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현장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에서 터득한 것 중 하나가 ‘아주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생각이다. 식물이나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수확하려면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하듯이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어야 교육이 활력을 얻고 살아난다는 것이다. 단위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의 경영과 리더십,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위학교도 초등, 중등이 차이가 있고 학교의 규모나 구성이 다양하고 대도시의 거대한 학교에서부터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까지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지시와 감독으로는 자율적이고 특색 있는 학교경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의 교육정책은 교육부에서 좋은 정책을 구상해도 이런 다양한 학교의 성장풍토를 고려하지 않고 좋은 결실만 얻으려는 성과주의 위주였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자율경영이 전혀 안된 것은 아니지만 단위학교 책임경영이 더욱 활성화되려면 현재 학교현장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보고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인지 필자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시·도교육청 지시 → 지원 업무로 첫째, 현행 학교경영
"많은 국경일과 기념일을 지정해놓고 있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를 정확히 알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학교교육에서부터 올바른 국가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흔히 초등학생들은 국경일이나 국기 게양 등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이 교사의 설명처럼 학생들이 국경일 발생 연도, 관련 노래, 의미에 대해 인식하는 정도는 현저히 낮았다. "해방된 해 알고 있다" 31% 불과 소수인 19.4%만이 ‘3․1운동’이 일어난 연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3․1절 노래'는 75.9%, ‘3․1절'의 의미는 67.2%의 학생들이 모르고 있었다. ‘8․15 광복’의 경우에도 일어난 연도는 31.5%만이 알고 있었고, '광복절 노래'와 '광복절의 의미'는 각각 73.6%와 57.2%가 모른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헌법이 최초로 언제 공포되어 시행되었느냐’는 질문에는 12.0%만이 알고 있다고 응답했고, ‘제헌절 노래(73.3%)’와 '제헌절의 의미(64.1%)'도 다수의 학생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한글날 노래’는 외워서나
“재미있는 책 만들기로 창의력 키워요” 경기 고양 장성초(교장 박기준) 장수철 교사의 수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장 교사의 독서교육은 지겨운 책 읽기, 독후감 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책은 더 이상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놀이다. 장 교사의 남다른 수업법은 다름 아닌 북아트(Book Art). 북아트는 수공예 책을 만들어 내는 예술분야로 책을 만드는 초기 작업부터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완성하는 작업까지 책에 관한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이뤄내는 것이다. 영국의 교육 예술학 학자이자 북 아티스트인 폴 존슨(Paul Johnson)이 북아트를 아이들의 창의적 표현력을 이끌어 내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하면서 널리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장 교사는 “책을 읽고 쓰는 기술적인 부분은 지도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정작 글쓰기를 좋아하고 재미있게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흥미를 느끼게 할까 고민하다가 북아트를 접목시키게 됐죠”라고 말했다. 기획부터 작품 완성까지 스스로 해내는 통합 활동 창의성 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그가 북아트를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책 만드는 것이 창의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네 머리카락은 검은 강물이다. 너를 쓰다듬을 때면 내 손에서 네가 흘러간다. 아, 나는 네게 이만큼 잠겼구나.”(‘수위표’) 봄 볕이 그리워질 때면 딱딱하고 머리 아픈 책 한번 내려놓고 시 한번 읽어볼 일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가 펴낸 ‘몸에 관한 어떤 산문시’ 두근두근. 나긋나긋한 사랑을 기대했다면, 책을 접한 독자들은 잠시 놀라겠다. 정체불명의 형식과 책의 부피에. 누구는 시라고 하기도 하고 산문이라고도 부른다. 현학적인 전문가는 제4의 형식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순가. 시이면서 산문이고, 일기이며 시작 메모이고, 때로는 이성복과 최승호가 거쳐 간 아포리즘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굳이 구별해 읽지 않아도 처마 밑에 떨어지는 반쪽 햇살만큼 우리의 가슴만 울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두근두슨은 “몸이 하는 말을 받아 적은” 짧은 산문시다. 1991년부터 일기처럼, 시작 메모처럼 써둔 글들을 주제에 맡게 묶은 ‘사전’같은 시집인 셈이다. 부제가 말해주듯 모든 글들은 손, 다리, 얼굴, 눈, 코, 입, 귀, 머리, 피부, 심장 등의 세세한 신체기관을 잡다, 웃다, 보다, 말하다, 닿다, 두근거리다 등의 동작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다녀와서는 좀 참담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의 미술관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내가 그곳의 작품을 충실하고 진지하게 감상하여, 마침내 의미 있는 미적 즐거움을 맛보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런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가 본 사람은 내 경험을 얼마간은 이해해 주시리라.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학술행사를 마치고, 그 유명하다는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미술관)을 찾았다. 개장 전 이른 아침에 갔는데도 대기하는 행렬이 엄청나게 길었다. 세계적 미술의 보고(寶庫)를 직접 내 눈으로 본다는 기대감으로 아침 따가운 햇볕 속에서도 한 시간을 기다려, 미술관에 들어갔다. 세계 명작에 대한 미적 동기가 자못 컸다. 처음에는 미술관 입구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또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로만 보았던 눈에 익숙한 그림 앞에 서는 반가움에 한참 시선을 주어 무언가를 느껴 보려 하였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 앞에서 그러하지는 못했다. 내 눈에는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수천 점의 작품들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작품들을 사열하듯 걸어가며 솔직히 좀 질리는 기분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배움의 장소인 학원으로 저마다 발길을 재촉한다. 언제부터인가 학원은 학생들의 야간 학교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다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든 학교 공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심화를 위해서, 공부가 떨어지는 학생들은 보강을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방과 후에 학교 외부의 학원에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학원 수강이 가능한 곳이 생겨나고 있다. 동경도 스기나미구의 한 구립중학교 교실에서 ‘야간학원’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도교육위원회로부터의 지도로 시작을 목전에 두고 일시 연기가 되었지만 구교육위원회의 반론 답신으로 지적한 내용들이 해결되었다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용인된 것이다. 일본은 최근 수년간 학력향상을 목표로 학습을 위한 학원과 공립 초·중학교의 연계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오고 있으나 한계점도 적지 않다. 특히 평등이 중시되는 공교육의 세계에 경쟁으로 승부하는 학원의 힘을 빌리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에 대해 일본 교육현장에서도 여론이 양분되고 있다. 스기나미구교위에서 세운 계획을 보면 평일 주 3회 오후 7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