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사한 봄날, 조그마한 농촌마을은 평화롭고 조용하며 고향어머님의 품속 같은 따스한 곳이었다. 그 날은 마을이 생긴 이래 최대의 자동차 행렬이 붐빈 것 같았다. 조그마한 농촌마을 학교의 한 교장스승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다.
35년 전 조용한 시골마을 작은 학교에 근무했을 때의 추억들이 뭉개 구름처럼 피어났다. 마을은 평화롭고 순박했으며 아이들은 순진했고 교직원은 가족보다 따뜻했다. 농번기에는 아이들과 아울러 모심는 일을 도와주던 아름다운 추억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영결식장은 슬픔보다 분노가, 따스함보다 스산함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공기를 무겁게 했다. 무엇이, 왜 한 노 교장스승님의 장례분위기를 이처럼 끌고 간 것인가.
인간의 마음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정글의 마음이다. 정글의 속성은 약육강식이다. 이는 '가짐'과 '소유'의 차원이다. 둘째는 스포츠의 마음이다. 스포츠의 속성은 이겨야 한다. 이는 승자가 되어야 하는 '됨'의 차원이다. 셋째는 오케스트라의 마음이다. 오케스트라의 속성은
서로의 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나눔'의 차원이다. 넷째로 자궁의 마음이다. 자궁의 속성은 무조건 주기만 한다. 이는 '섬김'의 차원이다.
스승의 마음은 오케스트라의 마음이다. 지식과 사랑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통해 자신을 비워 나가고 비워진 자리를 사랑하는 제자들로 채워나가는 '나눔'의 삶을 사는 고귀한 분들이다.
스승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상의 가치는 결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인간의 가치는 다른 사람과의 나눔에 있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자신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욕망을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아무리 달려간다 해도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만 날 뿐이다. 노교육자와 자식 같은 교사 사이에 차 한잔 대접하고 대접받는 일이 왜 이리 복잡한 것인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이처럼 피폐해 있단 말인가. 간단히 차 한잔 대접하고 대접받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교사의 잡무문제가 있고, 교권문제가 있고, 교장의 교사 길들이가 있고, 교사의 수업권 침해가 있고, 교육민주화의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러나 가장 우선하는 문제는 교육가족간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운데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옛날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아이들의 장난이 심했다. 스승님의 도시락을 몰래 먹기도 했다. 스승님은 "책상 속에 물 있다. 체할라, 물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스승은 특별한 분들이다. 당신 반의 돈 많은 K군의 아버지보다, 권력 있는 P양의 아버지보다, 명예가 높은 J군의 아버지보다 스승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학교 사회란 이익사회가 아니다. 학교 문화는 패거리 문화가 아니다. 학교는 투쟁의 현장이 아니다. 사랑과 협력의 장이다. 모든 교육사안에 100% 완전한 것은 없다. 미진한 부분은 스승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보완해서 교육현장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교장, 교감, 교사, 학생, 학부모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함께 가야 한다. 교육공동체의 꽃밭은 협력 속에서 가꿔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 가꿔야 할 아름다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