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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권, 학습권, 인권이 공존하려면

지금 우리는 세 가지 권리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교사’로서의 교권, ‘학생’으로서의 학습권 그리고 그 둘 각자의 인권이다. 교권의 위상이 높던 시절에는 학생 인권이 주요한 사회적 이슈이던 때가 있었다. 강력한 교권 행사에 대항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대응하기 시작했고, 교권 행사는 점차 소극적일 것이 요구됐다.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교사들

이렇듯 학생 인권이 보편화되어 당위적 가치가 된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보니 교권은 사라지고 신성불가침의 학생 인권만 남았다. 학생 인권은 더 나아가 양으로는 학습권, 음으로는 아동학대를 당하지 않을 권리로 구체화 됐다.

 

서이초 사건, 웹툰 작가 사건, 왕의 DNA 사건 모두의 공통점은 개별 아이의 학습권을 무기로 한 학생과 학부모의 강력한 진격에 교사들이 무력감을 느끼며 속수무책으로 후퇴했고, 그 진격의 끝에 아동학대라는 창이 교사들을 찔러 사회적 공분을 샀다는 것이다. 이제 교권은 고사하고 교사들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가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일련의 사건은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들까지 꺼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악성 민원, 교실 전체의 학습권을 해하는 학생에 대해 제재할 수 없는 형해화된 교권, 폭력을 당하는 선생님과 이를 방관하는 학교, 더 나아가 기소만 돼도 직위해제를 하는 교육청의 방침 등이다. 교권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인권 그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교권과 인권과 학습권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교권과 인권과 학습권. 우리는 그 권리들의 충돌에 대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늘 그렇듯 해결의 원칙을 설정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현 난이도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해 무척이나 어렵다. 해결 원칙은 정당한 권리행사에서 ‘정당한’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정당한 교권의 기준, 정당한 학습권의 기준, 정당한 학생 지도의 기준, 정당한 민원의 기준 등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정당’한 선을 찾으면 된다.

 

‘정당한’의 기준 설정해야

그 기준들을 누가, 어떻게, 언제 설정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서 정부와 교육청의 역할이 핵심적으로 필요하다. 교권 보호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각 시‧도교육청에서 수많은 정책이 발표되고 있음에도 현장에서 시원한 해소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근본이 부재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에 필요한 행정적 조치는 속도감을 가지고 취해야 하지만, 일련의 사태에 대한 본질적 해결의 방향은 정당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고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특히 일선 학교에 맞닿아 있는 교육청은 반드시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이 고취됐으니 아마 급한 불은 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불행한 일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모두가 슬퍼하지 않기 위해 교권과 인권, 학습권의 공존을 위한 교육 이념이 바로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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