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학교건축은 지역, 대지조건, 주변환경에 관계없이 동일한 표준설계도에 의해 부족한 교실만을 증축하여 갔다. 일변 130m가 나오는 운동장 계획(100m 달리기 시설기준에 맞추기 위해)으로 인해 큰 운동장이 대지 가운데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따라서 부실한 난방에 그나마 남향배치로 햇빛이라도 받아야할 교사동은 동·서향 관계없이 울타리에 바싹 부쳐 지어졌다.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야 그나마 바람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가운데 박혀있는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의 함성, 공과 운동장 먼지들이 날라들어 창문열기도 쉽지 않다. 교문은 운동장 가운데에 있어 등교하려면 지름길(운동장)로 못오고 운동장을 반 바퀴 돌아 짜증나는 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학생들의 외부 활동은 하나의 운동장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체격에 상당한 차이가 나는 초등 1학년부터 6학년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을 같이 사용하다보니 연령별 특성놀이나 운동이 이뤄지는 것은 꿈도 못꾸며 체격차로 자주 충돌, 사고까지 빈번히 일어난다. 90년 초까지 계획자나 집행자, 건설 참여자들은 이런 학교건축에 아무런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시 해왔으나 일부 학교 교육환경 변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우리는 항상 교육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과거나 현재의 교육이 못마땅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1946년의 美軍政 시기부터 학교교육의 교육목표는 '민주화 교육', '개별화 교육', '자발적 학습방법' 등이었고 이 원칙과 목표는 현재까지 변한 적이 없으며 불행하게도 제대로 실천조차 못한 것이 사실이다. 48년 8월 정부수립. 기쁨과 기대는 컸으나 경험과 가진 것 없는 정부는 교육목표만은 皇國臣民化 시대의 것에서 벗어나 자주국민으로서의 위신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를 담을 교육환경은 일제시대 그대로일 수밖에 없었고 발전을 도모하기도 전에 6.25 전쟁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절망스럽게 되고 말았다. 50년 6월 1일부터 실시하려던 균등교육(의무교육)은 6.25로 인해 중단됐으나 52년부터 연차적으로 실시, 59년에는 취학률이 96%까지 달하게 되었다. 교육환경을 구축할 여유도 없이 급증하는 학생수를 감당하게 된 것이다. 파손된 학교복구에 이어 제한된 대지와 부족한 예산으로 '어떻게 하면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만이 당면과제가 되어 교육목표, 교수·학습방법, 학생의 개성 등을 고려한 학교 건축계획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60년 5월 국민학교 시설기준
古來로 한국건축 外皮에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재를 사용했다. 건축물을 하나의 자연으로 동화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정답고 익숙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즉 傳기와, 傳돌, 大長松, 회반죽, 사고석, 진흙 등으로 쌓여진 건축이 한국인에 맞는 한국전통환경을 이루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인의 문화와 민족의식은 성장해 온 것이다. 그러나 1904년 일본과의 맺은 '한일 외국인고문 빙용협정'에 의해 한국학교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日人 교사가 배치됨을 기회로 학제가 개편되기 시작했으며 교육의 방향이 한국문화를 희석하고 민족의식을 없애려는 교육정책을 운영하기에 이른다. 이를 위한 제 1차 조선교육령이 발동되어 민족차별교육, 기본교육(초등교육)과 실업교육 중점 등 우민화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운영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시설환경을 만들기위해 한국에 세워져야 할 학교건축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그들은 생각해야 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학설은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나 좋은 환경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환경은 자라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물
역사를 찾고 뒤돌아보는 것은 오랫동안 가꾸어온 전통이나 형식, 체제, 형태 의미를 익혀 미래에 나아갈 방향과 의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100년의 우리 학교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것도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학교가 건축형태를 갖춘 것은 유학과 유현을 받들고 교육하던 시기(약 15세기)부터라 할 수 있다. 학교건축을 시초에서 지금까지 분류하면, 첫째 문묘(文廟)·사묘( 廟) 공간 중시시대, 둘째 신교육의 西歐건축양식을 띤 학교건축 시기, 셋째 日人의 우민화·皇國臣民化 교육정책과 학교건축 시기, 넷째 다량의 교육인구의 팽창에 몰린 학교건축의 경직된 획일화 ·표준화 시기, 다섯째 학교건축의 현대화 노력 시기, 여섯째 열린교육·복합화·교과교실형 추구시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묘와 사묘의 형성은 15세기 학교건축으로 100년내 범주 밖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초의 학교 모습으로 의미가 크므로 이를 한국 학교건축의 시발점으로 얘기하려고 한다. 제향기능인 유현(儒賢)을 기리는 문묘와 사묘공간이 교육공간(성균관, 향교, 서원, 대성전, 동묘, 서묘)의 전면에 위치한다. 성현숭배와 교화를 교육의 근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 개최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는 축구 경기장을 부지런히 짓고 있다. "88년 세계 올림픽에 사용했던 경기장들도 많은데 왜 이토록 많은 돈을 들여 경기장을 지어야 하나?"에 대한 의심을 갖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축구경기에 걸맞는 세계적인 전용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데 모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노인주택(Silver House)이나 노인동네(Silver Town)를 노인에 맞는 주거환경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데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희망을 갖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건축환경이 그 사용 용도와 목적에 부합되는 공간·환경을 적절하게 필요로 한다는 데 의식이 일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미 지어진 건축환경은 그 공간과 환경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사람의 행위나 활동을 제어하고 구속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건축환경을 만들려고 할 때는 그 건축 환경이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는가, 또 그 환경 속에서 이뤄질 사람들의 행태와 활동, 기대효과를 면밀히 분석, 적용해 이들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동안 새롭게 건설된 많은 건축물들은 이러한 원리에 맞게 지어졌고 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