위적 역사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점차 축소(shrunken)되고 동질화되는 하이테크 세계 속에서 오히려 그들과 우리를 명백히 구분하려는 정체성의 욕구가 강렬해지는 현상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오늘날의 '민족'은 국가와는 독립적으로 자신들만의 의미를 구성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쩌면 민족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 수용해야하는 명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 이유는 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소속감이나 아이콘 숭배는 예외 없이 문화적으로 구성되어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W세대와 우리 교육현장의 과제 이제 네트워크 사회에서 '민족'을 화두로 할 때면 첫째,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둘째, 민족주의 및 민족국가를 서구중심의 시각에 비추어 비(非)서구에 이식된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 셋째, 민족주의는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고 대중 또한 엘리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더불어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전진적(proactive)이기보다 복고적(reactive)이기에 정치적 성향보다는 문화적 색채가 강하고 기존 국가체제를 대변하기보다는 전통 문화로서의 국가 이미지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강함을 주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앞에 '문화적'이란 수식어를 붙여 마땅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개념은 코사쿠 요시노(Kosaku Yoshino)가 일본의 민족주의를 분석하면서 고안해낸 개념인데 그에 따르면 "문화적 민족주의란 국민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창조하고 유지·강화함으로써 국가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것"으로 "이는 시기적으로 문화적 아이덴티티가 약화되고 위협받을 때 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적 민족주의 개념은 W세대가 보여주었던 바 열광적인 '대∼한민국'의 외침 속에서 배타적 집단주의나 열광적 국가주의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독특한 '하나됨'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에도 일정한 현실 적합성을 확보했다고 생각된다. 엘리트와 대중의 구분을 넘어선 W세대의 민족적 공동체 의식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기억이 오랜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코드를 통해 우리와 그들이 융합적 공동체를 이룬 경험'이 공유된 역사를 구성하게 된다면 W세대의 민족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이름을 부여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 현장 앞에 놓인 과제는 W세대가 공유하게 된 경험의 다채로움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나아가 이들만의 경험이 포스트 월드컵 시대를 열어 가는 한국사회에 역동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길을 적극 찾아주는 일이 되어야 하리라.
진동섭(서울대 교수, 교육행정)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원들은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40만 교원들의 현안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래가 달려 있다. 따라서 교원들은 누구에게 대한민국의 장래를 맡길 것인지 심사숙고해서 귀중한 한 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가? 바로 교육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교육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은, 첫째 가정 교육은 물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은 학교 교육의 존재와 그 혜택을 경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교육을 잘 시켜 온 사람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가정에서는 자식과 친인척 교육, 직장에서는 비서와 직원 교육을 잘 시켜온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자녀와 친인척 그리고 비서와 각료들이 국정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교육에 대한 식견이 분명한 사람이다. 대통령은 교육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고, 견해가 분명한 사람이 돼야 한다. 대통령은 세계 교육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한국 교육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끝으로 대통령은 교육 발전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서 실적과 업적을 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녀가 다닌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참여해서 학교 발전을 위해 봉사를 했던지, 지역사회의 교육을 위해 기여를 했던지, 교육 관련 정책 자문회 등에 참여해서 도움을 준 경험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 사람이라야, 교육을 챙기려고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현재 붕괴 상태에 있다고 한다. 50여 년 역사 중에서 현재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교와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현상은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에서 손을 놓고 있고 학생들은 배우는 일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무너진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방 대학과 사립 대학이 망한다고 한다. 기초 학문이 고사 직전에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잘 나가던 이공계 대학이 쓰러진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교육의 병적인 증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도 그것은 있었고, 그 전 정권에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교육 병의 심각함을 정치가, 경제인, 학부모, 심지어는 교원조차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교육에 병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부실하면 부실할수록 사교육 기관과 입시 관련 기업은 엄청나게 번창하게 마련이다. 셋째는 정치가, 경제인,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뒷전에 밀어둔다. 학교에서 좋은 인적 자원들을 배출해 주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한 협조와 지원에는 인색하다. 그리고 인성 교육을 강조하면서, 자녀 입시 지도에 소홀한 학교와 교사들을 비난한다. 교육에 관련된 집단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는 한, 우리 교육의 병을 조속히 고치는 것은 어렵다. 교육 대통령은 우리 나라 ‘교육병’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와 협조를 얻어내고 합의를 이루어 내야 한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교육의 기반을 다지고, 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PAGE BREAK]이런 대통령을 뽑으려면, 교원들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들의 과거의 활동, 경력 그리고 업적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선거 참모들이 써준 공약보다 중요한 것은 입후보자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경험과 업적 및 실적이다. 다음으로 교원들은 출마자들의 언행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경제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과학기술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문화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는 문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교육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만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그런 사람은 뽑지 말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가? 그들은 실제로 교육 대통령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는가? 그렇다면 약속은 왜 했고 그것을 왜 지키지 않았는가? 표는 가깝고 절실하지만, 교육 투자는 긴급을 요하지 않고 효과는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때마다 “어디 진짜 교육 대통령감 없습니까?”라고 묻게 되는 것이다.
임승천 /서울 구일고 교사·시인 우리 사회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선생님이 비를 들고 교실을 쓸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자기 발을 올리며 "여기도 쓸어주세요"라고 말한다.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현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발상 등은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실망감과 함께 교육적 문제점도 돌아보게 한다. 초기 농경사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가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마을의 규칙이나 어른들의 가르침은 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 가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요즘에는 청소년들의 잘못된 언행을 보고도 이를 나무라는 어른이 너무 적다.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예절교육이나 질서교육조차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집안에서도 각종 과외나 학원공부에 시달리며 시간에 쫓겨 생활하는 자녀를 크게 다그치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과잉보호나 원칙 없이 교육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오늘의 가정이 적은 수의 자녀를 가지다 보니 모든 것이 자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마련이다. 학교에서조차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가르친 올바른 예절교육은 자녀들의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올바른 교육을 받은 자녀가 성장했을 때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분명하다. 부모 모두 직장에 나가는 맞벌이 가정이 많기 때문에 가장 교육이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예절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인성교육 필요성은 너무나 절실한 문제이다. 올바른 생활지도와 질서교육의 바탕 위에서 삭막해져 있는 교육현장을 다시 세워야 한다. 물론 이것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다. 가정, 학교, 사회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 할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숙하고 영상매체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의 특징을 보면 지구력과 인내심이 부족하다. 오래도록 앉아 할 수 있는 일을 기피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올바른 인격의 교육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지혜와 바른 삶을 영위케 하는 능력 및 의지를 심어 준다. 인성교육의 방편으로는 봉사 활동, 각종 체험 활동, 부모와의 대화, 명상 및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활동이 인성교육적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면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장애인과의 생활, 노인들과의 대화, 공공기관에서의 봉사, 바쁜 일손 덜어주기 등을 통해 이러한 일들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배울 수 있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간다는 자긍심도 얻을 수 있다. 더구나 인격적 만남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더 큰 교훈도 준다. 자신의 취미나 관심 분야에서의 체험은 앞으로의 진로나 직업에 대한 준비 및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좋은 책을 읽는 습관과 지속적이고 심도 있는 독서는 견문의 확장 및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전환에 적절하다. 부모와의 인격적 대화는 가치관 정립은 물론 인격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지속적이고 진지한 대화, 일관성 있는 본보기와 실천에 의한 공감의 폭을 넓혀간다면 인성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력과 인내심도 인격적으로 바르게 사용될 때 더욱 유용하다. 창의력 교육도 필요하다. 우리 교육은 입시를 위한 획일적 교육에서 다양함을 찾아가는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가정, 학교, 사회 모두가 창의적 사회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육정책 당국의 과감한 교육시설 투자가 있어야 하겠고 학부모들의 넓고 바른 태도 변화와 모든 교육주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있어야 한다. 교사들 또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이를 이끌 마음 자세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창의적 인간은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그 일을 스스로 찾아 목표를 정한 후 노력하는 정신과 목표 달성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줄도 알고 도전의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때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 생생한 체험을 통해 온몸으로 느끼기, 백과 사전식 공부 방법 등을 필요로 한다. 인식 주체의 필요성에 따라 이런 과정이 스스로 계획되고 실천될 때 창의력을 가진 바람직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이 공감하고 실천해야 할 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한다. △판단의 소리(내가 옳고 내가 관리한다)보다 인식의 소리(수용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 △모든 종류의 경험과 기회가 필요하므로 어떤 일정한 틀에 넣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차와 요구에 따른 반응에 적절하게 맞추어 나가자 △부모와 자녀의 방식에서 차이점과 유사점을 파악하고 인식하고 인정해 나가자 △적당한 체벌(체벌이 과하면 자신감이 없고 주눅이 든다)과 칭찬(칭찬이 과하면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어진다)이 필요하다.
장병학 /충북 진천삼수초 교장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미래사회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하며 살아나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시켜야할까. 우선 우리가 살아갈 새 세기의 미래사회를 예견해보자. 다가오는 사회는 속도의 사회로 우리가 제일 먼저 느끼게 되고 또한 적응해야 할 것이 바로 속도일 것이다. 21세기의 인류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게 됨은 숙명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정보와 기술의 시대로써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문자 그대로 동에서 서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전해지는 상황에 다를 것이다. 그리고 질의 시대로써 변화가 많고 복잡하며 심리적 불안감이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삶의 질이 높아지고 폭은 넓어질 것이다. 넷째, 창조의 시대로써 남과 다름으로 인해 위축감과 열등감을 느꼈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래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독창적이고 다양하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섯째, 감성의 시대로서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것은 기계와 기계 사이에서 인간성과 감성이 자꾸만 메말라 갈 때 아름다운 감성과 따뜻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진 자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개성의 시대로써 탈 획일화의 길목에서 개성은 미래사회의 중요한 특성이 아닐 수 없으며 남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색깔이 생산과 직업의 세계에서도 존중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정중심의 시대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올 것이며 생활의 모든 면이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끝으로 세계화 시대로써 지역화, 지구촌화, 다문화의 세상이 전개될 것이다. 지역성을 초월하여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이동하며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만연될 것이다. 미래사회는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대화능력이 있는 사람, 스트레스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앞으로는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더욱 커지게 된다. 이제 부모는 자녀를 '오늘의 자식'에서 '미래의 자식'으로 보아야 한다.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자녀의 인간성을 어떠한 방향으로 형성시켜야할 지에 기본을 두는 교육을 해야 한다. 또 '나의 자식'에서 '우리의 자식'으로 보아야 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생각이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고 나만의 자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기적 개성에서 이타적 개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개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의 개성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단순한 수재에서 도덕적인 재능인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특히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는 단순한 역할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지식인보다는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고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재능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고의 틀을 순응성에서 도전성으로 바꿔야 하고 다양하게 사고하면서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기주도적 수용적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 한편 21세기 지구촌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가오는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의 선두에 서기 위해, 또한 주도적인 우리의 미래 사회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기 위해 다함께 내 아이와 함께 환경보호 운동을 실천해가야 함은 물론 나와 내 아이가 살아갈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교육적으로 탐색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사회 봉사 활동을 실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한다. 또한 내 아이와 함께 문화활동을 실천해감으로써 민주시민으로 자질을 키워줘야 한다. 그래서 변화와 스트레스가 많은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자녀들이 각종 문화활동을 통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미래사회는 또한 정보화사회이니 만큼 자녀와 함께 사이버 세계로 여행을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나 찾아보고 아이와 함께 사이버 세계로 여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자녀와 함께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그 세계로 찾아들어야 한다. 끝으로 21세기 우리의 미래사회는 속도의 시대, 정보와 기술의 시대, 질의 시대, 창조의 시대, 감성의 시대, 개성의 시대, 가정 중심의 시대, 세계화 시대가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복잡다단한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자녀를 위한 교육방법에 변화가 따라온다. 교사와 부모의 책임은 어느 때보다 커진다. 학교, 가정, 사회교육이 하나가돼 '생각'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아이들을 21세기에 걸 맞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김영애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위원 e-메일로 대화하는 교장선생님 얼마 전 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자신의 학교 4학년 학생에게서 "방학을 잘 지내고 계시냐"는 내용과 함께 가족 사진이 첨부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방학이 끝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자"라는 답장을 보냈노라고 이야기하면서 새삼 학생과 이런 교류가 가능한 정보화가 고맙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이 과연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학생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서더라고 털어놨다. 현재 선진 여러 나라들이 정보화를 통한 교육개혁의 흐름에 민감한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그 한 사례로 영국의 교육부장관은 미래 학교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미래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지하철역을 통과하듯 ID 카드를 그으면서 학교로 들어간다. 이들이 공부할 교실에는 플라즈마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학생들은 저마다 컴퓨터를 지급 받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공부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 속도에 맞게 자율적 학습을 하며 교사는 학습 보조원과 각종 장비를 이용해 이들의 학습을 도울 것이다"라고 예견하였다(디지털 타임즈, 2002. 3. 7). 이러한 교육 현상의 기저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명사적 변화로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를 기존의 산업사회와는 달리 지식정보사회라고 일컫는다. 지식정보사회는 지식과 정보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사람들은 국가간, 지역간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네트웍을 통하여 유통되는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여 각자 자신의 생활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나간다. 이러한 사회의 특성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 내었다. 바로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세상이다. 사이버 세상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산원(http://www.nca.or.kr)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인터넷 사용 인구 중 공교육의 범주에 있는 20대 이하가 이용자의 73%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이버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한 부분으로 사회의 여러 부분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미 사이버 세상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제 교육은 새로운 국면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신기술 발달과 문명사적 변화 그러나 예견되는 교육의 미래와는 달리 최근 우리 나라 학생들에게서 조사된 학교 생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문 조사 결과는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학교의 수업은 재미가 없다. -학교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획일적이다. -모든 것을 점수로 환원하고 성적을 중심으로 지도한다. -학생들의 개인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원인으로 해석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원인 중의 하나는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학교 문화가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코드의 부조화 현상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는 청소년 문화와 기존의 학교의 역할을 고집하려는 교사 집단간의 갈등이 현재 학교의 모습 중 일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 세대를 의미하는 소위 N세대는 사이버 문화와 기존의 문화를 통합하는 선두 주자이다. N세대는 학교 안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주역이다. N세대의 대표 주자는 새로운 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이다. N세대 문화의 기저는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더욱 확대되고 다양화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코드의 커뮤니케이션은 쌍방향적이다. 또한 이들이 활동하는 사이버 상에서는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다. 지위도, 권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버 문화에 익숙한 학생들이 아직도 권위적이고 일방향적인 아날로그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학교 문화와 충돌을 일으킬 것은 자명하다. 일방향적으로 배울 내용과 방법을 정하고 학교의 모든 권한을 통제하는 학교는 스스로 주체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의 커뮤니케이션 코드와 맞지 않는다. 차라리 학생들은 아날로그식의 코드에 침묵과 무시로 맞대응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현상은 학교 곳곳에서 보여진다. 교사의 반응에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까지, 그리고 교사들 역시 이들의 대응에 속수무책이다. 교사와 학생간의 커뮤니케이션 코드의 부조화로 인해 서로 무관심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학교의 모습은 바로 현재 학교의 문화를 대변한다.[PAGE BREAK] 그렇다면 학교는 이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는 21세기 학교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학교(school), 교사(teacher), 학습자(learner)에 대하여 시대에 맞게 새로이 정의 내려야 하는 일이다. 디지털 세대와 기성세대의 충돌 우선 학교는 기존의 지식 전수자로서의 기득권을 계속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인터넷 속에서 풍부하고 생생한 지식을 경험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획일적인 교육 내용에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학교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인성 교육은 취해야 할 대표적인 것이다. 교사들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활용 능력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적합한 정보를 찾고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이 교실에 도입되어야 한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정보통신기술을 도구로 활용하여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스스로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를 자유롭게 탐색하여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가공하여 사용하는 모습, 전자 우편이나 채팅·전자 게시판 등을 활용해 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학교 다른 지역 더 나아가서는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의사를 교환하고 정보를 나누는 모습,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학습의 결과를 효과적으로 얻고 표현하는 모습 등이 교실에서 보이는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 속에는 일방적으로 자료를 제시하고 지식을 암기하도록 요구하는 교사는 불필요하다. 필요한 부분을 안내해주고 조력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학습 네트웍의 형성으로 지역사회와 학부모, 학생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학생의 인격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교사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습자를 살펴보자. 사이버 공간은 무한한 정보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의 학생들은 이 공간을 활용하여 그들이 어느 지역에 살던 간에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즉 지역이나 연령에 제한 없이 교육의 균등한 기회 제공, 양질의 교육, 개인의 요구에 충족하는 다양한 교육이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정보화를 통하여 교육이 바뀐다는 것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산업사회의 교육 패러다임이 지식정보사회에서의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돈탭스콧(1998)은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다. -선형적 학습에서 하이퍼미디어 학습으로 -주입식 교육에서 참여와 발견의 학습으로 -교사 중심 교육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학교 교육에서 평생 교육으로 -획일화된 교육에서 맞춤식 교육으로 -지겨운 학습에서 재미있는 학습으로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에서 촉진자로서의 교사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교사 중심적인 교육 환경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 환경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학생들이 자율권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학습을 선택하는 학습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지식정보화사회의 관리자 역할 이를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그 인식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사이버 공간에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이라야 한다. 개별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져야 한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풍부한 의사소통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학습 활동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를 가짐으로써 평생 학습 사회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이런 교육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논의된 사항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이버 문화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산업 사회에서 요구되는 윤리 의식이 있다면 지식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윤리 의식이 있다. 이는 학교 교육 속에서 정보통신윤리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식정보 사회의 도래는 필연적이고 흐르는 물살을 막고 선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가, 교사가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교사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에서 학생 스스로 정보를 찾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그런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은 지금까지보다 교육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할 것이고 학생들의 안내자,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 2001년부터 시행되는 2단계 교육정보화 종합 발전 방안은 바로 그런 학교의 모습을 지원하기 위하여 물적 기반 위주의 교육정보화 정책이 활용 중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이는 전 국민이 지식정보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고 창조적인 산업 인력을 양성하고 건전한 정보 문화를 창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즉 초·중등 교육, 대학 교육, 평생 교육, 직업 훈련의 영역에서 정보화 지원을 통하여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대비하는 데 국가의 총체적인 노력을 집중하자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위하여 교육인적자원부를 축으로 하여 각 시·도 교육청,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을 거점으로 하는 유관기관이 학교와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교육 체제로의 변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지식정보사회에 알맞은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PAGE BREAK]교육환경 변화에 적극 대처해야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 자신이 지식정보사회에 준비된 CEO인가하는 물음을 던져보자. 다음의 세 가지에 자신 있게 "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식정보사회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첫째, 획일적인 교육은 끝이다.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에 앞장선다. 미래 사회를 매우 정교하게 예견한 앨빈 토플러는 교육도 이제는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배우는 산업사회의 공장을 닮은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산업 사회의 교육 특성이 모방이었다면 지식정보사회의 교육 특성은 창의성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지식정보사회는 같은 지식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가진 똑같은 사람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엉뚱하더라도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것은 만들어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둘째, 교육은 평생이다. 평생학습사회를 맞이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일정한 지식을 소유한 것으로 충분히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학습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평생을 통한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덤까지 배우는 세상으로 평생 학습 사회의 도래를 의미한다. 특히 교육자로서 4 Any(to Any, in Any type of information, at Any time, at Anywhere)를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인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셋째, 정보화는 필수다. 정보통신기술을 학교 교육에 능동적으로 적극 도입한다. 우리 아이들은 네트워크와 이동 통신으로 상호 교류하고 사이버 공간이 새로운 생활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 학교는 정보를 바르게 이용하여 지식화 하고 지식을 지혜로 만들어 가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CEO라면 학교의 정보화에 앞장서고 학교 교육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가치 있는 새로운 지식을 형성해내는 인재가 양성될 것이다. 지식정보사회의 여러 특성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 재테크, 사이버 교육, 인터넷 쇼핑, 정보 수집, 커뮤니티 등 이제 사회는 e-라이프 시대다.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의 변화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주변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그 핵심에서 사회를 이끌어 나갈 것인지는 바로 교육의 핵심에 있는 CEO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최중호 /대전동부교육청 장학사·수필가 한 병사가 숨을 몰아쉬며 평원을 달린다. 누구에게 무슨 소식을 전하려고 저리도 급하게 달리는가? 그는 그리스군의 승전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리는 그리스의 병사 필리피데스다. 약 40km의 마라톤 평원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우리가 이겼노라"고 외친 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여기서부터 마라톤의 역사는 시작이 된다.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엔 손기정 선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 곳에 한국 선수의 이름이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 이름을 보고 싶었다. 마침 연수를 받기 위해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3개월 간 머물 기회가 있었다. 주말 시간을 이용하여 베를린으로 가 그 이름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초겨울 새벽 4시, 아직도 주위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그의 이름을 보겠다는 의욕 하나로 찬바람을 가르며 다름슈타트역으로 나가 프랑크프르트행 열차를 탔다. 6시에 프랑크프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초특급 열차 이체(ICE)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자랑하는 최대시속 400km인 이체는 프랑크프르트에서 베를린을 쉬지 않고 달려 4시간만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이체의 1등실로 갔다. 산뜻하면서도 조용한 객실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게다가 넓은 좌석의 등받이 뒤엔 작은 TV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처음 보는 것이라 호기심이 생겨 TV를 켜는데 승무원 아가씨가 식사를 가져온다. 하지만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선뜻 식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식사는 나만 주는 게 아니고 객실에 있는 사람들에도 다 주었다. 아침 일찍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을 위하여 제공하는 특별 서비스인 것 같았다. 이젠 긴장도 풀렸고 객실 분위기도 웬만큼 익숙해져 후식으로 차를 한 잔 주문해 보았다. 열차는 쉬지 않고 어둠 속을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차츰 어둠이 걷히면서 들판에 쌓인 흰눈이 보이고 이따금 너른 들판에 외롭게 서있는 나무도 보인다. 미처 겨울 준비를 못한 나무의 단풍잎에서는 독일의 초겨울 풍경도 엿볼 수가 있었다. 달리고 달려도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들판뿐이다. 이 넓은 캔버스 위에 오밀조밀한 한국의 가을 풍경을 그려보는 사이에 어느 덧 열차는 베를린 초오역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선 지하철(U-Ban)을 이용해 올림픽 경기장역으로 갔다. 경기장 가는 길은 오른쪽에 작은 동산이 있고 왼쪽엔 국기 게양대가 경기장까지 길게 늘어 서 있다. 멀리 주경기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앞엔 두 개의 사각기둥이 당간지주(幢竿支柱)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오륜 마크가 보였다. 저렇게 크고 웅장할 수가!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개최했다는 베를린 올림픽. 엄청난 비용과 인원을 투자하여 그가 직접 건립을 지휘했다는 올림픽 주경기장이 아닌가. 그 규모가 62년 전에 세워진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크고 웅장했다. 추운 날씨라 목도리를 하고 장갑까지 끼었으나 몸이 바싹 움츠러든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의 이름이 이 곳에 새겨져 있다는 기쁨과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가 추위를 잊게 하였다. 정문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샀으나 곧바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크고 넓은 경기장에서 손 선수의 이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손 선수의 이름을 찾으려면 한나절도 더 걸릴 것 같았다. 매표원에게 그 위치를 묻고 싶었으나 짧은 영어 실력이 문제였다. 8년 동안 영어를 배웠지만 기본회화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한숨만 절로 나왔지만 어찌하랴. 무슨 말이라도 해서 찾아 볼 수밖에…. 올림픽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를 무어라 말할까? 문득 88서울 올림픽 때 아나운서가 소리를 높여 외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올림픽 챔피언'이란 바로 그 말이다. 그 다음 선수들의 이름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려면 어떻게 할까? 용기를 내서 말도 되지 않는 영어를 해 보기로 하였다. "할로, 올림픽 챔피언 네임 롸이트?" 매표원이 웃으며 주경기장 전경이 찍혀있는 사진의 한 곳을 가리켜 준다. 그가 지적해 준 곳을 찾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때는 수십만 관중이 운집했을 경기장이지만 오늘은 텅 비어 있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 중앙엔 파란 잔디가 깔려 있고 붉은 트랙 위엔 흰색 라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관중석 중앙에 있는 본부석을 지나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출구 쪽으로 간다. 출구 쪽 벽면엔 세 개의 대리석 판으로 된 대형 기념비가 있었다. 중앙의 기념비에는 오륜기가 그려져 있고 그 양쪽에 있는 기념비에는 종목별 우승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 선수의 이름을 찾아본다. 왼쪽 기념비에서 가까스로 손 선수의 이름을 찾는 순간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PAGE BREAK] 'MARATHONLAUF 42195m SON JAPAN'. 이게 웬 말인가?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수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새겨져 있었다. 여기 'JAPAN'이란 글자를 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62년 전에 손 선수가 겪었던 나라 없는 설움을 내가 다시 이 곳에서 느껴야 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경기장을 바라본다. 관중은 물론 열정을 다해 뛰던 선수들도 없다. 때 마침 겨울의 운치를 더해주려는 듯 함박눈이 내린다. 살며시 잔디 위에 앉는가 하면 바람 따라 관중석에 앉기도 했다. 어느새 하얀 눈들이 선수와 관중으로 변하여 비어 있던 경기장 안을 꽉 메우고 있는 게 아닌가. 1936년 8월 9일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경기엔 세계 27개국에서 56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여기서 우리의 손기정과 남승룡은 32번과 49번째로 각각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어 손 선수가 약 6km지점에서부터 속력을 내서 4위로 선두그룹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우승자인, 아르헨티나의 자발라 선수를 강력한 우승자로 손꼽았다. 다시 손 선수는 21km 반환점을 앞두고 포르투갈의 디아스를 제치며 2위로 나섰지만 반환점을 통과할 때까지도 자발라는 계속 선두를 유지했다. 그 후 29km지점을 통과하면서부터 손 선수가 자발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다. 손 선수는 계속 선두를 유지하며 이 대회의 마지막 고비이자 승부처인 비스마르크 언덕을 힘겹게 달려 올랐다. 한편 주경기장에 있는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곧 이어 들어 올 마라톤 우승자의 모습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드디어 팡파르와 함께 수 십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382번을 단 손 선수가 주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관중들의 환호에 힘을 얻은 듯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질주했다. 그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2시간 29분 19초를 기록하였다. 그 뒤로 영국의 하퍼와 우리의 남승룡 선수도 들어왔다. 시상대에 오른 자랑스런 손 선수의 모습을 본다. 머리에 월계관이 씌워지고 일장기가 오르면서 일본의 국가인 '가미가요'가 울려 퍼진다.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한 번도 우승 깃발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본 일본인들은 '그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그랬다. 이제 쉴 새없이 내리던 함박눈이 그치고 경기장에 운집했던 관중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라톤 경기에서 손 선수와 남 선수의 승리는 정말 대단한 쾌거였다. 그들의 승리는 희망을 잃었던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높여주었고 일장기 말소 사건과 같은 민족혼을 일깨워 주는 계기도 되었다. 자랑스런 손 선수의 이름을 다시 본다. 하지만 이상하다. 기념비에 새겨진 손 선수의 국적이 다른 선수들의 국적보다 색깔이 더 밝게 보인다. 1970년 8월 15일 밤, 올림픽 기념비 밑을 서성이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독일에 온 신민당 국회의원 박영록씨 부부와 부름을 받고 달려 온 유학생 이주성씨다. 세 사람은 준비해 온 시멘트와 물 그리고 미장용 공구를 이용해 기념비에 새겨진 'JAPAN'이란 글자를 없애고 그 자리에 'KOREA'를 새겨 넣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기념비에 새겼던 'KOREA'는 다시 'JAPAN'으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마라톤 경기는 인간이 체력적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장거리 도루 경주다. 그리스의 병사 필리피데스가 승전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 평원을 달렸다면 우리의 손 선수는 조국의 아픔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베를린 가도를 달렸다. 아직도 기념비엔 우리 민족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지만 손 선수의 이름만은 '베를린의 영웅'으로 남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고동우(경주대 관광학부 교수, 여가심리학 박사) 이제 곧 시행될 주5일 근무제는 학교의 주5일 수업제로 발전할 것이다. 주5일 수업의 시행은 청소년 여가 교육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청소년의 여가 행동을 이해하는 작업이 우선 요구된다. 청소년을 자녀로 두거나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혹은 청소년기를 거쳤던 성인이라면 누구나 느낀다. 청소년기의 여가 혹은 놀이는 거의 모두가 일탈적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하지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골치 덩어리이다. 청소년과 그들의 여가에 대하여 이러한 평가를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당시에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거의 언제나 막연하지만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자’고 말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것인가? 모든 젊은이들이 유사하게 가지고 있는 동기적 성향을 이해한다면, 왜 그들이 이 사회가 요구하거나 제시한 여가 행동보다는 그들만의 기상천외한 일탈 행동으로 여가 생활을 추구하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가 행동의 두 가지 기제 학문적으로 정의하면 여가란 비교적 자유로운 선택으로서 경험 자체를 목표로 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가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결정하는 공통적인 심리적 기제는 두 가지 동기성향의 함수이다. 하나는 최적의 각성을 추구하는 것이고(optimal arousal seeking) 다른 하나는 이완을 추구하는 것이다(relaxation seeking). 이 두 가지는 언뜻 보면 일직선상의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인생 전반에 걸쳐 이 두 가지 동기의 평균적인 성향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인생 단계마다 그 강도는 다르다. 개인이 지니는 심리적 에너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이르렀을 때 혈기왕성한 에너지의 분출 때문에 최적 각성을 추구하는 성향은 매우 강해지지만 반면 이완(즉, 편안함)을 추구하는 성향은 최소가 된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여가는 대개 긴장과 각성을 주는 행동으로 이루어지며 여가 행동의 범위 역시 매우 넓어진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각성을 느끼고, 또 이완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려한 색상이나 스릴러 물, 속도, 약물 등과 같은 물리적 자극은 대개 각성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것만이 아니다. 변화하는 것, 기존의 규범을 깨는 것,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 것, 성취하는 것, 폭력을 행사하는 것 등과 같은 사회적 요소들도 각성을 유발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반사회적인 것으로서 나쁜 것 혹은 악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므로 최적 각성을 가져다주는 행동은 공통체의 입장에서 보면 ‘악의 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 조용히 있는 것, 규범을 따른 것,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것, 양보하는 것 등은 모두 편안함을 가져온다. 이러한 이완의 기제는 모범 행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의 축’으로 인식될 수 있다. 결국 여가 행동은 선과 악의 기제로부터 지배받은 것이다. 거의 모든 청소년은 이 두 가지 기제가 작용하는 여가 행동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청소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PAGE BREAK] 두 종류의 우상 이제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우상이 되거나 모델링의 대상이 되는 학생은 대개 두 부류에 국한된다. 하나는 학교에서 이미 낙인찍힌 불량 청소년이며, 다른 하나는 원칙과 규범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매우 모범적인 학생이다. 여기서 모범적이라는 말은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를 말한다. 아무리 왕따가 판을 친다고 해도 매우 모범적인 학생은 그 대상에서 벗어난다. 주의할 점은 그 기준이 교사나 부모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 즉 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류는 중간 범위에 있는 청소년들인데 이들은 대개 나쁜 짓과 착한 행동을 늘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나쁜 짓을 통해서 짜릿함을 느끼고자 하고, 착한 행동을 통해서 안정감을 추구한다. 나쁜 짓의 첨병은 선봉에 서서 독특하고 신기하며 사회적으로 일탈적인 것을 실험하는 불량 학생들이다. 이들은 대개 공부와 같은 기성 규범을 깨면서 사회적으로 일탈적인 행동을 도입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규범을 구축하는 탐험가이며 정복자이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복장을 도입하고 일탈 행동의 방법을 강구하고, 새로운 폭력 방법을 실험한다. 이러한 실험 행동이 긴장을 가져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 역시 안정 추구와도 관련이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행동규범을 만들어냄으로써 학교 혹은 전체 사회의 규범을 깨는 동시에 그들만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보통의 학생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행동은 기존의 규범을 깨는 용기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실 보통 학생들에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에 이제 용감한(?) 불량 학생은 우상이 된다. 우상화가 이루어질수록 불량 학생들의 성취감은 증가하며 그들의 권력은 교사의 권력을 능가하게 된다. 만약 보통 학생들의 우상이 될만한 다른 대상(즉, 여가 활동)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학교 내 불량 학생의 우상화는 줄어들 것이다. 우상화의 다른 축은 바로 모범생인데, 규범에 순종하면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거의 초인적인 수준으로 인식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규범을 깨지 않으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모범생의 생활은 보통 학생들의 그것과 다르다. 보통 학생들에게 있어서 극단적인 모범생은 자신들의 능력 이상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부러운 존재일 뿐이다. 보통의 학생들을 제대로 관찰하면, 그들이 앞에서 말한 불량 학생의 행동거지를 모방할 뿐 아니라 최고의 모범생을 모방하는 행동도 볼 수 있다. 공부하는 방법을 따르기도 하고 그들이 가는 학원에 등록하기도 하고, 그들의 노트를 훔쳐보기도 한다. 이것은 곧 선의 축의 발동이다. 모호한 수준의 학생들은 여전히 선과 악의 두 축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왕따 왕따를 하거나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대개 반규범 행동의 일선에 서 있지도 못하고 완벽하게 모범적이지도 못한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다. 사실 왕따 행동은 사회적인 수준에서 보면 반사회적인 범죄로 인식되지만 행위 당사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놀이에 불과하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상처를 입지만 왕따를 하는 학생은 그것을 통해 정복과 성취감을 느끼고, ‘동료를 괴롭혀선 안 된다’는 기성 세대의 규범을 깨는 일탈의 즐거움을 얻는다. [PAGE BREAK]이것은 앞에서 말한 악의 축이다. 사실 유심히 보면, 왕따 행동 같은 반규범 행동에도 그들만의 일정한 규칙이 있다. 괴롭히더라도 특정한 부위를 때려선 안 된다거나 특정한 시간에만 괴롭힌다거나 일정한 범주 속의 아이들만 괴롭힌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부 규칙을 따르는 것은 곧 한정된 안정추구의 결과이다. 왕따 현상에서 안정추구 기제가 작용하는 과정은 스스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동료를 왕따시키는 데 동참하는 행동이다. 많은 왕따 행동은 바로 불안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로부터 출발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준거 집단의 규범을 따름으로써 행위자 나름의 선(善)의 축을 구축하는 것이다. 만약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여가 기회, 즉 운동과 여행 같은 일상 탈출의 기회가 충분하다면 최적 각성을 경험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에 왕따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악의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여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여름 월드컵 기간에 왕따 사고가 줄어든 것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거리 응원을 통하여 일상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도로 점거를 하였고, 소리를 질렀고, 빨간 옷으로 치장하였다. 수업에 충실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허용이 되었고, 입시 때문에 참고 있었던 축구를 해도 받아줄 수 있었다.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변화가 있는 일탈 생활이 가능했다. 결국, 왕따라는 반규범 행동은 이 사회의 학교 제도와 가족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여가 범주일 뿐인 것이다. 경쟁의 원리 사실, 왕따 현상을 행위자 나름의 여가 행동으로 이해한다면 왕따를 통해 실현하는 이중적 가치(dual values)와 지각하는 심리적 체험은 학생들의 다른 여가 행동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탈규범, 정복, 성취, 파괴 등과 더불어 아이들의 여가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가 특징은 그것이 게임 지향적(game oriented)이라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왕따 행동에서도 누가 더 지능적으로 많이 괴롭히는가 하는 것이 경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행위자에게 그 행동은 놀이적이다. 이러한 요소는 곧 경쟁의 욕구 혹은 원리로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경쟁은 운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여가 행동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경쟁을 한다. 누구의 머리카락이 더 센가를 가지고 비교놀이를 하기도 하고, 누구 가슴이 더 넓은가를 가지고 싸우기도 한다. 심지어는 누구 책에 더 많은 밑줄이 그어졌는가를 내기하고, 누구 주먹이 더 센가를 가지고 비교를 한다. 어쩌면 경쟁의 원리를 모든 동물이 지니고 있는 욕구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여가 활동을 사례로 들어보자. 인터넷의 주요 통신 수단이 되면서 머드 게임은 이제 청소년을 지배하는 여가 활동이라고 해도 무난하다. 머드 게임은 경쟁의 원리가 가장 세련되게 실현되는 장이다. 상상 속의 무기를 사용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러한 능력을 통하여 일상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가상의 성취 경험을 이루어낼 수 있다. 실제에서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가상세계에서는 강한 존재로 인식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게임 상에서는 상대를 잔혹하게 죽일 수도, 무기를 탈취할 수도 있고, 그래서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 경쟁의 세계에서 우뚝 선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욕구가 청소년의 다른 여가 행동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여가 행동을 보면, 혼자서 하는 여가는 거의 없다. 혼자서 수영을 하거나, 혼자서 등산을 하는 아이들도 없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지 혼자서 조깅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사색을 즐기는 아이들도 거의 없다. 설사 혼자서 바둑 책을 보더라도 그것 역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일 뿐이다. 아이들의 모든 여가에서 경쟁은 거의 핵심적이며 공통적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지면 다른 종목이나 방법 혹은 대상을 찾아서 경쟁 우위에 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여가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경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PAGE BREAK] 학교와 집 학교에서는 불량한 학생이라고 해도 집에서는 착한 아이들이 많다. 부모들의 눈에는 예의바르고 효성이 있으며 형제간 우애를 지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반대로 집에서는 늘 반항적이고 예의 없는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똑똑하며 모범적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많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두 범주에 속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각기 다른 심리적 기제를 작용시키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학교에서나 집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언제나 모범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성인들 역시 그러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인생의 한 축, 어느 부분에서는 (그것이 상상의 세계일지라도) 일탈적이다. 가령, 누구누구는 집안환경이 불우해서 불량 청소년이 되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한 누구누구는 유복한 집안인데도 불량한 학생이 되었다는 말도 한다. 어느 말이 맞는 것일까? 최적 각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변화 추구라는 심리적 기제로 이해하면 둘 다 맞는 말이다. 만약 집안에서 청소년의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 줄 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면 경제적 환경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들여다 보라. 그런 학생들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심성이 착한 아이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줄 집안 환경이라면, 만약 아이들의 변화 욕구를 수용하는 여가 문화가 형성되었다면, 이 시대의 불량 학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가 레퍼토리 앞에서 두 가지 기제의 작용을 통하여 우상화나 왕따가 여가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넘치는 변화 욕구를 담아내는 여가 문화가 존재한다면 불량한 여가 행동은 줄어들 수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여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첩경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어느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의 범위를 ‘여가 레퍼토리’라고 한다. 여가 레퍼토리는 아동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청소년기에 급격하게 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미 말한 변화욕구가 가장 강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지나면 대개의 여가 범위는 한정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가 레퍼토리는 줄어들고 여가 종류 역시 제한된다. 그러므로 청소년기에 다양한 종류 여가 기회에 노출되는 것은 개인의 즐거운 인생을 위해 중요하다. 그래서 청소년에게 특히 여가 교육이 필요하며 개인의 심신을 증진시켜주는 여가 활동에 노출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향후 성인이 되었을 때 보다 즐거운 여가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만을 강조하지 않고 운동이나 음악, 토론과 같은 각종 ‘특활’의 기회가 보다 많아진다면 교내외에서 이루어지는 불량의 분위기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특활이 여가 행동으로서 곧 일탈 경험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PAGE BREAK] 소외와 여가 여가 레퍼토리가 한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은 바로 소외이다. 여가 레퍼토리가 확장되는 시기인 청소년 시절, 사회에서 여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스스로 새로운 여가 활동을 탐색한다. 이 때 여가 탐색은 대개 사회에서 허용하지 않은 형식의 반사회적인 것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느낌을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보는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 일탈은 거의 소외를 탈출하기 위한 여가 탐색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새로운 여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집단혼숙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PC방에서 살다시피 하기도 하고, 무작정 가출을 하기도 하며, 툭하면 패거리를 흉내내기도 한다. 사회 수준에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일탈행동이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여가 행동일 뿐이다. 소외로부터 시작하는 여가 활동은 곧 사회화의 문제를 야기한다. 여가 사회화 사실 여가의 기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대두되는 주제는 바로 사회화이다. 여가 사회화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하나는 여가를 통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태도, 지식을 배운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해당 여가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을 배운다는 것이다. 전자는 여가를 통한 사회화(socialization through leisure)라고 하고 후자를 여가 수행 사회화(socialization into leisure)라고 한다. 여가를 통한 사회화는 공통체 구성원의 규범의식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후자는 개인의 충만한 삶을 위한 전제 조건(즉, 여가 레퍼토리)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청소년기에 여가를 통한 사회화의 가능성은 팀으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여가 활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어린이 야구 클럽(little baseball league)이 오늘날 많은 미국인의 규범이식을 배양하는데 공헌했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어떤 사회심리학자는 미국 전역에서 중산층 가정의 서로 모르는 13세 전후 아이들을 캠프에 참여시킨 상태에서 재미있는 현장실험을 수행하였는데, 공통체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자발적인 규범을 만들어내고 리더를 정하고 최상의 결과물이 나오도록 협동한다는 결과를 발견하였다. 사실 모든 놀이 형태의 여가는 한 가지 이상의 규칙을 지닌다. 그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놀이는 성사될 수가 없다. 물론 더 나은 공정성을 위해 새로운 규칙을 집단 동의에 의해 발전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놀이 경험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규범의식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가수행 사회화’ 역시 매우 본능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사회에서 여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여가 생활을 만들어 간다. 그들의 각종 일탈 행동은 여가수행 사회화의 일부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하나의 여가 수행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곧 안정추구 욕구의 발현이다. 새로운 여가를 시작하는 것은, 그것이 일탈 행동일지라도, 변화에 대한 욕구의 발현이며, 그 여가 활동에 완전히 적응하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곧 그들만의 새로운 여가를 탐색한다. 다시 말해 인지발단 심리학자인 피아제(J. Piaget)가 말하는 변화와 안정의 변증법적 발전이 개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여러 종류의 청소년 일탈 여가는 이러한 심리적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실현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바람직한 여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여가 활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여가를 통하여 개인이 느끼는 재미의 본질을 고려하여야 한다. [PAGE BREAK] 좋은 여가 vs 나쁜 여가 : 재미의 두 가지 사실 모든 여가는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설사 우리가 낮잠을 잔다고 해도 편안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준다. 넓은 의미에서 재미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심리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즐거움으로서 ‘pleasure’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에너지를 구축하는 즐거움으로서 ‘enjoyment’라고 한다. ‘pleasure’를 가져오는 여가는 TV 시청, 섹스, 수다, 수면, 도박, 술, 약물과 같은 것들이고, ‘enjoyment’를 제공하는 여가는 독서, 등산, 운동, 토론 등등이다. 가령, TV 시청을 할 때 우리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많이 한다고 해서 TV에 대한 지식이 생기거나 능력이 증진되는 것은 아니다. 술이나 약물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심신이 황폐해지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보아서 결코 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여가 활동인 셈이다. 반면에, 등산이나 수영 같은 운동, 토론, 독서와 같은 여가 활동들은 개인의 정서적, 인지적, 신체적 능력의 증진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것들은 하면 할수록 수행능력이 좋아지는 것들이며 동시에 재미를 동반한다. 만약 우리가 어린 시절에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하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는 주요 여가 활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서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기초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곧 어린 시절 여가 레퍼토리를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알려준다. 나아가 주5일 수업을 시행할 때 학교의 과외 교육을 통하여 청소년에게 ‘enjoyment’를 동반하는 여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주5일 수업과 여가 교육 청소년기에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전인교육을 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부모와 교육 담당자는 동의한다. 그리고 교과 수업을 통하여 전인교육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여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인생의 행복을 구하는 길이 좋은 학력, 많은 돈, 그리고 전문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면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국가 혹은 정부의 이념이 복지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라면 국민 개개인의 여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보았던 것처럼 장기적인 준비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주5일 수업 제도는 개개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막연히 주말 시간을 제공하는 선에서 국가의 책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보다 필요한 부분은 장기적으로 개개인의 여가 레퍼토리를 넓혀주기 위한 아동기의 여가 교육이 필요하고, 경쟁의 욕구를 실현시켜줄 수 있고, ‘pleasure’ 대신에 ‘enjoyment’를 느낄 수 있는 여가 목록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 과정은 국가, 학교, 부모, 그리고 청소년 자신 모두의 책임이다. 예컨대 매주 토요일은 여가 교육의 날로 정하고, ‘초한지’나 ‘삼국지’를 읽고 토론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의 여가 교육도 가능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여가 정책을 펴고 여가 교육을 하자’라는 구호만으로는 실현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서울대’만을 바라보고 대학 입시에 매달려 있는 중등 교육의 학교 현실을 고려할 때, 여가 교육을 적용할 수 있는 학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가 교육이니 삶의 질이니 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서울대 해체와 같은 획기적인 대학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 나라 청소년의 여가 교육은 요원하다.
지난해 10월 25일 취임사에서 교육방송의 '실용주의'를 주창했던 김학천 EBS 사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도중하차한 박흥수 前 사장의 뒤를 이어 '배울 게 있고' '진지한' 공익방송으로서의 역할에 주력해 온 그는 잔여 임기가 6개월뿐이지만 "소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시청률 경쟁을 하기보다는 다소 어렵고 재미는 없더라도 배울게 있고 연속적이며 진지한 방송을 만들겠다는 '실용주의'를 강조해 오셨습니다. 추진 경과를 평가하신다면. "실용주의의 구현은 크게 공익방송의 전형 제시, 시청률 경쟁의 극복, 전문인에 의한 방송 운영 등 세 가지 차원에서 추구해 왔습니다. 공익방송의 전형 제시를 위해 직업교육을 꾸준히 강조했고 꽤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자격증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높아졌고 '도전 탐구' '길을 닦은 사람들' '직업뱅크' 등 직업관이나 직업정보를 다룬 프로그램들도 골라보는 시청자 층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얘기하는 단순한 시청률은 교육방송을 평가하기에 부적절합니다. 우리 방송을 보는 30퍼센트 이상은 시청자라기보다 수강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프로그램이 타깃으로 삼는 각각의 대상을 모집단으로 한 시청률과 그 대상이 프로그램에서 얻는 만족도를 평가하는 조사방식을 자체 개발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는 긍정적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육방송을 전문가 집단이 끌고 가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올 연말 1년간 방송된 프로그램을 전문성, 차별성, 교육적 성과, 창의성 부문에서 평가하고 전문인으로서 그리고 전문방송으로서 거듭나기 위해 갖춰야 할 마인드와 능력 등을 추출해 제시할 생각입니다." -경영인으로서 현재 교육방송의 당면한 시급한 과제와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지요. "내적으로는 재정 부분보다 인력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즉 교육방송에 대한 신념과 방법 내용을 꿰뚫어 내는 전문인 육성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현재 어린이 프로그램은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조하는 직업교육도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담당자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체계적인 연수와 교육 그리고 객관적인 내외의 평가를 통해 전문성을 키울 생각입니다. 외적인 문제는 학교교육 보완과 사교육 절감을 목표로 편성된 프로그램이 전달되는 과정에 장애가 많다는 것입니다. 즉 교육방송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돼야 하는 가에 대해 교육기관과 행정기관, 학부모와 학생, 일부 비판세력 간에 의견이 달라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불거진 교육방송 시청 지도감독비 징수 문제와 감사실시가 단적인 한 예일 것입니다. 교육방송이 합리적으로 전파되는 장치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이해당사자와 비판당사자간 대화와 합의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EBS가 국가 교육정책을 진단, 분석하는 시사프로그램을 늘려 교육에 대한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할 것이라 보는데요. "교육문제에 대한 시사적 저널리즘의 추구는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간 'PD리포트' '신나는 학교 만들기'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와 비전 제시에 나섰지만 그것이 교육정책에 대한 감시와 비판, 대안 제시 기능에 미흡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런 역할을 서너 명이 짊어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현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년부터는 우선 이쪽 부문에 전문성이 풍부한 외주제작사를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 -교육방송이 내년에 추진할 특기할 만한 편성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직업교육과 연계해 커리큘럼 수준의 실업교육이 새로 편성될 것입니다. 공업 상업 농업고의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방송이 보완해 줄 필요가 있는 과목을 편성할 것입니다. 현재 방송되는 국영수 프로그램과 일부 사회프로그램을 축소해 실업교육 프로그램이 중고교 전체 교과프로그램의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까지 배정할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시청자의 의견 형성기능을 활성화시키는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즉, 청소년과 성인이 참여하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교육방송이 강조하는 '의견형성 교육'을 구현하는 것이며 또 방송의 실용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6개월의 잔여 임기 동안 꼭 마무리 짓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교육방송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접촉 의식을 개선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필요에 의해 골라보는 방송, 배울 게 있고 감동까지 더한 프로그램을 갖춘 차별화 된 방송으로 인정받도록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들을 차분히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3일간 재량휴업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서울 B초 K교감.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공문더미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134통이니까 하루 당 45건 꼴. 공문을 뜯고 읽고 버리고 분류하는데 하루를 보냈다. "교육 당국은 물론 시교육위 국회 기타 유관기관에서 오는 공문이 줄잡아 일년에 6000건은 넘을 겁니다." 지난달 11일 서울 징계재심위 회의실에서는 시·도교육청 교원업무 담당자들이 모여 통합공문제 시행, 업무보조원 배치, 교장 결재권 분산, 장부 통폐합 등 잡무경감 추진실적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아직도 밀려드는 공문 처리에 시달리고 있다"며 "업무경감 노력이 좀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경기 A외고 K교사는 도교육청이 통합공문제 등의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학교에 도착하는 공문은 전혀 줄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오늘이 10월 22일인데 공문 접수는 현재 2302건이고 전언통신문 접수는 817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문서 통합이라고 연초에 초중고 보고공문을 한데 묶은 두꺼운 책 한 권이 왔는데 그거 뜯어보는 것도 일인데다 그게 공문량 줄이는 것과는 상관도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K교사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안은 교무업무 보조요원 배치"라고 강조하면서도 "예산상 어렵다면 공익요원 배치를 해주던가 아니면 주당 24시간을 맡는 수업전담교사와 주당 8시간 수업 정도를 맡는 업무전담교사를 따로 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직 일선학교에는 사무보조원이 없는 학교가 많은데다 배치된 사무보조원이나 공익 전산보조원조차 전문성이 부족해 오히려 일을 '만들거나' 잡역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교원 업무보조 인력을 크게 늘였다는 서울이지만 20학급이 안 되는 E여중에는 교무실 사무보조원, 과학실습보조원이 없다. 다행히 공익전산보조원이 배치돼 일손을 덜겠구나 생각했지만 '전산보조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는 컴퓨터 '문외한'이었다. 전산업무 담당 G교사는 "아래한글이나 문서 작성까지 일일이 가르쳐야 하니 일이 오히려 늘어났다"고 말한다. 광주 C고에 배치된 공익 전산보조원은 아예 학교아저씨 보조원으로 전락했다. 이 학교 J교사는 "성적처리라든가 공문처리 등을 도와줘야 하는데 전산 능력이 전혀 없다보니 매일 화장실 청소나 잡초 제거 나무 가지치기나 하고 있다"며 "수치상으로야 전산보조원이 배치된 거지만 실질적으로 교사들의 업무는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이와 관련 경남 G초 교감도 "단순히 교원업무 보조인력의 수치를 늘리지만 말고 자질을 갖춘 인력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며 "일용직인 보조인력의 한달 급여가 공제금액을 제하면 60만원에 불과한 실정에서는 인력 확보마저 어렵다"고 말한다. 초중고교에 비치된 120∼180개의 장부 중에 100∼155개를 없애거나 일반문서로 처리했다는 대구. 하지만 특별히 장부가 줄었다고 말하는 학교는 드물다. Y초 Y교사는 "대구시내 전체 초등교에서 쓰던 장부 종류가 120여 개라는 얘기지 모든 초등교마다 120여 개의 장부가 있던 것을 100개나 통폐합했다는 말이 아니다"라며 "원래 각 초등교에는 삼 사십 개의 장부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Y교사는 "실제로 교육청은 법정장부 21개와 교육감 지정 2개 장부만 남겨두고 모두 통폐합했다고 보고했지만 각 학교에는 이외에도 보결수업배정대장, 과학실 일지 등 20여 개의 장부가 더 있다"고 말한다. 이 학교 교감은 "선도가 없어졌으므로 선도일지가 없어졌고 선도반장이 청소를 검사한 후 결재를 받는 봉사일지가 없어진 것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교사들은 갈수록 업무가 늘어난다며 울상이다. 수행평가 때문에 일만 늘었다는 충남 S고 J교사는 "영어의 경우 쓰기 말하기 읽기 듣기 등 수행평가로 인해 번거롭게 성적 입력을 해야 한다"며 "특히 CS전산프로그램이 교사의 일을 경감시킨다는 말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입력할 내용만 많아져 부담이 는 데다 내년에는 더 복잡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하고 유물처럼 낡은 컴퓨터로 작업을 하니 잡무 처리에 하루의 반을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Y초 K교사는 "7차 교육과정 시행으로 인해 각종 교과연구회, 평가위원회, 교육과정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잡다한 위원회가 더 늘어나 교사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업계 고교 진학 기피 현상은 여전히 호전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수업에 전념해야 할 교사들이 신입생 유치에 동원되는 시즌을 맞게 됐다. 하지만 실업계 고교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빚어지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신입생 입학원서 접수 과정에서 일차 접수한 원서를 합격권 내에 들지 않는다 하여 반환해 주는 오래된 관행이다. 중학교 3학년 담임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급의 많은 학생들이 탈락 없이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불합격 처리될 성적 미달 자는 미리 원서를 반환 받아 유리한 학교에 다시 접수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입이나 대입을 막론하고 지원자 누구에게나 타당한 입시 기준에 의해 기회 균등의 원리가 성립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 가지 예로 갑이라는 학생이 평소 그렇게 가고싶어 하던 A고교에 원서를 접수시키고 합격권에 포함됐는데 이웃 B고교에서 탈락자들의 원서를 미리 반환해 줘 그들 중 상당수가 다시 A고교에 원서를 내고, 결국 갑이라는 학생이 밀려 A고교 진학 기회를 잃게 된다면 과연 이것이 교육적이고 옳은 일인가. 실제 실업계고 입시원서 접수과정에서는 정원외 탈락자들의 원서를 반환해 주는 일,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접수한 원서를 반환 받아 다른 학교에 접수시키는 학생들로 인해 업무상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약 대학입시에서도 이렇게 접수한 원서를 되돌려 준다면 아마 세상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어떻게 실업계고 입학원서 접수과정에서는 이런 일이 통용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1차 원서 접수 과정에서 정원에 미달한 학교는 추가모집 기간에 충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주어진 절차에 맞게 공정한 입시행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 곧 있으면 2003학년도 실업계 고교 신입생 선발을 위한 원서접수 기간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접수한 원서를 반환해 주는 일로 해서 선의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정한 입시 풍토가 조성되고 나아가 교사들도 학교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까까머리 꼬맹이들이 등굣길에 물고기를 잡아 검정 고무신에 넣어오는 재미로 지각이 다반사이던 초임 벽지학교 시절. 학교에서 1학년 지도는 교장과 담임의 영원한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나온 계책이 1학년을 6학년 반반 사이사이에 배치해 놓는 것이었다. 형, 언니들의 행동을 보고 익히라는 뜻에서였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6학년은 중학교 입시 때문에 밤낮으로 공부를 해야했다. 그러니 천방지축 1학년 꼬마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래서 1학년들의 담임도 교육대학을 갓나온 미혼 총각, 처녀 선생님으로 정했다. 열의에 찬 생활지도가 시작됐고 등하교 때 물고기 잡이 놀이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신고망까지 구축돼 아이들의 행동거지가 알음알음 교무실까지 전달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꿀맛 나는 놀이가 금지된 것이 '여자아이들의 고자질 때문이다'라는 소문이 남자 악동들의 귀와 입으로 퍼지면서 시작됐다. 그 때부터 남자 놈들의 시도 때도 없는 기습이 여자아이들에게 가해지면서 매일 소란스런 싸움이 벌어졌다. 옆에 붙어 있는 6학년 언니들이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되면서 진학지도 담임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1학년 담임의 애교 넘치는 사과도 한 두 번. '무슨 지도를 어떻게 하는 거냐.' '낸들 한다고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 전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1학년 담임과 진학반 담임간의 감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악동들은 "우∼"하며 여자아이들에게 몰려 가 얼굴, 등, 갈래머리를 잡고 흔들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참다 못한 원로 여 선생님이 악동들을 꿇어앉히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너희들, 여자 괴롭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고추 떨어진다." 그 후 며칠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한 아이가 숨넘어가는 제보에 뛰어가 보니 악동들은 모두 팬티 속에 왼손을 넣어 자신의 고추를 잡은 채 여자애들을 또 괴롭히고 있었다. 아연실색, 망연자실 담임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소동이 있고 며칠 후 꼬마 악동 한 놈의 고추에 고장이 생겨 오줌을 못 누게 됐다. 요석이 요도를 막아 생긴 현상이었다. 그런 걸 알리 없는 악동들 사이에서는 '여자애들 괴롭히면 정말 고추 떨어진다'는 괴담이 퍼졌고 기적처럼 소란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교원의 정년단축으로 초등교육의 위기가 수 년째 계속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고령 교원 한 명을 내 보내면 2.7명의 신규 교사를 채용할 수 있다는 논리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였고 학부모들도 이 논리에 현혹돼 정년단축을 수적 압력으로 관철시켰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만성적인 초등교원 부족현상은 내년에 더욱 심해져 6700여명의 교사가 부족해지는 최악의 사태를 빚을 판이다. 그 동안 정부는 떠난 교원을 모조리 불러들이고 중초 교사를 임용하는 등 땜질식 수급을 계속했지만 역부족인 상태다. 어느 시·도의 지방 초등학교들은 60세가 넘는 고령교사를 숙식제공, 원하는 학반 배정, 여행 배려 등 부대 조건까지 내걸어 모셔오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인력에 답답한 속만 끓이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터넷 교원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매달 200∼300명의 기간제 교사 구인 요청이 들어올 정도라고 한다. 오늘의 교사 부족 현상은 근본적으로 2, 3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수많은 교원들을 조기 퇴출시킨 엉터리 교사 수급 계획과 밀어붙이기식 졸속 교육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정년 단축을 한꺼번에 시행한 정책적 오류를 범했고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 반발을 산 데다 교원연금 재원 불안 등의 요인까지 겹쳐 명예 퇴직이 급증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 이 결과에 대해 당시 정년단축을 찬성했던 측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교원단체의 경고에도 '별 문제 없다'고 한 이들이 이제는 대안도 없이 묵묵부답인 것이다. 현재처럼 기간제 교사나 예체능(중학 자격증 소지자) 강사로 교원을 충원하는 방법은 문제가 많다. 열악한 근무조건에 불만을 가져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또 오래 있지 못할 곳이라는 생각에 학생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교육하기도 어렵다. 땜질식 교사 충원으로는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백년대계인 교육 문제는 교육논리로 풀어야 할 것이며 교육현장의 기본 여건과 초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바로 이점에서 정년 연장이나 정년 환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문제를 정당정치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담임 없는 교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은 관심을 모아야 할 때다.
교육부와 전국 교대, 교원단체, 학부모 대표들로 구성된 초등교육발전위원회는 지난달 25일 4차회의를 열어 교육감 추천 교대 신·편입학 확대 방안, 내년 교대 입학정원 조정, 초등교원 중장기 수급계획 등 초등교육 현안 문제를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교육부는 6개 사범대에서 초등교육과 신설을 요청해 왔으나 교육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현 초등교원 양성체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대의 경우 올해 120명 증원에 이어 내년에는 160명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대와 교원단체 대표들은 초등교원 수급 불균형 대책으로 교육부가 교과전담교사 확보율과 교원법정 정원 확보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초등교원 수급의 지역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지침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 이 날 위원들은 한결같이 내년 초등학교 교사 부족현상을 우려했고 교육부는 다음 회의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총은 고3 진학담당교사 483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입학전형제도 개선에 대한 우편 설문조사 결과를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현행 수능제도 관련=자기소개서 대리작성 등 문제점 해소를 위해 59.6%가 '면접시에 직접 작성.제출'해야 한다, 29.6%는 '폐지'해야한다고 답한 반면, 8.1%만이 '현행대로 작성.제출'하길 원했다. 또 심층면접의 효과에 대해서는 35.8%는 '지역.계층별 불이익 발생'을, 29.7%는 '사교육 의존심화'를 우려, 대다수 교사들은 심층면접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고교간 내신성적 격차와 변별력 저하 보완'과 '고교 교육과정 정상화'라는 긍정적 반응은 각각 27.2%, 6.0%로 나왔다. 수시모집의 시기별 전형에 대해서는 축소 쪽에 무게가 실렸다. 37.6%가 '1학기 폐지, 2학기 여름방학중 실시'가 좋다고 답했고, 29.9%는 '1학기 특별전형으로 최소화, 2학기 현행대로'를 원해 67.5%가 수시모집 시기를 줄이길 원했다. '1, 2학기 모두 현행대로'라고 응답한 교사는 16.2%에 그쳤다. 올해부터 수시모집 합격자에게 다른 시기의 지원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 '보험성 지원을 자제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66.0%가 '그렇다'고 답했고, '응시기회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58.0%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수시합격자의 다른 시기 지원금지가 과잉지원에 따른 혼란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시합격에 불만족한 학생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45.2%가 '그렇지 않다'고 답한 반면, '교사의 업무가 줄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 37.1%, '변화 없다' 34.8%로 나와 수시모집의 지원기회 제한이 교사의 업무감축에는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능시험의 성격에 대해서는 35.6%는 '고교졸업 자격고사(예비고사)'를 원했고, 28.3%는 '대학진학을 위한 적성검사'에 응답한 반면, 36.0%만이 '발전된 학력고사(현행 수능)'를 원했다. 수능 난이도는 '변별력 확보를 위해 어렵게 출제되어야 한다', '사교육 감소를 위해 쉽게 출제되어야 한다'가 각각 28.3%, 24.5%로 나와 엇비슷했고, 절반에 가까운 47.2%가 '일관성만 유지하면 된다'고 답해, 과거 널뛰기식 수능난이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 2+1 체제=교육인적자원부가 2005년부터 권고하고 있는 영역별 반영 '2+1'체제에 대해서는 49.2%가 '현행대로 수험생은 전영역을 응시하고 영역별 가중치를 둔다'를 원했고, 28.7%는 '일부영역으로 치우치지 않도록'3+1'을 따라야 한다'고 답해, 77.9%가 교육인적자원부의 수능 개편안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정부안에 찬성한 응답은 22.2%에 그쳤다. 이는 대학에서 수능의 일부영역을 반영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절반이상인 54.7%가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전영역 반영을 원칙으로 해야한다'고 답했고, 2005학년도 수능의 출제범위에서 국민공통기본과정을 제외한 것에 대해 69.2%가 '고교교육과정이 파행 운영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입시에 유리한 과목 편식 현상 등의 방지를 위해 대학에서 실시할 예정인 과목별 최저이수단위제에 대해 '최저이수단위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을 경시하느냐'는 질문에 84.0%가 '그렇다'고 답했고, '학교별 교육과정 운영 현실과 맞지 않는냐'는 데 대해서도 67.7%가 '그렇다'고 답해 부정적 입장이 많았다. ◆서울대 논술고사 부활 방침=서울대의 논술고사 부활방침에 대해 39.3%가 '학력중심의 본고사 부활이므로 반대'한다고 답한 반면, 38.7%는 '대학자율에 완전 위임 사항', 22.0%는 '면접보완과 변별력 강화를 위해 찬성'한다고 응답해 긍정적인 반응이 높았다. 지역할당제에 대해서는 '찬성' 53.4%, '반대' 39.5%로 찬성이 높게 나왔다. 반면, 특.광역시는 반대가 각각 57.6%, 54.0%로 반대의견이 높았으며, 시.군지역에서는 찬성이 군지역 70.2%, 시지역 54.7%로 찬성비율이 높았다. ◆고교평준화 정책=고교평준화에 정책에 대해서는 '평준화 지역 확대' 35.6%,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등 고교다양화로 보완' 30.5%, '단계적 해제' 33.9%로 평준화 유지보다는 수정 내지 폐지를 원하는 비율이 2배 가까이 됐다. 반면,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교육평등 저해로 반대' 35.1%, '시기상조로 장기적 과제로 검토' 38.2%, '대학발전을 위해 도입 가능' 26.8%로 나와 반대의견이 훨씬 높았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수능총점 공개, 고교간 내신성적 격차 보완의 필요성 인정 등에서 보듯이 진학담당교사의 대부분은 정보부재로 진학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2005년도 입시개편안에 대해 고교교육의 파행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대입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교총과 서울초등교장협의회 등 12개 교장회장단들은 29일 오후 서울시교육위원회 이순세 의장을 만나 일부 교육위원회들이 최근의 행정사무감사에서 "특정 노조에 편향된 활동을 벌이고, 탈법을 일삼는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교장단들은 "최근 실시된 행정사무감사에서 교육위원들이 교원노조와의 단협 이행 사항을 점검하는 데 지나치게 치중하는 등 편향적인 활동을 벌여 교육위의 활동을 축소·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성명서에는 "요구하는 행정사무감사자료가 너무 방대해 교원업무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교육현안을 분석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자료 요구는 필요하다"면서도 "충분한 준비 기간도 없이 급하게 요구하고, 내용도 특정 노조 관련 위주"라고 비판했다. 교장들은 행정사무감사등에 관한 조례에 의하면 '조사대상기관장의 출석·증언 의견 진술을 요구할 때는 그 사유를 기재한 문서를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늦어도 3일 전까지는 발부해야 함에도 이런 절차를 무시한 채 일선 교장들을 출석시켜, 이미 수차례나 교육청에 서면 제출한 노조의 단협 이행 사항 등을 중심으로 고압적으로 신문한 것은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며, 관련 교육위원의 책임을 묻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교장들은 자신들의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교육위원 제자리 찾기와 불법적이고 편향적인 교육위원 소환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천명했다.
눈높이에 맞춘 과학 그림책 ◇꼬꼬 닭이 알을 낳았어요 外=어린이를 위한 과학그림책 시리즈. 과학적 내용을 설명하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꼭 알고 싶은 정도까지만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각 권마다 여러 가지 동물 친구들이 등장해 대화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마지막 부분에서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주고 '무슨 뜻일까요'라는 코너를 통해 꼭 알아야 할 단어도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샘 고드윈·클레어 레웰린. 언어세상 다양한 독서표현 방법 소개 ◇문학읽기로 열어가는 어린이 독서교육Ⅱ=21년간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과 13년 동안의 꾸준한 독서지도 경험을 가지 저자가 스스로 구안하고 재구성해 낸 방법과 사례들을 엮은 책. 읽는 책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방법, 간단한 그림 그리기에서부터 집단적으로 희곡을 쓰고 공연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표현 방법들을 소개한다. 허덕희. 인간과자연사 퍼즐풀기로 배우는 수학공부 ◇WOW! 수학퍼즐=수학이 더 이상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퍼즐형식의 재미있는 문제들을 통해 보여주는 책. 동서고금의 고전적인 수학퍼즐을 모았고 수수께께 같은 재미있는 문제들을 통해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또 단순히 공식과 개념으로는 풀리지 않는, 상상력과 재치를 필요로한 문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카무라 기사쿠·아베 게이치. 바다출판사 에피소드로 꾸민 로켓이야기 ◇로켓 이야기=올 11월 말경에는 순수한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액체 추진제 로켓이 발사될 예정이다. 이 책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과 함께 우리나라 로켓 최고의 권위자인 저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쓴 로켓에 관한 이야기다. 로켓의 어원과 역사, 숨겨진 에피소드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과학문화재단이 선정한 청소년이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채연석. 승산 놀이공원 가는 길의 유쾌한 소동 ◇놀이공원 가는 길=숲에 사는 덩치 큰 세 친구, 곰 아저씨와 코끼리 아줌마, 바다코끼리 아줌마는 놀이공원이 있다는 말에 당장 마을로 출발한다. 놀이공원 가는 길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시끌벅적한 소동을 일으키고 해질 무렵에야 도착한다. 결국 놀이공원 앞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제일 먼저 들어가 신나게 놀게된다. 엉뚱한 소동들이 주는 유쾌한 의외성을 배울 수 있다. 크리스토퍼 워멀. 웅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