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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삶이란 그리움을 넘어 완성되어 가는 것

아이들이 돌아간 운동장은 조용하고 앞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우리 학교는 멀리 가지 않고도 가을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도 떨어지는 은행나무 및에서 예쁜 잎을 찾는 모습이다. 이것이 다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된 것은 학교의 시작부터 이 나무가 자라 장차 큰 거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은 사람의 정성의 결과라 생각한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이 생각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지고 둥글어질 수 없듯이 우리 아이들의 가을도 부모님의 사랑과 조바심과 애탐과 희생, 그리고 담임 교사의 끊임없는 수고가 곁들여 오늘 가을을 맞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가을에 아이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 아이들이 예쁘다. 아이마다 색깔이 다르다.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의 모습은 교사의 거울이다’는 생각을 한다.

음악이 좋아질 땐 누군가 그리운 거란다. 바다가 좋아질 땐 누군가 사랑하는 거란다. 별이 좋아질 땐 외로운 증거이고, 엄마가 좋아질 땐 힘든 때이며, 하늘이 좋아질 땐 꿈을 꾸는 거란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하늘 한번 쳐다보기 쉽지 않은 팍팍한 삶이 우리를 짓누를지라도 눈부시게 푸르른 날을 보는 눈이 열리면 깨달음으로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동주 시인도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이라 노래했다. 시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연못을 들여다보듯이, 아니 책을 들여다보듯이, 아니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보고 있다. 들여다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은 다르다. 그래야 얼굴도 손바닥도 온몸 가득히 보인다. 그래야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순이는 어디 있을까. 눈을 떠도, 다시 감아도 순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올 가을의 푸르름은 어떻게 만끽할 수 있을까. 삶이란 그리움으로 시작하니 이제 직접 자신의 순이를 찾아야 한다. 찾아서 얼굴을 어루만지고 볼을 쓰다듬으며 손금을 들여다보듯이, 그리움의 벽을 넘어 황홀함의 삶으로 몰입해야 한다. 삶이란 그리움을 넘어야 구체적으로 완성되는 법이다. 자신의 순이를 만나야 한다. 홀로 책을 읽고,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새롭게 서로 포옹하라. 꼭 고개를 들고 눈으로 보아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제 눈이 부시게 하늘을 바라보자. 그리고 눈이 부신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내 옆의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같이 생각해 보자. 산소가 가득한 은행나무와 대나무 숲이 연출하는 벤치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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