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들어 한일간의 교류가 침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더우기 후쿠시마 원전 문제로 수산물 수입 금지 이후 한국의 일본에 대한 불신이 증가되어 이를 더욱 자극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쿠오카한국교육원은 필자를 강사로 초청, 2일 오후 7시부터 교육원에서 제1회 한국문화포럼을 개최하였다.
수강자는 재일동포와 한국 유학생,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으로, 강의 주제는 '한일 문화 교류, 도자기 문화'를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후쿠오카총영사관 안상현 영사가 참석하여 수강생들을 격려하고 '영사관에서 개최하는 아리타 도자기 탐방과 강의는 관계가 깊어 이번 강의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지금부터 300여년 전 유럽에는 동양에서 들어온 도자기가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때 유럽에는 중국도자기와 일본 도자기가 고가로 대 히트 상품이 된 것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이마리에서 제작된 자기가 나가사키항을 통하여 네덜란드에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이마리는 아리타와 가까운 곳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백자를 생산한 곳이다.
16세기만해도 일본에는 자기를 만들 기술이 없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코나메야키나 세토에서 생산한 도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오늘날의 반도체 기술에 해당하는 하이테크 기술이 자기를 굽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통하여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조선의 도공을 끌고가 도예 기술자들에게 무사 대우를 하면서 자기를 생산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 중심에 현재 일본 도자기의 신으로 불리우는 아삼평은 처음 원석을 발견하지 못하여 생산이 불가능하였으나 1610년 이즈미산에서 자석광을 발견함으로 양질의 원료 확보가 가능하였다.
아리타는 점차 도자기 생산에 대한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량생산과 분업은 생산을 촉진시켰으며 이때 생산된 도자기들은 현재 아리타에 있는 도자문화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때 명청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중국이 전쟁을 하게 됨으로 아리타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항상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시장은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안목이 필요한 시대이다. 지금도 하이테크 전쟁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30여년 전 삼성전자에 몸을 담은 기업인은 '일본이 너무 앞서 있다. 우리 세대에는 절대로 일본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들었다'고 한숨을 쉰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G2 시대'라 불리며 동아시아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총칼의 전쟁이 아닌 두뇌 전쟁이며, 외교전쟁인 것이다. 특히 한,미,일,중의 관계가 쉽게 해결될 기미는 현재의 정치 상황으로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국가의 리더들이 잘 읽어 다시는 이땅에 과거에 있었던 비극의 참상이 재현되지 않도록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