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무척 바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차가 도착하면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환승을 하기 위해 입구로 몰려든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서서 가는 오른쪽보다는 걸어서 가는 왼쪽을 선호한다.
그런데 오히려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느려지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왼쪽을 피해서 오른쪽에 일단 올라섰다가 도중에 왼쪽으로 끼어드는 사람들이 많아 왼쪽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편하게 서서 갈 수도 있는데 급한 마음에 왼쪽으로 끼어 들고, 그 결과 애초에 왼쪽에 탔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정책을 살펴보면 뭐가 그리 바쁜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간혹 눈에 띈다. 최근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교사 다면평가제를 빠르면 연내에 실시한다고 한다. 능력 있고 우수한 교단 교사가 우대 받을 수 있도록 교원들의 승진 체계를 다양화한다는 차원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는 취지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고 다면평가제가 시대적 요청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로 인한 문제점 등을 얼마나 검토했는지가 궁금하다. 단순히 평가 방법에 변화가 있을 뿐, 다면평가제로 교원들의 승진체계가 다양화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부장교사와 교사가 서로를 평가한다면 그것이 현실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될지, 그러한 모습이 교직사회에 잘 어울릴지도 염려스럽다.
작년에는 올해 9월부터 외국인도 초·중·고교의 기간제 교사가 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연구·기술 등 특정 분야의 직위에 외국인을 기간제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한 국가공무원법 제26조 3항 신설에 따른 후속조치"라고 설명했다. 국가공무원법이
개정되자 교육관련법을 개정하여 타 공무원에 적용되기 이전에 교육계에 바로 적용시키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은 좋지만, 이 정책 역시 현재의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 생각된다. 현재 초등학교를 제외한 학교급에서는 교원자격을 취득한 예비교사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정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7차 교육과정으로 기간제 교사가 증가하고 있는데, 외국인마저 뛰어들면 교육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중등예비교사들의 적체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물론, 세계화·국제화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 교사를 임용한다고 해서 세계화·국제화가 실현되는 것일까. 문화와 전통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며 기간제 교사만 자꾸 늘려 가면 학교의 일반업무는 누가 할 것인가. 현직교원들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 교사가 필요한 것인가. 예전에 원어민 영어교사를 임용했더니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러한 예산으로 현직 영어교사들의 재교육에 투자한다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관련된 정책들은 많은 검토와 수정을 거치더라도 실제로 실시해보면 예기치 않았던 문제점이 발생하곤 한다. 지금까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때로는 시행조차 되지 못했던 교육정책이 많은 이유는 이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최소한 경과기관을 두고 교사들의 의견수렴을 거친 후 천천히 실시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은 많이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모두 노력하고 있다. 현장교원의 사기를 올릴 방안을 마련하고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정부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교육정책은 바쁘게 시행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고생하고 피해를 보는 학생과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너무 서두른 탓에 도리어 정체를 빚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같은 정책이 양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