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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 경기 안산 화랑초 교장

경기도 안산 화랑초등학교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을 만나도 쭈뼛쭈뼛하거나 고개만 꾸벅하고 지나는 법이 없다. “교장 선생니임~ 안녕하세요!” 하며 달려와 와락 안기거나 손을 잡는다. “교장 선생님이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수줍게 고백하는 녀석도 있다. 산타 할아버지를 이보다 더 반길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화랑초등학교 류근원 교장(57)의 별명이 바로 ‘산타 교장’이라고 한다.


류 교장은 2010년 9월에 화랑초로 부임했다. 이듬해 입학식 날, 그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등장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20명 신입생 앞에서 동화를 들려주고 직접 쓴 그림엽서도 선물했다. 올해 입학식은 더욱 특별했다.
교사들과 함께 인형극을 준비해 선보인 것이다. 직접 쓴 이야기에 동료 교사가 그림을 그려 만든 미니동화책도 고사리 손에 한 권씩 쥐어주었다.

동화책 읽어주는 산타 교장
그는 동화책 읽어주는 교장이다. 일주일에 두 번 직접 교실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동화구연 수업이 있는 날이면 ‘변신의 귀재’가 된다. 하루는 피에로, 하루는 마법사…. 기자가 찾은 날도 류 교장은 다람쥐 분장을 하고 1학년 1반으로 향했다. 오늘 읽을 동화는 <우리 모두 1등>, 그가 직접 쓴 동화다.
“혼자 1등 하는 게 좋아요? 모두 함께 1등 하는 게 좋아요”, “다 같이요!” 류 교장은 동화 내용에 맞춰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바꾸기도 하고 아이들 반응에 맞춰 애드리브를 섞기도 했다. 동화구연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1974년 충북 앙성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평교사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늘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자격증을 따놓아야 할 것 같아 동화구연대회에 참가했는데, 대상을 받았죠. 제가 유일한 남자 참가자였어요.”(웃음)
교장이 되고 나서는 아예 분장까지 하고 동화구연에 나섰다. “하루는 병설 유치원 행사에 인형 탈을 쓰고 갔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동화를 듣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 앞에선 교장이란 권위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아이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동화구연을 하는 것도, 동화를 쓰게 된 것도, 이렇게 삶이 기쁘고 보람찬 것도 아이들 덕분이란다.
벽지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같은 책을 여러번 읽어주니 아이들이 지루해했다.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선생님, 재미있어요” 하는 아이들의 말에 용기를 얻어 동화작가로 등단도 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눈자니 마을의 동화> 등 수십 편의 동화를 쓴 유명 동화작가다.

직접 쓴 동화, 호응이 좋다
동화작가가 교장 선생님으로 있는 학교답게, 화랑초의 교육 목표는 ‘풀꽃 속에서도 또 다른 세상을 보는 화랑 어린이’다. 매주 화요일 아침,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방송에서 그가 하는 첫마디도 “화랑 풀꽃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다. 그래서 생긴 재미있는 화도 있다. 슬기로운 생활 시간, “사람은 동물일까요, 식물일까요”라는 물음에 한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 “식물이요! 교장 선생님이 우리한테 만날 풀꽃 어린이, 풀꽃 어린이 하잖아요.”
‘풀꽃 어린이’는 그저 예쁘다고 만든 말이 아니다. 인성과 감성을 중시하는 그의 교육 철학이 담겨 있다.
“풀꽃을 보려면 무릎을 구부려야 해요.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낮춰야 자세히 볼 수 있지요.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이 보여요.” 그가 동화책을 읽어주고 직접 아이들의 글쓰기를 지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글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것
이 아니라 아이들 안의 숨은 감성을 일깨우고 스스로 표현하도록 돕는다. “너희들이 불렀던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갔을까? 어느 이파리에 앉아, 꽃들이 듣고 있지 않을까” 그의 문학 수업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는 눈높이를 맞춰야 보이는 건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후배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조언도 “아이들 편에서,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세상이 보일 거라고 그는 말한다.
“만약 동화를 쓰지 않았다면 저도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동화를 쓰면서 내 안의 동심을 계속 일깨웠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더 다가가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만 동화를 읽힐 것이 아니라 교사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가 기에 있다.

그림엽서로 칭찬과 관심 표현
류 교장이 동화작가로 등단하고서 가장 먼저 찾아뵌 사람은 초등학생 시절 사였다.
“글짓기 시간에 제가 쓴 시를 한참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잘 썼다. 95점!’ 그때 처음 제 안에 작가라는 꿈이 생겼지요.” 그런데 정작 이 이야기를 하자 은사는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말을하셨단다. “그때 100점을 줬으면 네가 더 빨리 꿈을 이뤘을 텐데, 더 많이 칭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뭉클했어요. 이게 선생님의 역할이구나, 꿈의 씨앗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사람이 선생님이구나 생각했지요.”
류 교장은 동화구연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직접 쓴 그림엽서를 나누어 준다. 엽서에는 동화를 듣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앞으로도 책을 많이 읽으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인사 잘해라’, ‘쓰레기 주워라’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인사 잘하는 아이, 쓰레기 줍는 아이를 교장실로 따로 불러 그림엽서를 준다. 자신의 동화책에 사인을 해 선물하기도 한다. ‘네가 웃는 걸 보
니까 너무 예쁘구나. 교장 선생님도 너처럼 웃고 싶구나. 더 많이 웃으렴.’ 그림엽서를 받은 아이는 폴짝 폴짝 뛰면서 교장실을 나간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아끼지 않는 류 교장이지만, 그에게도 매너리즘에 빠졌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산골 학교에 있을 때였는데, 반 아이 하나가 면 소재지까지 십리 길을 걸어가서 약을 사온 거예요. 자살하려고 말이에요.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내가 이러고 있으면 이 아이들한테 죄를 짓는 거다 하고 말이죠” 그는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한 생명을 잃을 뻔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고 한다.

무한 사랑을 주는 선생님
그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교사는 ‘사랑을 주는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돌멩이에도 이슬이 맺히게 하고 죽은 나무에서도 새순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다가가면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가슴 속으로 들어올 겁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지요.”
화랑초등학교 교장실은 문턱이 낮다. 아이들은 언제든 자기가 쓴 글을 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린다. 류 교장은 아무리 바빠도 일일이 첨삭지도를 해준다. “올해는 교장실에서 소파와 테이블을 치우고, 아이들이 와서 글을 쓸 수 있게 작은 책상들
을 놓을까 해요.”
그에게는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제 동화를 듣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작가가 되어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때 피에로 분장을 하고 동화를 읽어주던 교장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 보고 동화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요” 그가 뿌린 꿈의 씨앗이 사랑을 먹고 어떤 나무로 자라날 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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