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하선 / 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사는 동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장수에 대한 비결을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결과는 항상 신통하지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현실을 벗어난 어떤 이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 덮인 산들에 둘러싸인 낙원 그 이상의 세계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저 멀리 파키스탄 북쪽의 카라코람 산 속의 깊숙한 곳에 장수마을로 유명한 그럴듯한 곳이 있다기에 가슴 설레며 찾아간다. 그곳은 다름 아닌 한동안 전설처럼 들려왔던 '훈자왕국'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라코람의 깊숙한 곳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훈자 마을들. 그곳을 찾아가는 데는 대단한 인내와 모험심이 필요하다. 현대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심산유곡을 굽어 돌고 기어올라야 하는 험난한 교통 때문에 아직껏 누구에게도 그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고난의 길은 곧 비경을 찾아가는 길이다. 세계 최고의 비경들은 어디나 깊숙한 곳에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구한말 서울에 나타나기도 러시아 연해주, 중국 헤이륭장성과 지린성, 북한의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에는 400여 마리의 동북호랑이가 자연 상태로 생존해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1943년 이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개체수가 단 한 마리도 없다. 1910∼1930년대에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사람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조선총독부 산하의 포수들을 시켜 호랑이를 무차별로 포획했다. 일본은 섬이어서 호랑이가 없는 까닭에, 조선총독부의 고위관리들이 일본황실에다 호랑이가죽을 상납하는 것은 출세길이 보장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이나 민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맹수라기보다 의리 있고 정감 있는 이웃이었다. 깊은 산골동네면 어디든 '범바위', '범골', '범고개' 등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남아있다. 구한말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공사관 주변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다. 아마 인왕산호랑이가 먹을 것이 궁해서 인가로 내려왔던 것 아닌가 싶다. 사람을 보면 피하는 삼림의 왕 호랑이의 정확한 우리말은 범이다. 하지만 일제가 범과 늑대 같은 맹수 구제(驅除)를 하면서 총칭으로 부르던 호랑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콜 금리란 어떤 금리인가 콜 금리란 금융기관끼리 영업 중에 일시적으로 남거나 모자라는 자금을 융통할 때 적용하는 금리다. 은행 등 금융기관도 영업을 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해지는 수가 있다. 그럴 때 자금 여유가 있는 다른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려 쓴다. '콜(call)'은 자금이 부족한 금융기관이 자금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call)'는 뜻의 영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즉 '콜'은 금융기관끼리 단기에 걸쳐 융통하는 거액 자금이다. 정식 명칭은 콜론(call loan)·콜 자금(call money)이지만, 흔히 '콜'로 줄여 부른다. 콜은 주로 은행, 보험, 증권업자들끼리 많이 거래한다. 거래는 주로 금융기관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한국자금중개주식회사가 중개한다. 금융기관끼리 직거래하기도 한다. 콜 자금을 빌려주는 쪽은, 빌려주는 금액에 콜 금리(call rate)를 붙여 자금을 회수한다. 콜 자금은 보통 하루에서 30일을 기한으로 융통하는데 거래의 90% 이상은 만기가 하루짜리, 즉 1일물(overnight)이다. 아침에 자금을 꾸면 오후에 갚는 식으로 초단기 거래를 한다. 그래서 콜 금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페르시아 전쟁 후에 벌어진 폴리스간의 분쟁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승자와 패자 모두 동반 침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원전 5세기 이후부터 마케도니아가 남하하여 그리스를 정복하고 여세를 몰아 인도 북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지만 넷으로 분열되어 모두 로마에게 복속된다. 헬레니즘 시대를 연 알렉산더 대왕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때 마케도니아는 발칸 반도 남쪽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때 대정복자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자신의 나라로 통합시켰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부왕(필리포스 2세)이 이루지 못한 페르시아 정복을 위해 원정길에 올라 12년 동안 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기원전 331년에는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군을 격파한 다음, 북부 인도의 인더스 강 펀자브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청년대왕 알렉산드로스는 원정기간 동안 동방 군주제의 현장학습을 톡톡히 하였다고 전해진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원정 당시에는 페르세폴리스의 왕궁을 불태워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상징적 파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