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꽃이 산기슭에 두둥실 피어나는 오월의 어느 날입니다. 들판에는 청보리의 물결이 싱그럽고 향기롭습니다. 이맘 때를 옛어른들은 춘궁기라고 합니다. 얼굴에 버즘이 꽃처럼 피어난 아이들이 쑥과 달래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찔레 순을 벗겨 달큰한 맛으로 배고픔을 잊었겠지요. 사월을 장식하던 분홍과 노랑의 아름다운 꽃들이 가뭇없이 사라진 오월이면 서늘한 색감의 꽃들이 사위를 메웁니다. 수북한 쌀밥 같은 이팝나무,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운 등꽃, 달콤한 향내의 수수꽃다리 그리고 모란과 작약은 황홀한 꽃보라색으로 계절의 여왕이 됩니다. 이런 날 오후에는 저도 가만히 혼자 앉아 웃고 싶습니다. 수도승처럼 글을 읽고 쓰는 장석주 시인의 신간을 서점에서 샀습니다. 탁월한 시인이자 출판인으로, 수없는 서평을 생산하던 그가 어느 날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 칩거하며 글을 씁니다. 안성의 수졸재에서 침잠하며 지낸 삶의 오후 이야기는 수려한 문체와 깊이 있는 내용으로 온종일 그의 책을 놓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풍경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다는 것은 지각 작용의 시작입니다. 이 북유럽의 나라에서는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가면 홀연 아름다운 공원이 나오고 파란 호수가 나타납
19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에 실시되는 선거지만 우리 교육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다.지금 우리 교육은 바닥까지 추락한 교권, 학교폭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 학교 밖 청소년의 증가, 학벌사회의 고착화로 인한 대입 위주 교육 등등 많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또한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급속한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원들은 이번 선거에서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대통령’이 누구인지 세심히 살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공약의 목표와 내용이 타당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과 재원 확보 방안이 준비됐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 공약을 급조하지 않고 공들여 준비했는지, 기존의 것을 재탕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후보들의 자질 검증도 매우 중요하다. 교육발전에 대한 철학과 의지, 신뢰성 등을 엄정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후에도 ‘교육대통령’만들기에 모든 교육계 구성원이
뮤지컬 밀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났던 헤이그 특사 3인방. 뮤지컬 밀사는 특사 파견으로 삶이 뒤바뀐 21살 청년 이위종 열사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3개 국어에 능통한 엘리트였던 그에게는 편안한 삶이 보장돼 있었지만,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연해주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 세상을 떠났다. 5.19-6.11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017 제12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거대한 편성의 교향악과는 달리 실내악은 한 가지 악기를 1~2명만의 적은 인원으로 보다 섬세한 연주를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이다. 축제에서는 아키코 스와나이, 초량린, 선우예권, 노부스 콰르텟, 김봄소리 등 현재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 꼽히는 아시아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등 고전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초월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5.16-5.28 |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전시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展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업 인사이드 아웃 등 30년간 픽사 스튜디오가 제작해온 명작 애니메이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아티스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핸드
또, 오고야 말았다. 가족의 달. 매년 반복되는 뻔한 선물 고민에 지쳤다면, 올해는 가족과 손잡고 극장에서 문화생활을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함께 좋은 공연을 관람하는 두 시간은 그보다 긴 대화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지피지기면 공연도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각 ‘타겟’의 취향을 고려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공연을 골랐다. ◆부모님을 모실 때=공연 관람이 익숙지 않은 부모님들에게는 좁은 좌석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일도 만만치 않게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여기에 특효약이 있다면 흡입력이다. 감동 넘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시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연극 선녀씨 이야기와 친정엄마와 2박3일은 딱 그런 작품들이다.두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돌아온 탕자, 아니 돌아온 아들딸. 젊을 적 집을 나간 아들은 15년 만에 엄마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못다 한 대화를 시작하고(선녀씨), 자기 혼자만 잘난 줄 알던 딸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엄마와 애틋한 시간을 보내지만 예기치 못한 이별이 이들을 기다린다(친정엄마). 짧은 줄거리에서도 짐작 가능하듯, 손수건 지참은 필수다.두 공연은 캐스팅 역시 완벽하다. 본디 효도의 완성은 ‘자랑’
교총과 교육부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16 교섭협의 조인식’을 갖고 교권침해 행위의 법령 상 명문화 및 처벌 강화 등 총 76개항에 대해 합의했다. 최근 3년 간 교권침해 사건이 1만 3천여 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교총 회장단이 최우선 과제로 요구한 결과다. 이로써 교권침해 학생에 대한 강제전학, 학부모 과태료 부과 등을 담은 ‘교원지위법’ 처리가 탄력을 받게 됐다. 현장 갈등과 위화감만 조성해 폐지 여론이 들끓는 성과급 제도에 대해서도 새 방안을 찾기로 했다. 8월 퇴직자 성과급 지급방안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성과급 문제는 2차례 교섭소위와 8차례 실무협의 과정에서 교총이 격론을 벌일 만큼 전면 개선을 요구했다. 이밖에 교(원)감 ‘직책수행경비’ 신설과 보직교사수당 인상, 1급 정교사 자격연수 대체방안 마련, 퇴직준비 연가 사용 활성화를 위한 ‘예규’ 개정, 사립교원 간 인사교류 활성화 등 현장 밀착과제들이 다수 포함됐다. 타 공무원과의 역차별 해소를 위해 간병휴직 요건 대상자도 조부모, 손자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 내용에는 교총 신임 회장단이 전국 학교를 세바퀴 반 돌며 ‘손톱으로 바위에 글을 새기는 심정’으로 수렴한 현장의 목소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 예전에 생소하거나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용어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핵심용어와 함께 거부할 수 없는 화두가 돼 우리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 선택형 문제 위주로 구성된 지필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답습된 ‘무조건적인 암기 위주의 학습방법’으로는 촌각을 다투며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에 부족하다. 인간만이 갖출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인공지능과 무한경쟁 시대를 살 차세대에게 무조건적인 암기와 단순 지식만을 되풀이하는 수동적인 배움만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배움을 터득할 수 있는 ‘학생참여형 교과 활동’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기계적으로 귀를 열어 듣고, 쓰고, 외우는 수동적인 학습활동에 길든 학생들에게 학생참여형 활동수업을 참여케 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많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평준화제도 시행 이래로 대부분의 인문계고등학교에는 다양한 수준의 학습능력을 갖춘 학생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 교과의 경우, 학급당 학업성적 상위 4%에 해당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영어 독해능력이 부
학교에서 교과를 제대로 가르쳐서 참된 이해를 개발시키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이 있지만 최근에 주목을 받고 것 중에 하나는 역행설계(Backward Design) 교육과정이다. 역행설계 교육과정은 미국의 위긴스(Wiggins)와 맥타이(McTighe)가 제안한 이해중심 교육과정(Understanding By Design, UBD)이라는 교육과정 설계 모형의 별칭이다. 이 모형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심층적인 지식의 구조에 대한 앎과 적용이 이뤄졌는가를 평가과제로 제시한다. 위긴스와 맥타이는 이런 ‘이해’를 돕기 위한 단원 설계와 수업 계획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교사들은 주어진 학습목표를 보고 어떤 재미있는 활동을 수업에 포함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수업이 모두 이뤄진 후에 평가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해중심 교육과정 설계 모형에서는 교사들이 수업 전에 먼저, 단원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학문의 핵심 개념과 원리에 기초해 끌어내고, 학습자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수 있는 평가과제를 개발한다. 그런 다음, 학생이 평가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방식으로 학습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빨간 모자’ 이야기는 17세기 프랑스의 샤를 페로의 ‘작은 빨간 두건(Le Petit Chaperon Rouge, 1697)’과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가 채록하고 작성한 ‘작은 빨간 모자(Rotkäppchen, 1812)’ 두 가지 판본에서 시작됐다. 샤를 페로는 궁정에서 시를 낭독하고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이때 청중으로 궁정의 아이들이 참여하는 일도 적지 않아 페로는 어떻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모아서 전달할까 생각하다가 당시 민간에서 구전되는 민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궁정이라는 분위기를 고려해 부드럽게 순화해 이야기를 개작, 재화(再話)했다. 대표적으로 손 본 작품 중 하나가 ‘작은 빨간 두건’이다. 당시 남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 쪽에서는 ‘가짜 할머니(La Finta Nonna)’ 등 할머니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가져와 ‘작은 빨간 두건’으로 만든 것이다. 이 두건은 그냥 모자 하나를 쓴 것이 아니라 우리로 치면 일종의 후드 망토 같은 것이다. 소녀는 사춘기에 막 들어서는 아이지만 여전히 ‘아이다운’ 순진함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이 후드 망토다. 그 후 독일에 사는 그림 형제가 첫 동화집
지난해 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 사이에 벌어진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우리 교육계는 교육제도와 틀, 교육내용과 방법 등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기존 학교교육의 빠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학교교육의 혁신을 강제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학교가 외부의 변화에 대해 더디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학교 ‘밖’에서는 그것을 깨우치고픈 욕심과 조급증에서 교육의 변화와 혁신안을 만들고 학교에 강제하고픈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위기의식과 조급증은 학교구성원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교육개혁의 과정에서 소외시킬 수 있다. 그럴 경우에 학교개혁과 변화는 오히려 어려워지고 교육의 위기는 심화될 수 있다. 교육개혁을 주장하는 정치가나 기업가, 교육운동가들은 교육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교육문제는 결코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교육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개혁에 대한 역사적 연구들은 교육의 혁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도착지 날씨를 알려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웃 나라니 새삼 놀랍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도 일본은 훨씬 더 가까웠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항 천장을 가득 메운 요괴 그림들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현란하게 채색된 애니메이션의 향연에 놀라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에는 공항 한 면을 가득 메운 유리창이 눈에 띈다.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한가득이다. 가히 요괴 공항으로 불릴만하다. 사카이미나토 시요괴 만화의 고향 공항 곳곳에 배치된 요괴 그림은 바로 요괴 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의 대표작인 ‘게게게의 기타로(ゲゲゲの鬼太郎)’의 캐릭터들이다. 곳곳에 숨은 요괴 그림은 지방도시의 작은 공항에 불과한 요나고(米子) 공항을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킨다. 공항에서부터 고조된 가슴은 요괴 열차에 올라 사카이미나토 시(境港市)의 요괴 마을에 도착하면서 그야말로 뻥 터질 만큼 부풀어 올랐다. 외눈을 달고 달리는 택시들, 기괴한 웃음으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정표들, 요괴 모양 얼굴로 만들어진 빵들. 발길 닿는 곳마다 마주치는 익살스런 요괴들 때문에 미소와 탄성을 멈출 수 없다. 철들지 않는 남편,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