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도 오늘로 민족 대이동이 마무리 되면서 끝 무렵에 다가와 있다. 아무래도 명절은 우리 나라 여성들에게 아직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명절에는 가족을 만나 즐거움도 더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 음식 준비로 바쁜 사람들도 종종 있다. 특히 장남 며느리들은 머리가 더 아플 것이다. 아픔도 가지가지가 있다. 시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친정 엄마가 아프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리가 아픈 것과 가슴이 아픈 것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례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시어머니의 아픔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친정 엄마의 아픔은 가슴으로 절절하게 다가온다는 게 남자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사례로, ‘논문 쓰기’와 논문 뒤의 ‘감사의 글쓰기’에도 머리가 아픈 것과 가슴이 아픈 것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논문을 읽으면서 감동적인 느낌을 갖기는 어렵다. 그런데 논문 뒤의 감사의 글은 눈물이 난다. 논문은 주로 논리적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논문 뒤의 감사의 글은 논문을 쓰면서 겪은 아픈 사연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논문을 완성한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논문은 논리적이다. 논문에 동원되는 논리적 설명의 대상은 현실이고 현장이다.
현실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는 수많은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간의 관계가 숨 쉬고 있다. 관계는 논리적 관계도 있지만 논리 이전의 교감과 공감의 감성적 관계도 있다. 한 마디로 감정의 연대망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돈독한 정서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논리적 관계를 기반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는 되지만 뭔가 뒤끝이 찝찝하다. 가슴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계에는 감정적 정서기반이 앞선다.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대체로 감동을 받았을 때이다. 사연이 담긴 스토리가 사람의 마음(感)을 움직여(動) 감동(感動)을 전해준다. 마음이 움직여야 감동이 온다. 감동받으면 결연한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그런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서 인간은 성숙에 이르게 된다.
지식은 빈틈없는 논리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식은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관념의 파편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지식’보다 ‘의식’이 중요하다. 사회 현상에 대한 논리적 ‘지식’보다 사회현상을 어떤 ‘의식’으로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지식’으로 전문성을 키웠지만 ‘의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양심이나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그 ‘지식’은 해가 되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혹시 지금 머리가 아픈가? 아니면 가슴이 아픈가? 머리가 아프다면 생각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고민’의 결과이고, 가슴이 아프다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고통’의 결과일 것이다. 고민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별로 없다. 고통 체험을 통해서 깨달아야 머리가 맑아지고 느낌도 온다. 머리가 아픈 이유는 실천하지 않고 고민만 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실천하지 않고 고민만 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약은 두통약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