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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지난 8월 29일(금) 교육부는 2015학년도 올해 마지막으로 지정하는 하위 15%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19개교를 발표했다. 매년 교육부는 4가지 절대 지표(재학생 충원율 90%, 취업률 50%, 전임교원 확보율 61%, 교육비 환원율 100%) 중 2개 이상을 충족하지 못한 대학을 '학자금대출제한대학'으로, 모두 충족하지 못하거나 경영컨설팅 이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대학을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제한대학의 경우, 2015년 신입생과 재학생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고 경영부실대학의 경우, 신입생이 국가장학금 받는 것에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들 발표대학 중 관내 대학 3개교(4년제 2개교, 전문대 1개교)가 포함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3개교 중 2개교는 오랜 전통이 있어 매년 이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지금까지 관내 모(某) 대학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 온 한 아이의 경우, 본인이 목표하는 대학이 부실대학에 포함되자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특히 지역의 인재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올해부터 새로 신설된 지역 인재전형을 목표로 하는 이 학생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시모집에서 이들 대학은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대학의 경영 잘못으로 피해 보는 쪽은 학생과 학부모이다. 따라서 대학 측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을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대학 나름대로 강도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여 ‘경영부실대학’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버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들 대학은 대학입학 홍보 시 수험생에게 이 사실을 묵인하기보다 구체적인 대책 안을 제시하여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신뢰를 줘야 할 것이다. 수험생 또한 대학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선택한 대학이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혹은 경영부실대학인지를 꼼꼼하게 잘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대학 선택으로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현대는 '생각의 시대'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모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로댕(1840~1917)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유명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아마 턱을 괸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아마도 퀭한 눈은 꺼질 줄 모르는 액정을 향하고 다른 한 손은 관성적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을 터다. 이미 인간의 기억과 계산 능력을 뛰어넘은 기기가 우리 모두의 손에 들려 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란 칭찬이 더는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이같은 시대에 우리의 두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에도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 김용규가 쓴 '생각의 시대'는 ‘생각’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지식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이제 ‘생각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선언이다. 남과 다른 발상, 고정관념을 뒤집는 독창성, 나열된 지식의 이면을 꿰뚫는 혜안이 필요하다. 사실 여기까진 좀 뻔하다. 이미 정보화 시대에 ‘Think different!’가 경쟁력이란 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떠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생각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답은 고대 그리스에 있다. 야생의 인간이 생각을 발명한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인류 정신사의 거대한 축이 이동했다고 해서 ‘축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저자가 이 시기를 지목한 이유는 이 때 발명된 생각의 도구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으 주요 내용은 지식과 생각의 탄생 과정을, 그리고 책의 3분의 2에 달하는 3장은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 즉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의 개념과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발상의 전환을 돕는 ‘은유’,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원리’, 정신을 구조화하는 ‘문장’, 만물의 현상을 쉽게 패턴화하는 ‘수’, 설득의 수단인 ‘수사’를 잘 쓸 수 있다면 생각에 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방법도 적었다. 은유와 수사의 응축인 시(詩)를 암송하고, 원리를 탐색하는데 적격인 추리소설을 읽으라고 권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도 일찍부터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니 한번쯤 실행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직 생각 도구를 쓰기 전인데도 녹슨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철학과 신학, 문학을 오가며 방대한 이야기를 요리조리 꿰는 솜씨가 너무 탁월하기 때문이다. 로댕이 만일 지금 태어나 이 책을 읽었다면 2개의 뇌, 즉 지식 창고인 스마트폰과 생각도구를 장착한 두뇌를 조각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젊은이들이 어려운 시대에 이 '생각의 시대'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9월이 시작되는 첫날 9월1일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방재의 날'이다.일본은 우리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재해가 많다. 이 자연재해와 싸우는 일이 생존과 직결된다. 그런데 일본의 방재의 날이 9월1일이 된 배경에는 오래전 우리 민족의 큰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은 많이들 잊고 있지만 91년전 1923년 9월1일, 일본의 관동(간토)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불운하게도 점심 식사 준비로 인해 거의 전 가정에서 불을 때고 있던 시간대라서 지진의 여파는 곧바로 대화재로 이어졌고, 도쿄, 요코하마 지역을 비롯한 관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 행방 불명자가 14만 명, 이재민 34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런데 재난의 혼란 속에 계엄령이 시행되었고, 사회 불안 속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유언비어 속에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는 등의 근거도 없는 낭설이 경찰 조직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확대되면서 자경단이나 경찰관에 의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도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살해된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3000명에서 6000명까지 이야기되고 있고, 그 이상이라는 설도 있다. 심지어 조선인을 구분하기 위해 발음하기 힘든 일본어를 시켜 보는 과정에서 일본의 외딴 지방에서 올라온 일본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학살 사건은 대부분이 불문에 부쳐지고 아직까지도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좀 더 윤택한 생활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 갔던 초기 이주자들과 소수이기는 했지만 소중한 인재였던 조선인 유학생들이 그 재난의 희생자가 되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불려지는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떠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1923년 당시 일본은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었다. 한반도와 대륙 진출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 정부와 군부의 강력한 군수정책으로 민간경제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고 일본 국민들은 언제 전쟁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자국민들의 민심이 크게 동요할 것을 염려한 일본 정부가 그 증오의 대상을 조선인들에게 돌리려 하기 위해 이같은 책동을 벌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같은 엄청난 만행이 있었음에도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유언비어가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수를 축소하여 발표하고 학살을 자행한 자경단원 일부를 연행하여 조사하였으나 이는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다. 또,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방면 하였다. 무려 6000여명이 넘게 학살된 이 만행으로 사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단체는 전무하고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도 전혀 없었으나 양심적인 소수의 일본인은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대학살의 만행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 체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던 당시 미국 등 서구나라에서는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여 성금모금을 하였다. 실제로 일본에 많은 후원을 했었다는 것이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 큰 지진이 일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만을 전달받고 피해자들을 돕자고 나선 미국 국민들의 순수한 인간애는 몇년이 지나지 않아 진주만 공습이 되어 돌아왔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당시 일본의 자경단들이 선동을 하기 위해 외치던 구호가 바로 " 조선인들을 죽여라." 였다. 그런데 9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일본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이같은 소름끼치는 선동구호를 들을 수 있다. 일본 우익들은 재일 한국인들에 대해서 이른바 '헤이트스피치'라 일컬어지는 인종 차별적인 가두 선전 활동, 혐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7월 유엔 인권위에서 이 같은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를 금지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음에도 일본 정부의 어떠한 조치도 없이 혐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백주 대낮에 도쿄 한 복판에서 '조선인들을 죽여라'라고 외치는 일본 우익들을 보면서 90여년전 실제로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일본인들의 광기를 또다시 느낄 수 있다. 지각 있는 일본인들조차 자신들이 일본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었다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광기가 또다시 일본에서 불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신세대젊은이들의 잦은 비행과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마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살기가 너무 편리하고 좋아졌는데도 일부 청소년들의 마음과 영혼이 너무 나약하고 사람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과 인성을 저버린 행동으로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군에서 병영생활을 하면서도 그대로 연장되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군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겹쳐 자살하거나 총기사고로 국민을 놀라게 하더니 집단구타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문제의 원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소홀히 해 온 것 같다. 유치원에서 글자를 가르치거나 영어를 가르치기보다 자연 속에서 인성을 배우도록 해야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꽃과 곤충을 관찰하고, 시냇물에서 노니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모래성을 쌓으며 자연을 배우는 교육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화로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생존경쟁과 황금만능사상을 우선시 하는 어른들의 삶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친구를 경쟁자로만 여기고 1등만 강요받으며 자랐지 않았는가? 같이 자라는 세대들을 적대시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컴퓨터, TV,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사람사이의 정을 멀게 하고 비인간화로 가는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문명을 잘 이용하며 살아가려면 인간성을 회복하고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성현들의 말씀이 담긴 고전을 가르치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은 옛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느라 옛것을 무시하고 버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교육에 소홀히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비슷하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다간 조상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주옥같은 고전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우리조상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 같은 문장하나라도 가르치는 정책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심보감의 문구를 가르쳤더니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필자 앞에서 머리 숙여 반성하는 학생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해야 인성이 싹트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주위사람에게 시키지 마라! (己所不欲 勿施於人)만 가르쳤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성을 간직하지 않았을까?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마음이 황량해져가는 신세대들에게 부족한 마음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는 흐르는 물처럼 삶의 정거장을 뒤로한 채 떠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벌써 4년이란 세월이 광야에서 훌쩍 지나갔다.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소중하였다. 다시 만날 기약은 꼭 하지 않았지만 내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가는 지켜 볼 예정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광양은 빛의 도시입니다. 미래에도 빛을 발할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번 9월 1일자로 광양여중에서 공모교장으로 2010년 9월 1일 부임하여 근무를 마치고 이번에 순천동산여중으로 전근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내 꿈이 8월말까지 행복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이뤄졌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박할지라도 크고 작은 꿈이 있지요. 그러나 그 꿈이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좌절하게 됩니다. 이때 이 벽을 깨는 길은 없을까요?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꿈을 꾸지 못하고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가끔 잠 자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여러분과 헤어지는 마지막 시간에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엿장수의 딸로 시골에서 태어나 사회의 편견과 냉대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절망뿐인 현실을 희망의 내일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녀의 과거는 분노가 가득했고, 삶에 반항하였으며 차별을 받으면서 오기가 넘치기도 하였답니다. 이런 그녀가 하버드대 박사, 소장, 동기부여 강사, 베스트셀러 작가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희망이 만든 오늘의 수식어는 많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걸 어떻게 살다갈까? 이것을 바로 내가 결정한다는 거죠."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또한, "내 미래까지도 짓밟는 그런 삶은 절대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딱 한 번 뿐입니다. 가발 공장 직공에서 미국 육군 소령을 거쳐 하버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희망의 증거가 된 희망연구소 서진규 소장은 1999년 쓴 자전 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오늘도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여자란 이유로 차별과 구박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발 공장 직공과 식당 종업원으로 일을 하던 중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났지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미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는 현실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하여, 이후 미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기까지 20여 년간 군인으로 몸담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고 이후 마흔 둘의 나이에 하버드대에 입학해 59세의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진규 박사는 ‘군대는 참 평등하다’며 ‘개인의 실력을 인정해 주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태도나 성과에 대해서 보상 등의 대우가 굉장히 달랐다’면서 누군가를 의지하기 보다는 늘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딸인 조성아씨도 미군 육군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대학 시절 ROTC 생활을 하고 졸업 후 4년의 의무기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4년간 군 생활을 하고, 또 하버드대에 입학해 어머니가 걸어온 발걸음을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곁에서 지켜봐 온 딸 조성아씨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복제인간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10개월간의 한국 근무를 끝으로 미 육군을 그만두고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간직했던 외교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떠나는 자리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도 미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서진규가 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책을 꼭 읽어 보고 꿈꾸길 기대하여 봅니다. 유튜브에서 서진규 박사를 검색하면 여러 개의 동영상이 있습니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또 자신이 만일 지금 이 시간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녀의 삶의 영상을 다시 한 번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희망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딱 한 번 뿐인 인생을 멋지게, 신나게, 행복하게 살기 소망해 봅니다. 나와 함께 3년동안 이 광양여중에서 호흡하고 밥을 먹었던 광양여중 모든 소녀들이 어제보다는 오늘 더 많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갈망하고 꿈꾸길 바라면서,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평안이 늘 함께 하기를. 2014. 8. 29 광양여중을 떠나면서
인간의 생각이 긍정적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도박꾼과 선거꾼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노름꾼은 다른 사람들은 다 잃어도 자기만은 딸 것이라 믿는다. 이같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이끌려 도박판에 계속하여 들어간다. 선거에 중독된 사람들도 밑도 끝도 없이 당선 100% 확신으로 선거판에 뛰어든다. 이번에는 자기 차례라고 확신한다.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통이 따르게 된다. 이 두 부류는 영국 출신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로저 스크루턴이 대표로 꼽는 비양심적인 낙관주의자의 상징이다. 스크루턴은 최근 발간된 '긍정의 오류'를 통하여 지금 세계 경제의 목을 죄고 있는 ‘신용 경색’이야말로 이런 양심에 털 난 낙천주의자들이 꾸민 ‘최상의 시나리오 오류’라고 지적하다. 그러기에 몇 년 후에 우리 나라도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인간도 살아가는데 문제지만 너무 낙관적인 인간은 더 큰 재앙이라는 것이 스크루턴이 주장하는 요지이다. 특히 입으로는 소통이라면서 마음으로는 불통인 지도자들을 향해 그는 “헛된 희망의 자리에 진정한 희망을, 복수의 자리에 용서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이후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짓 희망을 유포하는 자들, 자유 민주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 주장하는 도식적 의회주의자들은 염세주의자들보다 더 위험한 낙천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눈꼽만큼도 믿어 의심치 않는 오류가 저지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절대 지지 않는다. 그 위험에 대해서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 확신과 무책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 유형 아닌가. 인간 집단이 저지르고 있는 낙천주의적 오류를 스크루턴은 여섯 가지로 분류하여 잘 정리했다. 첫째,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주장의 오류, 둘째, 유토피아 오류, 셋째, 제로섬 오류, 넷째, 계획의 오류, 다섯째, 움직이는 정신의 오류, 여섯째, 총합의 오류다. ‘오류’란 단어 앞쪽의 명제들은 대부분 인류 발전의 원동력으로 제시돼 온 것들이지만 파란불을 빨간불로 바꿔놓고 들여다보면 180도 거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뇌 속 ‘씽크 홀(Think Hole)’이다.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왔다거나, 대체로 건전하고 온건한 방향으로 세계 발전을 내다본 사람이라면 ‘나는 혹시 낙관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볼 일이다. 지구를 덮어오며 점점 커질 거대 권력, 질병과 고령과 무능력과 죽음 같은 인류의 오랜 적들을 정복할 능력을 키워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에둘러서 조언한다. “약간의 염세주의는 온갖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지혜의 목소리 역할을 할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발 적절한 비관의 효용을 숙고하시라고 말하는 쓴 약 같은 책이 바로 '긍정의 오류'이다.
e수원뉴스 시민기자 2박3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사전에 참가 신청은 하였지만 하루 전까지도 참가여부는 미지수였다. 시민기자가 작업이 아니라 근태처리를 하는 교육공무원이기에 망설였던 것이다. 고심 끝에 연가를 받았다. 도대체 e수원뉴스 시민기자 워크숍이 무엇이길래? 이번 기회에 내가 시민기자 워크숍에 참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가 자발성이다. 시민기자 누가 시킨 것 아니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 때론 기사쓰기가 어려워도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기사는 출고된다. 이 세상 일 누가 강제로 시키면 짜증이 난다. 성과도 나타나지 않는다. 타율적인 인간은 발전이 없다. 그러다가 기사쓰기를 게을리 하게 된다. 기사를 쓴다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편협된 기사는 독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둘째 수원사랑의 정신이다.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고장에 대해 관심이 없다. 관심이 부족한 사람은 주위 대상과 현상에 대해 애정이 없다. 그러나 수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이 사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수원에서 나온 자칭 수원 토박이다.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게을리 하면 타지 사람보다 수원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부단한 공부가 필요한데 시민기자 활동을 수원에 대해 공부하라고 자극을 준다. 셋째, 2007년 10월 초창기부터 활동한 원년 멤버요 으뜸기자다. 2007년은 참으로 뜻이 깊다. 서호중학교에서 새내기 교장 출발을 한 것. 고교시절 수고학보 기자를 하고 교육신문 리포터를 했지만 교직이라는 것이 우물안 개구리다. 사회인들과 교류의 시간이 많지 않다. 시민기자 경력을 몇 년 쌓으면서 워크숍을 통해 역량 강화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김우영 주간을 비롯한 주위 분들의 도움도 컸다. 그래서 3년 연속 으뜸기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으뜸기자가 워크숍에 빠질 수 없다. 넷째, 워크숍을 통해 수원시정을 알게 되고 시장과 자연스런 만남이 있다. 시민으로서 시정을 알게 되면 이해가 깊어진다. 수원시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있다. 요즘 세상,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이번에도 염태영 시장이 워크숍 현장을 찾았다. 시민기자 격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토크숍를 통해 시민기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형식적이 대화가 아니다. 염 시장의 장점 하나, 형식과 격식 파괴다. 이번에도 스피드 퀴즈에서 기자들과 한 마음이 되었다. 다섯째, 워크숍은 치유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일에 푹 빠져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이야깃거리가 많다. 필자의 경우, 교장에서 장학관으로 전직하여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진도에 가서 장기간 근무하여 몸과 마음이 피폐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자연 기사 쓰는 횟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워크숍을 통해 활력을 얻는 것이다. 이번 워크숍, 예년과는 다르게 문화탐방도 있고 토크쇼도 있었다. 작은 레크리에이션은 기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었다. 지적재산권의 종요성도 새삼 깨달았다. 문당 환경 농업마을에서는 귀농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워크숍을 기획하고 세심히 준비한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6개월간 정들었던관사 자취방, 오늘 밤이이 방에서 마지막 날이네!" 전보 발령 소식을 듣고 자리에 누우니 감회가 새롭다. 그래도 퇴근 시간 이후 나를 반겨주던 곳이다. 나만의 휴식처다. 내일을 재충전하던 곳이다. 자취방을 내 나름대로 꾸미느라 공간배치도 해 보았다. 안 하던 물걸레질도 하면서 정을 붙였다. 지난 3월 발령 당시, 이 곳에서 오래 머물고자 생각하였다. 최소 1년에서 2년.그리하여 중고 텔레비전도 사고 인터넷을 연결하여 컴퓨터도 설치하였다. 퇴근 후 시간을 뜻있게 보내고자 함이었다.또 리포터인지라 직장에서 못 쓴 기사를 쓰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었다. 그것은 국가적인 불행이었다. 사고 당일 밤, 출근 복장으로 진도 팽목항으로 사고 수습을 나갔다. 특이한 사실은 심야시간인데 목포에서 진도가는 중요 사거리마다 교통경찰관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형 사고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가 체험학습을 맡고 있어 진도 수습 업무를 전담하였다. 사고 당일부터 7일간 근무를 시작으로 4박5알, 3박4일 간격으로 근무하다보니 44일정도를 근무하였다. 팽목항 근무를 오래하여 지인들은 '팽목항 근무 전담 장학관'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 팽목항으로 출발! 희생자 수습 지원 업무를 비롯해 차량지원, 상황실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야간 근무조 교대까지 마무리 지으면 밤 10시다.숙소에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면 11시다. 그러니까 하루 17시간을 근무한 것. 그 영향이었을까 몸에 몸에 무리가 왔다. 체중이 8kg이나 줄어 들었다.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이다. 건강을 해쳤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결단의 순간이다. 결국 집 가까이 가기로 결정하였다. 윗분들의 허락을 받고 전보내신서를 썼다.종합검진을 받으니 병명이 나왔다. 몸 추스리기가 우선이다. 그래서 직장을 옮겨야하는 것이다. 자취생활의 좋은 점은 홀로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되돌아 보고 침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가족간의 대화가부족하다. 아내가 해 주는 따뜻한 밥 대신 전기밥솥이 해 놓은밥으로 아침과 저녁 그리고 다음날 아침을 해결한다. 그래도 6개월동안 아침밥을 안 먹은 적은 별로 없다. 제대로 챙겨 먹은 것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겨울옷과 여름옷이 섞여 있다. 넥타이는 10여개가 있고 목도리도 보인다. 겨울과 봄, 여름을 이 곳에서 보낸 것이다. 3개월이 동시에 나온 달력을 보니 두 장을 떼어냈다. 찬장에는 아내가 반찬응 담아 준 밑반찬통이 여러개 보인다. 이젠 빈 그롯이지만 아내의 정성을 담았던 그릇이다. 정을 붙이려고 의정부시청에 연락하여 의정부 안내지도, 의정부시 소풍길, 의정부 가이드 북을 받았다. 이 자료는 전입한 동료 장학관에도 전달하여 함께 적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장을 하던 사람은 무보직 장학관이란 것에 적응하기 힘들다. 대우가 교감 수준이다. 능력 발휘에도 한계가 있다.'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 동안 따뜻이 대해준 민주시민과 동료 장학관과 장학사, 주무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인정해 주시고 말 한마디에도 덕담을 건네 주신 교육국장님, 부교육감님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 북부청사 직원 여러분 모두가 고맙다. 이들은 어려운 이웃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제 9월 1일이면 지역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으로 출근한다. 다행히 교육장, 국장이 오래 전부터 아는 분들이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마음 편하게 근무하라고 일러 주신다. 함께 근무할 중등 장학사들도 품성이 좋고유능한 분들이다. 필자는 장학사 4년 반, 교감 3년 반, 교장 6년 반, 그리고 장학관 6개월간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제는 새로운 근무지에서 실천이 남았다.
직선제 교육감의 가장 큰 폐단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사철만 되면 선거 과정에 도움을 줬거나 교육적 성향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원칙과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에게 선심성 자리를 주는 일이 되풀이 됐다. 이는 다른 어느 곳보다 합리적 절차와 객관적 합의가 중시되는 교육계에서 교육행정을 이끌고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감의 권한 남용으로 비춰졌고 그로 인해 교육 전반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교육감으로 당선된 분들은 앞 다퉈 공정한 인사시스템 도입을 공언한 바 있기에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논공행상 논란과 인사부정 비리로 얼룩졌던 전철을 일소하고, 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가치중립적인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월 1일자로 단행된 각 시도교육청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형평성 시비 및 코드인사 논란이 재연됐다는 점에서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평교사를 장학관(연구관)으로 발탁해 전직 임용한 사례가 4개 시․도, 9명에 이르고 무자격공모교장 출신을 주요보직에 임용한 사례도 2개 시․도, 2명으로 한국교총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교육 전문직의 꽃으로 불리는 장학관(연구관)은 엄격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부단한 연구와 열정으로 오랜 기간 준비해야 가능하다. 장학사(연구사)가 되고서도 7~8년간 업무 경험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아야 오를 수 있는 꿈같은 자리다. 평교사가 두 단계를 뛰어넘어 장학관으로 임용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이 같은 승진이 가능한 것은 현행법상 평교사에서 장학사(연구사)로의 전직은 공개전형에 따른 객관적 임용 절차를 따르고 있으나 그 보다 높은 장학관(연구관)은 일정 자격만 갖추면 교육감의 지명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감은 개별 시․도의 현장 교육자들을 대표한다. 교육감의 인사권도 어디까지나 현장 교육자들의 공감과 소통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래야만 교육감의 영(令)이 서고 교육자로서 존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코드인사의 적폐를 교육감부터 털어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교육감의 직무 수행 능력은 인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학교에 아이들의 9시 등교를 강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수업시간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할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의 단위 수업 시간은 학생 발단단계를 고려해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을 기준으로 정했다. 점심시간, 아침활동시간등 파행 필자가 전에 재직하던 학교 수업 운영방식은 8시 40분 등교, 9시에 1교시 시작이다. 20여 분 간 담임교사의 출석 점검, 간단한 아침 훈화 등을 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이는 학생 가정환경, 즉 도시와 농촌, 맞벌이 부모 비율, 교통난 등에 따라 편차가 많기에 확인 차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9시 등교를 한다면 이러한 시간을 포함해 9시 30분 정도 1교시 수업을 들어갈 수밖에 없다. 9시 30분에 1교시를 운영하면 초교는 1 단위 교과 시간 40분, 10분 휴식 3번, 4 교과 시간 운영을 하도록 돼있어 190분을 오전 시간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점심 식사는 12시 40분이 된다. 중학교의 경우 1 단위 수업시간 45분이니까 오후 1시, 고등학교의 경우 오후 1시 20분에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 학생이 원한다 해서 9시 등교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 듯하나, 그 학생들에게 점심시간 여부를 놓고 질문을 다시 던져봐라.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점심시간 마친 뒤 쉬는 시간 없애도 되겠니? 마지막 수업 시간 늦춰도 되겠니?’ 등에 대해 같은 반응이 나올지 의문이다. 학교는 교과수업 시간이 점심시간 이상으로 충실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수업시간을 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교실배식을 하는 학교보다 급식실 배식을 하는 학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현재는 이른 등교로 무리 없이 급식실 배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9시 등교를 강행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교육과정 단위시간 준수라는 고민과 점심시간 확보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 학교의 아침시간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있다. 독서활동, 건강달리기, 자치활동, 교내봉사, 한자공부, 방송영어 등 다양하다. 그런데 학교가 9시 등교를 강행한다면 기초교육과 인성교육이 가능한 이런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9시 등교 강행으로 인해 교과 수업시간을 위한 획일적 학교운영이 될 것은 뻔하다. 학생 수면부족 문제도 못 풀어 9시 등교를 주장하는 사람은 청소년기 수면부족이 정서적인 면과 학습 효율적인 면에서 나쁘다는 연구 이론을 들어서 합리화한다. 10대들의 뇌는 9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학생들이 최상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수면시간과 패턴은 가정환경, 학습 부담, 인터넷과 스마트기기 중독, 운동 습관 등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등교시간이 아니라 부모의 공부 강요, 방과 후 학원 및 과외공부, 스마트폰, 게임 등이 더 큰 이유인 것이다. 진정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굴레를 벗겨주려면 사교육에 몰입하는 제도를 바꿔줘야 한다. 주지교과 점수 위주의 줄 세우기 입시 제도를 바꾸면 저절로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학교 스포츠, 예술 활동, 자치활동 등 학교 활동의 성과를 반영하고 교과 수업 시간을 줄여주는 제도적 뒷받침 마련이 훨씬 필요하다.
올해 대입전형이 6일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60만 명 수험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12년간의 기나긴 여행 끝에 목적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된다. 서울대 정책방향에 모두가 흔들려 그러나 학생들은 ‘스카이, 서성한이, 중경외시’ 등 전국 200여개 대학 서열부터 생각하게 된다. 대학 서열화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갖은 폐단을 낳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그동안 고교 현장에서는 3500여 명을 선발하는 서울대의 대입 정책 방향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국 대학교 모집인원의 1% 정도의 서울대가 수능에서 제2외국어 반영과 한국사 필수 등을 이야기 할 때 고교 교육과정은 소수 학생들을 위해 1학년 때 배웠던 교과를 3학년으로 변경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현 대입전형은 일부학생들을 위한 방식이며, 고교 교육현장에서 학생 선택을 제한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학년도부터 도입된 수시지원 횟수 6회 제한 문제만 봐도 그렇다. 물론 지난 2010학년도 한 수험생이 61회나 지원하는 등의 문제를 경감하고 실질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복수 지원한 학생이 여러 곳 합격한 경우 합격날짜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서열에서 밀리는 학교는 최초 합격자보다 예비 합격자가 더 많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 학생들은 시작부터 패배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또 현재 일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또는 평준화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비평준화지역 소재 고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을 고려해 입학이 가능하지만,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평준화지역 소재 고교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정된 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런 경우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과가 다양하지 못하고 정해진 일부 교과를 이수할 수밖에 없다. 학교 상황에 따라 교과이외 활동으로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이 매우 차이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일부 고교의 경우 상위 10% 학생들이 주요활동들을 주도하고 수상 실적에서도 각종 교내 경시대회 수상을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고교 교육현장은 여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지만 학생선택은 매우 제한적이고 무시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입전형과 학교 교육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소외되고 일부 상위권 학생들이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독점하는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되야 한다. 대학 서열화가 더욱 강화될수록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진로 결정보다는 대학의 이름을 보고 진학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진로진학상담교사 역할에 큰 기대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학교 교육이 정상화 돼서 학생들이 개개인에 적합한 진로를 계획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꿈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데 있다고 사료된다. 다행히 지난 해 전국 중고등학교 5520개교 중 5215개교(95.4%)에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배치됐다. 각 학교는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성과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제라도 학생들을 교육의 패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과 끼를 생각하고 자신이 결정하는 미래를 일궈갈 ‘꿈의 디자이너’로 양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 사회과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 중에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통상적으로 거래비용이란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일컫는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재화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생산비용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재화의 생산 외에 교환 당사자를 찾아 거래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발생하는 모든 비용이 바로 거래비용이다. 여기에는 생산자나 소비자가 적당한 거래 당사자를 찾는 데 소요되는 비용, 사고 싶은 적당한 물건을 찾는 데 들어가는 비용, 거래 당사자들이 협상을 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계약 체결 후 이를 어기지 못하도록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가 거래비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거래비용이 높은 나라는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도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신뢰는 궁극적으로 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거래비용을 낮춰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이렇듯 한 나라의 발전에 있어서 거래비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래비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일까? 생산비용과 달리 거래비용은 측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래를 하는 한 거래비용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거래비용이 높게 되면 한 사회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잦은 정책변화와 복잡한 제도, 사회적 비효율 초래해 거래비용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를 둘러싸고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정책은 거래비용을 발생시킨다. 정부가 만든 새로운 정책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이 유형·무형으로 지불해야 하는 모든 비용이 거래비용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고려하는 비용은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일 뿐, 사회 구성원들이 지불해야 되는 다양한 형태의 거래비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서,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에서는 거래비용이 ‘0’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이다. 정부가 입시제도를 바꾸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용역비, 회의비, 정책홍보비, 관련 인건비 등 그리 높지 않다. 그렇지만 한번 입시제도가 바뀌게 되면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책변화가 야기하는 거래비용이다. 제도 변화가 잦으면 잦을수록 거래비용은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정책을 변경시킬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한,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거래비용을 ‘0’로 가정하면 정책변화가 낳는 효과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잦은 정책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 거래비용이 엄청난 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가 복잡해도 거래비용은 올라간다. 입시제도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사회가 지불하는 거래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입시전형에 대한 정보획득비용, 각각의 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 등의 규모는 엄청나다. 이는 공교육 예산과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사교육 비용 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입안과정에서 이러한 거래비용이 거의 ‘0’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도 거래비용을 신경 쓸 이유가 없으므로 갖가지 이유로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입시제도는 단순할수록 좋다.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거래비용[PART VIEW] 복잡한 입시제도가 야기하는 높은 거래비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보획득비용을 포함한 거래비용 지불 능력이 계층 간 매우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복잡한 입시제도는 거래비용을 통해서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입시제도를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입시제도만 거래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교육개혁 정책은 거래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거래비용은 정부가 지불하는 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정부가 너무 많은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거래비용이 높아질수록 그 나라의 사회경제 발전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교육정책을 만드는 데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프로필 _ 하연섭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와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육부총리 정책보좌관, 연세대학교 국제처장을 역임한 바 있다. 재무행정, 제도분석, 비교정책, 교육정책이 주요 관심 분야이며, 저서로 제도분석: 이론과 재정, 재정학의 이해등이 있다.
첫째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한두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말을 하는 쪽에서는 이 말의 친화적 효능을 상당히 믿는 눈치이다. 그러니까 이 인사법이 이처럼 널리 만연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듣는 쪽에서는 이 말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저 말로만 던져 보는 립 서비스(lip service) 정도의 관심일 뿐, 실제로 밥을 먹자고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말처럼 맥 빠지는 거짓말이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빈말 인사’라는 것이다. 서로가 그렇게 되지 않을 줄 다 알면서 주고받는 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어떤 영어 신문의 칼럼 (editorial)에서 보았는데, 미국인들도 친밀해지려는 의도를 이런 표현으로 한다고 한다. “Let’s have lunch someday” 하고 당장이라도 같이 밥 먹을 듯 말해도, 그 someday는 언제일지 모르는 someday일 뿐이라는 것이다. “We’ll have to do lunch someday”라고 말하면 제법 강한 의지가 표명된 것 같지만, 이 경우도 실제로 함께 밥을 먹게 되는 장면에 이르게 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친화적 매력을 주는 인사말로 다가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한번 봅시다”라고 하거나 “언제 한번 연락합시다”라고 하는 것에 비해서 ‘언제 한번 밥을 먹자’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서로 공유하게 되는 일, 즉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일이 암시하는 ‘상대와의 진한 일체감’, ‘상대에 대한 강력한 대화지향의 태도’가 각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라는 인사말대로 실제 식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장면을 상정해 보면 이 말의 친화적 효과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이 잘 지켜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 인사말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상대가 믿음을 주는지 안 주는지 살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내 진정성만 강조하여 ‘언제 밥이나 한번 하자’는 인사를 오늘도 남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빈말로서도 일정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인사말을 버리지 않고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요컨대 ‘밥’이 소통이나 대화에 어떤 활성 효과를 불어넣는 힘은 크고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밥의 힘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 둘째 인문학적 물음으로 바꾸어 보자. ‘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산다. 우리들의 생물학적 삶을 담보하는 ‘밥’의 가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니, 그 이상의 가치로 밥은 하나의 이데아를 이룬다. 밥은 소중하다. 배가 고플 때는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소중하고, 배가 부를 때에 밥에 관해서 명상을 해 보아도, 밥은 나의 욕구와 상관없이 소중하다. 이런 인식은 인간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이 먹을 것(밥) 가지고서 장난치면, 철이 나지 않았다고, 철딱서니 없는 짓이라고 야단을 쳤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을 웃긴답시고 출연자로 하여금 밥에 얼굴을 처박게 하거나, 밥으로 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르신들은 혀를 찬다. 그뿐인가. 밥은 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 영양 효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이렇게 믿었다. 밥을 남겨서 버리게 하면 죽어서 아귀가 있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밥은 어쩔 수 없이 사회성을 띠기도 한다. 보릿고개 허기 기운으로 가물가물하던 그 가난하던 시절에 “밥 먹었니?”,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 하고 오로지 밥으로만 인사나 안부를 묻던 관습이 바로 그러하다. 밥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던 때의 인사말이다.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로 “니, 밥 묵었나?” 하고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밥 안부를 인사로 앞세우던 그 배경에는 밥 못 먹은 사람에 대한 밥 대접을(비록 한 덩어리의 찬밥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사회적 실천 덕목으로 여기던 우리네 가치관이 스며있는 것이다. 이처럼 밥은 사회적 나눔의 의미를 강렬하게 표상하는 것이었다. 움치고 뛰어도 우리는 밥의 영토를 벗어날 수 없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밥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비루하게 여기는 것은 허영심의 일종이다. 밥은 삶의 굴레이기도 하지만, 밥이야말로 삶의 실존을 담보하는 매우 거룩한 조건이다. 누가 밥을 무시하랴. 그럴듯한 위엄도, 명예로운 의식(儀式)도, 강렬한 이념의 실천도, 그 어떤 거룩한 전쟁(聖戰)도, 그것을 막아내는 지혜로운 외교도, 아주 고상한 교육도, ‘밥’으로 지켜지는 삶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이렇게 밥의 총체성을 좀 너그럽고 따뜻하게 이해하려고 든다면, 즉 우리들 삶과 밥의 상관성을 좀 더 다채롭게 연결하고 이해하면서, 삶과 밥 사이를 상호 통섭의 생각으로 다가가면,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하는 이분법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전자 안에 후자가 들어 있고, 후자 안에 전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결정적 경지란 무엇일까. 밥으로 소통을 삼고, 밥으로 감사를 느끼고, 밥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경지이어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밥을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갓 스무 살의 총각 선생님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가난한 시골 농촌학교였는데,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마음에 품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진학률이 30% 정도 되었을까. 선생님은 가끔 저녁 무렵에 어린 제자들을 당신의 하숙집으로 불러서 저녁상을 차리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책도 읽어 주고, 역사 이야기도 해주고, 수학공부도 가르쳐 주며, 우리의 공부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던 우리에게 실력을 길러 어떻게 해서든 중학교를 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는 공부도 공부지만 선생님과 함께 밥상에 앉아서 먹은 저녁 밥맛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하숙집 주인에게 별도의 부탁을 하여 어린 제자들의 밥상을 차리게 했을 것이다. 그 해 늦가을 선생님이 군대에 가던 날, 우리들 모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 이별 경험은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PART VIEW] 대학시절 은사이던 K 교수님은 당신의 ‘문학’ 강의가 종강되는 날, 대학생 제자들을 학교 앞 음식점으로 불러서 밥 한 끼를 사주셨다. 우리는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을 드리며 그 밥을 먹었다. 선생과 제자 사이에 놓인 밥이란 무엇인가. 그 밥을 매개로 사제가 서로 자유로운 인격으로 친화하여 무언가를 나누게 하는 것이다. 훗날 제자들의 마음에 흘러갈 풍경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선생님에 대한 그 친숙함이란 얼마나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그날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자유로움은 우리들의 자존을 저만큼 고양시켰다. 나도 선생 된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선배 교수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노모에게 드릴 용돈과 제자들에게 밥 사줄 돈은 내 벌이에서 미리 떼어 놓아야 한다. 내가 아껴 쓰고 남으면 그때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될 것 같지만, 이 두 가지 일은 그렇게 해서는 좀체 이뤄지기 어렵다.” 얼마나 아름다운 실천의 지혜가 담긴 말인지. 제자에게 대접한 한 그릇의 밥은 나중에 열 그릇도 넘게 나에게 돌아온다. 제자에게 열 그릇의 밥을 되돌려 대접받았다는 뜻이 아님은 누구나 이해하리라. 제자를 위해 베푸는 밥 한 그릇,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일생을 아름다운 소통으로 묶어 주는 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년의 스승과 장년의 제자가, 가르치고 배웠던 세월을 까마득히 뛰어넘어, 밥상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생 전체로 보면, 이렇게 세월을 더해가며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제자는 오로지 스승의 복이다. 그 복을 감사히 여기는 스승은 제자에겐들 복이 아니 될 수 없다. 전통사회에서와는 다른 현대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사제 모델을 이렇게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밥의 힘은 이래저래 위대하다.
한국교총이 교육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교총은 교육감 직선제 위헌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6년부터 시행된 교육감 직선제가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교육자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교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안양옥 회장을 비롯 황환택 충남교총 회장 등 전국 17개 시·도교총 회장단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위헌 소송 청구의 배경과 경과 등을 밝히고 청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교총은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지방교육자치법)에 보장된 교육감 직선제는 헌법상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수학권), 교원의 가르칠 권리(수업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및 평등권 등을 모두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총은 교육감 직선제의 위헌 근거로 ▲헌법상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 조항 위배 ▲‘민주주의, 지방자치, 교육자주’ 3가지 헌법 가치 미충족 ▲유·초·중등 교원 교육감 출마 제한에 따른 기본권 침해 ▲비정치기관장인 교육감을 정치행위인 선거방식으로 선출토록 한 것 등을 제시했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교육감 직선제 위헌 소송 청구는 정치로부터 대한민국 교육 독립을 선포하는 의미를 갖는다”며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교육 자주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다. 안 회장은 “교육감 선거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정치선거’로의 변질, 보수 대 진보라는 정치구도의 진영논리 속에 갇힌 채 교육계가 아닌 정치권력과 사회시민 세력들에게 선거가 주도된 채 교육수장이 뽑히는 뼈아픈 경험을 감수하게 됐다”며 “실제로 지난 6·4 서울교육감 선거는 특정 정당과 정치인이 조직적으로 연계된 정치 선거로 치러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지역교육 수장을 고도의 정치행위인 선거방식으로 선출하는 것은 헌법가치를 훼손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교육감의 중요성을 무시 또는 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등을 직선이 아닌 임명제로 하고 있는 것은 주민자치 및 민주성 보다는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위헌 소송에는 학부모, 교원, 교육감 선거 출마자 등 총 2,451명이 청구인단에 참여했다. 또 직접적인 소송 참가자 외에 학생, 학부모, 일반 시민 등 3만 3,740명이 적극 동참을 선언했다. 이날 교총의 ‘교육감직선제 위헌 소송 청구 기자회견’에는 학부모, 교원 및 시민 등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송 대리인인 전병관 변호사가 참석해 ‘교육감 직선제의 위헌 논거’를, 청구인 대표로 문경구(전 영천고 교사, 교육감 출마 포기자), 최정희(안산동산고 학부모)가 각각 위헌 소송 참여 이유를 밝히고, 윤보영 교육감 직선제 헌법소원 지원단 대표도 입장을 개진했다. 한편, 교총은 교육감 직선제 위헌 소송 청구서 접수 이후에도 교육감 직선제 폐해의 구체적 사례를 대국민과 교육구성원들로부터 수집해 지속적으로 언론, 정치권 등에 제공해 나감은 물론, 청구인과 위헌소송 청구대리인인 변호사들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교육감 직선제 위헌 결정을 이끌 것임을 천명했다.
“대학 구조개혁 필요하지요. 하지만 방법이 문젭니다. 교육부가 획일적인 잣대로 대학을 평가한다면 대학의 자율성은 오히려 더 위축될 것입니다. 대학 유형별로 특성을 살린 다양한 형태의 평가가 이뤄질 때 대학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 201개 4년제 대학의 실질적 대의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원근 사무총장은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추진 방안은 대학 정원을 줄이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대학의 자율성을 죽이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부가 마련한 대학구조개혁안은 전국의 모든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눠 최우수 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2013학년도까지 입학정원 16만 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학생 수 감소로 정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대학들로서는 사활을 건 레이스가 시작된 셈이다. 획일적 대학평가, 대학교육 경쟁력 오히려 약화시켜 “대학구조개혁을 통해 대학교육을 특성화해보자는 이야기인데, 좋다 이겁니다. 그러면 국립대와 사립대,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 등 특성별로 평가를 해야지요. 그래야 신뢰성도 높이고 평가의 효과성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사무총장은 “교육부가 무소불위의 획일적 평가 잣대를 모든 대학에 들이대는 바람에 대학총장들은 지금 단두대에 서 있는 심정”이라며 “한줄 세우기 평가 방식은 대학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출발점은 학생 수 감소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부실대학 퇴출 문제가 겹치면서 강화됐다. 2016년부터 고교 졸업생이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은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데다 연구비 횡령과 회계부정 및 부실 경영 등 일부 대학들의 방만한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메스를 댄 것이다. 지방대학 지원확대… 교수들 연구여건 개선 서둘러야 “지금 대학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어요. 스스로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채찍보다 대학을 믿고 지원해 주는 투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대학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교육부가 인위적인 칼질을 하기보다는 대학들이 제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감한 정책적 결단이 아쉽다는 것이다. 이 사무총장은 또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대학에 대한 파격적 지원과 교수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대학들이 세계 유수의 명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방대학의 힘입니다. 규슈대학이나 북해도대학 등은 세계 300대 대학에 들어갈 만큼 국제적 경쟁력을 갖고 있죠. 일본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이 발생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는 “지방대학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관심과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낡은 실험 실습실 개선 등 교수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강조했다. 논문표절 등 연구윤리 논란 안타까워… 실태조사 나설 것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 낙마를 계기로 다시 불거진 논문표절 등 대학사회의 도덕성 논란에 대해 대교협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 사무총장은 “교수들의 연구윤리에 대해 각 학문 분야별로 자세한 실태 조사를 벌인 뒤 대책을 강구해볼 계획”이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07년 황우석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불붙은 논문표절 등 연구윤리 부분은 대학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학계에서는 엄격하게 심사하자는 강경론과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온건론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실정이다. “젊은 교수들일수록 강경합니다.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도 합니다. 이들은 황우석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눠 일종의 경과규정을 두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무총장은 “연구 활동을 많이 한 교수들은 혹시 표절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하고 논문 몇 편 안 쓴 분들은 오히려 큰소리치는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대학가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진보 교육감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서울대만 가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잘못된 인식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없애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서울대 독식주의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폐지論’ 반대지만 서울대 독식구조 개편은 필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서울대 입학자격을 수능시험 1등급 또는 2등급 이상으로 정해놓고 응시한 학생들을 추첨으로 선발하는 방안은 어떨까 싶어요. 말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니까 서울대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학생이라면 그들 모두에게 기회를 주자는 거죠. 물론 운이 좋으면 합격하고 나쁘면 떨어지는 복불복이지만 이 같은 추첨입학제는 우수한 학생만 뽑자는 ‘선발경쟁’에서 잘 가르치자는 ‘교육경쟁’으로 대학교육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사무총장은 또 박근혜 정부 입시정책에 대해서는 “대입전형 간소화와 입학원서 일원화 등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을 곧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교협은 대입 전형료 완화와 수험생들의 부담 감소를 위해 대입공통원서접수시스템을 구축, 2016학년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그는 “수험생들의 전형료 부담은 물론 편의성을 도모한 생활밀착형 정책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취임 후 가장 ‘핫’한 일을 꼽으라면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25개 자사고 중 14개가 올해 5년째를 맞아 평가를 받고, 평가 결과가 미흡한 자사고는 퇴출당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조 교육감이 취임하기 전 이미 자사고에 대한 평가(1차 평가)가 거의 끝났다는 것이었다. 조 교육감이 “자사고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면서 예정에도 없던 평가(2차 평가)를 추진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사고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 교육감이 후보 시절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하고 있다”면서 자사고를 폐지할 뜻을 이미 밝힌 터라 이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조 교육감이 “올해 일반고로 전환 신청을 하는 자사고에는 5년에 걸쳐 학교당 10억~14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당근책은 먹혀들지 않았다. 정책의 정당성을 제대로 확보하기도 전에 꺼낸 설익은 당근을 덥석 무는 자사고는 없었다. 결국 전국자사고교장연합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은 자사고 말살 정책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자사고 학부모들이 “우리 애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며 거리로 나섰고, 일은 점점 ‘핫’해졌다. 진보와 보수 언론이 각자 목소리를 냈다. 교육계는 패로 나뉘어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 ‘자사고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조 교육감이 여기에 ‘3차 평가’와 ‘선발권 폐지’ 카드를 꺼내면서 자사고 논란은 더 커졌다. 문용린 교육감 시절 했던 1차 평가에서는 자사고가 모두 통과했는데, 조 교육감이 온 뒤 실시한 2차 평가에서는 모두 탈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3차 평가를 해서 공정하게 평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설픈 민낯 드러낸 ‘자사고 폐지’ 정책 자사고들이 이를 곧이들을 리가 없다.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자사고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1차 평가는 3개월에 걸쳐 이뤄졌지만 조 교육감이 온 뒤 실시한 2차 평가는 달랑 한 페이지짜리 허술한 설문으로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3차 평가는 전체 탈락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하는 요식행위여서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성난 자사고 학부모들이 시 교육청을 찾아 조 교육감과 마주 앉아 격정 토로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며 조 교육감의 ‘헛발질’이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학부모들이 “왜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했지만 조 교육감은 변변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선거에 이겨 입성(入城)한 진보 교육감의 갈지자 행보에 그동안 조 교육감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던 진보 언론들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한 진보 언론사 기자는 “솔직히 조 교육감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서두르다가 체했다”고도 했다. 한 달 동안 시교육청 출입기자로서 조 교육감의 자사고 행보를 지켜본 바,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면 ‘이론’의 부재를 들고 싶다. 자사고의 정당함과 부당함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정책 추진 이유가 제대로 설득력을 얻지 못했으며, 자사고에 대한 평가를 왜 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근거가 명확했어야 했다. 2차 평가는 이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지만, 주변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몇 개를 설문한 결과는 ‘자사고는 나쁜 놈’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되지 못했다. 자사고에 왜 5년 동안 10억~14억을 지원해야 하는지도 명쾌한 설명이 없었다. 자사고와 대화를 한 뒤 타협점을 찾아야 했는데 일방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했다. 선발권 폐지 카드라는 강공책은 더 문제였다. 조 교육감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근거”라고 했지만, 면접으로 학생을 뽑는 이 선발방식은 올해부터 진행될 예정이었다.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던 면접에 따른 선발권을 “나쁘다”고 몰아붙였으니 먹힐 리가 없다. 정책추진은 이념을 버리고 냉정하고 철저하게 [PART VIEW] ‘이론’이 없다 보니 결국 ‘이념’이 두드러졌다. 자사고의 해악을 철저하게 따지고 문용린 시절의 1차 평가가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됐는지 제대로 따졌어야 했다. 자사고에 지원금을 주는 이유는 1원 단위까지 철저하게 계산이 돼야 했다. 자사고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아니어도, 고개를 저을만한 정책을 내놔선 안 됐다. 조 교육감은 학부모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개혁에는 피해자가 따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피해자들이 “왜 우리가 손해를 입어야 하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게 된다. “개혁에는 피해자가 따르지만, 이런 지원을 할 테니 양해해달라”는 태도가 옳다. 이론과 이념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하는 것은 이론이다. 이념이 다분히 감성에 호소한다면 이론은 이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진보 세력(혹은 중도 세력을 포함해서)을 업고 당선됐다 하더라도 이론을 저버리면 결국 진보 세력도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조 교육감이 이렇게 일을 추진한 까닭은 아마 너무나 촉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강경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7조에 달하는 교육예산을 쥔 교육감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철저하고 냉정하게, 이념을 버리고 이론에 따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교육감의 기본 덕목이다. 이미 일이 커져 버린 자사고 평가 뒤에 내년에는 특목고와 국제중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한 입법안이 7월 말 예고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연말부터 지표를 만들고 내년에 평가에 돌입한다. 진보 세력을 업고 당선된 조 교육감의 행정가로서의 실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프로필 김기중_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학사), 카이스트 대학원(석사)에서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출입기자로 서울일보에 재직 중이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이 인생의 종착지인 듯 학창시절을 올인한다. 자신의 꿈과 적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대학의 문턱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다. 이마저도 사교육에 기대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대학진학지도지원단(이하 지원단)은 사교육에 빼앗긴 ‘대입 영역’을 공교육이 끌어안아야 한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송현섭 교육연구사는 “지원단은 사교육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진학·진로지도를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를 바탕으로 ‘입시상담’에 역점을 둔 진학지도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며 공교육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의 장래를 먼저 생각하는 1:1 ‘진로컨설팅’ “학생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학과부터 정하고 대학을 결정하는 것이 맞아요. 어느 대학에 몇 명 진학했는지 학교에서 플래카드 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죠. 학생들이 졸업할 때 이미 진로가 명확해져 있어야 진학지도가 진정한 성공을 거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로 출범 10주년을 맞이한 지원단은 ‘진학’이 중심이 아닌 ‘진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공교육 진학지도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사교육 시장에 빼앗긴 ‘진학컨설팅’을 공교육에 끌어들여, 성적이 아닌 학생들의 적성과 미래를 담아낼 수 있는 제대로 된 진로컨설팅을 해보자는 이들의 의지는 ‘1:1 무료 대입컨설팅’으로 현실화됐다. 지원단은 지난 달 7일부터 10일까지 소속 교사들이 모두 참여한 1:1 무료 대입 컨설팅을 나흘간 진행했다. 인터넷 사전 접수를 통해 예약을 받아 한 사람당 40분씩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학생의 성적뿐 아니라 희망진로, 적성 등 전반적인 사항을 고려한 맞춤식 상담이 이루어졌다. 김선욱 교사(서울동작고)는 “상담을 하다 보면 수능 3~5등급 맞는 학생들한테서 입시상담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학교에는 이런 ‘손 많이 가는’ 아이들이 더 많다. 정말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은 중위권 이하의 아이들”이라고 지적했다. 고영은 교사(서울가재울고)는 “학생의 장래를 위해 적성과 진로를 최대한 고려해서 학과와 전문대를 일일이 찾아줄 수 있는 곳은 학교 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진로에 맞춰 진학할 최적의 대학을 찾아주는 것이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공교육의 저력, 데이터의 힘 지원단의 강력한 무기는 ‘정확한 데이터’다. 송현섭 교육연구사는 “사교육에서 제시하는 배치표의 합격선은 5~10점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학원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 합격선을 임의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원단은 서울시내 고교에서 매년 12만여 건의 전년도 대입 수시 합격·불합격 자료를 수집한다. 사교육시장에 비해 데이터 수집량이 두 배 이상 많다.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토대로 지원단은 대입 상담프로그램을 개발해 1:1 대입 상담에 활용하고 있다. 송 교육연구사는 “대학마다 상이한 영역별 반영비율을 일일이 조정해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있다. 수능 10등급 체제를 60등분 해 점수체계를 세분화하고 조정점을 잡아 정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원단의 노력은 공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 회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1:1 대입상담은 설문결과 만족도가 98% 이상을 차지하는 등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 “상담을 오래 하다 보면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안 나와요. 그러면 학부모님들께서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시기도 해요. 그럴 때 정말 뿌듯하죠.” 이러한 성과를 계기로 지원단은 진로컨설팅 대상을 진로 사각지대에 놓인 중학생으로 낮춰보기로 했다. 고등학교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특목고, 일반계 등 세분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진로지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 진학한 후 부적응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진로컨설팅을 확대하기 위해 지원단은 프로그램 개발, 인적·물적 자원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한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김해용 교육연구사는 “아이들의 진로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미 설정된다”며 “어떤 과정을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이루고 싶은 꿈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안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 사람의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의 진로 상담은 매우 중요하다. 지원단은 이제 막 돛을 달고 바다에 나선 아이들에게 더 멀리보라고 등대처럼 수평선 너머로 끊임없이 빛을 던진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큰 도전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급감이다. 세계 최저 합계출산률로 연간 신생아 수는 40만 명대로 떨어졌고, 이 추세대로라면 2060년에는 약 20만 명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읍·면지역, 농·산·어촌 지역의 출생아 수는 아주 적어 지역 생활 및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도시에서도 도심 공동화 및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소규모학교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소규모학교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출생아 수 급감에 있으나, 인구 유출과 전출생 증가, 관할 경계지역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제한, 학구 설정의 경직성, 민선 교육감들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소규모학교 유지 정책, 지역주민과 동창회의 학교 통폐합 반대, 학제와 교원양성 운용제의 불일치 등 인위적인 요소도 적지 않다. 2013년 우리나라 초·중·고 학교 수는 11,408개인데, 전교생 60명 이하 초등학교는 1,200개교, 100명 이하 중등학교는 700개가 넘는다. 지난해 전국 6,203개 초등학교 가운데 입학생이 1명도 없는 학교는 121곳이었다. 초등학생 1인당 연간교육비를 비교해보면 서울의 경우 508.2만 원인데 반해 소규모학교가 많은 전라남도의 경우에는 874.2만 원이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교시설 유지비, 교원 인건비 등의 지출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소규모학교 정책, 근본적 인식 전환과 대책 마련 필요 각 학교 급의 20% 정도는 학교를 꾸려가기에 규모가 너무 작다. 소집단 협동수업이 중요한 교과수업은 학급당 학생 수가 결정적이고, 대집단 협동학습이 중요한 교과외 활동(단체행사활동, 예체능활동, 체험활동 등)은 학년당·학교당 학생 수가 적정 규모가 되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특히 의무교육 시기에 해당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공통필수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시기로, 이들 기초기본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교의 시설과 설비가 완비되어야 하고, 교사 수급이 원활해야 하며, 교육과정 운영이 충실해야 한다. 기초기본교육은 누구나 차별 없이 균등하게 교육 복지적으로 책임 운영되어야 한다. 도서지역은 학생이 한 명만 있더라도 교사를 파견해 이를 뒷받침해야 하지만, 육지로 연결된 학교는 근본적으로 소규모학교가 없어야 한다. 특히 진학과 직업 등 진로별 교육을 하는 고교는 학생들의 장거리 통학이나 기숙사 운영이 가능하므로 소규모학교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학생 수용과 적절한 학습기회 제공에 유념해야할 것이다. 소규모학교에 대한 정부정책은 1982년 이후 상당기간 동안 학생 수 감소, 분교장 격하, 재정지원과 통폐합을 통한 적정규모 학교 육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됐지만, 최근 들어 정부는 연중돌봄학교, 전원학교, 기숙형고교, 통합운영학교 등 교육 복지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소규모학교 살리기 운동이나 작은 학교 희망 찾기, 혁신학교 지정 등으로 극히 일부 학교는 활력을 되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소규모학교 정책에 대한 정부와 교육계의 보다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규모학교의 대안, 마을학교와 기본학교 취학 전 3년과 초·중학교 9년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일관교육을 지향하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6-3-3제의 학제, 6-6제의 교사 양성 운용제, 9-3제의 의무교육제 등 기본교육제도 간 불일치 상황을 끝내야 한다. 어느 나라가 국가의 기본교육제도를 이렇게 서로 어긋나게 운영하도록 방치하면서 교육이 잘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소규모학교가 힘든 것은 이런 기본교육제도 자체가 잘못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의무교육, 무상교육을 확장하면서 진작 바꾸었어야 할 불합리한 제도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소규모학교를 개선하려면 기본적으로 학제 등 학생수용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중, 중고, 초중고, 유초중고 등의 통합운영학교는 학생의 발달단계나 교육과정의 계열상 상당히 어긋난 정책이다. 가령 초중통합은 학생발달상, 중고통합은 교육과정상 잘못된 이종결합이다. 급성장기에 어린이와 사춘기 학생을 한 울타리에 두는 것이 잘못이고, 공통필수 교육과정기와 진로별 상이선택 교육과정기를 한 울타리 내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무모하다. 결국 소규모학교 문제는 육지로 연결된 학교들에서 취학 전 3년과 초중학교 9년, 총 12년에 걸쳐 학생들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행 초등학교 6년제가 아니라, 취학 전 3년의 누리과정을 공교육화하면서 초등 저학년 3년과 합쳐서 6년제 ‘마을학교’를 새로이 도입 육성해야 한다. 마을학교는 멀리 통학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6년제 작은 학교, 기초학교를 말한다. 부모가 취학을 늦춘 어린이들에게는 4~5년제 학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학교는 30명이어도 괜찮다. 학교가 수용하는 어린이들의 발달단계도 유사하다. 교육과정도 활동 중심, 미분화 통합 중심, 교과학습보다 돌봄 중심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규모를 보면 이해할 수 있듯이, 어느 누구도 마을학교를 소규모학교니까 폐지하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부 아이들을 위해서 마을간 통학용 미니버스를 교육청에서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런 작은 마을학교가 3~4개 모여서 조금 먼 거리를 통학할 수 있는 초등 고학년 3년과 중학교 3년을 수용하는 6년제 기본학교(basic school)를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읍지역이나 중소도시의 일부를 포함하는 생활권으로 큰 학구를 잘 규정하면 일정 규모를 항상 유지할 수 있다. 기본학교는 마을학교와 달리 학년단위, 학교단위 단체 활동이 늘어나므로 규모가 더 중요해진다. 9학년 기본학교 졸업까지는 생활인, 교양인, 상식인 육성에 집중해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자유학기제 같은 취지의 교육과정의 획기적 개선도 필요하다.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올 마을학교[PART VIEW] 취학 전 3년과 초등 3년의 6년제 작은 마을학교, 초등 고학년 3년과 중학 3년의 6년제 적정 규모 기본학교가 수립되면, 정부의 소규모학교의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를 위해 중학교까지 학생들은 시·도간, 시·군 구간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취학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계지역 거주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학교선택권을 부여하여 최근거리 취학이 가능하도록 해야 소규모학교도 줄어든다. 이런 학교제도의 도입은 교육공동체의 분열을 낳고 있는 소규모학교 통폐합정책을 개선하고, 취학전 교육을 교육복지 차원에서 공교육화하여 그 질을 개선하며, 국가의 기본교육제도간 불합치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마을학교 개념 도입은 산업사회 대규모 공장식 대량 획일 생산모델인 프러시안 학교체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프러시안 학교체제는 클수록 효율이 높다고 보지만, 마을학교는 그렇지 않다. 마을학교는 학생 수도 적지만 교실, 각종 시설과 설비, 운동장, 체육관 등이 작고 아기자기해도 된다. 이를 위한 새로운 학교건축모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민간에 맡기지 말고 교육복지 차원에서 취학 전 3년의 공교육화를 서둘러 마을학교로 흡수해야 한다. 취학전 교육의 공교육화는 계층 간 교육출발점 격차를 줄이는 데 첫걸음이 된다.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은 가까운 집에서 부모님의 돌봄을 받고 자연생태친화적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또래들과 평화롭게 어울리며 생애 첫 공동체를 왕따 없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활동성, 운동성을 존중하고 자연 속의 직접경험을 통해 오감을 발달시키도록 복지형 교육과정의 혁신이 요청된다. ‘넘나들이형’ 교사양성제도로의 전환 절실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교사양성제도를 일관교육이 가능하도록 넘나들이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취학 전과 초등 저학년,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를 넘나들면서 가르치는 두 가지의 6년제 교사자격증제를 신설 도입해야 학교급 간·학년 간 연결이 원활하게 된다. 교원대나 이화여대 등에서는 이런 자격증제를 당장 도입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교사들은 농산어촌 소규모학교 운영에 단비가 될 것이다. 마을학교는 교장공모제, 교사초빙제 등을 활용하여 뜻있는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학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감, 교장을 모두 배치할 필요 없이 수석교사, 교감, 교장 중 한 사람이 학교를 책임지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런 학교는 지역주민들의 자치학교로 뜻있는 교사들이 오래 머물도록 하고, 오직 학생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각종 공문 작성 등 잡무에서 교사들이 자유롭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을학교나 그 다음 단계인 기본학교가 성공적인 학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학교구성원의 자구적 노력에 더해 정부나 지자체는 전원학교, 온종일돌봄학교, 공동체학교, 혁신학교 등에 추가적인 행·재정적 지원, 인적?물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소규모학교 문제를 새로이 꾸리는 거점형·복지형 마을학교로 접근할 때 이 문제는 해결 가능성이 보인다.
나는 작은 농촌학교에 근무한다. 2012년 3월, 폐교 위기에 처해있던 학교였는데 불과 2년 사이에 학생 수가 34명에서 7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아이가 친구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여 전학을 시켜야 될지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학교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학부모들은 감사해한다. 지역사회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지난 해 폭력 없는 학교로 선정되었다. 학생들이 몰려오는 이유 중 하나이다. 교사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며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 진심어린 상담을 통해 신뢰를 쌓고, 생활지도와 인성교육을 지속적으로 함께 해나가다 보면, 학부모와의 관계도 두터워지고 학생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학교에서의 교사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임감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화장실 갈 틈도 없는 소규모학교 교사의 열악한 현실 일반적으로 소규모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교사들이 시간 여유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규모학교라고 해서 일이 종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서 개별 교사에게 주어지는 평균 업무량은 학교의 규모에 반비례해 많아진다. 업무량이 방대한 방과후학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대규모학교에서는 돌봄교실, 강사 관리 등 영역을 나눠서 여러 교사가 업무를 분담한다. 그러나 전체 교사 수가 적은 소규모학교에서는 방과후학교 업무 외에 다른 업무들이 더 추가된다. 대규모학교 교사 5~6명이 담당할 일을 소규모학교에서는 한 명의 교사가 맡아서 처리하다보니 언제나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아침에 출근하여 업무포털에 접속하면 결재 대기, 공람 공문이 나를 기다린다. 학생들이 통학버스에서 내릴 시간, 운동장으로 마중을 나가면 바람처럼 달려와 품에 와락 안기는 아이들을 보며 ‘쉬는 시간에 함께 놀아줘야지’ 다짐해보지만 산재한 일들이 허락하지 않는다. 일기장, 과제물을 꼼꼼히 읽어보고 칭찬과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는 일만 하는데도 쉬는 시간 10분이 쏜살같이 가버린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마음에 수업에 몰입하고 나면, 4교시가 끝난 후엔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듯하다. 점심시간이면 편식이 심한 학생들 급식 지도하느라 밥맛도 제대로 못 느끼고 급하게 먹을 때가 많다. 방과 후 학급업무를 비롯한 각종 업무와 공문처리를 하느라 퇴근시각을 지켜본 날이 거의 없다. 교사가 학생에게 몰입할 수 있어야 학교가 산다 [PART VIEW] 이것이 소규모학교 교사의 현실이다. 학부모들은 공문서 작성과 각종 업무처리에 온갖 에너지를 다 써버려, 정작 중요한 수업의 질은 저하되고 있는 소규모학교의 교육환경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알게 된다면 자녀를 소규모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교사들은 업무에 대한 부담 때문에 소규모학교에 부임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나 역시 50학급의 대규모학교에 근무할 때는 업무가 적어서 수업과 생활지도에 몰입할 수 있었고, 방과 후에도 학력이 낮은 학생들의 학습지도와 상담으로 뜻 깊은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작은 학교에 근무하니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을 만큼 분주한 일상이 계속되어 학생들과 마음을 나눌 겨를이 없다. 교사가 학생에게 몰입할 수 있고, 수업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학생이 살고 학교가 산다. 소규모학교일수록 교사의 업무가 경감되어야 학생들의 학력향상과 생활지도, 인성교육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선 학교에 연차적으로 배치될 계획인 교무행정사는 대규모학교가 아니라 소규모학교부터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들이 잡무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수업과 생활지도에 몰입할 수 있다면,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많은 학교교육 관련 문제는 쉬이 해결될 것이다. 아이들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머무르는 교실을 둥지처럼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끼면서 행복해한다면,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학부모 역시 아무 걱정 없이 아이를 선생님께 맡긴 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면 통학시간이 다소 길고 불편하더라도 그 학교에 보내고 싶을 것이다. 야생화와 수목, 초록잔디로 어우러진 농?산?어촌 작은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며 행복물결에 가슴 출렁이는 해맑은 동심을 그려본다. 교정 여기저기에 움트는 사랑의 싹이 소규모학교를 살리는 숨이 되고, 노래가 되어 방황하는 학생들의 영혼을 안식케 하는 둥지로 자리매김하길 빌어본다.
그라우어 스쿨 교장이자 소규모학교연맹(Small School Coalition)의 설립자인 스튜어트 그라우어 박사는 그의 고향 캘리포니아 엔씨니타스 (Encinitas, CA)에서 ‘지역의 전설’로 통한다. 1991년 그라우어 스쿨을 세운 그는 소규모학교 운동을 전개해 디스커버리 채널, 뉴욕타임즈 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소규모학교 분야의 권위자로서 그라우어 박사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작은 학교의 장점을 알리고자 자문에 응하고 강연에 나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소규모학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까지 대규모학교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연구가 전무하며 매년 10억 달러에 달하는 정부예산이 대규모학교 연구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소규모학교 운동에 적극 나서게 된 계기다. 파벌 없는 부족사회처럼 그라우어 박사는 소규모학교가 ‘진정한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는 4년여에 걸친 연구로 150명에서 최대 230명 정도의 그룹에 속했을 때 사람들이 더욱 연대감을 느낀다는 것을 밝혀냈다. 7개 학교에서의 교직생활과 소규모학교연맹 회장으로서 수년 간 학교 설립 인가를 내주는 작업을 통해 그는 소규모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부족과 같습니다. 파벌 없이 다 함께 어울리죠.” 그라우어 박사는 학교의 규모가 작으면 학생들의 학습의욕과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공동체로서 소규모학교의 장점은 단연 ‘안전’과 ‘유대감의 정서’다. ‘낮은 위협’과 ‘강한 신뢰’는 학생과 교사에게 강력한 동기요인이며 이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소규모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는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들은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헌신하죠. 소규모학교 학생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의욕이 넘칩니다.” 소규모학교 통폐합, 사회적 비용 고려해야 운영비와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교육당국의 방침에 대해 그라우어 박사는 “학교 통폐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높은 중도탈락률, 우울증, 자살, 폭력문제 등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학교 통폐합은 국가예산을 절감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규모학교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재학생의 수가 1,200명을 초과하는 대규모학교는 재학생 수가 300명이 안 되는 작은 학교에 비해 △ 폭력범죄 825% △ 반달리즘 270% △ 절도 378% △ 물리적 싸움이나 공격 394% △ 강도 3,200% △ 총기사고가 1,000% 더 많이 일어난다. U.S. Department of Education, 1999 소규모학교를 효과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라우어 박사는 ‘테마가 있는 학교’를 제안한다. 그는 “효율적인 소규모학교는 테마가 있다”며 “소규모학교가 각각 첨단기술, 예술, 스포츠, 직업교육 등 특색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한다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규모학교들은 저마다 특별해야 하며 지역사회와 연계되어야 한다. 관계가 모든 것이다 그라우어 스쿨은 대학진학률이 89%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대학에서 평균 30만 달러 이상의 성적우수장학금을 받는다. 그라우어 박사는 놀라운 학업성취도 달성 비결로 ‘관계’를 꼽았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교사 1인당 평균 7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그라우어 스쿨은 멘토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그라우어 스쿨은 다양한 교수법을 도입해 학생들의 내적 동기를 유발한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심도 있는 토론 문화를 형성했다. 과학시간에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모범답안을 참고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대조군 실험에 새로 돌입한다. “그라우어 스쿨의 학생들은 공부하는 이유가 대학에 있지 않습니다. 배움은 아름다운 것이며 삶에 있어 선택지를 주고,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라우어 박사는 “소규모학교는 학생의 시험 성적 뿐 아니라 학생과의 협력 여부도 교사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규모학교 교사의 높은 업무강도에 대한 우려에 대해 그는 “사람들은 진정한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느낄 때 힘든 일도 무리 없이 해낸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질을 제고한다”고 강조했다. 그라우어 스쿨 교사들은 각각 3개 교과를 담당해 업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임교사 35명 중 수년간 학교를 그만둔 사람은 없었다. 그라우어 스쿨은 아웃사이드 매거진에서 미국 전역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100대 일하기 좋은 직장’에서 10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라우어 박사는 마지막으로 “대규모학교에서도 소규모학교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대규모학교 학생을 200명이나 300명씩 나누면 된다. 각각의 그룹에 특별한 테마와 졸업요건을 부여하라. 학교 건물이 3층짜리라면 각 층을 ‘학교 안의 학교’로 만들라. 대규모 학습공동체의 일부분에 불과할지라도 작은 학습공동체는 더 안전하고 유대감이 충만하며 혁신적이고 행복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