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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 숨 쉬는 생활 미학, 옹기의 아름다움

모든 사람들을 격이 없이 안아주는 옹기가 좋다.
그릇 그릇마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을 듬뿍 품고 있는
장독이나 작은 항아리라면 더욱 좋다.
앞으로는 옛날 그 때처럼 우리 곁에 같이 살아가길 바라며
옹기가 지닌 소박하고 순수한 한국의 아름다움을 짚어보자.



전국 방방곡곡의 산야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짙어가는 녹음을 즐기면서도 은연중에 우리 것에 대한 흥미를 가지곤 한다. 이런 속마음을 표현하듯 혹시라도 도회지 생활에서 멀어져버린 옛 생활 용품을 만나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흥분하며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담 밖 야트막한 언덕과 어울림 한 시골 장독대와 그 속의 옹기일 것이다.

복잡한 일상을 잊게 하고 어머니 품 속 같은 편안함을 더해주는 옹기를 보는 즐거움은 우리 민족의 특혜인지도 모른다. 땅 색과 닮은 옹기를 본 사람들의 입가에는 어느새 웃음이 묻어 있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느 마을 낯선 길목의 한옥 마당 한 켠에 겸손하게 앉아있는 옹기가 정겨운 것은 우리 민족성을 그대로 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면서 잘난 척 하지 않고 은근한 아름다움을 가진 모양은 우리 민족의 속내를 가장 잘 표현한 물건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나는 어른 키보다 큰 옹기를 보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큰집이던 우리 집 장독대에는 아주 큰 장독이 여러 개 있었는데, 몇 년씩 묵은 장맛이 좋다며 이웃 아주머니들이 간장과 된장을 얻으러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최근 일본사람들이 이렇게 사용하던 우리나라의 큰 옹기를 대거 수집해 간다는 얘길 들었다. 욕심 없이 만들어낸 장인의 키보다 큰 옹기를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이제 더 이상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인생과 동고동락하던 그 큰 옹기를 앞으로 누가 만들어낼 것인가. 눈치 빠른 일본 사람들이 차츰 귀해질 것을 미리 눈치 채고 일제강점기 때 백자사발과 민화를 가져간 것처럼 선수를 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김치냉장고 성능을 따져가며 아파트 주방에 메이커 김치냉장고를 사서 김치를 채우고 있을 때 일본인들은 우리의 생활과 마음을 훔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하니 서글퍼졌다.

자연생명이 숨 쉬는 흙과의 동화

옹기가 가진 멋 중 으뜸은 숨어있는 기운과 생명력이다. 산소를 들이마실 줄 아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절대 뽐내거나 화려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겉으로는 순수하고 소박한 질감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장수할 수 있는 비결도 품고 있다.

옹기는 순박한 여인들의 손결에서 일상을 시작하면서 부드럽지만 강하고 정말 쓸모 있는 실용적이다. 그리고 한국인과 함께 하는 삶의 동지로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자연동화의 멋도 지닌다. 구워 만드는 방법에 따라 질독, 푸레독, 오지그릇, 반옹기, 옹기 등으로 만들어져 생활 곳곳 함께 있어왔다. 삼국시대 이후 주로 환원 소성한 토기가 만들어졌지만 산화 소성한 것도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적색토기가 만들어졌는데, 고려시대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적색토기가 만들어졌고 조선시대에는 오지그릇이 만들어졌다.

옹기는 검정 토기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검정 토기가 고온으로 구워지면서 치밀한 토기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치밀한 토기 중 한 갈래는 청자와 백자로 이어지게 되고 또 한 갈래는 옹기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한자로는 ‘옹(瓮)’ 또는 ‘옹(饔)’이라고 쓰며, 외국어 표기는 ‘onggi’로 한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빚어 초벌구이를 한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이다. 근대 이후 윤기가 없고 겉이 매끄럽지 못한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옹기는 주로 윤기가 있고 단단한 오지그릇을 지칭하게 되었다.

옛 선조들은 곡식을 담아도 벌레가 생기지 않는 질그릇을 저장용기로 즐겨 사용하였다. 그것은 옹기의 태토가 되는 찰흙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 안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만들어 옹기 안과 밖으로 공기를 통하게 함으로써 안에 있는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잘 보존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숨 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옹기는 다른 용기와 비교해서 내용물이 쉽게 변색되지 않고 인체에도 무해하며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거기다 옹기는 자연으로 환원할 줄 아는 성정을 가져 환경오염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온전한 그릇으로 있을 때는 생활에 도움을 주다가 금이 가거나 파손되었을 경우는 자연으로의 토화현상(土化現像)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습기 있는 땅속에 묻히거나 노출상태에서는 풍화작용에 의해서 원래의 자연 상태인 흙으로 돌아간다. 전국 각지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양의 옹기를 굽고 사용하였음에도 이들 파편들이 묻혀있거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이유가 바로 자연환원성(自然還元性)인 토화현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찰흙에다 부엽토와 재를 섞어 만든 잿물을 입혀 구워 내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전혀 해가 되지 않고 금이 가거나 깨져 밖에 버리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 친화적인 소재이다. 이런 옹기야말로 가장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라 할 수 있겠다.


소박하고 기운이 넘치는 문양

옹기의 색상을 말할 때 자연 그대로의 색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옹기에서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과 닮은 색상에서의 느낌도 있겠지만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꾸밈없는 옹기의 문양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옹기에 나타나는 문양은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옹기를 만드는 장인이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 속에서 활달하고 개방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기운과 꾸밈없고 수더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옹기의 대표적인 장식 기법으로는 우선 수화문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세계 도자에서 유래가 드문 독특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처음에는 유약의 두께를 감정하기 위한 필요로 시작되었다가 문양으로 발달되었다고 본다. 특히 손가락만을 이용하여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이어서 장인의 힘찬 터치와 대담한 선의 변화가 돋보이며 덤덤하면서도 소박하게 표현이 무기교의 기교로서의 한국미를 대변할 수 있다. 옹기의 다른 문양들에는 각종 기하문과 동식물의 상형문이 고루 발달하였다. 특히 양손을 이용한 대칭 문양이 특이한데, 아마도 대칭 문양을 새기던 장인은 온 몸으로 옹기를 감싸 안듯이 공손하게 두 손을 함께 움직이며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기하문이 있다. 곡선의 중간부분에 배가 나온 호형문, 수화문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문양으로 곡선의 배가 모두 상향으로 나타난 파곡선문, 용수철 모양의 용수철문, 호형문이 상하로 바꾸어가며 연결되어 이루어진 파도문, 파곡선문이 방향을 바꾸어 나타낸 지그재그문, 파상문과 비슷한 형태의 문양으로 직선으로 계속되는 파상문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기하문에서는 우리 민족의 선천적인 추상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전혀 기교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정겹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물론 옹기를 마음으로 감싸 안고 만들어낸 장인의 기운도 느낄 수 있다.

또 비대칭적인 특징을 지닌 상형문도 옹기의 장식기법이다. 여기에는 꽃과 나무 문양을 새긴 초화문, 새 모양의 조문, 매듭모양의 매듭문, 산 모양의 산형문, 규칙이나 유형 없이 손 가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시문된 구름 모양의 운문 등이 있다. 그 중 운문은 옹기 문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어진 옹기 문양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 비대칭 문양은 장인의 무계획적인 계획에서 빚어낸 초월적인 미감을 가진다. 옹기의 문양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면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단순한 문양에는 기운이 넘친다.


튼튼하고 투박한 생활 속 용기들

옹기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문화로 다른 문화재와는 차별화된 인간 사랑을 담고 있다. 옹기는 귀족층에서 쓰던 청자나 사기처럼 세련되고 섬세한 맛은 없지만 값싸고 튼튼하기 때문에 서민의 실생활에 부담 없이 쓰여졌다. 기교를 모르고 투박하며 떨어뜨려도 잘 깨지지 않는 옹기의 강한 생명력은 순수한 삶을 살았던 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옹기는 우리나라 서민들이 쓰던 민족 고유의 생활 그릇으로 지역적인 기후와 자연환경, 용도와 만드는 사람에 따라 그 나름대로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제조기법, 형태, 규모 등이 전국적으로 통일되지 않으며 지역마다 독특한 옹기문화를 형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옹기는 상고시대부터 많이 사용되다가 삼국시대 이후 그릇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단단하고 가볍게 만들어졌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는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옹기를 굽는 직제까지 두었다고 하니 얼마나 널리 쓰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와 같은 새로운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생활 용기는 역시 옹기였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에 백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 그러나 도자기가 생활 용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옹기는 점차 저장 용구나 주방 용구로 이용되어 살림 그릇으로서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옹기는 일반적으로 간장, 된장, 김치, 물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항아리에 많이 쓰였으며, 그 외에 시루, 촛병, 등잔, 재떨이 등 생활용품으로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위해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식구들의 건강을 기원할 때 쓰던 칠성, 재산운을 관장하는 업을 모시던 업단지, 종가집에서 조상신을 모셔놓기 위해 사용하던 조상단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농업신을 모신 용단지 등 민간 신앙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부(缶), 훈(壎), 물박, 옹장구 등 악기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옹기가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면, 확독은 보리를 갈거나 깨, 고추 등을 갈 때 사용하였고, 항아리는 담겨지는 내용물에 따라 물 항아리, 쌀 항아리, 장항아리 등으로 구분되어 사용하였다. 또 소주를 만들어낼 때 사용하던 소줏가리,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잔집은 서민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활용품이었다. 특히 임금님이 드시는 쌀을 담아 두었던 큰 어미(御米)독은 항아리의 어깨부분에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했던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의 일부분인 ‘산과 소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에 불을 땔 때 발생하는 그을음과 연기를 집밖으로 내 보내기 위해 만든 굴뚝, 종교행사나 서민생활 속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악기류의 물박이 있다. 물박은 일종의 두드려 치던 악기로 자배기처럼 생긴 그릇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서 나무 막대기나 손을 이용해 박자를 맞출 때 사용을 했다. 이처럼 쓰임에 따라 옹기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져 서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 외 한약을 끓이고 달이는데 쓰이는 용기로 약탕기와 약탕관이 있다.

내면 깊숙이 한국미를 간직하고 있는 옹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이름 지어진 옹기는 옛날에는 집집마다 장독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의 아름다움을 미처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언제부턴가 각 가정에서는 장독이나 옹기의 자리는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여행 중에 옛집에 자리 잡은 장독대를 만나면 자연과 동화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반기는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일 것이다.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었다고 애통해 하며 보존의 중요성을 목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도 가식일 수 있다. 이웃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 것을 탐내기 전에 우리 스스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중요함을 인식해야 하며 우리 것을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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