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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따라가는 국토순례 대장정

척추. 사람에게 있어 무릇 등뼈란 온몸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부위라 하겠다. 백두대간이 대한민국의 척추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와 나란히 달리는 7번 국도는 맑은 동해바다와 빼어난 산맥, 얼마 남지 않은 석호, 울창한 소나무, 끝없이 이어지는 해수욕장과 모래사장을 훑고 지나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느낄 수 있게 하는 코스다. 차창을 열면 불어오는 갯바람과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반도의 동쪽을 아우르는 7번 국도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본격적인 7번 국도 여행을 시작해보자. 한반도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7번 국도는 부산광역시 중구의 도로원표에서 시작해 경상남북도와 강원도를 거친다. 휴전선을 넘어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에까지 이르니 전체길이는 513.4㎞에 달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동쪽 언저리는 모두 훑는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길은 하루 이틀에 돌아볼 수 없는 일. 겨울방학을 이용해보자.
7번 국도는 1969∼1970년 경주∼울산 구간을 시작으로 왕복 2차선부터 4차선, 6차선까지 구간별로 조금씩 다른데 도로 포장률은 99.2%로 미포장 도로는 4㎞ 밖에 되지 않는다. 자동차로 달리기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수많은 국도와 만나고 헤어지며 강원도 삼척∼강릉 구간은 영동선이 나란히 달린다. 부산에서 강원도까지의 물동량 수송과 지역개발 및 관광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휴전선에서 끊긴 도로가 이어지면 남북한의 경제교류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구간 중 부산∼울산, 울산∼경주, 경주∼포항, 삼척∼동해 구간 교통량이 가장 많고 삼척~맹방, 궁촌~원덕, 후포~병곡, 강구~송라 구간은 해안절벽을 끼고 돌기 때문에 풍관이 빼어나다. 달리다보면 어느새 차창을 내리고 푸른 창공을 향해 손을 뻗게 된다.

고성 통일전망대 - 안보교육 일 번지
7번 국도 최북단은 고성으로 금강산 육로 관광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통일전망대가 있다. 연간 100만 명의 국내외 내방객이 방문하는 천혜의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최근 금강산 관광 중단, 남북관계 경색으로 관광객들이 줄어 썰렁한 모습이다.
분단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서지는 파도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은빛으로 일렁이는 물결들의 춤사위는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해금강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신선대, 옥녀봉, 일출봉 등 금강산의 절경과 해금강을 아스라이 눈에 넣을 수 있으며 안보교육을 통해 화면으로 만나는 북한의 명소는 분단 조국의 현실과 안타까움을 절로 느끼게 한다.

화진포 - 석호를 배우는 자연학습장
해안을 따라 1시간 정도. 간성 읍내를 지나면 KBS 드라마 〈가을동화〉로 유명해진 화진포(花津浦)가 나온다. 후빙기 해면상승으로 해안이 침수됨에 따라 하곡을 중심으로 한 낮은 곳이 만입으로 변하고 그 입구가 중평천과 월안천의 토사공급으로 이루어진 석호이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동해의 몇 안 되는 석호로 호숫가의 갈대와 수천 마리의 철새, 100년이 넘는 소나무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염담호수인 화진포의 둘레는 16㎞, 면적은 70만 평이 넘으니 남한 최대석호다. 겨울에는 백조(천연기념물 제201호)가 도래하고, 여름에는 해안을 따라 해당화가 피어 운치를 더해준다. 수천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호수는 북동쪽이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잉어 등 민물고기와 도미·전어와 같은 바닷물고기가 많다.
호수와 바다의 절경이 뛰어나 일제강점기에는 외국인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고, 해방 후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생겨났다. 현재 별장들은 개보수 작업을 거쳐 유품과 자료전시로 근대 정치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 절벽을 따라 김일성의 별장에 오르면 발 아래로 넘실대는 파도를 품고 있는 화진포 백사장이 눈부시도록 희다. 파도가 훑고 지날 때면 ‘사르르~’맑은 소리가 별장까지 이어진다.
호숫가를 거닐다 배 모양의 화진포해양박물관을 들려보면 좋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등 1500여 종 4만 여 점을 전시한 패류박물관이 볼만하고 수중생물 125종 3000여 마리를 각각의 서식 환경과 내용에 따라 보여주는 어류전시관 또한 흥미롭다. 옥상에는 8m60㎝의 밍크고래 뼈가 전시되어 있다.

주문진 - 도루묵과 선조와의 인연
조금 더 내려오면 주문진 항이다. 주문진 항의 겨울은 양미리, 도루묵이 제철이니 잠시 도루묵 이야기를 하고 가자. 몸길이 26㎝가량, 수심 200~300m 사이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이인 도루묵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심 얕은 연안 가까이로 올라온다.
생선 중에 도루묵만큼 사연 많은 놈도 없는데 도루묵은 일찍이 조선 선조 임금과 인연을 맺었다.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오른 임금은 도루묵을 진상 받았다. 당시에는 귀한 생선을 ‘은어(銀魚)’라 칭하고, 흔하디흔한 탓에 서민이나 먹던 생선은 ‘묵’이라 불렀다. 평상시라면 도루묵은 임금에게 올리기 어려운 생선이었다. 허기가 졌던 선조는 도루묵에 반해 “앞으로 이 생선을 은어로 부르라”며 도루묵을 특급 승진 시켰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는 다시 도루묵을 찾았다. 처지가 바뀐 탓인지 도루묵 맛은 실망스러웠다. 선조는 “이 생선을 다시(도로) 묵이라 부르도록 하라”고 내쳤다.
조선 중기 문신인 이식(1584~1647)은 ‘환목어(還木魚)’라는 시를 지어 도루묵을 위로했다.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은 아니라네

여기서 사족 하나. ‘헛되이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는 것’을 흔히 도루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도로무익(徒勞無益)’이다. 애꿎은 생선은 들먹이지 말자.

강릉 선교장 - 설경 속 문화유산 만나기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눈이 온다면 강릉 선교장을 찾아가자. 고택과 설경이 이곳처럼 잘 어울릴 수 없
강릉 선교장 활래정 설경.
으니 강릉 지방의 대표적인 설경 감상 문화유적지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이면 고택이라는 인공건축물과 눈이라는 자연 현상이 빚어내는 자연의 조화를 촬영하기 위해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가지런한 기와지붕의 골을 따라 백설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곡선미는 한옥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처마에 줄줄이 매달린 고드름이 향수를 자극한다. 함박눈을 머리에 인 활래정 정자는 강추위 속에서도 꼿꼿하게 등허리를 곧추 세워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조선의 선비 같은 기개를 드러낸 채 꽁꽁 언 연못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강원도 내 개인주택으로는 가장 넓은 집인 선교장에는 조선시대 상류계급이었던 전주 이씨 집안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 일대는 경포호가 넓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녀 ‘배다리마을’이라 불렸는데 ‘선교장’이란 이름도 거기서 유래한다. 긴 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사당 등은 고택의 품격을 대변해준다.
특히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빌린 사랑채 ‘열화당’은 선교장 내 여러 건물 중에서도 마음을 잡아끄는 건물이니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기뻐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경포호반 도로변에 위치한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잊지 말자.

호미곶 - 호랑이 꼬리에 오르다
한반도의 척추가 지나는 포항 뒤쪽으로 호미곶이 있다. 매년 1월 1일이면 해맞이를 보기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니 그 만큼 해돋이 광경이 멋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월 1일의 해만 멋질까? 그건 아니다. 땅을 뚫고, 바다를 뚫고, 생명의 잉태를 의미하는 ‘상생의 손’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일 년 열두 달 어느 때라도 감동적이다.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를 맞이한다는 뜻의 상생의 손. 육지에선 왼손이, 바다에선 오른손이 세워져 있으니 그 크기의 거대함에 반하고 그 뒤로 떠오르는 태양과 갈매기와 배 한척에 매료된다.
호미곶(虎尾串)은 생김새가 말갈기 같다하여 장기곶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그 모양이 정말 호랑이 꼬리와 흡사하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옆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으니 빠뜨릴 수 없다.


구룡포 - 날씨를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
남쪽에는 구룡포가 있다. 바람결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과메기의 향긋 비릿한 내가 묻어온다. 10년 전 까지만 해도 겨울 한철의 별미로 여겨졌던 과메기는 일 년 내내 찾는 맛난 먹거리로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80%가 이곳 구룡포에서 난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들었다. 겨울철 부엌 살창에 걸어두면 차가운 밤바람에 얼었다가 해가 드는 낮이면 녹기를 반복하며 쫄깃 탱탱한 과메기가 되었다. 헌데 그 바람이 문제다. 센바람이 불면 겉껍질만 말라 속이 망가지고 바람의 온도차가 많으면 황태처럼 푸석푸석해지니 산을 넘어온 북서풍이 동해의 해풍과 만나는 곳, 이곳 구룡포가 딱이다하여 ‘바람의 아들’이란 멋진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과메기는 물고기의 눈을 나뭇가지에 꿰어 말렸다는 의미의 관목어(貫目魚)가 발음이 변해 생겼다한다. 통째로 말린 ‘통과메기’와 반으로 갈라 내장 없이 말린 ‘배지기’가 있는데 요즘은 배지기를 선호한다. 또한 청어의 어획량이 떨어지자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니 지금은 모두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껍질 벗긴 과메기는 배춧잎, 돌미역, 실파, 풋고추, 마늘과 친구하여 뻘건 초고추장을 동반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택배로 주문해 아껴먹는 과메기가 이곳 식당에서는 반찬으로 나온다.

장생포 - 거대 포유류 고래를 만날 수 있는 곳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70년대만 해도 울산 장생포에는 포경선이 스무 척이나 떠 있었다. 길을 지나는 개도 입에 돈을 물고 다녔고 ‘장생포의 포경선 포수는 울산 군수하고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황인 고래잡이 항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위별로 해체하는 고래의 비릿내가 진동하고 집채만 한 고래구경을 온 사람들로 북적였으니 한해에 잡아 올린 고래가 1000여 마리. 돼지고기 값보다도 고래 고기 값이 저렴하니 거리는 온통 고래 고기 파는 집으로 가득 찼고 날마다 소주 안주로 고래 고기를 양껏 먹어댔다.
장생포 앞바다는 ‘극경회유해면’으로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된 곳이다. 한국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지나는 길목이다. 태평양에는 두 종류의 귀신고래가 사는데 이중 서쪽에 사는 한국귀신고래는 여름에 오호츠크 해에서 살다가 겨울이면 우리나라 남쪽으로 내려와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장생포 앞바다에서는 귀신같이 출몰하거나 포경선을 피해 귀신같이 숨는다하여 이름 지어진 ‘귀신고래’가 포경선과 숨바꼭질을 즐기던 귀신고래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되면서 어쩌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래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고래길 끝자락에는 고래 모양을 한 고래박물관(052-226-2809)이 기다린다. 고래박물관에는 공룡의 뼈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수염고래류의 브라이드 고래 뼈가 박물관의 2~3층을 아우르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마지막 포경선이었던 제6진양호가 실물 그대로 있는데 깃발을 날리고 예리한 작살로 고래를 조준하는 포수는 작살을 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전해준다.
고래를 되뇌며 좀 더 내달리면 부산, 그곳에 7번 국도의 마지막이자 출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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