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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오늘은 가을을 알리는 처서다. 가는 비가 내리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더위는 한풀 꺾였다. 위세를 떨치던 더위도 때가 되면 물러갈 줄 안다. 이제 선생님들은 가르치기가 훨씬 수월해졌고 학생들이 공부하기가 훨씬 좋아졌다. 좋은 계절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선생님, 학생들이 되면 좋겠다. 공자의 제자 중 자랑할 만큼 뛰어난 제자가 하나 있다. 그분이 바로 자공이다. 논어 학이편 15장을 보면 자공이 얼마나 부유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나중에 부유하게 되어 스승인 공자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정도였다. 자공은 자신이 가난할 때도 떳떳했고 부유할 때도 교만하지 않았다. 자공에게서 배울 점은 우선 아첨하지 않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면 배를 채우기 위해 아첨하기 쉽다. 그러나 자공은 그러하지 않았다. 이게 배울 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굴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는 자세는 정말 빛나 보인다. 또 하나 배울 점은 교만하지 않는 점이다. 자공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한 위치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았다. 돈 좀 있다고 뽐내고 자랑하고 사치하고 남을 낮게 보고 자신이 최고인 양 교만하면 넘어지고 만다. 자공은 부유할 때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더욱 겸손했다. 감사하며 살았다. 남을 높일 줄 알았다. 이런 자세도 배울 만하다. 또 하나 배울 점은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자기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랑의 손길을 베풀었다. 특히 자기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 은혜를 갚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왔다. 자기가 어려울 때를 생각하면서 어렵게 사는 이웃에게 눈을 돌릴 줄 아는 자공이었다. 이러한 점이 배울 만하다. 우리 선생님들은 물질면에서는 넉넉하지 못해도 지식에 대해서는 부유하다. 전문적 지식에는 부유하다. 선생님이 가진 것 나누어 줄 줄 아는 선생님, 자랑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게 더 많은 것을 배워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은 그럴 수 없이 좋아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배울 점은 스승인 공자께서 자공에게 더욱 독려하는 것이다. 자공도 역시 사람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스승인 공자께서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럴 때 주마가편(走馬加鞭)식으로 더욱 분발하도록 하였다.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셨다. 자공이 하루는 스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떠합니까?” 이 질문 속에는 ‘선생님,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 나를 좀 알아주십시오. 이 정도면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인품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는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마음속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공자께서는 자공이 질문을 했을 때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분발하도록 하셨다. “좋은 말이나, 가난하여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이만 못하느니라”고 하셨다. 가난할 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할 때 겸손한 건 좋은데 가난하여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친 것이다. 가난할 때 즐거워하기란 어렵다. 부유할 때 예를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런 어려운 일까지 해낼 줄 아는 완벽한 인품의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하라고 하신 것이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족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하고, 부유해도 겸손해할 뿐만 아니라 예를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나음을 가르쳤다. 아첨도 모르고 교만도 모르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찾으며 여유가 있을 때에도 윗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예의바른 사람이 되도록 공자께서 가르치셨다. 공자께서 옥석을 만들 때나 뼈나 뿔로 작품을 만들 때 들어가는 정성을 인성교육에서도 보이라는 말씀이 보석과 같이 빛난다.
지난 8월 11일부터 12일까지 대학동기 부부들이 충남 서북부지역의 문화재와 자연풍경을 돌아봤다. 어디인들 소중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만 코스를 정할 때 되도록 고속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문화적 가치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여행지를 우선시했다. 짝짝짝!!! 런던올림픽 축구경기 동메달 결정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트집삼아 바다 건너편에서 괜히 열을 내고 있던 때라 경기 내내 TV 앞에서 마음 졸였다. 우리의 태극 전사들이 투지를 불사르며 2:0 승리를 이뤄낸 덕분에 날밤을 새웠어도 정신이 멀쩡했다. 청주를 출발한 일행들이 경부고속도로와 21번 국도를 달려 처음 찾은 곳이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의 추사고택이다.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했다는 추사고택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서예가를 대표했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고택은 솟을대문의 문간채ㆍㄱ자형의 사랑채ㆍㅁ자형의 안채ㆍ추사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이루어졌고, 왼편의 야트막한 산 아래에 멋들어진 소나무가 만든 풍경이 아름다운 추사 선생의 묘가 있다.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소박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사랑채와 화단 앞쪽 중앙의 석주가 맞이한다. 사랑채는 추사가 거처하며 친교와 예술 활동을 했던 공간이고, 해시계로 사용되었던 1m 높이의 석주에 '石年(석년)'이 새겨져 있다. 뒤편으로 돌아서면 벽에 걸린 주련과 낮은 굴뚝이 맞이하고 먼발치의 추사영실까지 담장이 이어진다. 안채는 안방ㆍ건넌방ㆍ대청이 배치돼 있고, 부엌의 천장에 다락이 설치돼 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의 이동로,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로운 공간구조,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인다. 안채 뒤편의 돌계단으로 연결된 작은 문을 들어서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건물이 있다. 이곳이 추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추사영실이다. 추사영실(秋史影室)이라는 현판은 추사체의 제자인 권돈인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사당에서 바라보이는 고택의 야트막한 지붕들이 평화롭다. 추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장남으로 태어나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고 당쟁에 휘말려 떠난 제주도 유배지에서 추사 예술의 진수인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렸다. 추사고택 곳곳에서 추사가 남긴 유물과 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죽로지실(竹爐之室)ㆍ무량수(無量壽)ㆍ만수무강(萬壽無疆) 등의 편액이 방마다 붙어 있고, 추사의 글이 적힌 주련(기둥이나 벽에 장식 삼아 써 붙인 글씨)이 고택을 감싸듯 걸려 있다. 주련의 글귀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추사고택에서 백송으로 가는 길가에 돌담장이 둘러있는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 열녀문인 화순옹주 홍문(충남 유형문화제 제45호)과 묘막터, 조각공원이 있다. 김한신은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로 김정희의 증조부이고 화순옹주는 영조의 둘째 딸로 남편이 38세의 나이에 별세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의 길을 택해 정조가 열녀정문을 내렸다. 예산 용궁리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은 수령이 약 200년으로 높이가 14.5m 정도 되는 껍질이 하얀 소나무이다. 백송은 추사 김정희 일가의 상징으로 1810년경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추사가 필통에 씨를 넣어 가져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것으로 전해온다. 백송은 번식이 어렵고 잘 자라지 않아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희귀수종으로 지상 50cm에서 갈라진 세 줄기 중 동쪽의 줄기만 외로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618번 지방도로를 40여분 달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서산마애삼존불상으로 갔다. 운산면의 고풍저수지 앞에서 좌회전하면 가까운 곳에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이 있다. 가뭄으로 물이 적지만 용현계곡에 피서객들이 많아 차를 주차하기 어렵다. 마애삼존불상은 용현식당 앞 산기슭에 있어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관리소를 지나면 강한 비바람을 막아주도록 큰 바위의 아랫부분에 부조로 조각된 삼존불이 백만불짜리 미소로 맞이한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보여주는 백제시대 최고의 걸작이다. 계곡의 층암절벽에 여래입상(2.8m)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보살입상(1.7m), 왼쪽에 반가사유상(1.66m)이 조각되어 있다. 어느 위치에서 보든 개성이 뚜렷한 세 불상이 세상을 다 품은 듯 포동포동한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1400년 전에 조각한 불상의 자연스러운 생김새와 편안한 미소가 보면 볼수록 우리네 이웃을 닮았다. 불상 앞에 보호각을 세웠다 철거하는 등 그동안 마애삼존불상의 보존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중국과 교류하던 시절 백제의 도읍지 부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용현자연휴양림 쪽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보원사지를 만난다. 보원사지는 불교문화를 꽃피운 절터로 보물로 지정된 석조, 당간지주, 5층석탑, 법인국사보승탑, 법인국사보승탑비가 자리를 지킨다. 마애삼존불을 나와 좌회전해 서산 방향으로 가며 고풍저수지를 구경한다. 삼거리에서 647번 지방도로로 좌회전해 직진하면 소떼가 풀을 뜯는 목장지대와 한우개량사업소를 지난다. 개심사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목장지대 사이의 신창저수지를 지나면 운산면 신창리에 개심사 주차장이 있다. 주민들이 농산물을 파는 상가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상가 끝에 몇 년 전에 세운 일주문이 서있다. 일주문이 세워진 후에도 개심사의 진짜 분위기는 계곡 옆 산책길을 지나 작은 돌덩어리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일주문을 대신하는 두 개의 돌에 마음을 씻는 동네와 마음을 여는 절 입구를 뜻하는 '세심동(洗心洞), 개심사입구(開心寺入口)'가 써있다. 산속에서 이보다 좋은 말을 어떻게 만나겠는가. 그런데 산책로를 공사 중이라 두 개의 돌이 사라졌다. 돌이 서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세심동 개심사입구'의 뜻을 되새겼다. 백일홍이 붉게 꽃을 피우고 맞이한 개심사는 수덕사의 말사로 651년(의자왕 11)에 창건되었을 만큼 역사가 깊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ㆍ영산회괘불탱화ㆍ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의 문화재가 있고, 굽은 소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건축자재로 사용한 종루나 심검당이 볼거리다. 심검당의 벽면을 보고 있으면 기둥의 나무들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세상엔 속은 채우지 않고 겉만 화려하게 포장하면서 크기를 키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개심사에서는 고즈넉한 연못과 작은 앞마당, 낮은 축대와 울퉁불퉁한 돌계단,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배우는 화장실 등 공간에 어울리는 아담한 크기의 건물들을 만난다. 이렇게 작고 소박한 것들이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개심사에서 나와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와 가까운 해미면 읍내리의 해미읍성으로 갔다.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은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으로 해안지방에 피해를 입히던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 건립되어 병마절도사가 청주읍성으로 옮겨가기까지 230여년간 충청도의 군사와 행정을 책임졌던 곳이다. 해미읍성도 다른 옛 성들과 같이 3년 이내 무너질 경우 책임을 지도록 공사를 맡은 구역에 고을 명을 새겨 넣는 실명제를 실시했다. 실명제 실시로 튼튼하게 성을 쌓은 읍성은 밖에서는 수직의 석성이나 안에서는 비스듬한 토성이다. 당시 내 고장 청주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 성을 쌓았다니 그 고생을 알만하다. 성문에 들어서면 수령 300여년의 회화나무(기념물 제172호)와 옥사가 눈에 들어온다. 해미읍성은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고,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로 처형당한 순교성지이다. 1790~1880년대에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회화나무 가지에 철사줄로 매달아 고문했다. 옥사에서 나와 민속가옥을 지나면 동헌이다. 외삼문과 동헌, 객사와 내아를 둘러보고 뒷산으로 올라가 송림과 성벽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송림 옆 정자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더위를 식혔다. 서문 밖으로 가면 순교성지를 알리는 '순교현양비'와 병인 대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 '순교 자리개돌'이 있다. 광천IC까지 서해고속도로를 달려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의 갈매못성지로 갔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다. 갈매못은 1866년 병인박해 때 프랑스인 다블뤼 주교와 장주기 요셉 등 500여명이 처형된 곳이다. 갈매못성지가 우리나라 유일의 바닷가 순교성지가 된 사연이 있다. 고종의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면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 사형을 집행했다. 형장은 바닷가 모래밭 수군들의 훈련장이었는데 부근에 암매장 되었던 유해는 명동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975년 순교지가 확인되며 순교비가 세워지고 성지가 조성되었다. 이곳에 순교성인비, 순교터 표석, 예수성심상, 기념전시관, 승리의성모성당 등이 있다. 오천항은 주변의 산과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줘 폭풍의 피해가 없고, 조수간만의 차에 관계없이 선박의 통행이 자유로운 서해안 천혜의 항구로 조선시대 충청수영이 있어 군선이 정박하고 수군이 주둔하던 곳이다. 오천항 바로 옆 산중턱에 왜군의 침범과 이양선을 감시하던 오천성이 있다. 오천항에서 홍성군 서부면의 남당항까지 40번 국도를 달리면 보령방조제, 천북굴단지, 홍성방조제를 지난다. 남당항은 가을철이면 해마다 대하축제가 열릴 만큼 해산물이 풍부해 주변에 횟집이 많고 안면도가 바라보이는 해안경관이 아름답다. 이곳의 신토불이횟집 (041-632-8000)에서 푸짐한 회와 소주를 앞에 놓고 여행의 피로를 풀며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을 시청했다. 일본에 패해 아쉬웠지만 4위도 대단한 성과이기에 기분 좋게 술잔을 부대며 "위하여"를 외쳤다. 인근의 숙소로 향하며 첫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가방에 집착하는 여자 나는 가방을 참 좋아한다. 그렇다고 비싼 명품에 집착하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세상 일에 미련이 많아서일까? 저장 본능 같은 것이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단골 마트에서 물건을 일정 금액 이상으로 구입하면 가방을 보너스로 얹어주는 행사를 할 때면, 몇 번을 망설이다 기어히 사고 마는 집착을 보인다. 물건 자체보다도 가방에 마음이 끌려서 충동 구매를 하는 편이니 고쳐야 할 태도이다. 그렇게 해서 받은 여행용 가방을 아들에게도 주고 딸아이에게도 주었다. 친구들 모임에 가거나 직장의 친목 모임에서 여행을 갈 때에도 가장 먼저 챙기는 물건이 가방이다. 제자의 주례 부탁을 받고 제일 먼저 준비한 것도 가방이었다. 심지어 딸아이가 색다른 손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자꾸 예쁘다며 아이들처럼 귀찮게 하곤 한다. 그렇다고 쓰지 않고 둔 가방을 버리거나 쉽게 처분하지도 못한다. 그 가방에 얽힌 자잘한 이야깃거리까지 같이 버리는 것같아서이다. 가방에 대한 이런 집착은 어렸을 때 제대로 된 책가방을 가져보지 못한 탓이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마치 모유를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가 손가락을 빨거나 특정한 물건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처럼 나도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의 파랑새, 새 어머니 가방에 대한 나의 이런 애착은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어머니의 가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30년이 넘은 어머니의 작은 옷가방. 그것은 새어머니가 우리 아버지와 재혼하면서 가져오신 참 작은 가방이었다. 그 어머니는 3년 동안 홀아버지와 삶을 이어가던 우리 집에 찾아온 파랑새였다. 쉰을 넘긴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면 철없는 딸아이 대신에 따스한 저녁 밥을 지어놓고 아버지의 지친 어깨를 보듬어 준 여인이었으니 우리 집의 희망이었던 새어머니는 파랑새가 분명했다. 다만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늘 서럽고 불만이었지만 적어도 아버지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등불이었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가로 세로 50센티미터에 깊이는 10센티미터 쯤 되는 연하늘색 작은 손가방 하나를 가지고 우리 집에 오셨다. 45년이나 지난 그 가방의 모양과 색깔, 심지어 지퍼의 위치까지 장기기억의 저장고에 정확하게 기억되어 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그날은 칠월칠석이었는데 비가 참 많이 왔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놀려댔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에 결혼을 한다면서. 나는 그날 샘통을 부리면서 방 아랫목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어른들의 농담을 들으며 괜히 슬퍼했다. 사람들이 나의 친엄마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어린 마음에 슬펐던 것이다. 나이 많고 가난하고 볼품 없는 남편을 사랑한 어머니 어머니는 그 손가방을 무척 소중히 하셨다. 내 손이 닿지 않을만큼 높은 시렁에 올려놓으셔서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몰랐다. 어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손가방을 갖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곤 했지만 어머니는 늘 높이 올려 놓고 구경조차 시켜주지 않으셨다. 가난한 아버지를 따라 두 번째 시집을 온 어머니. 내 어머니와 헤어지고 3년 동안 홀로 나를 기르시던 아버지와의 만남은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큼 금슬이 좋으셨다. 아버지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어머니는 아버지 마음 하나보고 사신다며 아버지의 얼굴때문에 싸우거나 탓하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랐다. 하얀 피부에 곱상한 얼굴을 가진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뭐든지 잘 만드셨고 음식 솜씨도 일품이어서 얌전하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는 나를 가르치는 데도 엄격하셨다. 그때 겨우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음식을 하실 때면 곁에 세워놓고 설명을 하시며 요리법을 가르치고 솜씨를 가르치셨던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3학년에게 살림 가르친 독한(?) 엄마 "옥순아, 아직 어린 너에게 일을 가르치고 음식 만드는 법까지 배우게 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울지 모르지만 네가 커서 성공하여 다른 사람을 부릴 때에도 네가 알고 시키는 것과 모르고 시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단다. 그리고 여자가 부지런해야 살림이 모이는 법이다. 밥태기 하나라도 구정물에 버리면 죄 받는다. 음식이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지. 너희 아버지가 일터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해서 벌어온 돈으로 사들인 쌀인데 한톨이라도 버리면 되겠냐? 자고로 여자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하는 법이다. 어디 가서 놀면서 해넘는 줄도 모르면 안 되지. 시집을 가더라도 시댁에 가면 제일 먼저 설거지통을 가까이 해야 한다." 열살 남짓한 어린 내가 알아 듣지도 못할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게 읊으시던 어머니의 신부 수업(?)은 그렇게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어머니는 야박하리만큼 나에게 일을 가르치셨다. 설거지를 해놓으면 밥 그릇 둘레를 손가락으로 만져 보시며 행여나 덜 씻어졌나 확인하시곤 했다. 어머니 맘에 들 리가 없던 어린 소녀는 그런 엄마가 팥쥐엄마 같았고 나는 콩쥐라고 생각해서 늘 몰래 울고 다녔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듣던 잔소리를 내 딸아이에게 그대로 반복하는 내 모습이 튀어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웃곤 한다. 오히려 딸아이를 아낀다며 잔소리 대신 내가 다 해주는 바람에 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하는 것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그 당시에는 시집올 때 혼수품목으로 재봉틀이 손꼽혔지만 가난한 신부였던 어머니는 재봉틀 대신 손으로 옷을 잘 지으셔서 옷도 잘 만들어 입으셨고 내 옷도 잘 지어주셨다. 바느질 솜씨와 요리 솜씨가 뛰어난 어머니는 얌전하셔서 살림 밖에 모르셨으니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그 어머니는 성질이 급하셔서 느려 터지고 고집도 센 나와 정반대라서 그게 문제였다. 그래도 어머니께 느리고 고집부린다고 매라도 맞으면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눈물을 감추는 지혜로움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얻곤 했다. 내가 울고 있으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더러 영리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걸 보면 미련퉁이는 아니라며 동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추켜 세워 주시곤 했다. 이제 생각하니 우리 부모님은 '미녀와 야수' 커플이었던 것같다. 마술이 풀리지 않고도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하며 가난하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쉰을 넘긴 한 남자를 극진하게 사랑한 어머니. 가난한 남편의 수입을 쪼개어 쓰던 어머니는 살림의 지혜가 빛났던 분이었다. 어쩌다 소고기 한 근을 사 오면 그것을 볶아서 시원하게 갈무리하여 일주일 동안 아버지의 조반상에 조금씩 국으로 끓여 내놓는 현명한 부인이었다. 아끼고 모으는 전형적인 아내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은연중에 나도 배우고 있었다. 외모로 보아서는 여자들의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아버지의 외모는 젊어서 병치레로 얼굴 중에서 외모를 결정짓는 잘 생긴코 모양이 정상인들과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미남이셨던 아버지가 젊어서 병을 얻어 코를 상하신 후 인생을 포기하려고까지 하실만큼 치명적이었다. 철없는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부형 총회 때 아버지 얼굴을 보고 친구들이 놀려대는 게 싫어서 늘 숨어버리곤 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엄마들이 학교에 나오는데 우리 집에서는 다른 집 아버지들보다 훨씬 나이 들고 코 모양까지 보통 사람들과 달랐던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는 날은 복도 쪽을 내다보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철없는 딸이었다. 오직 친구들의 놀림이 부끄럽고 싫었던 초등 학생이었던 나에게 아버지의 자상함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선생님을 존경한 멋진 아버지의 교육 방법 학교에서 회의가 있거나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는 날은 일도 나가시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주신 아버지의 교육열은 박수를 받아 마땅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불효자식이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고 하면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잉어튀김을 하여 술상을 차리게 하셨고 소풍을 가는 날에는 아버지가 즐겨 피우시던 아리랑 두 갑을 꼭 싸서 갖다드리라시던 아버지. 아버지가 가장 많이 고개를 숙이던 유일한 분은 나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어렸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우리 선생님인 줄 알았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아버지도 꼼짝 못하고 인사를 공손히 하는 분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교직이나 선생님을 우습게 보거나 자식들 앞에서까지 선생님을 험담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심지어 중학교를 시험을 쳐서 가던 그 시절에 아버지가 원하는 중학교에 원서를 내야 진학시킬 수가 있으니 도시로 원서를 내면 좋은 중학교에 합격이 되더라도 집안 형편상 학교를 보낼 수 없다며 발이 닳도록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설득을 하시면서도 내 앞에서 선생님을 원망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이제 생각하니 아버지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선생님을 그처럼 위하고 존경했던 것이리라. 결국 나는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도시 학교로 원서를 낸 선생님의 뜻대로 입학시험을 보았고 합격했으나 진학하지 못한 채 가방끈이 짧은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시절에는 책가방이라기보다는 책보자기가 전부였다. 친구들의 멋진 빨간 책가방이 부러웠던 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멋진 교복을 입은 여중학생이었던 친구들이 가지고 다녔던 의젓한 책가방은 부러움을 넘어 집착으로 변질되었으니, 사춘기를 지나던 소녀의 가슴 속에는 '나도 배우고 싶다'는 간절함이 나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주경야독의 길을 찾아 서울 길을 떠날 때 어머니는 가장 아끼는 물건인 그 손가방을 선물로 주셨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손가방 속에는 책 몇 권과 성경, 속옷 한 벌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나를 집안을 일으키는 기둥으로 여기셨고 서울로 돈을 벌러 떠나는 나를 보내시며 하염없이 우셨던 1974년 5월 8일. 20개월 동안 식모살이를 하며 월급을 모아 세 식구가 살 전셋방을 얻어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나는 어머니의 손가방을 몇 배나 큰 가방 속에 담아서 귀향했다. 그 어머니가 가르치신 대로 주인 집의 살림을 잘 해냈고 알뜰히 모은 월급으로 강의록을 사서 독학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젊은 날의 내 가슴 속에는 늘 어머니의 손가방과 내가 갖고 싶었던 책가방이 있었다. 젊어서 고생한 덕분에 잘 이겨낸 세월 비록 친구들처럼 당당하게 정규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주경야독의 길로 돌아와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었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였고 한 발 더 나아가 통신대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교사 자격증을 획득하였으며 순위고사를 치르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까지 얻었다. 교단에서 내려서는 그날부터는 가장 좋아하는 분야의 박사 학위에 도전할 생각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배우는 자로 살고 싶다. 나는 아직도 책가방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 퇴근 후에는 도서관에 들러 독서 활동을 하곤 한다. 서점에다 주문해 둔 새 책을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어린 시절 부족했던 책가방에 대한 포만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이승의 문을 지나 먼저 가신 저 세상에서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슴에 안으신 채, 언젠가 만나게 될 추억의 손가방을 들고 나를 기다려 주시리라. 나를 낳아주신 친어머니가 내 육신의 어머니라면 길러주신 어머니는 나를 가슴으로 낳아주신 분이다. 친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지만 새어머니는 늘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분이다. 그 어머니가 가신 음력 3월 보름에는 어머니가 그토록 소중히 하셨던 그 손가방과 꼭 닮은 가방을 하나 사야겠다.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인생의 희망을 걸고 지극히 믿어주셨던 어머니의 비원을 담아주셨던 그 손가방 덕분에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 동안 생각을 갈고 닦는 일에 목말라 하는 지도 모른다. 늘 채웠다가 비우는 연습을 하며 주인의 의지에 따라 용도가 바뀌는 손가방. 어머니는 비록 나를 몸으로 낳아주시지는 못했지만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나를 끔찍히 아끼신 분이었다. 그 마음을 담아 슬픈 서울 길에 당신을 대신하여 딸려 보낸 손가방에 마음을 담아 나를 지켜 주셨던 내 어머니! 먼 후일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그 날, 지상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딸노릇을 다하렵니다. 그 때는 어머니, 당신의 손가방에 제 마음과 영혼, 가슴까지 가득 담아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겠습니다.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 "사랑해요! 내 어머니! 그리운 내 어머니! "
심재근의 우리 땅 순례 황강(1) 덕유산:황강의 발원지~거창군 북상면 덕유산서 솟은 샘물은 삿갓골 타고 황강 물줄기로… 황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8월은 자연이 주는 생명의 용틀임과 형형색색 화려한 꽃들이 시샘을 하듯이 활짝 피어 있었다. 강은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을 이룬다. 강의 발원지를 찾아나서는 길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줄거움이 있다. ◇ 삿갓골·황점 황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에 2007년 4월 남강의 발원지를 답사할 때 인연을 맺었던 남덕유산 아래 조산마을에 사는 표경대(77)씨를 찾았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무로 공예품을 만들며 농사를 짓고 욕심 없는 농부로 자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아껴 두었던 고로쇠물을 따라 주며 하루쯤 쉬어가라고 했다. 늘 쫓기듯 사는 일상이라 사양을 하고 남덕유산과 월봉산을 가르는 남령을 넘으니 황점마을이 반겨주었다. 황점마을에서 삿갓샘이 있는 대피소까지는 10리가 조금 넘는다. 마을 입구에서 쉼터바위까지 2.42km이고 다시 마지막 계곡까지 0.97km이다. 계곡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는 0.81km이니 동절기에는 오후 4시 이후에는 산행을 통제한다고 나무판에 운치 있게 새겨 놓았다. 젊은 시절이라면 늦은 시간이지만 과욕을 부려 다녀오겠지만 해가 저물어 중간에서 하산을 했다. 덕유산 삿갓봉(해발 1400m) 부근 삿갓샘에서 시작된 황강의 물줄기는 굽이굽이 삿갓골을 타고 내려가며 작은 폭포를 만들고 맑은 물줄기를 시원스럽게 흘리며 깨밭골과 만나게 된다. 삿갓봉은 덕유산 다섯 봉우리 중에서 가장 낮은 봉우리이다. 빛바랜 앨범을 뒤져 보니 1994년 12월 18일 덕유산 향적봉에서 주능선을 따라 일행들과 삿갓봉을 지나갔던 기억이 새로웠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붐볐을 황점마을에는 텅빈 버스만 다녀갈 뿐 산골 마을의 한가로움이 가득하였다. 시원한 계곡을 찾아온 피서객 차량들로 붐볐을 주차장도 비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북상 13경이 지도로 제작돼 부착되어 있었고 부근에는 검은 오석으로 새겨 놓은 효행비가 눈길을 끌었다. 마을 도로변에 의사 박공삼형제 항일사적비가 세워져 있었고 비석에 새겨진 후손의 추모시가 잠시 발길을 머물게 한다. ◇ 갈계리 삼층석탑·송계사 황점에서 여러 계곡 물이 모여 월성천으로 이름을 바꾼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거대한 바위의 형상이 인위적으로 쌓은 돌탑처럼 4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 사선대를 만난다. 거창군지에 의하면 1909년 10월 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위천에 사는 승지를 지낸 정태균의 집에 한 달간 머물렀다. 이곳에 의병기지를 만드려고 막사 터와 훈련장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땅을 매수하다가 탄로되어 일본 헌병에 의해 서울로 호송되었다. 사선대의 뜻에는 임금의 집안을 기린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고 바위 사이에 촛불을 켜놓은 흔적들이 민간신앙의 장소였던 것 같았다. 거창군 북상면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서면 농산리 673번지에 모리재라고 하는 재실이 있다. 정온 선생은 1637년 인조왕이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는 화의를 하자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으나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낙향해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은거했다. ◇ 갈계리 임씨고가·서간소루 논에는 입하를 지나면서 못자리 준비를 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북상면 소재지에서 1001번 지방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고가들이 보인다. 갈계리 임씨고가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갈천 임훈(1500~1584)의 옛집이다. 1555년(명종 10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80세가 넘은 아버지를 모시며 살았다고 한다. 이 집은 솟을삼문을 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각각 독립적인 一자형 건물을 이뤄, 전체적으로 ‘三’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경남 지방의 옛 주택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임씨고가는 홍살 정려문과 그 문의 기둥을 떠받친 거북 모양의 주춧돌이 매우 특이하다. 서쪽 담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집은 임운(1517~1572)이 살던 곳이다. 서간소루는 서간 임승신이 학문과 덕행을 닦던 곳이다. 이곳 갈계리 일대는 임씨의 동족마을로, 서간소루는 마을의 종가격인 임씨 고택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간소루는 대문채와 사랑채만으로 이루어진 특징을 보이는데, 살림채가 없는 것으로 보아 본래 임씨 고택과 같은 울타리 안에 있던 주거공간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선대 ◇ 사선대·모리재 길게만 느껴질 것 같은 봄날의 하루도 점심을 놓치며 답사를 했지만 짧기만 했다. 여행은 늘 여유가 있어야 하고 유유자적하는 마음이라야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는 임씨고가를 나와 송계사 방향으로 나오면 탑불 마을로부터 약 200m쯤 떨어진 도로변 옛 절터에 갈계리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폐사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경작지로 변해 절의 흔적을 찾기도 어려웠다. 절의 내력을 전해주는 사료가 없어 지역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이 탑은 사각형으로 된 이중의 받침대를 두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일반 석탑 양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간략화된 기법이 고려시대 이후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주기도 한다. 탑의 각 몸체에 모서리 기둥을 조각했을 뿐, 그 밖에 별다른 조각은 없었다. 시골길의 한가로움을 따라 송계사로 향했다.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깊은 골짜기에 있는 송계사는 절보다 계곡이 아름다워 피서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앞에서부터 이어지는 숲길은 예전에 등산을 하면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길이다. 계곡을 따라 산길로 가면 덕유산 향적봉으로 가는 이십 리 길이다. 송계사는 원효와 의상이 652년(진덕여왕 6년) 영취사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많은 고승들이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포근한 흙마당이 있는 절 입구에 석종형 부도 2기가 있었다. 송계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이 송계암을 중건했다. 6·25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중창했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 종각·공사 중인 요사채 등이 있다. 지난 5월 3일 화재가 발생해 소실된 진주 성전암에 20년 동안 머물렀던 주지 반야스님과 총무 무예스님, 공양주 보살까지 송계사에 있었다. 무예스님은 얼마나 검소한지 성전암에 있을 때 수박 껍질을 얇은 부분만 깎아 내고 드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스님과 녹차를 앞에 놓고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덕유산 자락으로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행복한 망중한이었다. ☞맛집 남덕유산 대표 산나물집(박영점): 산나물정식, 산나물비빔밥, 한방백숙, 메밀파전, 옻닭.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1710-5. ☏ 055)944-5351.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자연의 산나물, 야채 등을 이용한 청정한 재료로 건강식을 제공하고 있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와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마산제일고에서는 7월21일부터 8월19일까지 30일 동안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전교학생들과 교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학식을 하였다. 학교장은 훈화를 통해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2학기에도 학력향상에 노력해 줄 것을 부탁했다.
경북 구미 도리사(주지 법등스님)가 학교폭력 가해자, 피해자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마음나누기 템플스테이’가 인성교육 측면에서 인내심, 공감능력 향상에 긍정적 효과가 있어 일선학교와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구미경찰서 요청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매월 첫째, 셋째 주말 1박2일 일정으로 실시되고 있다. 도리사 포교국장 인법스님은 “템플스테이는 쉼과 느림의 가치를 배우며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며 “예불 등의 종교의식은 최대한 배제해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도 거부감 없이 공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과정을 그려보는 ‘생애주기 곡선그래프 그리기’, 무거운 것을 주고받으며 친밀감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는 ‘울력’, 소리의 울림을 통해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일깨우는 ‘타종 명상’, 부모와 자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마주보며 108배하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호응이 높은 프로그램은 ‘마주보며 108배하기’다. 이 프로그램은 가해자와 피해자 학생이 서로 마주보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108배를 하면서 원망하고 미워했던 감정이 해소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부모-자녀 108배의 경우 부모가 먼저 자녀에게 108배를 한 뒤 자녀가 부모에게 108배를 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처음에는 왜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지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지만 108배를 하면서 그동안의 응어리가 풀어져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인법스님은 “학교폭력 가담 학생들은 대부분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변화하려는 욕구도 갖고 있으나 문제아로 낙인찍혀 긍정적 의지가 가로막히는 상황을 많이 봤다”며 “견성성불(見性成佛:본성을 보면 부처가 된다는 말로, 본마음을 깨치면 바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뜻) 관점에서 학생들이 참 자아를 찾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템플스테이 참여 학생은 “사건의 내막은 듣지도 않고 가해자를 무조건 범죄자 취급하며 과거 잘못에만 치중해 오히려 상처를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면서 “이 프로그램은 내면을 이해해주면서 스스로 깨닫게 도와줘 그간의 분노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현재 도리사 템플스테이는 폭력사건이 발생한 경우 해당 학교 교사의 권유로 참가가 이뤄지고 있으나, 학교폭력을 겪고 있거나 고민이 있는 학생․학부모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있다. 문의=도리사 연수국(054-474-3877)
“2005년 극단 동료였던 배우 故이은주 씨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자살’에 대한 유가족의 고통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기로 결심하고 줄곧 장애우, 청소년들을 위한 연극을 무대에 올려왔습니다.” 학생들의 자살을 예방하고 생명존중 인식을 확산하기 위한 무료 연극 ‘놀이터에 불을 켜라!’가 내달 13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아트센터K에서 열린다. 이번 연극의 창작부터 기획, 연출까지 직접 진행하고 있는 이상철(사진․50) ‘극단버섯’ 대표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무료공연을 고집해온 터라 어려움은 크지만 교총에서 학교에 안내공문을 발송해 주고 후원금도 지원해줘 큰 도움이 됐다”는 이 대표는 “학생들이 연극을 보고 자살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놀이터에 불을 켜라’는 2010년에 초연된 작품으로 1편 ‘병실에 불을 켜라’에 이은 시리즈 작품이다. 1편은 ‘자살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주제를 다뤘다면 2편은 ‘자살 유가족에 대한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자살이나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방법은 세미나, 책, 교육채널 등 다양한 인프라가 있지만 연극은 직접적인 영향력이 있고 친구들끼리 전파하면서 피라미드효과가 발휘되는 장점이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시쳇말로 학생들에게 ‘먹힌다’는 의미다. “실탄발사와 같은 특수효과나 감동, 반전요소 등을 사용해 집중력을 높인 후 강렬하고 자극적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학교에서 가라니까 시간 때우기 위해 극장에 앉았던 학생들이 깜짝 놀라 집중하게 됩니다. 일종의 충격요법 같은 것이죠.” “20대 시절 우연히 배우가 꿈인 불우청소년들을 가르치다가 재능기부에 관심을 갖게 돼 지금까지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이 대표의 꿈은 서울에 자살예방 문화공간을 만들어 보다 직접‧지속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자살예방도 조기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많은 선생님들이 수업의 일환으로서 제 연극을 찾아주셔서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씻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일시: 9월13일~25일|장소: 대학로 아트센터K|신청기간: 9월14일까지(선착순 예매, 단체신청만 가능)|신청방법: e-mail: 93049306@naver.com 후 010-9198-3203으로 전화|14세 이상 관람가|전석무료|cafe.naver.com/mushroomplay
“국회 교과위는 해당 교육감을 문책하고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한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하라.” 21일 국회도서관에서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주최로 열린 ‘학교폭력 없는 교육 실제와 대책’ 토론회에 참석한 신순갑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는 학생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재를 거부하는 교육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신 이사는 “최근 인권위의 ‘가해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권고에 따라 ‘가해학생 생활기록부기재 정책’에 전국적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며 “시도교육감 인식에 따라 학교폭력정책 시행의 편차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해당 교육감을 문책하고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한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하가”고 촉구했다. 구본용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원장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문제점을 짚었다. 구 원장은 “사안이 발생할 때 TFT처럼 모이다보니 내부인사를 제외하고는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심의까지는 하지만 이후 조치에 대해서는 개입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와 학교의 이중관계’도 자치위 운영의 어려움도 지적했다. 가해학생이든 피해학생이든 학부모는 학교 입장에서 고객과도 같은데 징계 혹은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학교가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구 원장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구체성과 강제성을 강화해 형식적으로 흐를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며 “지역사회 청소년 통합지원체계(Community Youth Safety-Network)를 확대하고 청소년을 지원하는 모든 기관․단체가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현청(한양대 석좌교수) 글로벌교육포럼 회장은 학교폭력예방과 대처방법으로 학급 내 학생간의 친소관계를 파악해 급우 간 호오(好惡)도를 재조정하는 ‘순환모델기법’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순환모델기법은 교사와 학생 중 선발된 리더가 친한 급우와 소원한 급우를 팀으로 묶어 공동작업 등을 반복․순환적으로 시켜 가해‧피해학생 간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라며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고 사전교육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밖에도 역할극이나 대화법을 교육해 습관적인 태도를 기르는 KAP(Knowledge-Attitude-Practice)모델,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관 속에 들어가 보는 등 생애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인권 친화적 인성을 형성하는 ILM(Impact Learning Model)모델, ‘기회의 학급’이나 ‘기회의 학교’를 마련해 가․피해자가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하는 일종의 ‘쉼터’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
與 경험부족, 적극성 결여… 수적 열세까지 野 교과서·대학등록금·사분위 등 적극 공세 19대 국회 초반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교육 분야에서 야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이 연일 대정부 공세를 펼치고 있는 데 비해 여당 의원들은 소극적 자세로 원론적 내용만 반복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게다가 최근 현영희 의원이 공천비리 혐의로 새누리당에서 제명되면서 수적으로도 밀리는 상황이 됐다. 지난달 12일 교과부 첫 업무보고부터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도종환 의원 관련 교과서 파문이 터지면서 야당은 교육과정평가원장 사퇴와 교과부 장관 사과를 요구하는 등 국정감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하게 정부를 압박했다. 대학등록금 부담해소 정책, 사학분쟁위원회, 시도교육청평가 등에 대해서도 공격적 질문을 이어갔다. 21일 2011회계년도 예산 결산을 위해 열린 전체회의에서도 야당은 학교생활기록부 인권위 권고 문제와 성폭력 가해자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문제, 사분위 결정 등을 놓고 공세를 벌였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18대 국회의 과제를 원론적 수준에서 재론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야당 공세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도 없었고 참석율도 낮았다. 교육용 전기료 인상 문제 등 현장성 질의를 하기도 했지만, 다수 여당의원이 법안발의까지 하는 등 교원들의 기대를 모았던 교권보호 등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원 구성 때부터 이미 예정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여당 측 의원 상당수가 교육전문가가 아닌데다 초선의원 비중도 높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초중등 교육전문가의 부재는 큰 약점으로 지적됐다. 황우여 대표 등 당직자와 타 위원회 겸직자가 많다는 점도 부실 우려를 샀다. 문제는 교과위가 야당 일변도로 운영될 경우 정부 교육정책의 안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 정부와 야당의 시각차가 큰 상황에서 여당이 완충역할을 하지 못하면 교육정책에 큰 혼선이 발생, 그 피해를 고스란히 현장이 떠맡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교총 관계자는 "학교폭력 등 교육현장에 많은 이슈가 산적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데, 교과부와 교과위 마저 불협화음을 일으킬 경우 걷잡기 힘든 파국이 예상된다"며 "여당인 새누리당이 교육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교사 연수 강화, 원어민교사 탐방도 지원 울릉도 도로 연결, 문화·예술 有人島 추진 “독도가 역사·지리·국제법적으로 우리 땅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 땅이냐는 물음에 논리적 설명을 잘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도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동단 영토 독도가 일본의 생떼 쓰기로 위협 받고 있는 가운데 19일 대통령 명의의 표지석 설치로 큰 관심을 모은 김관용(사진) 경북도지사. 표지석 설치 후 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다는 김 지사는 "독도 지키기는 관심과 지식에서부터"라며 경상북도에서 펼치고 있는 정책을 소개했다. “미래를 책임질 학생 교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교육청과 함께 초등 5, 6학년 독도교과서를 만들어 수업을 의무화했고, 독도수호중점학교 2개교를 지정해 미래 독도 지킴이로 양성중입니다. 반크와 함께 개설한 사이버독도사관학교에서는 5만 명이 넘는 사이버 독도수호대가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독도 탐방', '독도 박물관 견학' 등 연수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매년 전국 역사·지리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원어민 교사들에 대한 독도 탐방도 지원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 지사는 "영유권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효적 지배"라며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주력하고 있는 것은 독도 유인화(有人化)와 울릉도 개발로 이미 1조82억 규모의 사업이 확정·진행 중에 있다. “앞으로는 문화에 집중 투자할 생각입니다. 이미 지난해 이영희 한복패션쇼, 김장훈 독도콘서트가 열려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지요.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70년대 세시봉 공연, 독도문예대전, 음악회와 같은 문화예술 공연이 이루어지는 섬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실질적으로 우리 민족의 삶이 이루어지는 섬, 독도로 국제사회에 인식되도록 할 것입니다." 독도의 어머니섬인 울릉도로 연결되는 교통망을 확충하고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영토수호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할 계획도 내놨다. 일주도로 공사를 50년 만에 재개해 2016년에 완전 개통될 예정이다. 울릉항 확장과 울릉공항 개설도 준비 중이며 전기자동차 보급 등을 통해 독도를 그린에너지로 자급하는 세계적 녹색섬으로 가꾸어 나갈 계획이다. "소리가 조금 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도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일본의 망언망동에 흔들리지 않고 계획대로 영토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복수담임제가 2학기부터 자율실시로 바뀐다. 22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담임교사 운영제도 선진화방안’에는 ▲복수담임제 개선 ▲교사의 상담영역 명확화 ▲담임수당 인상 ▲학습연구년제 대상 선정 시 담임경력 포함 등 지난 7월말 교총이 제안한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 7월30일자 참조 담임교사 역할과 운영은 학교장 자율권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화된다. 담임의 역할은 학교 실정에 따라 학교장이 기준을 마련하되 학생상담은 의무화된다. 복수담임의 경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학내 구성원 협의를 거쳐 담임제도 운영유형, 실시대상 학년과 학급 수 등을 판단하는 등 운영 방식을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교과부 교원정책과 정성훈 사무관은 “중2뿐 아니라 초중고 어떤 학년, 학급에도 복수담임을 둘 수 있다”며 ”집중관리가 필요한 학년의 경우 담임 1인당 학생 수를 15~20명으로 낮춰 학급편성을 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이 같은 담임교사 역할 및 운영을 명확히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27일 입법예고한다. 처우도 개선한다. 담임수당 인상(11만 원→20만 원), 학교폭력해결 기여한 교원에 대한 가산점 부여와 학습연구년제 대상 교원 선발 시에도 담임교사에게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정 사무관은 “담임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담임수당이나 가산점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올해 639명이었던 학습연구년 교사를 내년에는 1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며, 교총과 교과부 교섭사항인 담임수당 현실화를 위해 행안·기재부를 대상으로 사활을 걸고 협상 중이다. 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교총과 현장의 요구를 수용한 조치를 환영한다“면서도 “학교폭력과 생활지도 부담 등으로 인한 담임기피현상을 완화하려면 무엇보다 사기진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상담 의무화는 법령 개정만으로는 어렵다”며 “행정업무경감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교총은 업무경감과 사기진작을 위해 ▲학생안전사고 관련 원스톱서비스 도입 ▲담임 및 생활지도업무 경력 공모교장 지원 자격 요건 포함 ▲성과급평가 시 담임업무비중 상향 등을 추가 제안했다.
2013학년도 수능원서 접수가 8월 22일부터 전국 85개 시험지구 교육청과 일선 고등학교에서 시작됐다. 원서 접수 첫 날 서부교육지원청에는 응시원서를 접수하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수능 응시원서 접수는 9월 6일까지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언제나 좋다. 비는 곧 생명이다. 물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이번 여름 여행지 중의 하나인 LA가 생각난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아 사막 아닌 사막이었다.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그 많은 산들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고 모래산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이다. 나무로 우거진 산이다. 식물이 싱싱하게 잘 자라는 나라다. 모두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 때문이다. 축복 받은 땅이 바로 우리나가 아닌가 싶다. 비가 올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논어의 가르침을 묵상해 본다. 논어 학이편 제13장에는 공자의 제자인 유자의 가르침이 나온다. 유자도 인성교육에 중점을 뒀다. 유자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바른 사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신실함과 공손함과 친근함의 세 가지의 미덕을 지녀야 한다고 하셨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선생님들이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닐까 싶다. 먼저 유자께서는 신실함이 있어야 함을 가르쳤다. 신실함은 친구와의 관계이다. 나아가 모든 사람과의 관계이다.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신실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선생님, 정의롭지 못하면 아예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음을 가르치고 있다. 약속 어기는 것을 예사로이 하면 신뢰가 떨어진다. 약속을 지키기 어려우면 아예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학생들은 믿음직스러운 선생님을 좋아한다. 약속을 잘 지키는 선생님을 존경한다. 바르게, 진실되게, 신실하게, 정의롭게 살아가는 선생님을 따른다. 학생들은 너무나 민감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작은 실수 하나라도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는다. 작은 실수 하나만 가지고 선생님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작은 실수 하나까지 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약속에 대한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으면 그 때부터 친구와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만큼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가 깨지면 더 이상 친구와의 약속을 할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 친구뿐만 아니라 대인관계가 잘 유지되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또 유자께서는 공손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공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겸손이 몸에 배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보고 배운다. 공손한 선생님을 보고 학생들도 모든 사람에게 공손하게 대하고 예의 바른 학생으로 자라간다. 학생들은 공손함을 말보다 행동으로 배운다. 선생님의 공손한 태도를 보고 공손하게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 줄 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도 공손하게 예를 다하고 윗사람에게도 그러하고 선생님에게도 그러하고 선배에게도 공손하게 대한다. 이게 바로 사랑의 실천이다. 공손함은 윗사람과의 관계이다. 선배와의 관계, 웃어른과의 관계다. 윗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공손함이 몸에 배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배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고 윗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유자께서는 친근감이 있어야 함을 가르쳤다. 특히 원로와의 관계에서 친근감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원로와의 관계가 원만해지려면 친함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원로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원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친근감을 가지는 것이 좋다. 친근함이 없으면 학생들은 따르지 않는다. 기대지 않는다. 믿음이 가고 친근하면 오라고 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곁에 오게 되어 있다. 친근한 분은 언제 봐도 사랑이 넘친다. 기쁨이 있다. 얼굴이 밝다. 자상하다. 웃음이 있다. 그러기에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존경을 보낸다. 의지한다. 무엇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는다. 가두어두지 않는다. 정이 들대로 든다. 자주 얼굴 보기를 좋아한다. 언제나 호감을 가진다. 친근감을 배운다.
147번, 805번 법칙 성공의 법칙 중에 147번, 805번 법칙이 있답니다. 147번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까지 실패했던 숫자이고, 805번은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오르기까지 실패했던 숫자랍니다. 우리는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실패 앞에서는 금방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그것도 몇 번의 실패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만 불행한 것 같고 실수하는 것 같아 속상해합니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 링컨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까지 성공한 일보다 실패한 일이 훨씬 많은 인물입니다. 더구나 그의 실패를 같이 나누고 아파해주어야 할 아내로부터는 늘 무시를 당하고 면박을 당할 만큼 불행한 가족사를 지닌 인물이라서 더 연민이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에게 감동하고 열광합니다. 런던 올림픽을 응원하면서 선수들의 성공에 함께 기뻐하고 그들의 좌절에 함께 가슴 아파하는 것은 동변상련의 공감 능력에서 기인합니다. 예를 들면, 가난을 딛고,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부모님을 위해 훈련비 전액을 드리는 체조의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단 4초의 도약을 위해 그가 쏟은 엄청난 노력은 성공의 법칙 147번, 805번을 능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선수가 보여준 성공 뒤에는 인간적인 겸손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감동 스토리가 깔려 있기에 더욱 감동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법칙 중에는 1만 시간 법칙이나 10년 법칙도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이라는 타이틑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쌓기나 10년 동안 몰입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피눈물을 흘리고 철저하게 망가지면서도 다시 일어서서 내면의 자신을 향해 무조건 긍정하는 적극적 자세로 버틴 사람에게 다가오는 기적 같은 순간의 불꽃으로 승화되어 나타납니다. 그 절정적 체험을 거치며 얻은 자신감은 곧 자존감으로 연결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런던 올림픽이 끝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지면을 채우는 소식들은 어두운 소식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힘을 주고 용기를 주며 감동을 주는 소식에 목마릅니다. 그러기에 그 갈증을 채워주는 스포츠에 열광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새벽잠을 설치며 대한민국을 응원했던 마음으로 이제는 스스로를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내 인생의 트랙 위에서 나를 응원해 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잊지 않고 새 아침을 맞을 때마다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나의 존재는 온 우주와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날마다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학기를 맞는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으로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으로 무장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방편을 스스로 찾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이겨내야 하는지 실패를 거듭한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를 담은 위인전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어제의 내 모습보다 지난 달의 내 생각보다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진로를 계획하고 글로 써서 수첩이나 휴대폰의 바탕화면에 저장하여 스스로를 격려하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으로는 늘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어제의 나를 거울로 삼아 전진하는 마음가짐을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감사수첩을 써서 늘 가지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부정적인 생각의 틀에 박히면 감사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의 장점만 보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초라하게 보는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성공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릴 힘이 부족합니다. 날마다 감사할 목록을 쓰다 보면 누구에게나 참으로 많은 것들이 감사할 일임을 알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을 감동시켜서 새로운 에너지를 품게 합니다. 외부에서 붙여주는 에너지는 금방 사라지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튀는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는 에너지를 지니므로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감사하는 순간 온 우주의 중심이 자신을 향하며 나 자신이 자석이 되어 좋은 일들이 꽃을 찾는 나비처럼 따라오게 됩니다. 새로운 학기를 여는 9월을 준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으로 나 자신부터 무장하여 교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할 일들을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설렙니다.
소방방재청은 오늘 전국 읍 이상 도시지역과 경보가 설치된 면 지역, 서해 5도와 접경지역 등에서 동시에 15분 동안 주민이동과 차량을 통제하는 민방공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같은 갑작스런 도발이나 공습에 대비하는 정부훈련인 을지훈련과 함께 진행되었다.
대전청소년적십자RCY(高)지도교사협의회(회장 송인철)는6일부터 8일까지 2박3일간 일정으로 백제문화 알리기(공주시,부여군)를 진행했다. 이번 제3회 슈퍼글로벌 리더 프로젝트는 민간 외교사절로 대전시 관내 서일여고,대신고,송촌고,명석고,이문고 6개학교 지도교사 및 학생들이 일본현지에서 백제문화 및 관광상품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USJ)에서 공주시와 부여의 아름경관이 담긴 팜플릿과 관광 DVD를 전달하면서 좀 더 많은 백제문화유적지(공주시,부여군)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오사카/나라/교토를 순회하면서 글로벌 인간관계를 함양하고 상호문화 이해 및 체험으로 한류열풍에 따른 한국의 경제, 문화,관광을 널리 알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갖춘 진정한 리더가 되도록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서일여자고 1학년 유하영 학생은 "백제문화 및 공주시,부여군 관광상품 알리기 봉사활동을 통해 일본인들이 백제문화를 많이 접하고 알 수 있는 계기되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제3회 슈퍼글로벌 리더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신 청소년적십자 대전,세종,충남본부장 및 직원여러분 공주시청,부여군청 관계자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교과부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해서 해당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훈령을 바꾼 것은 궁여지책 이었을 것이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발전하던 시점에서 아무리 처방을 내려도 줄어들기는 커녕 각종 대책을 비웃기라고 하듯 학교폭력이 계속해서 증가했기 때문에 어쩌면 극약처방 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분위기로 볼때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폭력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했던 것이다. 물론오래전에 학교에서 처벌을 받더라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훈령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분위기가 되었었고 지금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처방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학을 받더라도 처벌은 하되 그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학생을 지도해도 지도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학교폭력 문제는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갈수록 심각하게 발전하는 학교폭력 사태를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고, 각종 근절 방안을 내놓아도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예전에 이미 사라졌던 폭력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부활시켰던 것이다. 새롭게 훈령을 내린 것이 아니고 부활시켰다는 것쯤은 교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남다른 교육열을 활용해 보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훈령이 개정되어 시행에 들어갔지만 일부 진보교육감 진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른바 학생인권조례를 앞다투어 제정했던 시,도 교육청들이다. 인권을 앞세워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있다.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교과부의 판단에 따를 문제임에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다소 잠잠해진 틈을 타서 진보진영의 교육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경우까지 있다. 교과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계속해서 추진할 뜻을 강력히 내비쳤고, 거부하는 시,도교육청에 대해서는 감사까지 하겠다는 것이 교과부의 방침이다. 감사까지 하겠다는데 그래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시,도교육청들이 있다. 학교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은 평행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생각이다. 기록을 하도록 한 것은 교과부이고, 기록을 거부하는 것은 일부 시,도교육청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학교폭력 사건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기재거부에 앞장서는 시,도교육청들은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국민여론이 그들을 가만히 놔둘리 없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비춰볼때 폭력사실 기재가 정당화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노력에 누구나 공감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의 학교폭력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보다 그 기재 사실을 상급학교에서 문제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학교에서 문제삼지 않을 수도 있다. 관련 사실을 입시에 반영하느냐 안하느냐는 해당학교에서 결정할 문제이다. 상급학교 입시에 반드시 반영하라는 지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에서 자신들의 대학에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해당학생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 정보를 어떻게 반영하느냐는 상급학교의 몫이지 생활기록부 자체는 아니라고 본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것은 100% 잘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가시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교사들의 학생지도도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소모적인 논란 보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요구처럼 거부가 아닌 재검토 혹은 기록범위의 최소화를 위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기재를 하지 않는 것도 교육적으로 100%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무조건 정해졌으니, 반드시 기재하라는 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다. 문제점을 최소화 하면서 학교폭력 예방 효과도 함께 거둘수 있는 방안이 최적의 방안이다. 지금보다 기재범위를 다소 축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일정기간 후에 삭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도 검토 대상이라고 본다. 계속해서 강경하게 대응한다면 교과부나 시,도교육청 모두얻을 것이 없다. 어떤 상황이라도 평행선을 달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명하게 현실에 맞추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교는? 38명이나 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교는? 97개나 되는 부속도서관과 무려 1,410만 권의 책을 소장한 대학교는? 루스벨트, 케네디를 비롯한 6명의 대통령과 헬렌 켈러, 록펠러, 빌 게이츠를 배출한 대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636년에 세워진 대학교는? 짐작하셨겠지만 하버드 대학입니다. -힘이 되는 고사성어 박성철 지음 18~19쪽에서 다시, 가을 앞에서 어느 해보다 무더운 날씨와 열대야, 집중호우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여름이었지만 새벽 공기는 벌써 가을을 알리고 있습니다. 매미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기운은 이불까지 찾게 하니까요.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여 인간의 힘으로 거부할 수 없음을 지난 여름은 알려주었습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을 선물합니다. 사람 또한 자연의 산물임을 망각하며 자연과 내가 따로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않으면, 인간만이 위대하다고 오만을 부리지 않으면 살아가는 게 좀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계절이 주는 선물입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가을을 사랑합니다. '갈'것을 생각하라는 자연의 스승이 주는 목소리가 들리는 가을이 반갑습니다. 인생의 사계에 비추어 본다면 가을은 장년이 아닐까 합니다. 평균 수명이 80세에 이른 현대인들의 기대 수명에 비추어 4등분을 해보면, 봄은 20세까지 여름은 40세까지, 가을은 60세, 겨울은 80세 쯤으로 어림하니 인디언 속담이 딱 들어맞습니다. 그들은 60을 산으로 가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하며 산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봄은 인생의 파종기요, 여름은 성장기, 가을은 열매 맺기이며, 겨울은 그 열매를 먹고 나누는 시기라고 보았을 때, 가을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며 자신의 열매를 수확하는 시기이니 사색의 계절이라는 별칭이 잘 어울립니다. 이 때 그 사색을 돕고 도약하게 하는 지렛대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세상을 놀라게 하는 우발적이고 끔찍한 범죄가 많은 것도 책을 읽고 생각하는 삶을 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학교 교육이 끝나면 책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우리의 현실이 걱정입니다. 몸과 마음의 휴식을 찾아 휴가를 가서 몸만 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는 책만큼 좋은 도우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삶의 지혜와 보물이 담긴 선인들의 경험을 거울삼아 인생을 살아가는 팁으로 가장 손쉽고 값싸게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가기 전에도 어떤 책을 준비해서 읽고 올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보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밥을 먹듯이 연중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계절보다 더 책을 가까이 하자는 뜻입니다. 사계절 내내 책을 읽어야 하지만 특히 가을에는 책에 심취해야 삭막한 겨울을 보내는 양식을 준비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이 담긴 지혜로운 금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 폰에 빼앗긴 독서 시간 되찾아야 그런데 현실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텔레비전에 빼앗기는 시간이 독서 시간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제는 스마트 폰에, 카톡에 몰두하여 책과 멀어지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물론 전자 책을 즐겨보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즐비한 스마트 폰을 덮고 책을 펼치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치원생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거의 중독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는 보도를 보아도 그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더구나 접하지 않아야 할 스팸 지식이 넘쳐나서 컴퓨터나 텔레비전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으니 이제는 스마트 기기 교육이 시급합니다. 세상의 모든 기기들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으니 자제력을 길러 장점을 더 많이 취하게 하는 노력은 여전히 교육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가을이 되었지만 책보다는 스마트 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모습들이 더 많아 걱정스럽습니다. 심지어 상대방과 대화 중에도 식사 중에도 그걸 놓지 못하고 연신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일상이 되고 말았으니 그 손에 책을 들고 읽게 할 묘안이 필요합니다. 저는 스마트 폰의 기능 중에서 메모 기능을 가장 좋아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을 옮기거나 아무 때나 생각나는 글을 필기구나 메모장 없이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 기능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좋은 도구를 좋은 용도로 활용하도록 수시로 교육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컴퓨터거 등장하면서 게임 중독을 염려했는데 이제는 스마트 폰 중독을 예방하는 일에 선생님이 다시 나서야 합니다. 서두에 인용한 하버드 대학의 힘을 도서관과 책의 힘으로 규정한 것은 결과론적이지만 현재 입증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도서관과 책을 멀리하고 성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소수의 사람들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독서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이황, 이이를 비롯한 많은 위인들도 그렇습니다. 책은 마음을 바꾸게하는 위대한 힘을 지닌 가장 지혜로운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는 학교 교육이 필요 없다는 말까지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 나라의 학생과 젊은이들이 스마트 폰의 중독에서 벗어나 좋은 책을 손에 들고 즐겨 읽는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학교 도서관에서, 그리고 집에서도. 마치 컴퓨터를 일정 시간만 사용하기로 약속하듯, 스마트 폰도 긴급한 연락외에는 자기 스스로 일정 시간 사용을 자제하는 연습을 했으면 합니다. 켜 두되 접속하지 않는 자기통제력을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 가 보면 스마트 폰에 신경을 쓰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입니다. 수시로 문자를 보내느라 책을 제대로 읽지 목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풍경입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 들어온 도서관에서조차 책에 몰입하지 못하는 진풍경은 슬프기조차 합니다. 책 내용에 몰입할 수 없으니 생각이 자랄 수 없고 진중하지 못하니 끝까지 책을 읽어내지도 못하며 참을성도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가을에는 하버드 대학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을 찾아, 좋은 책을 찾아 스마트 폰을 꺼 두거나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카톡을 해제하는 방법을 써서라도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하는 학생들을 많아 보았으면 합니다. 가상공간에서 함께 하지 못하면 외로움을 타거나 따돌림을 당할지도 몰라 카톡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에 파스칼은 인간이 불행한 까닭은 홀로 있지 못함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고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므로 알곡을 만들 수 있음을 알게 해야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식물들은 홀로 서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옆에 있는 것들에게 기대고 기생하여 성숙하지 않습니다. 한 포기의 배추도 사과나무도 스스로 홀로 뿌리를 내리고 가을을 준비하며 태양을 향해 서 있음을!
매년 8월 보름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 가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올해는 다른 것 같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지 않고 찜통더위는 계속 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관리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겹치지 않도록 조절을 잘 해야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논어 학이편 제14장에서도 공자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군자로서 배불리 먹는 것을 바라지 않고 편안히 거처하기를 구하지 않으며, 모든 일을 민첩하고 말을 삼가고, 도 있는 자에게 나아가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학문을 좋아하는 자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이 식탐을 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배불리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배가 불러야 먹은 것 같고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문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건강해야 가르치는데도 최대의 컨디션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감취비농-甘脆肥濃)은 이름 하여 창자를 썩게 만드는 약이라 한다.” 입에 당기는 음식, 배불리 먹게 만드는 음식은 창자를 썩게 만드는 독약과 같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창자를 썩게 하고 질병을 불러오는 음식을 얻는데 사생결단을 하고 먹기를 탐하고 즐기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즉 배우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릴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학문다운 학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편안히 거처하기를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잘 꾸민 방과 좋은 집은 편안하게 거처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좋은 집과 잘 꾸민 방이라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이 나태해지고 병을 불러오며 오히려 학문하는 것을 방해하기만 한다. 그래서 배우고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는 잘 꾸민 방과 좋은 집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문 연구하는 분위기만 갖추어져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또 공자께서는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모든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간다고 하였다. 학문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민첩성이다. 모든 일에 민첩하게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일을 민첩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이 없다. 구급차를 몰고 가는 기사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심정으로 긴장되어 있다. 민첩하다. 일분일초를 다툰다. 시간의 귀중함을 안다.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속히 병원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한다. 다른 데 마음을 쏟지 않는다. 아무 잡념도 없다. 오직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그 마음뿐이다. 학문하는 이는 나태해지기 쉽다. 오직 배우고 가르치는 일만 하려고 하지 다른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주어진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많은 일들을 미루어 놓으면 스트레스만 쌓인다. 제때 민첩하게 일을 빨리 처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학문을 좋아하는 이가 절제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말이다. 말에 대한 절제를 잘 못한다. 조금 안다고 말하게 되고, 새로운 것 깨달았다고 말을 하게 된다. 조금 알게 되면 자랑하게 된다. 말은 언제나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면서 말을 함부로 하면 상대는 좋아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실수를 초래한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게 된다. 말은 아끼는 것이 좋다. 배우고 가르치는 이는 필요한 말 외에는 말을 삼가는 것이 최고다. 그리고 공자께서는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자기보다 높은 인격을 가지신 선생님에게 나아가 바른 길을 배우고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셨다. 자신을 되돌아보면 정말 잘못된 모습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더 훌륭하신 선생님, 나보다 인품이 더 좋으신 선생님께 나아가 많은 것을 배우고 본받고 나아가 실천에 옮기면 새롭게 된다. 자신도 몰라보게 달라진다. 그럴 때 많은 학생들은 따르며 존경하게 된다.
(1) 석도진 도착 광주에서 이모같은 3년 선배 최경미 샘과 같이 열시에 출발하여 인천에 두시에 도착, 무려 네시간을 기다려 출국수속과 탑선, 지루한 첫날이었다. 올 여름방학에는 무려 넷째주에 걸쳐 네 번의 각종 연수를 빡빡하게 잡아논 나로서는 중국 여행이 탈출구요 피서였건만. 너무 더워 힘들었다. 밤새 너울너울 출렁이는 뱃간에서 에어컨 감기에 시달리다 13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석도항, 잔잔한 바다 물결과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통해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은 안전하고 큰 배로도 13시간이나 걸렸는데, 먼 옛날 신라시대에는 돛단배 수준의 작은 배 한척으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땅에 도착하여 한국인의 기상을 떨쳤던 장보고 대사의 위대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동 반도는 강태공, 제갈량(와룡선생이라 부름), 공자의 고향으로 중국을 알려면 먼저 산동 반도부터 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서 산동 반도는 매우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첫날의 일정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방으로 선남선녀 5,000명을 출발시킨 성산두 유적과 봉래각, 등주산성, 고선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었는데 한 코스를 보기위해 3-4시간의 장시간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중국 영토의 광활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기다렸던 현지식 중국 전통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역시 중국 음식은 기름지고 향이 많아 부담스러웠지만, 대부분 선생님들은 맛있게들 먹었다. 나는 작년에 백두산 등정에 이어 두 번째 중국 방문인데 역시 발에 땀이 나게 뛰어 다니며 하나라도 더 보려고 오도방정을 떨었다. 룸메이트 거제 외포중 선생님은 정말 성실하여 매일 아침 재래시장에서 저울로 과일을 흥정하며 같이 즐거워 했고, 3조 리차드 기어랑 일행 모두 친해졌다. 임답도 넉넉하고 여행가방에 가져간 소주팩 20여개를 다 없앤 전남체고 김옥태샘의 노익장도 놀라웠다. 식사 후 봉래시, 등주산성, 고선 박물관을 견학하였는데 봉래라는 이름은 옛날 신선들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바다 가운데 있는 산의 이름이라고 했다. 다리가 저린 밤늦은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빡빡한 여행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지쳐있었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곧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2) 태산, 강태공 사당, 순마갱, 제나라 역사박물관, 고차 박물관 셋째 날은 영성.위해.봉래.유방을 거쳐 나와 가장 많은 코스를 견학했다. 강태공 사당으로 이동하면서 선생님 각자가 일일이 자기 소개를 하게 한 박 철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강태공이 낚시꾼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강태공은 제나라의 군사가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박물관에는 은나라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유물과 갑골문자, 강태공이 나라를 다스렸던 3가지 방법인 治國方略이 있었다. 제경공 순마갱에는 제경공이 평소에 말을 좋아하여 600여 마리의 말을 순장했는데 그 중 108마리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고차박물관에는 중국 고대 차량이 진열된 곳으로 중국 차량의 발전상과 제조기술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긴긴 여행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버스 창밖으로 중국 전통의 농가와 대규모의 옥수수 밭을 보았다. '저렇게 큰 옥수수 밭을 어떻게 심고 가꿀 수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치박,태안, 청주를 거치며 인적드문 수 개의 휴게소를 들르며 중국 영토의 광활함에 다시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시조에서 태산은 굉장히 높은 산 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와보니 해발 1545미터의 그렇게 높지는 않은 산이었다. 셔틀버스로 한 30여분을 그리고 케이블카로 20분정도 타고서 안개가 자욱한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높은 산 위에도 온갖 사찰과 수많은 시설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제의 제사를 위해 이 걸 짓다가 죽었을까?. 비가 오는 중간 중간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인들과 흥정을 할 때는 무조건 물건 값을 깎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역시 상인마다 또한 흥정을 여러 번 할 때마다 물건 값은 천차만별이었고 물건을 흥정하는 것도 중국 여행의 쏠쏠한 재미가 되었다. 태산에 있는 사찰에는 향을 피우고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부부간에 서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의 부부열쇠 꾸러미가 많이 있었다. (3) 적산법화원, 장보고 기념관 이 번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적산법화원을 견학하는 날, 버스로 이동 중 장보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외대 교수님께서 장보고에 대한 설명과 함께 관련 비디오를 시청했는데, 1호차 맨 앞에서 두 번째 버스좌석을 줄기차게 고수했던 나는 장보고 박사가 되어 버렸다. 역시 장보고는 당대 최고의 무역상이며 21세기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야할 우리들에게 삶의 방향과 큰 꿈을 제시해준 위대한 인물이었다. 적산법화원은 남․여승과 선종과 교종의 승려가 같이 상주하는 곳으로 산동 지역 신라인의 敎化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고 신라에서 당으로 들어오는 신라인들의 사교처로서의 기능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신라초와 신라산의 애절한 전설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장보고 기념관과 기념탑을 견학하고 느낀 것은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장보고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세계시민이 되는 길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길이 한국으로 통하도록 우리의 국력을 더욱 신장시키고 국제적인 마인드와 감각을 키워야한다는 것이었다. (4) 화동 페리호 승선 및 인천항 도착 5일간의빡빡한 여행 일정을 마치고 후련하게 승선을 했다. 여행은 사람들을 가장 빨리 친밀하게 하는 것 같다. 코골이랑 같은 선실에서 잠을 잔 세 명의 좋은 선생님과 각 지방에서 올라온 낯선 선생님들은 어느 새 친해져서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안에서 또는 겁 없는 갈매기랑 갑판 위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더운 날씨여서 끌수는 없는 여객선의 밤샘 에어컨을 신문지로도 막아보았지만 온종일 쐰 에어컨 감기에 걸려 집에 돌아온지 10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메이드인 차이나 감기를 달고 산다. 이번에 느낀 정말 놀라운 사실은 장보고에 대해 가장 체계적인 기록을 남긴 “두목”, 장보고에 은혜를 입어 적산 법화원의 유적을 건립하게한 일본인 “엔닌스님”, 미국의 역사학자 “라이샤워”, “김문경” 숭실대 명예교수, 해신의 저자 “최인호”를 다시 보게 되었고, 해상무역왕과 바다의 신 장보고 유적지 답사를 하고 느낀 것은 그동안 축소되고 왜곡된 장보고의 탁월한 업적을 재평가하고 오늘의 시대적인 상황에 재조명하여 장보고가 그랬듯이 세계 속의 '파워코리아'를 만드는데 유자마을 시골 역사교사인 나도 一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