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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자와 선생-사제동촉(師弟同觸)

01 SNS에서 알게 된 ‘이 아무개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하다. 그 ‘먹먹한 가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나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안타까움·애틋함·조바심·개탄(慨嘆)·부끄러움·응원·소망과 기원·반성 등의 마음이 나를 휘감고 돌아간다. 세상을 오래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내가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음도 깨닫는다.

 

이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동시에 일곱 살 아홉 살 된 남매를 둔 어머니이다. 그런데…, 그녀의 두 자녀는 모두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선생이 감당하는 어머니로서의 고통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무게이지만, 그것보다 더 그녀를 힘들게 주저앉게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대와 편견, 차별과 몰이해이다. 그녀의 체험을 받아 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운다. 연배로는 나보다 한 세대쯤 아래이지만, 나는 그녀가 나의 선생 같다고 생각한다. 그 힘듦을 얼마나 잘 견뎌내는지, 내가 배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나에게 진정 감화를 주는 것은, 이것 말고도 또 다른 마음의 세계를 그녀가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녀는 밝음과 의욕을 향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 이걸 보며 나는 ‘긍정의 감화’에 든다. 이는 앞서 말한 고통·좌절감과는 상반되는 정서적 지향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개의 감정 축이 그녀의 무의식에서는 알게 모르게 서로 도울지도 모르겠다.

 

밝음을 향한 긍정의 감화는 그녀가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자리에 있을 때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큰 배움에 든다. ‘선생님다움의 자부심’과 ‘선생님다움의 힘’을 얼마나 잘 만들어 나아가는지, 나는 그녀가 내 선생 같다고 생각한다. SNS에 올라온 이 선생님의 이야기 한 부분을 소개해 본다.

 

매일 두 명씩 학급 아이들을 개인면담하고 있다. 보통은 상담을 교무실에서 하지만, 난 언제나 교실에서 단둘이 한다. 학생에게 교무실이 주는 위압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듣는 귀가 많으면 아무래도 편하게 얘기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지난 목요일엔 한 남학생과 이런저런 얘기로 상담이 좀 길어졌다. 마무리하려고 “나한테 더 하고 싶은 얘기 없니?” 했더니, “선생님이 분명 1년 동안 잘해 주실 것 같아서 미리 감사드려요” 하는 거다. 이런 답변을 하는 아이는 처음이라 기특해서 웃었다. 나는 장난을 치고 싶어서 “내가 잘 못 해 주면 어쩔 건데?”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글쎄, 요 녀석 답변이 놀랍다.

“선생님이 못하실 리가 없어요. 만약 못하신다면 그건 선생님 잘못이 아니고 제가 뭘 잘못한 거겠죠.”

나는 학생과 조금 웃다가 말해 주었다. 선생님도 사람이라 항상 잘할 수만은 없다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거야. 항상 잘하기만 하는 것도, 잘못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야. 네가 선생님을 믿어주어서 고마운데, 혹시라도 선생님이 뭔가를 잘못한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얘기해 줘. 서로 예의만 잘 갖출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소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선생님도 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우리 함께 잘해 보자.

 

글을 읽고 나는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을 더욱 선생님답게 해 주는 아이들입니다. 기특하고 착한 아이들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도록 아이들 마음을 조용히 움직이는 이는 누구일까요? 그 또한 선생님이라 생각해요. 참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내 마음에도 고여 드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사제동촉(師弟同觸)이라는 행복의 그림입니다.”

 

‘사제동촉(師弟同觸)’은 ‘사제동행(師弟同行)’을 패러디하여 내가 지어낸 말이다. 선생은 제자의 마음을 슬쩍 터치(touch)하여 움직이게 하고, 제자는 선생의 마음을 건드려(touch) 움직이게 하는, 그런 선순환의 사제관계를 하나의 행복 경지로 담아 본 말이다.

 

 

02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 일이 있어 갔다. 점심때 인근에 사는 H가 출판사로 나를 찾아왔다. H는 1978년 서울 K고등학교 1학년 6반 48번 학생이었고, 나는 그 반의 담임이었다. 28세, 청년 교사시절이니, 44년 전이다. H를 직전에 본 것이 언제였던가.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H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술 한 잔을 기울일 때면 나에게 전화를 한다. “선생님, 생각이 나서요”라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때 왜 우리를 두고 교육방송으로 옮겨 갔느냐.” 그래서 자기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하는 데로 번져간다.

 

사연이 있다. 그해 K고등학교는 학교 밖의 불온한 폭력조직이 학교와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유난히 많았다. 교장선생은 전 교사들에게 각별한 대처를 요청했다. 특히 시골에서 부모님을 떠나 서울로 유학 와서 혼자 지내며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학생을 잘 살펴주고, 시골에 있는 학부모를 가정방문하여, 학생지도의 실효를 거둘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셨다.

 

우리 반에서는 H가 여기에 해당했다. H의 집은 파주의 북단, 문산이다. 나는 H를 불러 가정방문을 통고했다. 그는 금방 수심에 찼다. H는 내게 요청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를 만나면 제가 반에서 몇 등이라는 거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이 녀석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럴 수는 없다.”

“아버지 아시면 저는 죽어요. 그냥 중상(中上) 정도로 말씀해 주실 수 없어요?”

“날더러 거짓말을 하라고? 그럴 수는 없다.”

“꼭 거짓말을 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이다음 기말고사에 제가 중상(中上) 정도, 그러니까 30등 안에 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라, 이 친구 보게나. 그때 우리 반이 총 64명이었으니까, 30등 안으로 들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스무 명은 뛰어넘는 셈이다. 그는 총명했다. 그는 지금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생각해 보니, H의 말대로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H에게 각서를 쓰도록 했다. 각서에는 내가 그의 석차를 특정하여 아버지께 말하지 않는다는 것, H는 학기 말에 30등 안으로 성적을 올리겠노라, 명기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추색이 물드는 일요일, 포장도 안 된 경의선 국도를 시외버스로 달려, 문산 그의 집으로 가정방문을 했다.

 

H의 아버지는 지역 유지로 인품이 훌륭하셨다. 덕수 이 씨 가문의 명예를 이어가는 집안이었다. 자녀 사랑을 마음에 두고도, 잘 표현은 아니 하시는 분 같았다. 대청마루에 막걸리 상을 차려 놓으시고 해가 기울 때까지 정 깊은 이야기를 하신다. 한참 나이 차가 있는 어린 선생인데 믿어주는 마음이 전달된다. 어머니는 자상하셨다. 텃밭에서 채소 따위를 챙겨 총각 선생에게 잔뜩 들려주신다. 부모님들은 H의 석차를 묻지 않으셨다. 그냥 선생님만 믿는다고 하신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달라진 건 없다. H의 표정에 약간의 친밀감과 신뢰는 비치는데, 그렇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다. H와 함께 쓴 각서가 내 마음에 무겁게 자리 잡는다. H는 30등 안에 들지 못하면, 이 각서 경험을 후회할까, 무시할까. 담임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각서쯤은 우습게볼지도 몰라. 모처럼 공부 마음을 먹었는데, 그냥 유야무야(有耶無耶)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날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씩 퇴근길에 H의 자취방을 들러 공부를 돌보아 주었다. 내가 자청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나도 몰랐다. 한편으로는 내가 제법 선생답게 되어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 안에 어느새 H가 들어와서 나를 움직이며, ‘선생의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묘하게도 힘이 났다. H도 딱히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괜찮은 선생’은 그냥 나 혼자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건드려 주어야 했다.

 

파주 출판사 부근에서 H와 점심을 먹고, 그는 나를 문산 교외에 있는 그의 본가로 데려간다. 44년 전 내가 가정방문을 갔던 바로 그 집이다. 위치는 어렴풋이 느낌이 오는데, 집은 새로 지어서 면모가 달라졌다. 어머니가 생생한 기억으로 나를 맞이하며 손을 붙잡아 보신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단다. 막걸리 상 차려 주셨던 대청마루 바로 그 자리에 앉으니 울컥해진다.

 

어머니는 아들 H가 환갑이니, 아들 선생은 호호 할아버지일 줄 생각했는데, 참 젊어 보인다고 덕담하신다. H의 아내는 남편에게 하도 많이 이야기를 들어서 나를 꼭 보고 싶었단다. 거실에 둘러앉으니, 44년 전 그날의 이야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해가 기울도록 이야기한다. 나는 H로 인하여 내가 선생임을 실감한다. 행복하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챙겨 주신다. 44년 전에 그러했듯이 말이다. 찹쌀·콩·두부·들기름·토란·무장아찌·된장 등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나를 선생으로 만드는가, 무엇이 나를 선생답게 하는가. 그래서 내게 제자는 누구인가?

 

아! 한 가지 빠트린 것이 있다. H는 지금 K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이다. 얼마나 헌신적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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