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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최초의 필화사건 '사람의 민주화'

이른바 빅3 신문인 조·중·동 중에서도 맨처음 나오는 조선일보와 얽힌 사연이 없는 국민도 있을까? 자그만치 90년을 이 땅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 해온 ‘거대’ 신문이기에 아마도 조선일보와 무관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조선일보와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있다. 1987년 그때 나는 전남 구례여고 교사였다. 1983년 서울신문사 TV가이드 방송평론공모에 당선된 후 평론집과 수필집 1권씩을 각각 펴낸 무명의 글쟁이이기도 했다. 어느 날 조선일보라며 전화가 왔다. 지금도 있는 ‘일사일언’ 집필자가 돼달라는 원고청탁이었다. 전화한 이는 정중헌 기자였다.
 
‘시골 구석의 무명 평론가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나는 의아스러워하면서도 설레임으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원고지 5장 정도에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내야 하는 ‘일사일언’이었기에 더 긴장하고 진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일장 유감’, ‘사람의 민주화’, ‘잘돼야 할텐데···’ 등이 내가 기고한 글들이다.

신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글 잘 읽었다. 시원했다”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으니까. ‘일사일언’은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동창들과의 연결통로가 되기도 했다. 때아닌 부수입(원고료)에다가 일상적 소통의 즐거움까지, ‘고마운 조선일보’를 되새기고 있을 때 사단이 벌어졌다.

‘사람의 민주화’에서 거론된 이가 신문사로 항의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사람의 민주화’는 직선제로 바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 문제를 다룬 글이다. 전라도에 사는 경상도 출신 후배 2명을 비교하며 지역감정은 출신보다 사람의 문제라는 요지이다. 그 글에서 내가 칭찬한 1명은 지금 한국문단의 ‘거물’로 우뚝 선 안도현 시인이다.

그런데 신문사의 태도가 의연했다. 정확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대략 “그런 전화 종종 오니 너무 괘념치 말라. 앞으로도 소신껏 글을 쓰기 바란다”는, 나에 대한 위로·격려의 전화가 다시 온 것이다. 최초로 겪은 이른바 필화사건에서 내가 전라도 말로 ‘싸가지 없다’고 평가한 그의 삶이 반성과 함께 달라졌는지 알 길은 없다. 단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괄목할 성장에는 민주화된 인간성 내지 성품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나의 확신이 그것이다. 

물론 ‘거물’ 문인의 제1의적 조건은 실력이다. 제대로라면 아예 클 수도 없겠지만, 실력없이 사교나 정치 따위로 크는건 모래 위 성처럼 금방 무너져 내린다. 문단에서도 일상사회처럼 선배에게 깍듯하고, 후배는 따뜻이 감싸주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가 필수임을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지금 그 둘은 각기 다른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고교 문학교사인 나는 젊은 시절부터 사람의 민주화가 된 안도현 교수를 믿는다. 지난 2월 졸업한 제자를 그 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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