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흉년으로 굶어 죽일지언정 다음해 뿌릴 씨앗은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후손들은 오늘을 견디기 위해 종자까지 손대고 있다. 공무원 구조조정으로 경륜있는 교원들이 교단을 떠난데 이어 농촌 소규모학교의 서무직원까지 감축되고 있어 정상적인 교육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구조 조정에서 교육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 현실과 특성을 무시한 비교육적 접근에 있다. 교육은 인건비를 줄이고 기술 혁신을 통해 제품의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과는 달리, 인격과 인격의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활동이며, 그 결과가 먼 훗날에 나타나므로 이에 알맞는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린아이들과 랍비, 학교를 보호했던 유대인들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모두가 똑같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획일적인 인원 감축을 추진하는 한 우리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교원 정년단축으로 인한 교단의 혼란은 접어 두고, 단순한 경제 논리로 밀어 붙인 소규모학교 사무직 감축은 다음과 같은 잘못을 범하고 한다. 첫째,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교육개혁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구조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개혁의 핵심은 개개인의 흥미와 수준을 감안한 개별화 학습을 통하여 창의력을 갖춘 도덕적 국민을 육성하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종래의 대량생산식 교육을 벗어나 개성을 존중하는 맞춤식 교육을 하자는 이야기인데, 이의 성공을 위해선 교사들의 시간과 정열을 온통 학생들의 학습지도와 인성지도에 투입할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학교에 서무직원을 배치하여 교사들의 잡무를 완전히 없애는 방향으로 구조 조정이 되어야 할텐데 오히려 감축하여 그 동안 하던 교육마저 포기하게 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모든 교직원이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학생들의 개별화 학습과 다양성 교육, 특기 신장활동에 노력한 결과, 지역 사회와 학부모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고 있으며, 소문을 듣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도시에서 해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전입해 오고 있다. 그러나 구조 조정이 실시되면서 양호교사와 영양사, 조리사가 1명씩 감축되더니 급기야는 학기 도중에 서무직원까지 감축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교육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리와 서무 및 학교 관리 업무까지 교사들이 처리하게 되었다. 교사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문처리와 잡무로 전쟁을 벌이는 사이에 중요한 교육활동은 상당부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말았다. 학교 현장의 실정이 이런데 어떻게 교육개혁을 성공시키겠다는 것인가. 둘째, 헌법과 교육법에는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 학생들은 평등한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똑같은 양의 일을 대규모학교에서는 서무직원과 많은 교사가 나누어 한다. 그러나 소규모학교에서는 6∼7명의 교사가 나누어 하니, 그 많은 일을 하려면 자연히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면서도 농어촌 교육을 향상시켜 도시 인구를 분산시키겠다는 정책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생각이 든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구조 조정은 헌법보다도 상위에 있단 말인가. 셋째, 구조 조정으로 인건비를 절약한다면서 서무직원을 감축한 정부가 고학력 실업자의 취업 대책으로 임시직이지만 전산보조원과 과학실 보조요원을 대폭 늘렸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이 절감되며 구조 조정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는지 계산을 할 수가 없다. 구조 조정을 추진한 높은 분들이 갖고 있는 특별한 계산법을 공개할 수는 없는가. 넷째, 정부는 '교원 잡무경감' 약속을 순진하게 믿고 기다린 교사들에게 또 한번의 좌절을 안겨줌으로써 깊은 체념에 빠지게 하였다. 그동안 무수히 속으면서도 약속을 지키리란 믿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것만이 우리 교사들을 학생들 곁으로 다가가 전인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묘약이었기 때문이다. 늘어만 가는 잡무로 교사인지 사무원인지 분간이 안되고, 수업시간마저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교사들은 더 이상 교육자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교사에겐 양심의 고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에서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이 실패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교사들이 학생곁에 다가갈 수 없는 현실에서는 어떤 교육개혁도 구두선에 그칠 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사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신바람나서 교육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다면, 교육개혁은 저절로 성공할 것이고, 우리의 미래 역시 밝을 것이다. 정부는 하루 빨리 교사들이 마음놓고 교육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서무직원과 교사의 법정 정원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