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의 일조권 확보를 위해 법원이 아파트 공사업체에 층수 제한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일조권 침해에 대한 보상으로 학교에 강당을 지어주는 등 30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택지지구 내 적법한 건축물이라도 학교의 교육환경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일조권 침해 소지가 있는 신도시 학교들의 소송이 잇따르는 등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달 26일 부산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이기중 부장판사)는 올 6월 부산 용수초에 대한 일조권 침해가 인정돼 층수 제한 결정을 받은 바 있는 쌍용·대림아파트 건설사에 대해 '25층 아파트가 용수초 교실과 운동장에 그림자를 지우는 만큼 학생들이 운동할 수 있는 다목적 강당을 신축하고 난방 및 조도 유지를 위한 전기료·장학금 등 30억원 가량을 부담하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쌍용 등의 아파트가 용수초 측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동지 기준 연속 2시간, 하루 4시간의 일조량을 만족시키지 못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건설사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소송을 제기한 부산시교육청도 더 이상 일조권과 관련한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시교육청 담당자는 "일조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초 12층으로 제한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쉽다"며 "이번 소송을 계기로 고층건물 신축으로 학교환경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부처의 법령 개정과 조례 제정을 적극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시교육청은 올 1월 용수초 학부모, 교사들이 학교와 18∼32미터 떨어진 곳에 고층아파트(22∼27층)가 들어서 일조권 침해가 예상된다며 제소를 요구해 와 올 3월 부산지법에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냈었다. 학교 일조권 침해를 이유로 교육청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시교육청은 "재판부가 조사를 의뢰한 부경대 일조권 분석팀의 시뮬레이션 결과, 아파트가 완공될 경우 오전 9시부터 교사의 4분1이 아파트 그림자에 들어가기 시작해 낮 12시 40분부터 교사 전체가 그림자에 들어가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에 부산지법은 6월 일조권 확보를 위해 2개 동 층수를 19층과 20층으로 제한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지만, 피해를 보게된 시공사와 분양자들이 이의 신청을 하자 이를 받아들여 강제 조정이 났다.
이번 결정은 부산시와 관할 구청 등이 택지지구 지정에 이어 건축법을 준수한 아파트라도 교육환경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결정이어서 유사 사례의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용수초 교감은 "학교 부근에 아파트 등을 건축하거나 허가할 때 학교나 해당 교육청과 협의 의무를 제도화하지 않는 이상 이런 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학교와 사정이 비슷한 성서·성지·해운대·중리초, 경남공고 등도 제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부산시교육청은 성서초와 성지초가 주변 건물로 일조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제소를 요청해와 이를 검토 중이다. 성서초(부산진구 범천동)는 태업건설이 학교 앞에 짓고 있는 주상복합건물 두산위브센티움(32층)의 일조권 침해 가능성과 관련, 지난달 1일 교육청에 제소를 요청했다.
성서초 행정실장은 "일조권 침해를 분석한 결과 수업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학교 서관과 운동장 전체, 본관 일부에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6층 정도 감층해야 한다는 결고가 나왔다"며 "교육청 관리국장 입회 하에 건설사 대표를 3차례나 만나 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지초는 교실과 불과 2.6미터 떨어진 곳에 5층 규모의 다세대 주택 건축이 허가되자 9월 8일 일조권 침해에 대한 제소요청 공문을 교육청에 보냈다. 학교측은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다세대 주택쪽 교실 6개가 하루 종일 햇볕을 받지 못하게 돼 2층으로 층수를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2번의 조정회의에서 건축주가 '4층 이하는 안 된다'고 거부해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의 '일조권 소송'은 타 시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일조권 개념이 낯설어서인지 학교에서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없지만 용수초 사례가 알려지면 문제 제기 학교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산시교육청 법무계 담당자는 "건축법상 이격거리를 적법하게 둔 건축물이라도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피해를 줄 경우 위법행위로 간주한 판례들이 많다. 일조권과 관련해서는 동지를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속 2시간 이상의 일조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배상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