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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간의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였다. 학년말 마무리며 졸업식 준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겨울방학과제 결과물을 점검하는 것이다. 만들기, 그리기, 교육방송기록장, 선택과제 등은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점검을 하였고 교육방송기록장이나 자신들이 하겠다고 계획하고 실천했던 선택과제 중에서 완전하게 하지 않았거나 형식적으로 한 면이 보이는 어린이들은 개별로 불러서 보완하도록 지도 하였다. 겨울방학과제물중에 검사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은 일기장과 독서록이다. 개학한 지 오늘로써 3일이 지났지만 아직 나누어 주지 못하였다. 독서록은 개인차가 많이 나기도 하였지만 교사가 집중하여 지도하는 부분이어서 그런지 읽은 책에 대하여 성의껏 기록하는 면을 보였다. 문제는 일기장! 방학할 때 주 1회라도 좋으니 형식적인 일기를 쓰지 않도록 그렇게 당부하였건만 평상시에는 일기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던 부모님들도 방학 때면 일기를 매일 쓰도록 아이들에게 권유하기 때문에 거의 전원이 방학할 때부터 개학 때까지 일기를 쓴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방학생활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평상시에는 일기장을 내지도 않던 어린이들이 방학 때 일기를 꼬박꼬박 쓴 것이 신통하기도 하여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다. 여름방학 때의 일기장은 가족끼리 어디 여행을 간다거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것을 일기장에 쓰는 경우를 더러 보았는데 겨울방학 때의 일기장은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아이들의 일기 대부분이 컴퓨터 게임에 관한 내용인 것으로 보아 방학동안의 일상이 컴퓨터게임으로 시작하여 컴퓨터 게임으로 끝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놀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해하는 내용, 또 형이 컴퓨터를 혼자 쓰기 때문에 형이 잘 때를 기다려 새벽 2시에 컴퓨터를 했다는 놀라운 기록도 있었다. 너무나 심심해서 아버지에게 어디 놀러가자고 3일을 졸랐는데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으며 설날 친척집에 가서도 컴퓨터게임을 하고 놀다가 온 것을 보고 게임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몇 어린이들은 선행학습을 하는 학원이나 공부방에 다니면서 공부가 무척이나 어렵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에 또 어떤 어린이들은 4학년공부가 그렇게 쉬운지 몰랐다라는 내용도 적고 있어 과연 겨울방학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 일기장을 점검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의 일기를 읽고 유감스러웠던 점을 적어보면, 그날 일기의 날씨에 ‘눈’이라고 적고도 ‘눈’과 놀았다는 내용은 없는 점, 설날이라서 먼 거리의 친척집에 가서 집안 어른들을 만나고 사촌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내용은 없고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집으로 왔다라는 내용, 가족끼리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현장체험학습을 하며 겨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다녀오거나 아버지들께서 아이들과 함께 학교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공을 차고 자치기를 하며 연을 함께 날리는 모습보다는 겨울에 일이 없으신 탓인지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적은 내용, 혹은 부모님께서 모두 일을 나가신 후 늦게 들어오시면서 통닭을 들고 들어오시는 모습에 만족하며 기뻐하는 내용 등이다. 겨울방학은 겨울방학대로 아이들에게 꿈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겨울방학 전 몰려드는 바쁜 학교업무 때문에 아이들 한명 한명과 충분히 겨울방학기간에 대한 계획을 나누지 못하였던 부분을 나름대로 반성해 보면서 교육은 학교교육만이 아닌 가정에서의 관심과 노력이 있을 때 극대화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사립의 5분의 1도 안 되는 공립 유치원감 자격연수 인원을 좀 더 여유 있게 늘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립 재직 시 11년 만에 원감 자격을 받고 공립유치원에 임용된 교사가 4년 만에 원감이 돼 이에 대한 공립 교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공사립 유치원 교사들은 1정 자격 취득 후 3년이 지나면 원감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다. 이에 사립은 원장의 추천을 받아 매년 150명 내외가 원감연수를 받고 있고, 보통 총 경력 7~10년에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공립은 행자부의 원감 티오에 따라 빠듯한 연수를 진행하면서 매년 20명 내외가 연수를 받는다. 자연 18년 이상 고경력자에게 차례가 돌아가고 최근에는 보통 24, 25년 경력자는 돼야 연수를 받는다. 문제는 원감, 원장 자격을 일찍 딴 사립 교사가 임용시험을 거쳐 공립유치원에 채용되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 과정에서 4, 5년 이상 경력이 높은 공립 교사들을 제치고 먼저 원감이 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2001년 경기도에서는 사립에서 원감 자격을 취득한 교사가 총경력 15년(사립 11년, 공립 4년) 만에 공립 유치원감이 됐다. 당시는 20년 경력의 공립교사도 원감 자격연수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기도교육청 담당자는 “원감 연수를 받은 공립 유치원 교사가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발령을 냈다”고 해명했다. 99년 원감 티오는 6명이 내려왔지만 공립 대기자는 5명뿐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91년 20명의 공립교사에 대해 원감연수를 실시한 후, 매년 2~5명을 원감으로 배치하면서 98년까지 공립 교사에 대해 단 한명도 추가 연수를 시키지 않았다. 98년 3월 배치 후, 단 4명의 공립 대기자가 남았지만 그해 겨울 연수를 시키지 않아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 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이하 연합회) 정혜손 회장은 “예산 타령에 수급 사정 운운하며 공립 교사에 대해 쥐꼬리 연수를 시킨 결과”라며 “더욱이 현재도 사립에서 원감 자격을 따고 공립으로 넘어온 교사가 16명이나 되고 앞으로 더 늘어날 추세인데도 여전히 공립에 대한 연수는 턱없이 적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06년 2월 현재까지 공립 원감자격 취득자는 387명인 반면 사립 원감자격 취득자는 3000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공립 유치원 교사가 6000명, 사립 교사가 2만명임을 감안해도 너무 적다. 경기도는 2005년 35명에게 원감연수를 시켰으며 이중 공립은 3명이었다. 올해도 원감 티오를 못 받은 충북은 5명의 대기자가 있어 최근 5년간 공립 교사에 대한 연수가 없었다. 문제는 올 3월 발령 이후에는 공립에서 원감자격을 딴 임용대기자가 없거나(경기, 전남) 1~5명만 남는 시도가 9개나 된다는 점이다. 24년 만에 원감 자격연수를 받은 연합회 엄미선 부회장은 “이들 시도가 올해도 공립 원감 연수를 안 하거나 극소수만 시킬 경우, 티오에 따라 낮은 경력의 사립 출신 교사가 원감이 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장명숙 부회장은 “전국적으로 교육청 유아 담당 장학사의 절반이 유아 전공자가 아닌 상황에서 자칫 사립 출신 교사가 원감 자격 취득 이후 경력이 더 길다고 공립 원감 자격자보다 유리하게 적용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권옥자 연구관은 “무엇보다 각 시도가 공립에 대해 좀 더 연수인원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공립 교사들도 혹 몇 년간 원감 발령이 나지 않더라도 불만을 토로하며 교육청을 압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원감이 배치되지 않은 3학급 이상 유치원 수보다 임용대기자가 훨씬 적은 서울, 경기,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은 공립교사에 대한 연수인원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연합회는 또 “사립교원의 전입이 있을 때는 총경력 기준으로 각종 가산점을 합산해 기존 임용대기자와 함게 승진후보자 명부를 재작성하도록 승진규정을 개정해 형평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김진표 부총리에게 “사립유치원의 원감 자격 양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감임용예정각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공립유치원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총경력 13~15년 이상자로 대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만한인, 임시정부 아닌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군 지지 국민당보다 공산당이 만주동포 우호정책 실시했기 때문 중국공산당 ‘민족자치’ 원칙과 한인의 ‘혁명전통’ 결합 해방 후 ‘연변조선족자치주’ 탄생하게 하는 주요 계기 만주와 한국 근·현대사 20세기 전반기 일제 강점기에 ‘만주’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였다.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평안도와 함경도 주민들은 재난에 따른 굶주림과 부패관리의 토색질을 피해 이 땅으로 건너갔고, 어떤 사람들은 진인(眞人)이나 정도령이 있는 ‘이상향’을 찾아 이곳을 찾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또 적지 않은 애국지사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정치적 동기에서, 1930년대 이후에는 주로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로 이주되기도 했던 것이다. 만주는 1930년대 이후 일부 친일 한인들에게는 ‘별천지’일 수 있었으나,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이별과 한숨, 눈물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20세기 초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수많은 단체와 애국지사들이 비장한 각오로 일제와 결전을 벌였던 투쟁의 공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있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이곳을 빼놓고 한국현대사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특히 남한과 북한의 날카로운 대립이 계속되던 1960~70년대에 양 분단국가를 통치한 박정희와 김일성은 모두 만주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1940년대 전반기 박정희와 김일성은 일본군 장교와 항일빨치산이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었다. 이들의 만주에서의 경험은 이들이 각각 북한과 남한에서 정권을 잡은 뒤 국가운영과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지만, 북한을 영도했던 김일성이 이곳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오늘날 북한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핵심요체이다. 동북항일연군교도려 1943년 초여름 소련 하바로프스크 부근 브야츠크촌에 있는 소련 적군 88여단 본부 앞에 서 기념촬영한 주요 간부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일성, 세 번째가 여단장 주보 중, 그 옆은 주보중의 부인 왕일지. (중앙일보 현대사연구팀, ‘발굴자료로 쓴한국현대사’, 중앙일보사, 1996, 108쪽) 한국현대사를 좌우한 박정희는 물론 최규하·전두환 전 대통령 등도 만주지역과 깊은 연고가 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황군’ 장교로 친일부역했으나, 일제 패망 직후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에 가담하는 등 놀라운 변신을 보여 주었다. 최규하 역시 만주국 관리로 근무했으며, 전두환은 길림성 반석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李範奭), 군인·외교관과 정치인으로 크게 활약한 김홍일(金弘壹), 지청천(池靑天) 등이 이곳에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분투하기도 했다. 또한 만주는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계속된 중국 국공내전의 승패를 가름한 결정적 전장이 되었던 곳이다. 이 때문에 만주는 우리민족의 비극인 ‘6·25전쟁(한국전쟁)’의 발발과 확산, 지연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처럼 만주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격변의 요충지였다. 해방 전후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동향 독립운동은 ‘민족운동’ 또는 ‘민족해방운동’이라고도 한다. 특히 한민족과 같이 식민지로 전락한 약소민족이 전개한 독립운동은 그 성격이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이라 할 수 있다. 1860년대 이후 압록강·두만강 건너편의 서간도와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한인)들이 한인사회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곳은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해 주요 국외 독립운동기지로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대 이래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각종 학교들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많은 독립군 단체들이 결성되어 강력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등을 통해 빛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1930년대 말까지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과 중국공산당 계열 항일무장투쟁 세력의 활동이 계속되면서 만주지역은 무장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항일세력은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반에 거의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혁명당 계열은 일제가 패망한 뒤 중경(重慶) 임시정부 및 한국독립당·한국광복군, 그리고 중국국민당 및 국민정부군 계열과 연계하여 다시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예를 들면 김학규(金學奎) 등은 해방 직후 남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 동북당부와 ‘장연민주자위군(長延民主自衛軍)’으로 결집되었다. 이들은 1946·7년경 김구 등 임시정부 세력의 ‘만주계획’에 따라 한국과 미국 등의 반공·동북아 전략에 부응해 정치세력화 하는 동향을 보였다. 한편 이들과 달리 대다수의 재만한인들은 중국공산당과 연계된 동북항일연군 계열이나 조선의용군·조선독립동맹 세력을 지지했다. 그것은 중국국민당보다 중국공산당이 훨씬 더 동포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후반 남만주 지역에서 투쟁하던 김일성 등의 잔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은 일제의 탄압에 쫓겨 1940년 12월 소련·만주국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도피했다. 1942년 7월 소련 극동군은 월경한 동북항일연군 제1·2로군을 ‘동북항일연군 교도려’로 편성하고, 다시 8월1일 ‘소련 적군 88특별저격여단(일명 88독립보병여단)’으로 개편했다. 이 때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 계급을 받고 제1영장에 임명되었다. 이 부대의 한인은 140~180명 정도였다. 이들 가운데 점차 김일성이 부상했다. 최용건(崔庸健)·김책(金策) 등이 선배였지만,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만주지부 산하의 한인 항일빨치산 그룹은 1930년대 후반 ‘조국광복회’ 등의 대중조직을 형성했다. 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 직후 북한사회에서 ‘통일전선’과 ‘민주기지론’ 전략·전술을 채택하여 결국 북한정권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에서 김일성 등 항일투쟁 세력이 크게 득세한 반면, 남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해방 직후 미군정의 임시정부 미승인 정책과 임시정부의 미군정과의 대립, 개인적 역량의 차이, 이승만정권의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오히려 친일세력이 득세하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만주 독립운동 세력과 ‘연변조선족자치주’, 6· 25전쟁 일제가 ‘만주’를 강점하고 1932년 3월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웠다. 이후 이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재만한인들의 항일투쟁은 해방 이후 만주지역에서 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당을 물리치고 그곳을 장악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즉 한인 대중의 중국공산당 등 관련 단체 참가, 항일유격대 및 근거지, 자치조직과 무장투쟁의 경험 등이 중국공산당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던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상황은 해방 후 연변지역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탄생케 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곧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제기한 ‘민족자치’의 원칙과 그 실현이 한인들의 ‘혁명전통(항일투쟁과 중국공산당 참여)’과 결합되면서 일정한 자치조직을 결실케 한 것이다. 즉 195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치되고, 다시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불렀던 중국 연변지역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우리와 같은 핏줄인 조선족 동포의 자치가 실시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중국공산당이 만주를 석권한 직후인 1949년 7월부터 1950년 4월까지 만주의 한인으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 사단 병력 35,100여 명의 병력이 북한인민군 제6·5·12사단으로 개편되어, 6·25전쟁 개전 초기 북한군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아침 38선을 돌파한 남진 보병 21개 연대 무려 10개 연대가 만주 한인(조선족) 부대였다고 한다. 이들은 광복 직후 주로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의용군을 기반으로 중국의 내전에 참전하여 풍부한 경험을 쌓았으므로 전쟁 초기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만주의 한인들은 이처럼 한국현대사에 깊숙이 개입되었던 것이다. 6·25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신의주 부근 압록강 단교의 모습. 한반도와 만주를 가로지르는 압록강과 현재의 압록강 철교가 만주와 한국현대사의 상관성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만주지역 독립운동과 한국현대사의 상관성 및 의미 1930년대 초 만주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지청천·김학규 등 일부 인사들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민족혁명당이나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등 관내 독립운동의 발전에 공헌했다. 알려져 있듯 우리민족은 ‘8·15해방’ 직전까지도 도처에서 무장투쟁을 지속했다. 특히 동북항일연군 교도려 산하 한인들은 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나름대로 ‘항일전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를 타도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으며 한국광복군도 독자적 작전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결국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쉽게도 미국과 소련·영국·중국을 비롯한 열강은 임시정부를 끝내 승인하지 않았고, 한국광복군이나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일제와의 항전을 승전국 자격요건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주지역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은 1910년까지 지속되었던 전제군주체제를 청산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정체인 민주공화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 한인 교민들을 기반으로 한 여러 독립운동 조직에서 이를 실천함으로써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의 기초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만주지역 독립운동은 ‘과거의 기억’으로 점차 잊혀져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온갖 열악한 조건을 무릅쓰고 투쟁했던 선열들의 치열한 몸부림과 그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거대한 ‘국제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자주와 독립의 소중한 가치,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만주, 즉 중국 동북지방은 우리의 생존과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지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곳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해 미래의 발전전략 및 통일문제 등과 밀접히 연계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제 만주를 ‘한민족이 잃어버린 고토’가 아니라, 동북아 여러 나라와 민족이 평화롭게 교류하며 어울려 사는 ‘평화와 공존’의 무대로서 새롭게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특히 이곳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지 않은가? 필자소개 장세윤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꿈속을 헤매고 있었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불을 켜고 시간을 보니 아직 5시도 되지 않았다. 모처럼만에 자유를 누려도 되는 일요일인데 왜 불만이 없겠는가? 혼잣말로 불평을 하며 영문을 물었다. 머리를 만져보란다. 단잠을 깨워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머리에서 손이 뜨거울 정도로 열이 난다. 잠이 확 달아나 벌떡 일어났다. 잔병치레는 잘하지만 우연만하면 혼자 견뎌내는 사람이라 더 걱정이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열이 났어?" "어제 저녁부터." "그럼 진작 말하지?" "술 먹고 들어와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깨워." 무심했던 것을 후회하며 그제야 증상을 물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꽉 막힌 것 같단다. 아내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평소와 다르게 먹으면 소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보름음식이라고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진 것이 오히려 화를 만든 것이다. 급하게 실타래를 찾았다. 자주 체하는 아내와 살다보니 손가락 따는데 도사가 되었다. 등을 두드린 뒤 가슴을 몇 번 문지르고 팔위에서부터 손가락 쪽으로 몇 번 쓸어내린 후 실로 엄지손가락을 묶어 바늘로 톡 따면 된다. 금방 검붉은 피가 솟아오른다. 우리 집에는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님이 계신다. 며느리 나이 쉰이 넘었건만 숟가락 하나 놓는 것까지 본인이 직접 참견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그런 어머님을 모시고 사니 명절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야 할 때는 아내가 편하다. 사실 어머님은 아내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며칠 전부터 여러 가지 나물을 사오셔서 보름맞이 준비를 했었다. 나는 어머님이 부지런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청춘에 홀로 되신 뒤 고집으로 우리를 키워 오신 분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님이 평생을 믿어오던 종교까지 바꿔가며 일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교회로 향한다. 약을 먹은 아내의 모습에도 활기가 있어 일찍 일어났지만 행복한 아침이다. 오늘도 나는 교회로 향하는 어머님과 아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기도'라는 시를 떠올리며 행복에 젖는다. 기도 가끔 아내의 기도를 옆에서 지켜봅니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아내의 기도가 어디까지 들릴까 구원자는 알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묻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랬습니다 기도라는 걸 알지도 못하면서 소원만 너무 많았습니다 아내의 기도와는 달랐습니다 내가 바라는 게 몇 가지가 이뤄지든 중요하게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원하기만 했습니다 무작정 내 소원이 이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세상물정 몰라 편했던 무지렁이 같은 삶 끌어안으면서 또 빕니다 가르치는 일 게으름 피우지 않게 하소서 철부지 아이들 배운 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사는 동안 불의에 굴하지 않게 하소서 이 사람 저 사람 바른 말 가려 하게 하소서 불행 보면 작은 것에도 눈물 흘리게 하소서
인근 아파트에서 재건축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반포동 원촌중학교 재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키로 해 교육당국과 마찰이 예상된다. 12일 서울 강남교육청에 따르면 이 학교 2학년생 300여명과 학부모들은 15일부터 학교 임시이전을 요구하며 등교 거부 운동에 돌입하는 한편 진행 중인 공사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3학년생들은 15일 졸업식에 참가키로 해 '졸업식 무산'등 극단적인 파행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 모임 대표 이현미(42ㆍ여)씨는 "2월 중 등교하는 날은 15일 하루뿐이어서 재학생들은 일단 이날 등교를 거부하고 방진 마스크를 쓴 채 공사로 인한 피해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학교에서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3월 신학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등교 거부를 계속하겠다"며 "다만 3학년들 졸업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교육청은 원촌중에 대해 신입생 배정을 하지 않기로 했고 현 1학년생 전원과 2학년생 중 희망자 30명을 인근 학교로 전학시킬 예정이어서 이 학교에는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재학생 300여명만 남게 된다. 강남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공사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학교 임시 이전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여건상 당장 수용키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다수 학부모들이 원하고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가 임시 교사(校舍) 건축을 책임지고 시행한다면 학교 임시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건축 중인 반포 주공3단지 아파트 단지 내부에 있는 원촌중 학생들 200여명은 지난달 중순 "이 아파트에 대한 철거 공사가 지난해 11월 시작되면서 소음과 분진 등으로 건강권, 환경권,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인천 남구 옥련동에 위치한 옥련여자고등학교(교장 장기숙)는 겨울방학을 이용 '세상의 중심에 서자!'라는 주제로 '2006 옥련 겨울캠프'를 개최 참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교과연구회 주관으로 겨울방학 내내 거행된 이번 캠프는 논술·구술, 영어, 수학, 과학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학년별 단계와 수준에 맞게 구안하고 적용하였다. 논술·구술 분야 '조리 있게 쓰고 말하자'는 자체 교사진과 외부 강사가 협력하여 시청각 자료 등을 활용 직간접 체험 위주의 강도 높은 캠프를 운영하였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구술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가운데 실전 위주의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영어 분야 'Speak-up English'에서는 원어민 교사 3명을 확보 수준별 회화 교실을 개설했고, 영어논술과 구술반을 편성하여 운영하여. 정규 수업 과정에서 부족한 회화를 집중 이수하게 했고 표현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 주기 위해 논술·구술을 병행하여 입체적 캠프를 실시했다. 수학 분야 '도전,수학'는 3개 반을 수준별·단계형으로 편성 학생 개인별 학습 능력과 문제해결력을 고려하여 캠프를 진행해, 평소 부족한 영역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졌다. 또 과학 분야 '과학은 생활이다'는 ‘생물반, 화학반, 물리반, 지구과학반’으로 나누어 학기 중에는 시간 제약 등으로 다루기 어려웠던 내용을 실험과 실습 위주로 진행 각 영역의 기초에서 심화까지 전반적인 과학의 흐름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 캠프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짜임새 있는 운영을 위해 ‘논술·구술 길라잡이, A good guide to interview in English, 수학 길라잡이' 등의 과정별 교재를 제작하여 활용하고 보급했다. 그리고 교과 관련 외에도 1학년 40여명을 봉사체험단으로 구성 외지 섬 소록도를 찾아 4박 5일간 체험봉사활동을 펼쳐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새기게 했다. 한편 이러한 학교 자체 캠프가 학교에서 실시한 방학캠프를 통해 두 가지 시사점을 찾게 하고 있는데. 하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사교육비 절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맞춤형 캠프로 학생의 교육적 요구를 수용한 점이다. 이번 캠프를 계기로 한층 더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활동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안을 오는 20일께 국회에 제출키로 하면서 사학법 재개정 문제의 이슈화에 당력을 집중할 태세이다. 전국 시.도를 돌며 공청회를 여는가 하면 대규모 토론회와 지역구 의원 간담회, 여론조사 등도 계획하는 등 점점 식어가고 있는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되돌려놓기 위해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단 여당을 사학법 재개정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는 성공했지만 원내 제2당으로서 사학법 재개정을 '단독처리'할 힘이 없다는 현실때문에 여론전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즉 국민을 상대로 우호적인 여론을 최대한 조성한 뒤 여야 협상에 임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주 사학법개정특위 소속 의원들이 영남지역 사학을 직접 방문해 교사, 학부모 등과 공청회를 가진데 이어 13일에는 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안 마련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를 갖는다. 특히 대토론회에서는 이사진이 해임된 사학에 투입되는 임시이사의 파견 주체를 교육부에서 법원으로 이관하고, 종교계 사학을 중심으로 자율형학교 도입을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학법 재개정안이 공개됐다. 또한 이번 주에도 개정특위는 호남과 강원 지역 사립학교들을 방문해 교사와 학부모들을 상대로 공청회와 간담회 등을 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재개정안 초안의 주요 쟁점 규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개정특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사학법개정특위 이주호(李周浩) 부위원장은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학법이 사학 이사회를 규정하는 어려운 내용이어서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면서 "그런 만큼 한두 마디 슬로건이 아니라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방식을 써야만 법 재개정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각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정적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노사문제를 쉽게 촉발시킬 수도 있고 외국자본의 국내유치를 저해할 수도 있다. 기업인의 사업의욕을 꺾을 수도 있고 사회통합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기업과 기업인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 경제는 한층 탄력을 받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지나치게 부정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정치가에게 책임이 있지만 국민들의 맹목적인 부정적 시각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계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따뜻하고 긍정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언젠가 교원평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한 일이 있다.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한 마디로 불신 그 자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교사들을 이기적인 집단, 철 밥통을 차고앉은 집단, 촌지나 받고 폭력이나 행사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시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교단엔 천차만별의 교사가 있다. 실력도 인성도 개성도 만인각색일 것이 아닌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모든 교사를 매도하고 같은 잣대로 모든 교사를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시각일 수 없다. 다양한 특성의 교사들과 접함으로써 학생들은 자아를 발견하고 사회성을 기르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선생님들 뿐이라면 어떻게 많고 많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단 말인가. 기업과 정치에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야 하는 것처럼 교육에 대해서도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 사회에 오로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옳지 않다. 기업을 바라볼 때도 때로는 긍정적이어야 하고 정치에도 때로는 힘찬 박수를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에도 맹목적 비난이 아니라 건전한 참여가 요구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비판에 다소 과장은 있을지언정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계의 자성도 절실하게 요망된다. 교육자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저 은주입니다." "그래, 요즈음 소식이 뜸하더니 잘 지내니?" "예, 이번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지금 연수 중입니다." "그러니? 참 잘 했구나. 축하한다. 그러고 보니 제자 중에서 네가 제1호구나. 초등선생님으로는 말이다." 전교생 94명이던 작은 학교에서 6학년 제자였던 아이가 벌써 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시간이 화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늘 욕심도 많고 자신을 다잡아 주는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던 제자였습니다. 21명을 졸업시켰는데 많은 아이들이 4년제 대학을 갈만큼 열심히 사는 제자들입니다. 졸업을 시킬 때, 1년에 두 번씩 동창회를 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주었는데 10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흐뭇합니다. 모임에 나오라고 조르는 전화를 건 제자의 칭얼거림에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졸업한 시골 학교가 이제는 폐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자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고 졸업생들끼리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모교는 가슴 속에 살아남아 언제든지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은주야, 이젠 김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구나. 그렇지?" "아니, 선생님도 참. 저는 영원한 선생님의 제자일뿐입니다. 선생님의 교단 제자 1호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 은주는 초등학교 졸업을 한 뒤 중학생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전화를 가장 많이 하는 제자였습니다. 전화를 걸었다 하면 30분은 기본일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내게 쏟아놓으며 어리광을 부리곤 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은주야, 일기는 쓰고 있지? 좋은 책도 많이 읽고 있지?" "아이고 선생님도 참. 고등학생이 언제 일기를 쓰고 차분히 책을 읽습니까? 학과 공부도 바쁜데요. " "논술 포기할거면 일기도 쓰지말고 책읽는 것도 포기하렴." "옛! 즉시 실시하겠습니다. 선생님 목소리 좀 들으려고 전화드리면 이렇게 변함없이 잔소리시리즈 멘트를 똑같이 하시네요. 6년 동안 변함없이 말입니다." 때로는 교육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며 본인이 원했던 수학선생님의 길이 아니라며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전화를 받는 날은 귓바퀴가 뜨거울 정도로 오랜 시간 전화로 상담을 청하던 제자가 이제 무사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졸업한지 10년 동안 잊지 않고 찾아주는 모습만으로도 기특한데 자기들 모임에 꼭 나오라고 날을 받자고 조르니 육신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는 자식과 다름없습니다. 군대에 간 제자들이 돌아오고 시집 장가를 간다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찾을 걸 생각하니 이런 맛에 6학년 담임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서슴없이 이성문제까지 내놓고 인생상담까지 들어주는 이 자리가 새삼스럽게 소중해집니다. 졸업하자마자 발령을 받지 말고 좀 쉬었다 나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집안 살림을 거들어야 한다며 발령이 안나면 아르바이트나 기간제 교사자리라도 찾아서 동생의 학비를 보태야 한다는 예쁜 마음에 다시 감동을 합니다. 교직에 나가면 동생의 대학 학비는 자신이 대주겠다는 기특한 제자의 다짐을 들으니 이제는 내가 충고해 줄 일이 드물 것 같아 서운함마저 느꼈습니다. 광주에서 근무하게 될 제자가 도시 아이들을 맡아 마음 고생을 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에나 선배로서 조언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지혜롭고 배우기를 좋아해서 뭐든 잘 헤쳐나가리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제자가 아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제가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6학년을 가르칠 때, "선생님 하시는 것을 보면 나중에 저는 절대로 선생님 하고 싶지 않아요. 제자들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고 상처도 많이 받는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아요." 했던 녀석이 그 길을 따라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이 길만큼 보람된 일도 흔하지 않음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은주야! 교직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동안 나 스스로 배우는 일이 많아서 늘 깨우치게 된다는 점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잡게 하는 기쁨을 안겨준단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귀하지만 평생 책을 볼 수 있는 축복, 바른 길을 걷게 하려면 스스로 바르게 걸어야 하는 어려운 자리이면서도 청출어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단다. 요즈음 세태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이니 교직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수를 받는 동안 품었던 처음 마음을 잘 기록해 두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도록 하기 바란다. 은주야! 너는 항상 내 기쁨인 걸 아니?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 자식이 대견하고 고맙듯이 내 길을 따라오는 네 모습도 늘 자랑이란다. 네가 발령을 받는 날, 만나서 축배를 들자꾸나 '
대학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일부 대학이 5년만에 학ㆍ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연계과정을 운영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우수학생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부-대학원 연계과정'은 학부 2학년 또는 3학년까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 한 학기당 1∼2과목의 수업을 더 듣게 해 조기 졸업시킨 뒤 입학시험 없이 동일 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하도록 하는 제도다. 또 연계과정 이수자는 학부시절에 대학원 과목의 일부 수강을 허용해 이 경우 학부와 대학원 학점을 중복 인정, 대학원도 조기 졸업하게 된다. 연세대는 2004년 학ㆍ석사를 5년만에 취득하는 '학부(3년6개월)-석사(1년6개월)연계과정'을 설치한데 이어 지난해 8월 학사와 석ㆍ박사 학위를 6∼7년만에 모두 취득하는 '학부(3년6개월)-통합(2년6개월)연계과정'을 개설했다. 앞서 이화여대도 2003년 가을 '학ㆍ석사 연계과정' 이수자로 12명을 선발, 지난해 2월 첫 졸업생 2명을 배출했다. 두 대학은 연계과정 이수자에게 대학원 입학금을 면제해 주는 것은 물론 수업료 전액을(이대는 학부성적 3.75이상) 지원한다. 두 대학이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이유는 우수학생을 다른 학교에 빼앗기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 시간과 등록금 절약은 물론 학업의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윈윈 전략'이기 때문. 물론 연계과정은 조건이 까다로워 희망자는 학부 2학년까지 성적이 3.3(4.3만점) 이상이어야 하고 남들보다 1년 이상 단축된 기간에 학부와 대학원 졸업학점을 모두 채워야 한다. 이화여대 대학원생 주혜경(23.화학과)씨는 "처음부터 대학원에 가고 싶어 석사학위를 1년 빨리 취득하고 900만원 정도 학비를 절약할 수 있는 연계과정을 선택했다"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많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이대의 경우 2003∼2006년 연계과정이 승인된 학생은 47명, 연대는 2004∼2005년 37명에 불과하다. 대학관계자는 "숙명여대와 한국외대, 중앙대 등 상당수 대학이 경쟁적으로 학부-대학원 연계과정을 설치하고 장학금 신설을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좋은 제도를 마련했지만 지원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2014년까지 연간 1700명의 학교행정인력을 증원하겠다고 한다. 이부분을 길게 본 것은 막대한 예산의 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발표가 유효할지의 여·부는 2014년에 가야 최종적인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행정인력을 증원하겠다는 것은 교원들의 과중한 잡무를 줄이고 수업에 저념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행정인력을 증원한다면 교원의 잡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바로 "돈"이다. 아무리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면 예산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증원하여 교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 좋은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행정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면 어떨까 싶다. 즉 일선학교에는 학교회계직(학교운영지원비로 부수를 지급하는 직원-일종의 비정규직)들이 학교에 따라 인원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행정실에서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즉 행정실의 업무분장에 따라 자신이 맡은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신분의 불안은 물론, 보수에서도 정규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액 초과근무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초과근무를 했어도 시간외 근무수당(정액 초과근무수당 외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행정실장이 전권을 휘두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들 학교회계직뿐 아니라 과학실험보조원, 전산보조원, 일부학교의 사서교사 등도 비정규직이다. 과학실험보조원이나 전산보조원의 경우는 일당제로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이번의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학교행정인력을 증원하기로 했는데, 새로 증원하는 것보다 현재의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충원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새로 채용하는 인력보다 이들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업무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인건비를 학교운영 지원비에서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학교예산의 증대효과도 함께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어느쪽이 더 효율적인지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경기도교육청은 10일 관내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무결석 학급 담임교사 표창'을 올해부터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 교육청은 교사들의 담당학급 학생들에 대한 관심제고와 이를 통한 학생들의 비행 및 학업중단 예방 등을 위해 5년전부터 1년간 학생들의 결석이 없는 학급 담임교사에게 교육감 표창을 실시하고 이를 승진인사 등에 반영했다. 지난해의 경우 각급 학교 2천100여명의 교사들이 이같은 무결석 담임교사 표창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표창제도로 인해 일부 교사들이 갑작스러운 질환 등으로 등교가 어려운 학생에게조차 일단 등교후 조퇴할 것을 강요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 일부학부모로부터 '비교육적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도 교육청은 이같은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무결석 학급 담임교사에 대한 표창을 폐지하되 1년동안 결석한 학생이 1명도 없는 학교에 대한 기관표창은 현재와 같이 계속 하기로 했다.
전국 16개 시·교육감들은 9~10일 양일간 광주 신양파크호텔에서 시·도교육감협의회(회장 공정택 서울시교육감)를 개최하고 시·도 교육청간 정보교환과 공동현안에 대해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시·도교육감들은 교육재정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인건비 부족분을 별도로 보정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교육세 확충 등 범정부적 차원의 대책 수립을 요청했다. 또 학기 중 토·일·공휴일 중식지원 사업비를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비특별회계에서 분담할 수 있도록 조정해 줄 것을 교육부에 건의했다. 이밖에도 시·도교육감들은 ▲학교 신설 사업의 재정사업 병행 추진 ▲사립학교 사무직원 명예퇴직제 도입 ▲각 급 학교에 근무하는 지방공무원 근무시간 변경 등 현안과제를 토의하고 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공정택 협의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번 회의 때 지방교육공무원 직위 상향 등 지방 교육발전을 위한 건의 내용이 교육부에 적극 검토되고 있다”며 “교육재정문제와 같이 시도교육청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일이 많은 만큼 앞으로 협력체계를 강화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는 이기우 교육부차관을 비롯, 황인철 재정기획관, 박경재 지방교육지원국장 등이 참석했다.
어제 (2월 8일)발표된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의 주요 업무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소감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5년간 8조원을 투입하여 '교육 양극화 해소'에 나선다는 교육부총리의 야심찬 발표는 농촌 교육에 몸담고 있는 현직교사로서 관심이 컸기때문입니다. 주요내용으로는, 1. 교육안전망 구축을 위해 2006년에만 1조3천억원을 투입하여 농어촌의 교육여건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중인 '1군1우수고'를 현재의 14개에서 44개로, 내년에는 88개로 늘리는데 1교당 16억원씩 지원하며, '대학생멘토링'제도를 도입하여 서울대생 300여명을 자원봉사교사로 투입하여 관악구와 동작구에 사는 저소득층 및 특수교육 대상 학생 1천여명을 지도한다는 계획이다. 2. 직업교육체제 혁신의 일환으로 1904년부터 사용되어온 '실업계'라는 이름을 '특성화계고등학교'로 바꾸어 '실업'이라는 용어가 주는 낙인효과를 없애고 기업체와 대학, 실업계 고교가 협약을 맺은 뒤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3. 공교육 변화 유도 사업으로는 기존의 학교법인, 종교단체, 비영리법인, 공모 교장, 지방자치단체 등이 교육감과 협약을 맺어 학교를 운영하는 공영형 혁신학교를 내년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하여 2010년 경까지 전국 20여곳의 혁신도시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설립목적이 특수한 특성화 중,고교 20곳은 일정한 교육경력을 가진 교육공무원, 대학교수, 경영인 등 교장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양극화 문제를 '교육 격차 해소'로 가닥을 잡았다는 데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주최한 다보스포럼에서도 빈부격차 해소방안으로서 '교육이 양극화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바 있으며, 명심보감에도 '책을 읽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라며 교육의 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최상위 계층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이 200만원은 기본이며 방학 중에는 그 두배를 넘는 것으로 빈곤층과의 격차는 갈수록 심각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과 같은 상태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빈곤층이나 소외계층이니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입니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2006년을 '교육 양극화 해소' 의 원년을 삼으며 적극적인 자세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효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유아교육이나 초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벌어진 교육격차는 고등학교에서 잡아주기에는 무리라고 보기때문입니다. 특히 날로 황폐화되어가는 농산어촌교육에 대한 투자와 배려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군 1우수교'에만 집중투자 되는 계획이니 다른 고교는 경쟁에 밀려 폐교되거나 통폐합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는 뻔한 일이 아닐까요? 지금도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들은 교육시설 투자에서 밀리고 도시학교로 빠져나가는 학생수 부족에 허덕이며 고사지경에 빠져 있음을 상기한다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은 농산어촌의 교육 투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컬럼비아대 스타글리츠 교수가 주장한 교육투자 방법에 공감합니다. 그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에 대한 투자"라며 "정부가 진짜 신경 써야 하는 일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 시스템을 제공하는 일이라며 "가장 간단한 교육 개선 책은 방학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세계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방학이 길면 학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부유층 자녀들은 방학 중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지만, 저소득층 학생들은 3개월를 허송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방학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방학 기간 중 정부가 예산을 들여서라도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도 이와 같은 취지아래 방학중 기초기본 학력 보충반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기간도 짧고 그 대상도 일부에 그치고 있습니다.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방학을 지나고 오면 아이들의 학습태도나 발표력, 과제수행능력이 후퇴하여 다잡아 주는데 한달 이상이 걸립니다. 겨우 학습에 속도가 붙을만하면 다시 방학에 돌입하는 악순환을 12년 동안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교육을 통한 양극화 해소방안은 가장 원론적인 곳에서부터 재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산어촌 교육을 살리는 일, 저소득층 자녀에게 방학중 특별 보충학습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을 배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교육의 결과적 평등, 보장적 평등, 수평적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계획은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소도시의 빈민층 자녀들과 농산어촌의 저소득층 자녀들이 12년 동안 국가의 배려를 받으며 억울함이 없는 '교육 기회의 평등'으로 혜택을 누리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하는 '양극화 해소방안'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썩어들어가는 말단 신경세포를 살리는 일이 급선무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교육 현장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추진되는 '자격증 없는 공모제 교장제'와 같은 톡특 튀는 정책보다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근본대책, 표가 안나지만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노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한해 8조원에 달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사교육비와 과열 입시지옥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으로 "대학입시 하나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과열경쟁과 왜곡된 경쟁구조를 꼽았다. 이는 그나마 올바른 진단으로 근래 들어 소득 및 지역 간 교육격차가 빠르게 고착화ㆍ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진단에 비해 그에 대한 처방 제시는 미흡하여 전반적으로 아쉽고 실망스런 수준이다. 특히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꺼낸 후 교육격차 해소 등 교육의 형평성 제고에만 지나치게 역점을 둠으로써 정작 학교교육 기능의 활성화와 공적으로 제공되는 교육서비스 영역의 확대를 통한 공교육의 내실화와 교육의 수월성 제고는 소홀히 하고 있다. OECD 통계에서도 드러났듯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공교육 여건과 열악한 교육재정 확보 방안 등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가 빠진 미봉책에 불과하다. 교육정책은 다른 여타의 국가 정책에 비하여 장기적이고 영역 자체가 광범위한 규모이므로 진단과 처방을 위한 여론수렴 등 정책 결정 과정이 중시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지금의 정부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정책의 입안 및 추진 과정에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건만 정부는 모든 책임을 '공교육 의 부실'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나 교육공무원, 대학교수, 경영인 등 외부 전문 인사들도 학교장이 될 수 있는 초빙공모교장제와 교원평가제도 강행하는 것이고 대안학교 활성화를 빌미로 교사자격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방과 후 학교’나 대학생 몇 명으로 저소득층 및 특수교육 대상 학생 등을 구제할 수 있다는 판단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정부의 ‘방과 후 학교’나 ‘대학생 멘토링제' 등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고열에 놀라 급한 대로 해열제를 일시 투여하는 효과는 잇을 지 몰라도 결코 공교육의 내실화와 사교육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정부는 지금의 실업교육을 지적하면서 형식과 외형만 새롭게 포장하면 학부모나 학생들이 실업계로 몰려올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 동안 실업계 고교가 ‘실업’이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낙인효과로 학생 및 학부모의 기피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적대로 대학입시 하나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사회 구조가 문제였던 것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체 실업고를 특성화 학교로 이름만 바꾸는 것은 또 다른 실업교육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대상 학생을 또 한번 우롱하는 것으로 철저한 분석과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교원단체와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하지 않은 채 일부 교육 관료들의 편협한 판단에 의해 모든 교육정책이 행정중심으로 고착화되어가는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두는 한 ‘교육력 제고’는 물론 합병증에 가까운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 또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하여 교육의 주체인 교원의 증원 및 수석교사제 추진 등 교직의 사기진작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 시행해야 할 것이다.
모 개그맨의 “그까이꺼 대충~”이라는 유행어가 인기다. 이 말의 이면에는 전문성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본다. 교사를 지칭할 때 전문직이라 하는데 이것은 전문적인 교육훈련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교육이 양적인 교육이었다면 미래의 교육은 소량의 질 높은 교육이어야 한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학급당 학생 수, 쾌적한 교육시설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교사들을 수준을 높이는 연수와 풍부한 경험으로 안목을 넓힐 기회의 부여돼야 한다. 그리고 현장 적합성이 높은 정책들이 바르게 정착돼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의 참여 속에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몇 가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교사의 공무담임권 보장이 필요하다. 교육위원은 정치성이 거의 없으며 교육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장교사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하고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직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교사들로 하여금 겸직을 적극 유도하고 장려함이 옳은 일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공무담임권을 교사들에게도 보장해야 한다’는 법적인 차원의 접근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얘기다. 교사는 도덕성을 대표한다. 정치인들의 투표가 끝나면 어김없이 교사들이 개표작업을 하는 것도 그런 도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도덕성은 물론이고 평생을 교직에서 쌓아온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분들이 교육철학과 소신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교육발전에 지대한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교사에게 더 많은 권능도 부여해야 한다. 우리 교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컴퓨터와 인터넷 활용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교사들과는 달리 제도는 교사들의 수준을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교사들의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아울러 교사에게 권능부여(empowerment)가 필요하다. 권능부여란 교사의 전문적 지위를 고양시키고자 하는 활동 내지 수단을 의미하는데, 이는 교사들이 집단의사결정에 실질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므로 참여의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따라서 교사에게도 겸직을 허용해야 한다. 이제 우리 교사들의 의식수준도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 있다. 교육 전문가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야 말로 교직사회에 일고 있는 승진제도 개선 만큼이나 핫이슈가 된 것이다. 교육위원을 겸직함으로 인해 담당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당연 휴직하고 임기 만료 후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도록 함은 합당할 것이다. 선진 외국의 사례를 보면 교사들이 국회의원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교육위원만이라도 교사들에게 겸직의 기회가 부여된다면 우선 헌법에 보장되는 공무담임권을 유독 교사들에게만 과도하게 제한함으로써 장래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겸직 허용은 교육위원의 도덕성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유능한 교사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전문성 신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 학생들에게는 미래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자연스런 직업교육과 더불어 간접경험의 기회를 부여하며 더욱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환자에게는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해주는 의사가 필요하듯이 교육에 있어서 교사는 교육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현장교육 전문가다. 그런 만큼 교육과 가장 관련이 있는 교육위원이 됨으로써 집단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치료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루속히 이러한 기회가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교사들에게 주어져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열정, 청렴한 활동으로 우리 교육제도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교총은 8일 올해 교육부 주요 업무계획에 대해 ‘공교육 내실화 방안은 없이 포장만 요란하다’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교육부에 요구했다. “우리의 공교육 여건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질적 양적 모두 후진성을 면치 못할 정도의 위기”라는 교총은 “학교를 학원화 하려는 방과후 학교는 핵심을 벗어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통령의 신년사에 따라 사회 양극화 해소 차원에만 코드를 맞추고 수월성 제고 방안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실업계고교를 특성화고교로 바꾸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교육내용, 시설, 환경 등의 지원 없는 명칭변경은 또 다른 획일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문제 제기되는 교장초빙공모제 시범운영을 교육여건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1군 1우수고교 정책에 끼워 넣기 식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대안학교 활성화 차원에서 교사자격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에 대해서 교총은 교원양성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교총은 교원의 전문성 신장 차원에서 교육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수석교사제 관련 내용이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새 학기부터 여학생의 생리통에 의한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생리공결제’가 도입된다고 한다. 이 제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의 건강권과 모성보호를 위해 권고하여 시행된다고 하는데, 이 제도가 우리의 교육 현실에 과연 적합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 지도를 하고 있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크게 걱정스럽다. 물론 여성 생리의 특성을 이해하고, 여성만의 고통에 대하여 보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악용하려 할 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학생의 생리통으로 인한 결석은 학교장의 확인을 거쳐 출석으로 인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확인하라는 것인가. 지금도 생리통이 심해 부득이 할 때는 담임교사의 허락으로 보건실에서 보건 교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일정 시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생리통 때문”이라며 지각, 조퇴, 결석하는 학생이 늘어나 수업 결손이 급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생리로 인한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재 학급당 정원이 35명 내외이기 때문에 생리공결제를 따른다면 매일 1,2명이 결석하게 된다. 이는 교과 학습 진도, 수행평가, 학습과제 부여와 이행 확인, 생활지도, 학교 행사 등 여러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결석이 잦은 문제 학생의 경우, 오히려 탈선과 비행의 기회를 주거나 변명의 구실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이나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는 물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생리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교육 상황도 감안하지 않은 일이며 이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이번 결정은 교육 현장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일이다. 여성 인권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운 건의에 대해 교육현장에 대한 의견 수렴이나 검토 없이 너무 쉽게, 안이하게 결정한 것이다. 이 생리결석 출석인정 제도에 대한 재검토나 보완이 필요하다.
90년대 말 IMF 사태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경제회생을 위해 모든 국민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마음으로 장롱속의 금반지까지 모으며 기업의 구조조정, 행정조직의 통폐합과 인원감축 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리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육예산의 삭감과 교원정년의 단축, 대규모의 명예퇴직 사태, 교원수 감축과 소규모 학교의 교감직 제도도 폐지됐다. 이후 국민적 노력의 결실로 현재는 내수경제 회복, 수출증대 등 우리 경제는 청신호를 기약하고 있다. 당시 IMF 사태 극복을 위해 취해진 각종 한시적 조치는 복귀되고 부활되어야 할 것이나 대부분 아직 환원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중에서도 IMF 사태로 사라진 농촌 소규모학교 교감 배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농촌교육 살리기’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지난해 쌀 협상안에 대한 국회 비준안 거부운동 과정에서 야기된 농민들의 잇단 자살과 시위도중 사망 사건 등은 ‘농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몸부림이었다. 농촌 교육문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정부에서는 ‘농어촌 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교감도 없는 농어촌 학교 살리기 정책은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둘째, 교감의 직무는 학교 규모에 관계없이 학교조직의 독립적 고유 업무이다. 중등교육법 제20조 2항에는 교감의 임무에 대해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의 유고시 그 직무를 대행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 하나 교감의 중요한 임무는 교장과 교사들 간의 교량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감의 임무가 학교조직의 고유한 업무임에도 소규모 학교라는 이유로 교무부장이 교감의 임무까지 대행하는 것은 절름발이 교육을 유도할 뿐이다. 농어촌 소규모 학교의 교무부장은 부장 업무만으로도 과중한 형편이다. 현재 4학급 이하 소규모 중학교 교사정원은 교장 포함 9명이며 부장교사는 1명이다. 그런데 상급기관에서 하달되는 공문이나 학교행정업무는 60~70명인 학교와 동일하다. 셋째, 교원을 우대하지는 않더라도 일반 행정직과의 형평성은 유지해야 한다. 2006년 1월부터 면단위 지방행정직의 총무계장이 부면장으로 격상되어 총무계장 직무를 겸임하도록 하고 있다. 굳이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이나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같은 맥락에서 교육행정에서도 이와 상응하는 면단위 농촌 소규모 학교에 교감직은 부활되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농촌 소규모 학교에 교감을 배치해야 하는 근거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소규모 학교도 정상적인 행정체계로서의 직제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역할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농어촌 교육을 이와 같이 불합리한 상태로 방치한다면 도·농간 교육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교감배치가 어렵다면 그 대안으로 기준에 의해 자질을 검증, 교감과 부장 사이의 중간단계인 선임교사제를 농어촌 소규모 학교에 조기 도입해 점차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만 하다. 선임교사제는 교원들에게 승진기회를 제공하고 침체된 교사들의 사기를 고양해 행정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정부와 교육당국은 교육의 사각지대를 외면하면서 예산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현명한 판단과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60년만에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손에 쥐니 꿈만 같아요."(76세 중학교 졸업자 전규화씨) "여대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네요."(46세 장애인 만학도 양진수씨) 대안학교 성지중.고등학교가 9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강서구민회관 대강당에서 500여명의 가족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식을 가졌다. 성지중.고등학교는 한때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만학도와 소외.방황의 시기를 겪으며 학교를 중퇴했던 청소년들이 모여 공부하는 대안 중.고등학교. 이날 졸업식에는 다른 곳의 졸업식과 달리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혹은 가정주부 만학도가 많았으며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자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학창시절 '노익장'을 인정받아 졸업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전규화씨는 이날 졸업장을 받은 최고령 할머니 졸업생. 전씨는 일제 강점 말기 소학교를 졸업한 뒤 배움을 접었다가 60년만에 손자ㆍ손녀들의 응원 속에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인 양진수씨의 경우에 이날 졸업식은 특히 뜻이 깊다. 이 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다음달 대학생(호원대 아동복지학과)이 되는 양씨의 사연을 언론 보도를 통해 들은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직접 졸업식에 참석, 축하해줬기 때문이다. 권여사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얻은 결실이라 특히 의미가 크다"고 양씨에게 인사를 건넸고 졸업생들에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업을 이어간 여러분들이 오늘의 아름다운 주인공이다"고 격려했다. 한때 '문제아' 소리를 들으며 탈선을 하기도 했던 청소년들도 '영광의 졸업장'을 받았다. 이 중 19살 이선하양은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폭력조직을 만들며 신림동 일대를 주름잡던 문제아였다. 마음을 잡아 이곳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달 안양과학대학에 입학하는 이양은 "대학에서 경영마케팅학을 공부한 뒤 의류회사 CEO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중학생 225명과 고등학생 544명 등 모두 769명의 학생이 졸업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