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태어나 삶을 마칠 때까지 다양한 과정이 전개된다. 요즘 사람들은 명문고에 진학하여 명문대에 가는 것으로 거의 일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선행학습이 이뤄지고 고교교육이 많은 사람들의 화두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 보아도 그렇고 지금 보아도 이길은 아닌 것 같다. 주위에서 누구나 가고싶은 서울대를 나와 삼성에 취업하였지만 벌써 옷을 벗고 기가 약해진 사람도 가끔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자녀교육을 함에 있어서 많은 분들에게 반드시 해주어 할 것 하나를 부탁한다. 기회가 되는대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볼 수 있게끔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가지라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은 부모님이 기회되실 때 마다 손잡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볼 것이 참 많다. 그러나 세상을 보게 되면 더 볼 것이 많다. 새로운 것을 보고 감동이 와야 새로운 각성의 단계에 가는 것이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로 타고 출발하여 수많은 별들에게 자취르 남기며 광막한 우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중략) 여행자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이는 동양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1861-1941)가 쓴 '기탄잘리'애 나오는 글이다.
타고르는 유년시절 왕따를 당하면서 학교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단 한 개의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를 그만 둔 타고르에게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건은 11살 때 아버지와 함께 한 4개월 동안의 히말라야 여행이었다. 그의 '기탄잘리'는 여행을 통한 깨우침에서 탄생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돈지갑을 맡기고 매일 지출을 적게 하면서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제교육을 한 것이다.
모든 창조적인 생각은 놀랍게도 자기가 봤던 것에 플러스 알파를 시키는 것에서 나온다. 전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먹어보지도 않은 것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지는 않는 원리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휴대전화가 나왔고 그전에는 삐삐가 있었다. 삐삐가 없었다면 휴대전화로 연결이 안 되었을 것이고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스마트폰으로 연결이 안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스마트폰은 앞으로 새로운 것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것이 새롭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세상에서 흘러 다니는 것들에 대한 연결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가 보다 큰 리더가 되고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볼 수 있게끔 견문을 넓혀주는 부모님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뿐 아니라 기회가 되면 해외를 많이 보고 우리보다 선진국을 보면서 '5년, 10년 후에 저런 것이 한국에 이렇게 오겠구나.' '우리나라의 이것은 후진국으로 이렇게 넘어가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타고르가 4개월 간의 여행기간에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모든 것들을 아버지를 통하여 배운 것처럼. 그리고, 전체적인 세상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넓은 세상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아이들의 삶을 변화로 이끌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