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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모험을 번역하다

100년 전 제국주의 열강의 틈새에서 갈 길을 찾지 못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모험심과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서양의 인물들을 조선에 소개했다. 그리고 조선의 소년들에게 그들의 정신을 지표로 삼아 장대한 포부를 가지라고 독려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과 동일시한다는 것이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근대 초기 조선 지식인들이 번역해 낸 서양의 모험가,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영웅들은 대부분 제국주의자였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전 세계가 들끓었다. 인간은 기어코 달을 점령했다. 토끼가 방아를 찍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되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무장한 과학의 힘 앞에 시인들의 상상력은 힘을 잃었다. 시인들은 더 이상 달에 관한 시를 쓰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발견된 사실이 많아질수록 인간의 상상력은 축소되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우주인을 꿈꿨다. 아직 미개척지인 화성 여행을 꿈꾸는 아이들도 생겼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지 10여 년 후에 필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주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발견되었고, 우주여행이 공상이 아닌 현실의 일로 가까워졌다. 그때 꿈꿨다.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는 우주로 여행할 수 없는 내 꿈을 대신 실현하고 있었다. 나도 철이가 되고 싶다. 메텔과 같은 누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우주를 여행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현실이 희망을 좇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대체품을 찾는다. 내게는 만화영화였다.

100년 전에도 그랬다. 세계는 넓고 할일도 많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온 나라에 퍼졌다. 100년 전 지식인들은 세상의 견문을 넓히는 일 중에서 여행만큼 좋은 건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계를 여행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였다. 지식인들은 간접체험용 학습 장치를 마련했다. 지금의 SF영화나 만화영화와 마찬가지였다. 외국의 여행소설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바다를 보라, 문명을 개척하라
태평양이 우리의 운동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에서 조선의 소년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친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드넓은 태평양은 조선 소년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이자 경주장이 되어야 한다. 최남선은 <우리들의 운동장>(<소년>, 1908. 12)이란 시에서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펼쳐 놓았다. 문명의 거센 파도가 한반도를 집어 삼키는 지금. 최남선은 조선 소년, 아니 조선의 문명개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여행을 떠나라 권했다. 이에 한국 최초의 1인 잡지를 출간한 최남선은 프로젝트를 세웠다. 일명 모험심과 개척정신 향상 프로젝트였다.


최남선은 공육(公六)이란 필명으로 여러 편의 글을 <소년>에 연재했다. 그 중 <해상대한사(海上大韓史)>와 <북극탐색사적(北極探索事蹟)> 등에는 바다에 대한 최남선의 애착과 집착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제국의 미래를 개척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남선은 바다의 개척이야말로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최남선에게 바다는 문명의 보배이자 대한제국 소년들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였다.

최남선은 대한제국 소년들의 스승임을 자처했다. 그들로 하여금 문명의 세계를 개척하라고 독려했다. 문명의 바다, 문명의 세계에 뛰어들 조선의 소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험심과 담력이었다. 삼면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선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육지에 갇혀 있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중국을 최고의 문명국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육지가 아닌 바다를 횡단하여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될 필요가 있었다. 최남선은 태평양을 건너고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담대한 용기를 지닌 소년들을 육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의 모험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최남선을 비롯한 다수의 지식인들의 열망 속에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는 한반도에 상륙한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비롯하여 다양한 모험소설들이 한반도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80일 간의 세계일주>, <해전 2만리>, <인도 왕비의 유산>, <기구를 타고 5주년>, <달나라 탐험> 등이 번역되었다.

바다를 건너 걸리버, 조선을 당혹케 하다
소인국도 대인국도 아닌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걸리버가 당도했다. <소년> 창간호에는 <걸리버 여행기>의 제1부인 <소인국 표류기>가 곧 간행될 것이라는 광고가 실렸다. 광고에 따르면 <소인국 표류기>는 걸리버가 소인국에 가서 임금의 사랑을 받고 행세하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기기묘묘한 온갖 경력이 많다. 그러나 광고는 실렸지만 <소인국 표류기>가 실제로 번역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여하튼 <소년> 제2호에는 <걸리버 여행기>의 제2부인 <거인국 표류기>가 실린다.

호방한 기상을 지닌 선의(船醫) 걸리버는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20여 일간 표류한 끝에 거인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기괴한 관광과 진기한 유람을 한 걸리버. 영특한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걸리버. 한국의 독자들에게 <걸리버 여행기>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았다. 그렇지만 과연 <걸리버 여행기>가 걸리버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여행담을 표현한 작품이었던가.

<십전총서(十錢叢書)>로 다시 발간된 <걸리버 여행기>의 광고에는, 이 이야기가 영국의 조지 1세 시절의 풍속을 풍자한 것이지만, 소설적으로도 매우 묘미가 있는 작품이며, 해상 사상을 고취하는 작품이라고 적혀있다. <소년>의 편집자였던 최남선은 <걸리버 여행기>의 하편에 해당하는 <거인국 표류기>를 2회에 걸쳐 실었지만, 이내 서둘러 연재를 중단했다. 편집자인 최남선의 의도와는 다르게 <걸리버 여행기>는 조선 소년들의 기상을 드높이는 데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던 것이다.

걸리버는 로빈슨 크루소와 달랐다. <걸리버 여행기>는 해상모험소설이라기보다는 가상 공간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비판하는 풍자소설이었다. 정치에 대한 풍자와 위트로 가득한 <걸리버 여행기>는 결코 조선의 꿈나무들에게 바다를 향한 정신을 고취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걸리버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야만인을 길들이는 문명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지도 않았다. 걸리버는 최남선이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서양 문명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소설이었다. 때문에 최남선은 <거인국 표류기>를 중단하고, 그 곳에 <로빈슨 크루소>를 번역한 <로빈손 무인절도 표류기>로 대체했다.

한반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
최남선은 <로빈슨 크루소>를 <로빈손 무인절도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여섯 번에 걸쳐 번역 연재하였다. 번역 연재를 하면서 최남선은 독자를 향해 외친다. “우리는 장쾌한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하늘과 바다를 사랑한다. 우리는 영특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우리는 모험적 항해를 즐겨한다. 그러니 표류담과 모험소설을 탐독하는 것이다. 우리 사랑하는 소년들이여 해상생활의 흥취와 항해모험의 취미를 맛보도록 하라.”

소년들의 모험심을 키워주기 위해 최남선은 <로빈슨 크루소>를 번역했다. 최남선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끊임없는 모험을 선택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해상모험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인물로 한반도 소년들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거센 바다를 헤치고 대영제국의 영달을 대표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삶의 역정을 조선의 소년들에게 소개한 최남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년들이여 바다를 가서 보아라! 큰 것을 보려는 자, 넓은 것을 보려는 자, 기운찬 것을 보려는 자, 끈기 있는 것을 보려는 자, 가서 시원한 바다를 보아라! 응당 너희들이 항상 바라던 이상을 주리라!

그러나 최남선은 알고 있었을까. 로빈슨 크루소가 탄 배가 노예무역을 담당했던 배라는 것을. 그리고 원주민인 ‘프라이데이’를 길들여 자신의 왕국을 만든 로빈슨 크루소가 어떤 면에서는 제국주의자와 똑같다는 것을. 어쩌면 로빈슨 크루소의 후손인 서양인들이 조선을 잠식할 것이라는 것을.

개척과 모험의 딜레마


걸리버와 로빈슨보다 앞서 한반도에 소개된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항해자였다. 그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서 보았다. 1906년 10월 24일,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인 유학생 박용희가 쓴 <콜럼버스전(傳)>이 <태극학보(太極學報)>에 실린다. 박용희는 <콜럼버스전>을 필두로 독일의 철혈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전>을 썼고, 이후에는 쥘 베른의 <해전 2만리>를 <해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박용희는 눈에 비친 콜럼버스는 뛰어난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을 지닌 인물로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이었다. 박용희는 그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했다. 오호라! 천지여.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여, 지금 어디에 있는가!

100년 전 제국주의 열강의 틈새에서 갈 길을 찾지 못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모험심과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서양의 인물들을 조선에 소개했다. 그리고 조선의 소년들에게 그들의 정신을 지표로 삼아 장대한 포부를 가지라고 독려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과 동일시한다는 것이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근대 초기 조선 지식인들이 번역해 낸 서양의 모험가,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영웅들은 대부분 제국주의자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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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00년전 조선인이 바라본 세계’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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