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임지인 전주공업고등학교의 축구부 기숙사 ‘호생관’ 개관식 소식을 듣고 때아닌 고민에 빠져 들었다. 행사 시작시간인 오후 3시면 평교사로선 결코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참석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버렸다. 그 학교에 근무하면서 ‘전주공고신문’ 제작을 맡았고, 그 덕분으로 호생관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누구보다도 생생히 지켜본, 이를테면 산 증인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호생관 탄생의 산파역을 자임한 재경동창회장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가진 ‘전주공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임기내 축구부 기숙사 완공을 약속한 바 있었다. 마침내 그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개관식장에 도착하자 많은 이들이 벌써 와 있었다. 3층 초현대식 건물의 외형적 모습이 위용을 드러냈다. 13억 원의 건축비 따위 경과보고가 이어졌지만, 단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재경동창회장을 비롯한 동문들의 대거 참석이었다.
사실 지난 해 2개의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전라북도 대표로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전주공고 축구부는 그 동안 열악한 시설과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선수들 고충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물론 학교 기숙사가 개인 주택처럼 혼자 나선다고 해서 뚝딱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관식에 참석한 장영달 전 국회의원의 정부 교부금 확보, 최규호 도교육감의 예산 배려, 총동창회가 모금한 2억 5천여 만 원 등이 합쳐져 이뤄낸 결실이요 쾌거가 바로 호생관이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총동창회 모금부분이다. 그전에도 기숙사 신축의 당위성은 설왕설래했지만, 다만 그뿐이었다. 다름아닌 예산문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교장을 비롯한 동문들의 적극적 관심과 강력한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이번에도 어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계고이긴 하지만, 전주공고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명문’ 학교이다. 그만큼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내가 6년 동안 근무하면서 똑똑히 목격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전문계고 출신인 나로선 나의 모교와 견줘 열등감과 함께 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어느 고교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게 탄생한 호생관은 정치합네 사업합네 하면서 모교의 학맥을 자신의 입지 다지기에만 활용하려고 혈안이 된 ‘꾼’들에게는 뭔가 준엄한 꾸지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학교의 동문 누구도 만사 제쳐두고 모교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아무리 재력가라 하더라도 모교를 위해 장학금 등 돈 쓰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적극 나서는 동문이 있을 때 뭔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말할 나위 없이 이때 학교는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된다.
내친김에 말하지만, 학생과 1대 1 결연을 맺어 3년간 교육비 전부를 지원한 동문도 여러 명 있었다. 그 외 많은 동문들이 매년 일정 금액의 장학금을 희사하거나 거액의 사재를 들여 학교에 교가비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 지원에 힘입어 지방 전문계고로선 기적 같은 서울대 입학생을 수십년 만에 배출했다. 말할 나위 없이 교가비며 기숙사들은 영원히 학교에 우뚝 솟아 수많은 후배 등 동문들에게 역사로 남게 된다. 이같이 뜻있고 보람된 모교 사랑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학교 발전과 도약은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그런 원칙론만 가지고는 어느 세월에 이뤄질지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어느 고교든 동문들이 깊은 관심과 함께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이다. 혹 여고로 근무지를 옮겨와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전주공고의 호생관은 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