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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1] 지금은 교실을 살릴 때입니다

 

뾰루지가 어느 날 종기가 되었습니다.
엉덩이에 조그맣게 뾰루지가 생긴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 손끝에 좁쌀 같은 게 도톨도톨 걸리더라고요. 그때 잠깐 연고를 발라야 하나,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뭐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곧 잊어버렸어요. 바쁘기도 바빴고, 워낙 크기가 작아서 무시한 것도 있고요. 어영부영 시간만 흘렀습니다. 


어느 순간 의자에 앉다가 ‘욱신’하는데 놀라 비로소 제법 딴딴하고 큼직한 종기가 자리 잡은 걸 알았습니다. 누를 때마다 욱신거리는 게 제대로 된 종기가 분명했습니다. 겁이 나서 달려간 병원, 종기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평소에 미련하다는 소리, 많이 듣고 살지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일부러 키운 거냐고 마구 혼을 냅니다. 


결국 남들 보기에는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종기 때문에 마취주사까지 맞았습니다. 칼이 살을 찢으며 깊숙하게 들어와 박혔고, 종기를 째고, 꽤 많은 고름을 빼내고, 거기에 붕대를 붙이고, 한동안 술과 기름진 음식과 기타 등등을 금지당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칼을 댄 곳에는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흉터가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종기가 툭 하고 떨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아주 작은 뾰루지로 시작했지요. 작다고 무시하다가 결국 칼을 대서 째야만 하는 종기로 키운 겁니다. 

 

일어나고 있던 일들이 이제야 보이는 것뿐입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 건널목을 건너다 들었습니다. 발령받은 지 겨우 2년밖에 안 된 초임 선생님의 죽음을. 학교 안에서, 그것도 자신이 수업하던 교실에서,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았다는 소식은 휴대전화 화면에서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번쩍거렸습니다.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 서서 신호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막막하게 있다 경적에 놀라 뛰었습니다. 


그날 밤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슬픔과 분노, 참담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이제까지의 교직생활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발령받아 부푼 가슴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스무 몇 해 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억이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며 펼쳐졌습니다. 잊고 있었던, 혹은 기억의 창고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것들이 뒤죽박죽인 채로 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감자 줄기처럼 따라 나온 기억의 끝에는 결국 그 자리가 나였을 수도 있었다는 뼈아픈 깨달음과 자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2년 전, 의정부 모 초등학교에서 6개월 간격으로 두 분의 초임 선생님이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서로 옆 반 담임이었던 두 분은 숨지기 직전까지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려왔다고 했습니다. 학교는 이를 교육청에 단순 추락사로 보고했고, 교육청은 여태 ‘몰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어떤 교육부 사무관은 업무용 메일로 자녀 학급 담임에게 그 학급 아이들과 관련한 내용을 자신에게 알리라 했답니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 함부로 하지 말라는 지침서까지 내리면서요. 그 사무관은 결국 담임의 교육방식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당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고발합니다. 선생님은 직위해제를 당했고, 다시 무혐의 판결을 받아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적·정신적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병원 치료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풍 전야 같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말도 안 되는 민원들이 급증하고, 그 말도 안 되는 민원들로 학교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교무실로 쳐들어와 뒤집는 건 예사였습니다. 소리부터 지르고, 기물을 탕탕 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고소한다고 협박하고, 교사를 비롯한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이 오히려 움츠러들어 침묵하던 세월이 꽤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언론도 모두 짬짜미하는 것처럼 입을 다물다 못해, 다들 ‘개별 교사’만 두들겨 팰 때부터 우리 교육현실에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도대체 지금 우리 교육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공교육 현장이 어렵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학부모가 예전 같지 않아서, 행정업무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교육정책이 본질에 어긋나서 등 다양한 이유로 현장은 늘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사실 공교육 붕괴 담론이 나온 지도 30년은 된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공교육 현장이 붕괴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10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나타난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요. 요즘 애들이 ‘맞고 자라지 않아서 이 모양’이라고, 그래서 교권이 무너졌고, 학생이고 학부모고 무작정 인권이니 뭐니 들이대고 입에 올리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른 거라고 개탄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말합니다.

 

교권? 웃기지 말라고, 그러면 예전처럼 교실이고 운동장이고 아무 데서나 몽둥이가 날아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냐고요. 학생인권은 손도 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이 ‘납작하기 그지없는 논쟁’에서 정작 교실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기사에 나오는 한두 줄로 지금의 교육현실을 재단하고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사람들처럼 한가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미 학교현장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학부모의 도를 넘은 부당 간섭과 업무방해, 상해·폭행 등에 따른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교사가 매년 20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교육부가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에게 제출한 ‘연도별 공립 초·중·고교 교원 자살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1월∼2023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는 1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세계일보, 2023. 7. 30.). 
무엇보다 지금 학교현장, 그중에서도 특히 유·초등학교 교사들의 정당한 생활지도와 교육활동을 막고 있는 주범이 현행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무분별한 남용이라는 건 아마 모든 선생님이 알고 있고, 동의하는 사실일 겁니다. 애초에 가정에서 일어나는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 역으로 학부모가 교사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일부 교원단체(한국교육네트워크 학술포럼 발표, 전교조 설문조사)의 분석이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아동학대에 대한 기소율은 1.5% 수준(전체 기소율은 15.3%)인 반면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비율은 61.4%나 됩니다. 법 판단이 결코 교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교사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 대부분이 무고성이라는 말이고, 쉽게 말해 괘씸죄에 걸린 겁니다. 문제는 저 1.5% 때문에 교실이 무너지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관련된 법규도 그렇습니다.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그 기준도 애매합니다. 학교 안인지 밖인지, 어느 정도의 폭력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도 정해놓지 않은 게 법이랍시고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들어갔다 하면 그때부터는 무조건 정해진 절차대로 짤 없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반성이나 화해와 같은 교육적인 고민과 지도는 딴 나라 이야기입니다. 


신고가 들어가면서부터 또 난장판이 벌어집니다. 부모들까지 나서서 대리전을 치르기도 하고, 변호사들까지 나서서 소송으로 가기도 합니다. 특히 고등학교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학폭법」에 의해 징계가 확정되고 생기부에 기록이 되면, 대입 지원 시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가해·피해가 명확한 경우에도 양쪽 다 목숨 걸고 싸우는 건 그래서입니다.

 

사건이 발생해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부터, 학교 차원의 결정에 불복해 종결 처리가 되지 못하고, 교육청으로 넘어가 학교폭력대책위가 열리고, 다시 불복해 행정심판이나 소송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담당교사와 학급담임은 수업과 생활지도에 쓸 힘이 조금도 남지 않을 만큼 탈탈 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학교폭력을 없애겠다고 들어온 법이 교육현장을 더 폭력적으로 초토화시키고 있는 건 또 다른 아이러니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교육현장의 요구를 방임해 왔습니다.
곪고 곪다가 종기가 되어, 기어이 올해 터져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교사들은 끊임없이 말해왔습니다. 학교로 들어오는 각종 민원을 받을 수 있는 단일한 창구를 만들어 달라, 악성 민원에 대해 교육청 차원의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달라, 소송에 걸린 교원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해 달라.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은 무수히 많은 지침과 규제는 내려보내도, 교사들의 절박한 요구에 대한 답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사의 권한은 끊임없이 축소되었고, 교실 안 교육활동은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통사고가 나도 보험사 직원에게 사고 처리를 맡기는데,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다가 걸린 소송에 왜 교사들이 스스로 변호사를 알아보고, 자기 돈을 들여 소송에 나서고, 그러는 동안 직위해제부터 월급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까지 고스란히 ‘혼자’ 감내해야 합니까? 이 ‘외로운 독박’이 지난 6년간, 스스로 이 세상을 등진 교사 100여 명을 만들어 낸 시스템입니다.


법에 보장된 교권이라는 건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얼핏 일부 몰지각한 학생과 학부모가 주범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이제까지 교사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현장을 수수방관한 교육부와 교육청이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교사에게 문제의 편지를 보내고 업무용 메일로 부당한 지시를 한 교육부 사무관에게, 모든 사실을 알고도 경고만 준 채 승진시킨 주체 역시 교육부였으니까요.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은 교실을 구할 때입니다. 
학교는 미래사회의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공간입니다. 이른바 ‘문제 학생’도 ‘문제 학부모’도 결국 이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모두를 품어내는 것이 공교육이고, 공교육 안에서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교사의 교육권은 바로 이 공교육을 버티는 기둥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미래교육이고, 학생인권이고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지금 교사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외부의 부당한 압력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제까지 종기가 곪아서 진물이 나오고, 통증이 심해져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기까지 교육청도 교육부도 현장을 수수방관해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라는 칼을 들어 생살을 째고 종기 안에 고여 있는 고름을 빼내야 합니다. 지금은 교실을 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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