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아, 네 꿈이 존경받는 의사가 되는 것이라니 대단하구나! 초등학교 시절에 박경철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고서 감동을 해 지금도 그 끈을 놓고 있지 않은 것도 네가 몰입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구나. 이제 한국도 여성 대통령이 등장할 정도로 시대가 많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다고 생각한다. 1950~1960년대는 더욱 그랬단다.
네 꿈이 의사라고 이야기하니 오래전 의대를 졸업하고 의료 활동을 시작한 한 의대 총장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이분이 이길여 가천대 총장님이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여의사가 매우 드물었고, 이 때문에 사회적 인식도 지금 같지 않았다는 것은 너도 짐작하겠지. 심지어 환자들조차 여의사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었을 거야. 그래서 여의사들은 남자 의사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연구해야 했다.
이분은 젊었을 때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짐작이 가는지. 오늘의 총장이 된 요인인 열정과 부지런함은 이때부터 몸에 밴 것이라 한다. 이분의 평생 신조는 ‘박애, 봉사, 애국’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면서, 이런 좌우명을 갖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 같이 공부하던 많은 남학생이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 친구들의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의사가 된 후 의료봉사의 길로 나서게 됐다는구나.
이분이 1958년 인천에 병원을 세운 후, 서해 섬들을 순회하며 무료 진료 활동을 벌이고,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보증금 없는 병원’을 운영하고, 휴전선 근처의 백령도와 철원 등 의료 낙후지역에 병원을 세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1992년 베트남 환자 도티늉을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총 16개 개발도상국 외국인 환자들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었다.
요즘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사회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 국제적으로 에볼라 환자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세계보건기구는 의료 비상사태를 발령해야 잘 정도라니 아직도 잘 모르는 병이 있고 이런 병에 대한 치료법이 없다니 안타깝구나.
이분의 주장은 의사가 한 식구라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시점으로,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직업인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여의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의 실천으로 상생의 문화를 앞장서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구나.
날이 갈수록 수명 100세의 인구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아울러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보건의료 산업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인들이 세계를 누비는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니 너도 이런 일에 꼭 앞장서기 기대한다.
여의사들은 할 일이 많다. 진료와 연구, 교육에 더욱 매진해 한국의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네 말처럼 의사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많겠지만, 이는 너의 중요한 발견이라 생각한다. 쉬운 일이 결코 아니지만 네가 의사가 된다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유하고, 인류에게 희망의 목소리를 들려줄 멋진 의사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