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여인들은 입고 쓰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의 여인들은 더욱 그렇다. 여름이면 꾸밈이 극대화된다. 요즘 거리에는 치장을 하지 않은 사람 찾기가 더 어렵다. 여인이나 남성이나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하여 남에게 멋지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다. 고려시대부터 유행한 전통 노리개 우리 전통 장신구에는 비녀나 뒤꽂이와 같은 머리 꾸밈장식부터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몸에 바로 착용하거나 노리개와 같이 옷과 함께 꾸며 자신의 마음과 멋을 표현한 것 등이 있다. 많은 장신구 중 우리나라 옛 여인들의 저고리 앞섬 위 치장치레인 노리개는 그 여인의 마음과 멋을 나타낸다. 노리개는 매듭을 이용하여 다양한 멋을 발휘하였다. 또한 외부와 단절된 유교적인 사회에서 여인들이 앞섶에 매달려 있는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심심하거나 따분한 마음을 달래는 놀이기구 역할도 있었으리라. 경기가요에는 노리개를 읊은 가사가 있다. 이별을 서러워하는 여인이 절절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인이 먼저 “한양 낭군님 날 다려가오. 나는 죽네, 나는 죽네, 임자로 하여 나는 죽네”하며 눈물겨워 하면, 남자는 “네 무엇을 달라느냐. 네 소원을 다 일러라. 노리개치레를 하여 주랴. 은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다. 짧고 함축적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잘 표현한 시라는 느낌이 든다. 의사소통의 부재, 고독과 소외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그 섬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섬을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섬의 존재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관계 맺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세상을 연결하는 꼬마 소녀 이렇듯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닐진대, 나와 전혀 다른 혹은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서로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청각장애인일 경우 과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다. 〈비욘드 사일런스〉는 제목 그대로 ‘침묵을 넘어서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영화다. 독일 남부지방의 작은 마을. 청각장
“언제고 여러분이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그 풍경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리로 지나가게 되거든 제발 부탁이니 서두르지 말고 바로 그 별 밑에서 조금 기다려보기 바란다! 그때 만약 어떤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온다면, 만약 그가 웃는다면, 만약 그 아이의 머리칼이 금발이라면, 만약 묻는 말에 그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가 누군지 곧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거든 제발 부탁이니 나를 이토록 슬퍼하게 버려두지 말고 그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해주기를….”(어린 왕자의 마지막 대목) 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어린 왕자들 인터넷에서 ‘어린 왕자’를 검색해 본다. 당장 우리 사회 곳곳의 어린 왕자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같은 이름의 영화와 펜션, 극단, 카페, 치과, 캠프 등등. 심지어 연인들이 함께 끼는 커플 반지까지 각 분야에 무수히 핀 어린 왕자들. 어린 왕자는 어느새 우리 일상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사라지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늘 함께 하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바로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 작가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의 작품. 20세기가 낳은
1997년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국회 상정과 폐기를 거듭해 오던 유아교육법안이 2004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같은 해 1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법률로서 공포함으로써 참여정부에 들어서 비로소 유아교육법이 제정되었다. 유아교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책임으로 할 것인가, 유아교사의 자격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며 양성과 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문제와 같이 한 국가가 어떠한 유아교육정책을 채택하는가에 따라 유아교육의 방향은 많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또한 여러 가지 선택이 가능한 유아교육정책 중에서 어떤 특정한 정책이 채택되면 이 정책을 일정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려는 국가적 의도가 나타나는데, 이런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 유아교육법이다(이윤경 · 이일주 · 윤은주, 2005).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참여정부가 수립된 지 1년도 채 안되어 유아교육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유아교육은 새로 제정된 유아교육법에 의하여 2년 8개월 정도 행하여지고 있으므로 현재 시점에서 참여정부의 유아교육법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다소 이른 감은 있다. 그러나 유아교육법은 유아교육법이 제정되기
바닷가의 거대한 모래언덕 사구(砂丘) 거대한 모래언덕, 황량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 올라서면 바람에 날린 모래가 한치 앞을 보지 못하게 눈을 때리고, 묵직한 신발은 모래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 그냥 걷기도 힘이 든다. ‘이런 곳에 생명이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지만, 봄이 찾아오면 다양한 식물들이 싹을 틔워 초록의 세상을 만든다. 이때부터 모래언덕은 바다와 더욱 진한 앙상블을 이루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생명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사구는 해안이나 사막에서 바람에 의해 운반·퇴적되어 이루어진 모래 언덕을 말한다. 만들어진 곳에 따라 해안가의 모래에 의한 해안사구, 사막과 황무지 같이 건조한 내륙에서 만들어지는 내륙사구, 거대한 호숫가의 호반사구, 강가의 모래에 의한 하반사구가 있다. 이들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여러 모양과 크기를 보이고, 어떤 경우에는 서서히 이동하기도 한다. 이 중 우리나라에는 강가의 모래에 의한 하반사구와 강 또는 육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와 쌓인 모래언덕인 해안사구가 나타난다. 하반사구는 낙동강에 주로 분포하고, 해안사구는 모래 해수욕장에서 나타나는데, 대부분이 파괴되고 크게 알려진 주요 사구에는 신두리,
"즐거운 상상력과 웃음이 가득한 학교 만들어요" 실제 학교에서도 ‘별난 교사’로 주목받아 1969년 교직 생활을 시작한 최 교장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후 교육적이고 유머러스한 여러 편의 동화를 써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별난 국민학교〉는 당시 1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1992년엔 ‘어린이 도서 연구회’에서 조사·발표한 ‘어린이가 좋아하는 작가’에 4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 교장은 명랑소설 이외에도 많은 동화를 발표했으며 ‘한국동화문학상’, ‘어린이가 뽑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도 초등 6학년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청국장’을 포함한 단편소설집 〈탈주범과 이발사〉를 출간했다. 동시로 등단한 최 교장이 명랑소설을 쓰게 된 것은 일기지도 시 일기장에 덧붙여준 글들을 출판사 관계자가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이자 교육관입니다.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또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을 정도로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일기장에 그림을 그려 주기도 했죠. 당시에는 재밌게 써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당시 최
전문직 준비를 위한 마음가짐 교육경력 15년! 누가 보더라도 외형적인 조건만으로는 충분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경력이다. 흔히 교사를 전문직이라고 하는데 ‘내가 과연 전문가로서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들에 대한 회의와 반성과 뭔가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일을 찾고 싶어졌다. 유년시절 철없이 뛰놀던 개구쟁이, 코흘리개 녀석들도 이제 의젓한 사회의 중견 간부로서 각자의 역할과 일에 대한 열성을 쏟아 붓고 있고, 제법 생각이 열린 고교 동창들은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의 영달이 한동안 뇌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번뇌를 지속하게 하였다. 어떤 분야에서 15년의 경력이라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육계에도 정말 훌륭한 선배님, 동료, 후배들이 많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먼저, 지난 몇 년간 시·도 및 지역교육청의 업무를 도와주면서 만난 장학사, 선배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전문직 준비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엄청난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정확히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