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라현, 너는 청소도 아직 안 끝났는데 어째서 책가방부터 메고 서 있는 거야?"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벼락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라현이에게 꿀밤을 몇 대 먹였다. 청소시간이면 도떼기시장이 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에, 벌써 요령을 터득해 대충 철저히 눈 가리고 아웅하는 아이에, 교실청소보다는 학원공부에 더 마음이 급한 아이들도 태반이다.
라현이는 우리 반에서 둘째가는 꼬맹이 여자애다. 1학년 갓 들어온 아이처럼 어린 티가 뚝뚝 흐른다. 그런 아이를 오늘 두 번이나 야단쳤다. 집에 가서도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성격은 못 고친다고 하지만 초임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도 모르게 화가 버럭 날 때가 있다. 오죽했으면 내가 맡았던 6학년 아이들이 나를 '천둥'이라고 했을까.
교대 교생시절, 지도담당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화가 날수록 칠판과 가까워지십시오."
숱한 교직생활이 흐른 후, 라현이를 통해 그 말이 교사들에게 명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사실, 화가 나면 그 아이에게 바싹 다가가게 마련이다. 다가가서 어떤 수단으로든지 화풀이를 하게된다. 부모들도 자녀를 기를 때 마찬가지일 것이다.
엊그제 퇴근길에 라현이를 만났다.
"라현아, 어디 갔다오니?"
"첼로 배우러 갔다 와요."
아마 첼로 개인교습을 받으러 다니나 보다. '저렇게 키가 작은 꼬맹이가 첼로를 켤 수 있을까?'
공자는 논어에서 "화를 옮기지 말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말라"고 했다. 수양이 덜된 교사일수록 화도 잘 옮긴다. 교장이나 학부모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으면 그 화풀이를 아이들에게 하기 쉽다.
오늘 아침, 라현이는 언제 그랬나 싶은 얼굴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이내 마음이 놓인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천국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지 않던가.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화가 날수록 칠판과 가까워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