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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상금, 현금으로 줄 수 없나?

  26년째 국어 교사이다. 지금은 전문계인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학생들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그렇듯 글쓰기 지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내가 문학평론가여서만은 아니다. 

  문학평론가는 글쓰기 지도의 전문성을 살리는 하나의 동력일 뿐이다. 내가 상을 더러 받아봐서 안다. 내가 글쓰기 지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그 기쁨과 자부심을 학생들에게 안겨주고 또 심어주기 위해서다.

  특히 전문계고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열패감에 빠져 있는 것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학생다운 패기도 없고, 10대의 열정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나의 글쓰기 지도는 그런 학생들의 닫힌 문을 열어주고,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원인행위 뒤엔 소정의 결과가 있다. 각종 백일장·공모전에서의 수상이 그것이다. 가정형편 때문 특기를 살려 대학에 못가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든 것이 나로선 안타깝지만. 지난 해 내가 지도한 어떤 학생은 1년 동안 자그마치 아홉 번이나 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학생은 상금이 곧 생활비였다. 상금을 노린 글쓰기라며 타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명예 운운하는 것도 인간의 속성상 위선이기 쉽다. 아마 재주를 인정받고 돈도 생기는, 그 두 가지가 정답일 것이다.

  그 학생은 제9회 보은의 달 편지쓰기(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주최)와 나의 농어촌이야기수기공모(농림수산식품부 주최 한국농어촌공사주관)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각각 50만 원이었다. 전자는 저 혼자, 후자는 내가 데리고 시상식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나의 농어촌이야기수기공모 시상식에선 상장과 ₩500,000이라 쓴 종이판넬만 받았을 뿐이었다. 시상식 며칠 후 그 학생은 내게 물어왔다. 전화기였지만, 매우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였다.

  “선생님, 도대체 상금 언제 보내준대요?”

  원망이 가득한 듯한 학생의 힐난을 들으며 마치 내가 무슨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동시에 내게는 의문이 생겼다. 왜 상금은 온라인 입금만 가능한 것인가? 

  그뿐이 아니다. 동학농민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백일장같이 고작 5만 원 상금을 받기 위해 없는 통장을 개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상금은 아니지만 전북문예진흥기금처럼 딱 한 번 쓰기 위해 만드는 통장도 있다. 이 얼마나 국가적 낭비인가?

  시상식에서 빈 봉투만 주는 상금수여 제도를 개선했으면 한다. 언제부터인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상금조차 담당자들이 빼먹는 금융사고가 나서 그렇듯 온라인 송금으로 바뀐 것인가. 아님 은행연합회 같은 곳의 로비라도 받아 그들의 수수료 수입을 올려주기 위해 당사자를 직접 불러 모은 시상식때도 현금(또는 수표)으로 주지 못하는 것인가?

  어린 학생뿐 아니라 지도교사인 나도 그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시상식이 따로 없는 경우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시상식을 버젓이 하면서 추후 통장 입금하는 상금은, 결국 대한민국은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 할 수밖에 없다.

  가령 지방에서 서울까지 갔는데, 정작 상금은 못 받고 내려오는 수상자들의 허탈한 마음을 생각해보았는가? 주최기관에 따라 추후 지급도 제각각이다. 시상식 뒷날 바로 입금시키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보내주는 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변에 한턱을 내려면 ‘빚내서’ 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7월 제10회보은의달편지쓰기 중·고등부 대상 수상(상금 일백만 원) 학생의 한턱(전교직원 및 급우들에게 아이스크림 돌림)을 내가 내주기도 했다.

왜 귀한 상을 받고 시상식까지 끝났는데도 그렇듯 가슴 졸이며 상금 입금되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이건 분명 잘못되었다. 예산집행의 투명성, 정산절차의 과정 등이 주최측이 내놓는 답변들이지만 수상자가 인적사항 기재 후 서명 날인한 영수증을 제출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난 봄 군산 흥천사가 주최한 백일장에서 내가 지도한 학생이 운문부 은상을 수상했다. 학생은 시상식에서 상장과 함께 20만 원의 상금을 현금으로 받았다. 기쁨의 도가니에 빠져든 학생 모습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모름지기 수상은 그런 모습이라야 그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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