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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윤태호 "꿈이 있는 未生(미생), 도전에 우열은 없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숙 생활까지 불사하며 외길을 고집한 만화가가 있다. 데뷔 17년 만에 영화 『이끼』의 원작자로 이름을 날린 후, 바둑과 직장인의 삶을 접목 시킨 작품 『미생』을 통해 폭 넓은 팬 층을 확보한 국민 웹툰작가로 거듭났다. 10대, 20대의 전유물로만 알았던 웹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만화가 윤태호. 그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계는 어떤 모습일까. 꿈을 찾아 헤매는 청소년들에게 작은 용기를 전한다.



사진_한명섭




그림밖에 모르던 청년
“어릴 때부터 그림을 쭉 해왔는데 미술 쪽으로는 집이 어려워서 못할 거 같고, 당연히 나머지는 만화가였죠. 대학 떨어지자마자 바로 ‘만화 해야지’, 나는 이길 아니면 다른 거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길을 간다는 고민은 너무너무 안 해봤어요.”
입시미술에 매진하던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실기가 1할밖에 안 되는 미술교육과로 시험을 쳤지만 탈락. 이후 만화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비를 내고 나면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부족했다. 학원에서 라면을 먹으며 버텼지만 건물 주인이 이를 알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바람에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노숙생활이 기회가 될 줄이야.
당시 학원이 대치동에 있었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은마아파트에서 노숙생활을 했는데, 마침 그 아파트에 허영만 선생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허영만 만화를 보고 자란 윤태호에게는 천금같은 우연이었다. 문하생이 되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갔다.
퇴짜를 맞고 또 달려갔다. 받아줄 때까지 달려갔다. 그렇게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만화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허영만 화실은 엄청나게 바빴다. 개인적인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었다. 결국 윤태호는 조운학 선생의 화실로 자리를 옮겼다.
“노숙생활 중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어요. 모임이 있다고 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대학생이 아니니까 나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어요. ‘너희들이 군대 갔다 왔을 때 나는 만화가가 되어 있겠다.’하고요. 스물다섯에 데뷔 하는 걸 목표로 했어요. 그런데 허영만 선생님 화실에 있다가는 데뷔 하는데 십년도 넘게 걸리겠더라고요.”

전혀 기쁘지 않은 데뷔
윤태호는 1993년 목표로 했던 25세에 데뷔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빈약한 스토리 때문이었다. “제 데뷔작이 실린 만화잡지를 처음부터 정독을 했어요. 광고까지 한자도 안 빼놓고… 그런데 그동안 무시하던 다른 만화가들의 만화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감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 만화가 나왔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제 아집이 만든 만화였죠. 전혀 기쁘지 않은 데뷔였어요.” 윤태호는 당시 실패의 원인으로 ‘과도한 자신감과 주위의 기대, 작가정신 부재’를 꼽았다. 화실에서도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었고, 데뷔만 하면 인기 만화가가 될 줄 알았다. 그림은 열심히 그렸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큰 고민을 안했던 것이다. 다시 문하생으로 돌아간 윤태호는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자기 작품을 쓰는 만화가

90년대 당시 신인 만화가의 평균 월수입은 140만원 내외, 문하생 월급은 그림 실력과 작업량에 따라 200∼500만원이었다고 한다. 고졸 경리사원의 첫 월급이 60~80만원이었던 시절이니 남부럽지 않은 고소득이었다. 그러나 윤태호의 월급은 40만원을 넘은 적이 없었다. 일부러 일을 적게 하면서 자신의 수입을 조절했다. “돈이 많아지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져요. 차도 사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어져요. 그럼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당장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만화가를 못하는 거죠. 저는 자기 작품을 쓰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 돈 많이 버는 문하생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일을 줄이니 공부 할 시간이 많아졌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대본 등을 보며 습작, 모작을 연습했다. 스토리 공부를 하기 위해 만화책을 덮고 소설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토리의 중심인 인물, 그 인물을 알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했다.
1. 아버지의 일기: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날들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일기를 써본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쓴다.
2. 중2병 일기 쓰기: 그날의 생각과 행동 등 모든 것을 최대한 꾸며서 쓰는 일기.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칭찬과 포장을 마음껏 남발하며 쓴다. 이후 윤태호는 스토리를 구상할 때 늘 인물을 먼저 만든다고 한다.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토록 열심히 자기 자신의 대한 공부를 했건만, 정작 본인은 어린 시절 꿈꾸던 만화가의 모습과 지금 자신의 모습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하물며 ‘남의 인생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흔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돼!’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요. 그런 말 보다는 성공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게 너무 크기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거든요. ‘난 이걸 하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순간 승패같은 개념이 자꾸 투사돼서 그걸 이루지 못하면 마치 패배한 것 같은 경쟁구도가 생겨요.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아이의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거든요. 꿈을 바꾸거나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은 비겁한 게 아니라 존중돼야 한다고 봐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께서 ‘꿈 하나를 그만둔다고 해서 패배하는 건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꿈도 여러가지일 수 있고,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슬럼프는 자신이 만드는 허상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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