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시골 창평중학교에서 근무하던 때다.
"우리 학교도 금년부터 특수학급 인가를 받았으니 선생님이 맡아 주십시오."
평소 과묵하신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로 부르시더니 신신당부를 하셨다. 특수학교인 광주 선명학교를 찾아가 그곳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조언을 듣고 왔지만 그저 생소하기만 했다.
특수학급 학생 중에 환태라는 아이는 우리말로 하나 둘 셋이란 개념은 잘 알면서도 1, 2, 3이란 수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항상 밝은 표정에 심성이 곱고 매우 착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수개념과 돈계산법을 익혀주기 위해 학교 인근 장터를 찾아가 2천원씩 주며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사도록 했다. 두 시간쯤 후, 거의가 생활용품이나 장난감을 사왔는데 환태만은 달랐다. 먹음직스러운 핫도그를 두 개 사와 "선생님, 이것?"하며 한 개를 선뜻 건넨다.
어느날 "환태야,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하고 물었더니 머리만 긁적거리다 씩 웃는다.
"저, 저는 핫도그 장사가 되고 싶어요."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었다. 다른 애들은 의사니 과학자니 간호사니 좀 거리감 있는 대답들을 곧잘 하는데 생각 외로 너무나 작은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환태와 졸업할 때까지 2년간 줄곧 특수학급에서 함께 보내면서 갖가지 지도방법으로 열성을 다해봤지만 끝내 수개념만은 익히지 못했다. 그러던 6년 후, 늦가을 산행길에 우연히 창평을 지나치게 됐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버스가 정류장에 잠시 멈췄을 때, 길 건너편에 핫도그를 굽는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환태였다. 비록 꾀죄죄한 작업복을 입었지만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자꾸만 손짓을 해도 핫도그를 굽느라 이쪽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반가운 나머지 창문을 여는 순간 야속하게도 버스가 출발을 했다.
버스 속에서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핫도그 장사가 소망이라더니 그는 의젓한 핫도그 장사가 되어 있었다. 남들처럼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작지만 소망을 이룬 셈이다. 환태가 부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