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새싹 같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놀다 종이 울리면 교실로 들어가 책상머리에 앉는다. 선생님이 뭔가 지시를 하는데 아이들은 일부가 듣거나 딴청을 피운다. 어떤 아이들은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을 쳐다보는 아이들은 마치 창살 없는 이 감옥에서 자신들을 구출해 낼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보단 어젯밤 늦도록 열중한 온라인 게임을 허공에 그리고 있다는 편이 더 현실의 모습에 가깝겠다. 어쨌든 문제는 2013년 10세인 아이가 30세가 되는 2033년의 사회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지난 20년 동안 사회 제반의 변화는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앞으로 20년 후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컴퓨팅 파워가 금세기 내, 그것도 2030~2045년에 인간의 지능을 초월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네트워크로 이뤄진 슈퍼 지성의 등장으로 미래는 더 이상 인간의 손에 달려 있지 않게 된다는 섬뜩한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IT업계 화두로 떠오른 빅데이터나 시맨틱 웹은 이러한 메가트렌드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10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세상이 될지 깜깜한 어른들이 이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후는 너무 먼가? 그렇다면 곧 들이닥칠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모든 교육을 지배하는 파워를 가진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대학 진학률과 반값 등록금 아우성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고등교육이 패스트푸드화되어 가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값싸고 편리하며 보편적인 햄버거가 우리가 원하는 식문화는 아니다. 사람마다 식성과 취향이 다르듯 교육의 방식과 내용도 다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패스트푸드 메뉴판이 아무리 길어도 몸만 비대하게 할 뿐 영혼을 살찌우지 못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공교육은 19세기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헨리 포드가 고안한 관리스스템 라인처럼, 시간의 엄수가 기본이며, 표준화를 통한 대량 생산체제이며(`수능`과 대학입시), 또한 분업을 통한 효율의 극대화를 꾀한다. 이 시스템 최고 생산물은 자신의 전공 분야를 벗어나면 일반인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소위 전문가들이 배출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인재 양성 시스템이 21세기 사회에서는 급격하게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능력을 빠르게 추월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좌뇌 위주의 사고만이 아니라 우뇌적 감성과 몸의 다양한 감각들을 활용할 줄 아는 종합적 지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창의적 인재에 대한 필요와 요구가 높지만 실제로 준비된 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창의성이란 사물 간에 새로운 연관관계를 맺고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인데,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낡은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현재의 분과별 커리큘럼과 중앙 통제적 교육 시스템이 앞으로 통합적 교육방식과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교육환경으로 대체되지 않는다면 교육의 미래는 없다고 예측할 수 있다.
교육문제가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교육만큼 각계 각층의 이해 관계가 얽힌 복잡한 영역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또는 행정적 이유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저당잡을 순 없다. 16년 이상을 과다경쟁으로 불행한 학창 시절을 겪게 하고 정작 사회에서는 쓸모 없는 인재로 키운다면 우리 모두는 사악한 어른들이다. 미래사회를 가늠할 수 없다면 적어도 아이들의 현재는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이 시대를 사는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