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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대 나온 여자야!”



나라가 학력위조 신드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혜성같이 나타나서, 거칠 것 없이 잘 나가던 젊은 큐레이터. 그런데 알고 보니 학력과 학위는 물론이고 이름조차도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여기에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가 알려진 이후에 경향(京鄕) 각지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던 남녀들의 커밍아웃까지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굿모닝 팝스’를 진행하던 이지영 씨, <공포의 외인구단>의 만화가 이현세 씨가 사실은 고졸이라고 학력 위조를 커밍아웃했습니다. 여기에 심형래 감독의 학력 논란, ‘러브하우스’ 이창하 디자이너의 학력위조까지….

그네들의 거짓말에 혀를 내두르게 됨은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미대를 다니지 않아도 만화만 잘 그리고, 언어학 석사학위가 없어도 영어 강의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옛 문학작품에서도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인정받는 사례들은 종종 발견이 되는데요. <옹고집전>에서 욕심꾸러기 진(眞)고집은 원님에게 아무리 자신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 소설 <분신>의 주인공인 골랴드킨의 직장 동료들도 진짜보다 가짜를 더 선호하지요. 이런 아이러니는 ‘나의 나다움’을 묻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가(假)고집이 진(眞)고집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허수아비로 변하든, 가짜 골랴드킨이 끝까지 진짜 골랴드킨을 궁지로 내몰든, 지금까지 나를 규정했던 요소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나다움. ‘나’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나의 외모, 학력, 부모의 배경…. 이런 것 없이 진정한 나를 나 자신으로 보는 것은, 적어도 이 땅에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지나치게 되어버린 ‘학력’은 언제인가부터 우리사회에서 그 사람의 품격과 동일시되어 버렸습니다. 일찍이 영화 <타짜>(2006)의 정 마담(김혜수 분)도 외치지 않았습니까. 학벌이 얼마나 쓸 만한 무기면, 경찰에 연행될 위기에 놓이자 정 마담 입에서 나온 마지막 한마디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였겠습니까. 그녀가 도박판의 꽃이 되는 데는 ‘학벌’이 필요조건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신정아 씨가 리플리 병(자신이 바라는 세계만을 진짜라고 믿고, 자신이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을 오히려 허구라고 믿는 병) 환자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대단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할 자격 우리에겐 없지 않을까요. 이지영 씨나 이현세 씨의 커밍아웃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입에 거품을 물 자격 역시 없지 않을까요. 잘못은 밉지만 사람은 가련한 경우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현세 씨는 20년 동안 목에 있던 것을 빼낸 것 같은 후련한 기분이라고 했고, 이지영 씨는 남들을 속여 온 세월을 친딸 행세를 하는 가짜 딸의 죄책감에 비유했습니다. 단 한번도 학벌을 이용하지 않거나 학벌에 주눅 들지 않은 자, 그들만이 저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으니까요! | 한국교육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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