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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더 줄 수 있어 감사해요

정년퇴직 교사의 외손녀 육아 일기

말의 힘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왕실의 화가를 지낸 벤저민 웨스트의 어릴 적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잠시 외출한 사이 누나의 그림물감을 꺼내 누나의 초상화를 그린다며 온 방에 색칠을 해놓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사방 벽은 물론 자기 옷까지 얼룩덜룩 색칠한 벤저민을 보고 크게 놀랐다. 잠시 아무 말도 않던 어머니는 벤저민을 끌어앉고 입을 맞췄다. "

"우리 아들,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정말 대단하다."
크게 혼날 줄 알았던 벤저민은 어머니의 따듯한 말 한 마디에 그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붓다와 다시 시작하는 하루> 213쪽에서 인용함.

 

율곡 이이의 뒤에는 신사임당이 있었고, 책을 읽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에디슨을 사랑으로 가르친 것도 어머니였다. 위대한 수녀 마더 테레사의 뒤에도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 아름다운 삶, 위대한 삶을 남긴 사람 뒤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있다.

 

마더 테레사 뒤에는 역경을 이겨낸 어머니가 있었다

120 여개 국에 자신의 영혼이 깃든 '사랑의 선교회'를 남기고 떠난 마더 테레사. 그녀는 평생 낮은 곳에서 사랑을 전하며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특히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갔을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으로 막내딸의 수녀 서원과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을 지지해 주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는 테레사 수녀를 지탱해준 힘은 바로 어머니라는 큰 나무였다. 

 

나처럼 어머니와의 인연이 짧은 사람에게는 부러운 이야기이다. 내게도 신사임당이나 에디슨의 어머니까지는 못 되어도 그저 곁에만 있어준 어머니가 있었다면 내 삶이 조금 더 따스하지 않았을까. 유년이 빛나지 않았을까. 원하는 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는 슬픈 눈물을 거두지 못한 채 사모곡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눈물을 쏟곤 한다. 원망이 되었다가 그리움으로 한으로 남았다가 이제는 정물이 되어 버린 명사, '어머니'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가정, 어머니의 부재는 나로 하여금  자생력을 기르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 구르는 돌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질긴 생명력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고 누구도 믿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달리게 만들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핍동기 덕분에 아직도 나는 더 채우고 더 태울 것이 남아 있어 삶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육체의 시계는 느려지건만.

 

독서와 글쓰기를 평생의 신념으로 가르치다

 

내 아픔과 좌절을 닮은 제자들의 아픔이 더 잘 보였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보듬고 격려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깊이 생각하며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그 아픔과 상처가 옹이가 되어 인생을 더 탄탄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려 했다. 동정보다는 격려를, 다독임보다는 일어설 방법을 제공하려고 힘썼다. 아픔을 아픔으로 끝내지 않고 승화시키며 사는 삶을 몸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선생으로 살고 싶었다.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미래를 설계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글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눈물 흘리며 쓴 일기가 스스로를 보듬으며 한 걸음 내딛는 힘이 되게 노력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힘을 낼 수 있었던 나를 보여주며 상처와 고난은 이겨내는 자에겐 결코 상처로 남지 않음을 나의 제자들과 나누었다.

 

 교직 38년 동안 독서와 일기 쓰기를 평생의 신념으로 가르쳤다. 그것은 내가 살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그대로 가르쳤다. 선생은 먼저 간 길을 보여주는 자일 뿐이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 하지 않은 일을 가르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칭찬하고 싶은 아이에겐 책을 선물했고 제자들과 중요한 순간이나 헤어질 때는 손편지에 마음을 담았다.  먼 후일 힘든 날이 오면 다시 읽어 보라고. 나의 언행과 가르침은 잊어도 좋으니 부디 책을 가까이 하고 진심이 담긴 한 문장이라도 일기를 꼭 쓰라고 애원했다.

 

아직도 줄 것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아픈 유년의 슬픔으로 인해 훌륭한 어머니는 못 되어도 나쁜 어미는 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살아낸 인생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내가  받지 못한 모정을 딸과 아들, 외손녀에게 쏟고 있으니. 정년퇴직을 하고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며 도서관 생쥐로 살고 싶었다. 마음껏 책을 읽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던 꿈은 다시 미뤄졌다.

 

겨우 1년 쯤 쉬고 있을 때 터진 코로나 19로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딸아이의 안타까운 모습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코로나 19가 불러온 긴급 상황이었다. 2년 가까이 돌보던 육아도우미가 아프면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사람이 드나드는 것에 예민해졌다. 특히 남의 손에 맡기느니 공직을 그만두겠다는 딸의 하소연엔 나의 모성 보호본능이 작동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직장인데, 고생해서 공부한 젊은 날이 아깝고 아이는 곧 자랄 테니 자신의 일이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어미가 도울 테니 걱정 말고 직장을 놓지 말라고. 자식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당당한 인생을 사는 건 더 중요하다고.

 

지난 해 6월 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식사까지 봐 주며 거의 12시간 가까이 육아와 살림을 도왔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한 요즈음은 아침 일찍 가서 도와주고 집에 왔다가 오후에 다시 가서 살림과 육아를 거들어 주는 중이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아직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가족이 있어도 기대기는커녕 그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내 젊은 날이 준 깨달음은 힘이 남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아와 살림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지만 표가 나지 않는다. 독박육아를 하는 젊은 엄마들이 육아우울증에 걸리는 게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하루 종일 아파트에 갇혀서 말도 통하지 않는 꼬맹이와 씨름하고 반복적인 집안 일을 휴일도 없이 하다 보니 지치는 날이 많았다. 귀엽고 사랑스런 외손녀이지만 떼 쓰고 울어댈 때는 신경이 곤두서고 급기야는 체력이 방전되기도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딸이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에 아이에게 야단이라도 치고 나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곁에서 도와주고 다독일 어른 노릇까지 내 몫이다. 그러니 미안해 할까 봐 피곤함을 내색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 눈도 어두운데 이 나이에 쉬지도 못하고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지지만 반대로 생각하며 기꺼이 잘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자식이 절실한 순간에 손을 내밀었을 때 도울 수 있는 부모 노릇도 축복이라고, 힘든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육아도우미에게 주는 월급을 모아서 어서 빨리 가정경제를 탄탄히 세우라고. 엄마는 연금만으로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워킹맘이라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던 딸아이에게 진 빚을 외손녀에게 갚아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외손녀를 재울 때마다 딸아이를 재우는 상상을 하곤 한다. 딸을 껴안고 마음 편히 낮잠을 잔 기억이 없으니 얼마나 미안한 엄마였던가!

 

아직도 줄 게 남아 있는 내 겨울나무의 수액이 마르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영혼을 돌보는 중이다.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책도 읽고 놔 버렸던 글쓰기도 시도하는 중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답답하고 우울함도 사라졌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피곤하지만 행복하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중이다. 해맑은 웃음을 주는 외손녀에게서 행복을 느끼지만 순간순간 육체적으로 고단할때는 정신까지 메말라가는 것 같아 폭삭 늙어가는 듯해서 금방이라도 번아웃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는데 자판 앞에 앉기 시작하면서 밝아진 내 모습이 좋다.

 

세상의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 국가로부터 존중 받기를!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이자 하늘이다.  그 어머니에게 사랑스런 돌봄을 받으며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귀한 생명들을 해치고 유기하는 못된 소식들이 지면을 어지럽힌다. 그러니 누구나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아무나 부모가 될 수는 있으나 좋은 부모가 될 자격은 인내하고 노력해야 가능한 명제이다.

 

세상에는 말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넘친다. 정치가, 사상가, 언론인, 교육자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사람은 부모이다. 아버지도 중요하지만 모태를 내어준 어머니가 가진 본능적인 보호본능에서 나오는 힘은 아무래도 아버지를 능가하지 않을까. 힘들고 지친 남편을 위로하고 자식을 사랑으로 돌보는 지혜로운 아내와 엄마 노릇을 하려고 애쓰는 세상의 모든 엄마를 응원한다. 내 자식을 기를 때보다 더 힘든 요즈음, 아기를 기르는 엄마들이 더 위대해 보인다.

 

시간을 되돌려 내게서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선택할 것이다. 아니,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것 한 가지만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갖고 싶다. 아내를 잃은 아픔으로 나를 제대로 책임져 주지 않은 아버지보다는 나쁜 엄마일지라도 그 따스한 품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은 잊어도 그 느낌만은 오래도록 남는다.  아직도 나는 세상을,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서툰 미숙아로 사는 느낌인 것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받아야 할 안정감과 기본신뢰감이 낮은 탓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피아제의 교육심리학 이론은 매우 타당하다. 어쩌면 세상이 아픈 이유는 최고의 스승인 어머니들이 바르게 살지 못한 탓은 아닐까 하는 비약까지 하게 된다.

 

비혼과 낮은 출산율로 아이들을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렵게 결혼을 하고 힘들게 낳은 자식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유기하고 방치하여 생명을 해치는 무서운 세상이다. 친자식을 성폭행하고 성추행하는 인면수심을 가진 아버지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세상에 인간의 도리라는 게 있는지! 세상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해지는데 사람이 보여주는 민낯은 거꾸로 가는 것만 같아 두려운 세상이다.

 

온 인류가 코로나 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어두울수록 빛의 소중함과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가족을 돌보고 서로 돕는 작은 씨앗들이 모여서 세상을 밝게 하리라 믿는다. 내 자식의 부르짖음을, 내 부모의 절실한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 따스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족이 있음에도 외롭고 구석진 방에서 눈물을 삼키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기원한다.

 

이 글은 토요일 오후 외손녀 육아를 마치고 퇴근하고 숙제처럼 남기는 글이다. 공교육의 현장에서는 떠났지만 가르치고 기르는 교육은 외손녀에게 이어지고 있으니 교단일기를 쓰는 셈이다. 아직 말이 서툰 외손녀가 제 엄마를 툭툭 치다가 때리는 이유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보고 정보를 검색하는 중이다. 내 생각엔 제 마음을 알아달라는 신호로 보이니 더 관심을 갖고 보살피라고, 눈을 맞추고 자주 말을 걸고 안아주라고 조언해 주었다.

 

38년 교직 경험으로도 외할머니 노릇은 결코 녹록치 않으니 다시 교육심리나 육아 심리 공부로 힘을 길러야 할 모양이다. 맛있는 밥을 해주고 많이 놀아주며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채울 내공이 필요하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는 딸과 사위의 식단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드는 게 일상이 되어 뇌가 젊어질 것 같다.  나는 지금 진정한 어른 노릇을 수행 중이다.

 

육아일기를 쓰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다고 책을 더 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짬을 내어 쓰는 기쁨에 돋보기 너머로 한껏 키운 글자들이 웃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일흔이 더 가까운 외할머니가 쓰는 사는 이야기가 먼 후일 외손녀에게 줄 유산으로도 훌륭한 선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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