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을 가 보았거나 장개석 총통의 글씨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가 생전에 즐겨 썼던 물망재거(勿忘在莒)라는 족자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처음 외국여행을 80년대 중반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고궁박물관을 방문하여 들은 이야기가 물망재거였다. 이는 중국 역사서 사기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보이는 말이다 . 거라함은 중국에 있는 자그마한 지명인데 다음과 같은 고담이 담겨 있다.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제와 연이라는 두나라가 늘 싸우고 있다. 초창기에는 제나라가 승세를 타고 늘 연나라를 괴롭혔다. 일이 이쯤 되자 연나라에서도 무언가 대책을 세워햐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연나라의 소왕은 천하에 능력이 있는 사람을 모집하게 된다. 소왕이 인재를 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자천,타천으로 왕을 찾아 왔는데 그중에서도 악의라는 인물은 병사에 밝고 또 언변이 출중하여 능히 적을 감동시킬 만한 사람이었다.
소왕은 즉시 그에게 아경이라는 중책을 맡기고 제나라를 무찌르도록 명령은 내렸다. 악의는 군사를 일으켜 네자라를 펴들어가 그 수도를 함락시켰으며 이에 제나라의 번왕을 서울을 버리고 변방으로 도망을 했다. 악의는 6개월 동안에 제 나라의 70개 성을 빼앗고 오직 거라고 하는 마을과 즉묵이라고 하는 마을만이 남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제나라의 민왕은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제나라에는 연나라의 악의 못지않은 출중한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단전이었다. 그는 주민들의 항복의사에 적극 반대하고 자기가 잃은 성을 모두 찾겠다고 장담했다. 제의 백성들은 전단의 투지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연나라를 격파하라는 대임을 맡기었다.
당시 거라고 하는 마을에 근거를 두고 있던 전단은 소 1천마리를 모아 연나라 진을 향하여 돌진해 들어갔다. 전단의 이러한 계책은 적중해서 잃어버린 70개 성을 모두 찾았다는 것이다. 장개석 총통이 물망제거라고 한 말은 바로 자기도 전단처럼 타이완을 근거로하여 본토를 수복해보겠다는 뜻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장개석의 이와 같은 의지는 분단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분명히 지금도 그들과 다투고 있으나 뾰쪽한 해결 방안이 없는 형편이요, 우리는 이땅에 이만큼이나 살고 있는데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은 아직도 혈육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늘이면 만날까 내일이면 만날까 기약없는 상봉을 기다리다 한 세대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얼마를 더 기다려야 마음대로 두고 온 가족, 친척을 다시 만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이 우리 형제요, 언젠가는 우리가 저들과 다시 만날 날이 기필고 오리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같은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역사적 과제 앞에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은 국가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의 삶의 자세라 생각한다. 공직자의 삶은 일반 시민보다 훨씬 엄정한 잣대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공직자는 나라 안팎에서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하고,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이 낸 세금으로 살아가는 공직자가 져야 할 의무다. 공직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의무도 더욱 엄격해지는 건 당연하다. 서양에서는 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라고 부른다. 영국에서 왕자가 직접 공군 조종사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 달려나가는 것이 좋은 예다. 동양에서도 공직자의 염치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나온 몇 가지 사례는 염치는커녕 시정잡배만도 못한 공직자들이 수두룩함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외교관 자녀의 복수 국적 취득이다. 심재권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외교관 자녀 가운데 복수 국적자는 130명이고, 이 중 90.8%인 118명이 미국 국적자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외교관 신분일 때는 이중 국적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영사관 근무나 연수를 이용한 출산 등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제 무대에서 나라를 대표해 국익을 다투는 것을 업으로 하는 외교관이 나라가 제공한 기회를 자녀의 외국 국적 취득의 방편으로 악용한다는 얘기이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기 돈을 내고 원정 출산 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보다 훨씬 질이 안 좋다.
안규백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기용된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가 이중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가 병역 면제를 위해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회피했다는 점에서 외교관 자녀의 이중 국적 취득보다 더 충격적이다. 지금같이 국제화된 시대에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정작 전쟁과 같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국적이 어디인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인사 과정에서 이런 기초적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다면 인사 검증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고도 임명을 강행했다면 나라가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 것이다. 지금 공직자와 그 예비군 가운데는 고위 공직자로서 나라에 봉사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자녀의 병역이나 국적 등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이 문제에 있어서 인사 책임자들은 결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대사에서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하지만 70개 성을 빼앗기고도 낙심치 않고 국토를 되찾은 전단의 정신과 장개석의 의지를 우리 국가의 지도자들이 갖고 보여줄 수만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저들을 신뢰할 것이며, 우리도 언젠가는 빼앗긴 북녁땅의 주민들과 평화롭게 살 날 그날을 되찾을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