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같이 퇴근길에 오르면 하는 일이 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못한 일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수업을 하였는가, 오늘 처리해야할 업무는 잘 처리하였는가.
아이들에게 혹 상처가 될만한 말은 하지 않았는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였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집이 가까워지곤 한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른 날과 좀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날은 운전기사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버스는 이미 몇 정거장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운전석 위쪽에 있는 거울을 통해 운전기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 상기된 모습이었다. 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눈이 약간 충혈 되어 있었다. 그리고, 피곤할 때 나타나는 쌍꺼풀 형태의 눈꺼풀도 함께 들어왔다. 버스가 멈출 때마다 기지개를 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뭔가 귀찮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몹시 지친 모습에 피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뭔가 뚜렷한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도 그 기사는 몹시 피곤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기사의 모습을 보면서 바로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을 떠올려 보았다. 사교육비, 수능, 대학입시, 수준별 수업, 그리고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교사들 간의 갈등, 점심시간에 다투었던 두 녀석은 마음이 풀어졌을까 대충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도 뭔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 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매일이다. 물론, 교사의 본분은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서있는 것이 수업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자꾸 수업보다 다른 부분에 신경이 쓰이는 때가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날 그 기사의 모습에서 해답을 찾고 싶다. 기사는 몹시 피곤한 상태로 보였다. 외관상으로 볼 때 버스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잘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사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왠지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교육이 바로 그 기사의 피곤함과 같은
상태가 아닐까 싶다. 표면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지만, 내면에는 뭔가 잘 안되고, 제대로 손발이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느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 선생님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나라 교육이 언제 정상적으로 잘 이루어진 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되살린다는 말은 예전에는 정말 잘 되었었는데, 언제부턴가 잘 안되었을 때, 다시 예전처럼 잘 해보자는 뜻으로 이야기 할 때만 가능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논리가 조금 비약된 면도 없지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되살리는 교육이 아니고 살려야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왜 피곤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고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