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부터 초·중등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들에게 주6 시간 정도 수업을 권고하면서 경기도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현장의 대대수가 사실상 교육감의 지시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우려하며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일방적 절차, 자의적 법해석 부적절
우선 절차적 비민주성이 문제다. 비선 라인의 정책은 성공한 선례가 없으며, 오직 혼란과 구성원의 분열만 초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상급식이다. 지역교육의 책임을 진 시·군교육장들과 단 한 차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자율이라 해놓고 뒤에서 순위를 체크하면서 강제하고 있다. 이를 과연 민주 행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표성 있는 초·중등 교장회 임원진과 상의는 전무하고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회 등과 토론회나 공청회도 거친 적이 없다.
법적인 해석도 너무 자의적이고 한정적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1항에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학생을 교육 한다’는 교육의 의미를 교수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렇다. 설령 교장·교감의 교수권으로 해석한다 해도 학교장의 ‘직무에너지 총량’에 비춰볼 때 편익과 실익이 전무하다. 그렇다면 법 해석의 포괄성 및 중의적 해석으로 교육감, 교육장, 장학관, 장학사도 고유 업무보다 일정 부문 수업을 해야 타당하다.
도내 몇몇 무자격 교장의 시범 수업을 근거로 전체 교장·교감의 수업을 일반화 시킨다면 ‘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다. 학생 수업은 수업기술과 병행해 학생들과의 정서적 교감이 선행돼야 하는데 공문에 시달리는 교감이나 현장 교수를 오랫동안 하지 못한 교장을 어떤 학생과 학부모가 동의하겠는가.
현장에서 교장·교감은 장군인데, 굳이 장군에게 명중률 높은 소총수 역할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학교장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성, 생활교육 등 삶의 지혜를 체득 시키는 구루(Guru·정신적인 스승)다. 그래서 교육의 전략과 전술을 기획하고 창조하는 경영자의 자리다.
도교육청은 일부 외국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외국의 사례는 참고서이지 성서가 아니다. 그런 식이면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교원 계약제도 실시하자는 것인가.
경기교육은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악수(惡手)가 이어지고, 초·중등 현장경험이 미숙한 자들이 자리한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독선과 오만에 의한 산물이 펼쳐지고 있다.
독선 피해자는 학생·학부모 될 것
혁신의 전제는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희생과 양보에 의한 '거룩한 제의(祭衣)'가 돼야 한다. 그래야 성공의 키가 있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지금과 같은 '독재 혁신'은 반드시 패착이 될 게 뻔하고, 불행한 것은 그로 인한 최대 피해자가 학생과 학부모들이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교육 수장이 교육의 본질보다는 사회적 이슈와 언저리 활동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 역시 도민의 불행이다. 이는 교육자의 도리가 아니다. 정치인으로 회귀하던지 시민운동가의 길로 가야 한다. 이렇게 중심가치가 흔들리니 부속가치도 혼란스럽다. 줄기가 흔들리니 가지가 요동치는 격이다. 너무도 현학적(衒學的)인 면만 내세운 포퓰리즘의 전형이 개탄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