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4 (토)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선생님 잔소리가 그리워서요”

나는 작년에 전근을 하면서 6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6학년은 학습지도보다 생활지도의 어려움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반에는 지적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은 특수아 한 명과 학교와 학급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도 지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수업에 방해되는 일을 습관처럼 하고 주의를 주어도 그 때 뿐이라 서로 힘들게 1년을 보낸 녀석이 있다.

특수아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먼저 그 녀석 철호(가명) 이야기를 쓰려 한다. 그 녀석 철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절로 머리가 흔들어 진다. 철호는 공부도 많이 떨어지고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닌데 아이들에게는 “짱”으로 통했다.

복도 통행을 하다가 부딪친 아이들끼리의 싸움이 있을 때 쫓아가 동영상을 찍으며 싸움을 부추긴 일(사실은 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으며 얼굴만은 때리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었음)을 시발점으로 눈에 띄더니 공부 시간에도 멀리 앉은 친구들 이름까지 큰 소리로 부르며 준비물을 빌려 달라고 하는가 하면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친구들의 발표 내용에 대해 빈정거리기도 하고, 옆에 앉은 친구와 큰 소리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담임인 내가 주의를 주어도,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싫은 눈빛으로 힐끔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때로는 실내화를 신고 나가서 체육 활동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교실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운동화를 신고 앉아있는 철호 자리에 흙이 너무 많아서 손걸레로 닦게 한 적이 있었다. 철호는 물이 뚝뚝 흐르도록 물을 흠뻑 묻힌 걸레를 짜지도 않고 흔들며 들어왔다.

여기저기로 물이 튀고 아이들은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꽉 짜오라고 하자 교실 문이 떨어져나갈 듯이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여닫고 다시 와서는 걸레 한 자락을 겨우 잡고 걸레를 휘휘 흔드는 것 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를 시키려면 말을 몇 마디씩 해야 겨우 해내니 다른 아이들보다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온 손님의 차량 지붕에 먹물을 흘린 일에 관련되어 관련된 아이들과 단체로 반성문을 쓴 일도 있었다. 그 때 학교에서는 벌을 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일거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각반의 모범적이고 활동적인 아이들로 구성된 “학교보람봉사단”으로 추가 위촉하여 위촉장을 주고 학교 봉사활동을 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그 봉사단 복장을 하고도 계단을 뛰어다니거나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장에서 놀고 오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위촉장은 책상 속 서랍 속에 꾸겨진 채 들어 있었다.

수업 중 조용해서 살펴보면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눈에 띄지 않으면 함께 문자를 주고 받았다고 한 아이가 실토를 해도 끝까지 수긍하지 않았다. 원래 학교에 핸드폰을 가지고 오면 담임에게 맡기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지키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 중 꼭 고쳐야 할 일, 특히 남에게 피해를 준 일에 대해서는 기록을 해 놓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철호의 확인을 받으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잘 고쳐지지 않았다. 차츰 나의 말투는 부탁하는 것으로 바뀌고 부모님에게도 알려 도움도 청했다.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하루 이틀 지나면 또 다시 반복이었다. 부모님도 몇 번의 통화가 있자 자식 나쁘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는 부모 있겠느냐며 학교 일은 선생님이 알아서 지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철호를 의식하며 너희들이 좋아하지 않는 줄 알면서 잔소리를 하는 것은 관심이 있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주 말했다. 너희들이 중학생이 된 후 혹시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봐도 못 본체 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때 선생님을 보면 ‘진짜 관심없구나!’ 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런 날은 알림장에 “선생님 잔소리 속에 사랑있다!”라고 적어 주기도 했다.

평소에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골라 주변에 앉혀 놓기도 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들을 짝으로 해 주기도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이 힘들어 하며 언제 자리를 바꿔 주느냐고 묻기 일쑤고 때로는 자리를 조정해 달라는 부모님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

대답이라도 “예.” 하더니 어느 때부턴가 “그래서요? 어쩌라고요?”하는 반항적인 말투가 되어 버리고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학급 임원을 맡은 아이들을 불러 나를 대신하여 철호가 수업에 방해되는 일을 할 때만이라도 “ 철호야, 그만해.” 혹은 “철호 네 자리로 가.” 하는 식으로 말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철호도 나에게 듣는 지적보다 친구들 말을 들으면 더 잘 받아들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철호가 아니지만 중간에서 친구들이 제지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호가 겁난다고 했다.

철호는 자기보다 강한 아이에게 말대답을 하고 따지다가 일방적으로 맞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았지만, 자기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었는데 큰 소리로 웃는다고 자기를 보고 웃는 줄 알고 그랬다며 그 아이를 무릎을 꿇려 놓고 싹싹 빌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의 도움을 얻는 것도 어려웠다. 철호가 잘못한 것이 있어도 철호가 있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호가 저보다 강한 아이에게는 일방적으로 맞을 망정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철호 어머니와의 통화를 통해서였다.

기말 시험을 보고 나니 성적이 최하위권이었다. 성적표를 가정으로 보낸 며칠 후 생활지도와 성적에 대한 상담을 겸해 철호어머니에게 상담 시간을 요청했다.

생활면에서는 반 친구들이 “너는 이런 점이 멋져.”와 “네가 이것 하나면 고친다면 더욱 멋진 사람 될거야.” 란 제목으로 친구에게 쓴 편지 중 철호에게 해당하는 것만 모아 보여 드렸다. 철호 어머니는 사춘기가 되었는지 집에서도 통제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성적 이야기를 꺼내자 철호어머니는 뜻밖이라는 듯 놀랐다. 반 평균이 얼마나 되길래 평균 90이 넘는데 부족한 것이냐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담임 도장이 찍힌 진짜 성적표는 보이지도 않고 자기가 대충 사인해서 내고 과목별 점수만 적힌 가짜 성적표를 보여 준 것이었다.

다음 날 철호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여러 날 가지 않았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철호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철호를 어떻게 해달라는 다른 어머니들의 전화가 차츰 많아졌다.

그러다 방학이 되었다. 개학이 되자 또 시작이었다. 전담 선생님도 철호가 수업에 무관심하거나 방해되는 일을 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해 주었다.

하루는 수업 중 수업 내용 정리 상태를 살피느라 책상 사이를 도는데 옆에 앉은 친구에게 닿을 정도로 다리를 책상 밖으로 죽 뻗고 앉아 있어서 다리를 책상 아래로 넣고 바르게 앉으라고 한 적이 있다. 철호의 대답은 당돌하게도 “싫어요. 갈려면 돌아 가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다리 집어넣어라.”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철호는 끝내 다리를 집어넣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철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네가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선생님이 참겠으나 수업에 방해되는 일은 열심히 수업하는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참을 수 없다, 만약 같은 시간 안에 수업 방해를 해서 똑같은 주의를 세 번 들으면 네 번째는 손바닥을 한 차례 맞는 것이었다.

철호는 망설임 없이 좋다고 했다. 나는 칠판 한 귀퉁이에 주의받은 일을 적어 놓고 철호가 확인 할 수 있도록 했다. 세 번이 되면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눈치를 보내기도 하고 철호가 쉬는 시간을 기다리며 참기도 했지만 더러는 30cm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아프지 않다고 너스레를 떠는 경우도 있고 직접 안 아프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삼가해 달라는 학부모의 전화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체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철호를 떠올렸다. 말로 해서 잘 들으면 체벌할 일이 왜 있겠는가? 수업에 방해를 하는데 말로 주의를 해도 안 들으면 그래도 그냥 두라는 것인가? 수업에 방해를 받는 다른 아이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며칠 후, 또 수업 시간에 주의를 주어도 무시하고 자꾸 돌아다녀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다음 시간이 전담 시간이었는데 양해를 구해 학년 연구실에서 철호와 상담을 했다. 나처럼 전담 시간인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쉬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이 옆에 계시니 좀 더 진지하게 상담에 임할까 생각했지만 철호의 행동은 반성하는 기미가 없고 무례하기까지 했다.

보다 못하겠는지 옆에 있던 선생님이 철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야, 이 녀석아. 네가 그렇게 잘 났어? 선생님이 말씀하면 대답이라도 공손히 하고 반성하는 기색이 있어야지, 어디서 눈을 흘기며 선생님보다 큰 소리로 꼬박꼬박 말대답이야. 네가 수업 방해를 했는데 무슨 변명이 그렇게 많아? 어?” 하시면서 철호 가까이로 다가앉으시더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시는 것이었다. 마음 속으로 위로를 느끼며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두고 보았다.

교감, 교장 선생님께 보내어 지도를 부탁드린 적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안보내느니만 못했다. 철호는 “야야, 우리 선생님보다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 상대하는 게 더 쉬워. 그냥 대답만 몇 번 하면 끝이야. 겁낼 것 하나도 없어.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마치 자랑처럼 떠벌렸고 때로는 “교무실 갈까요? 교장실갈까요?” 하고 먼저 묻기도 했다.

말로써 철호를 통제하는 건 너무 힘들었고 효과도 적었다. 남아서 상담하는 것도 노골적으로 싫다며 거부하고 당번 활동도 안하고 갈 때가 많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다음 날 이야기 하면 하고 갔다고 우겼다.

아이들이 철호가 그냥 간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면 그 때서야 “아, 제가 착각했어요. 죄송해요.” 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말투도 물론 공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때쯤 철호의 행동에 대해 누가 기록하던 것을 그만 두었다. 그 시간에 다른 아이들을 위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중에도 내가 졸업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담임을 맡은 이상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지도해야겠다는 책임감과 전담 몇 시간에 만나도 힘든데 매일 그런 아이와 지내는 선생님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볼 때마다 해주는 전담 선생님, 간간이 걱정해 주는 어머니들의 전화 때문이었다.

이미 동학년에서 생활지도 문제로 담임이 교체된 일이 있음을 알고 있고, 철호 이야기를 자기 자녀로부터 전해들은 어머니들이 고생이 많겠다며 해 주는 전화였다. 그리고 힘들어도 잘 따르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더 많으니 힘을 내어 졸업 때까지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졸업을 시켰다. 그런데 그 녀석이 잔소리가 그립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졸업한 아이들이 교실 정리도 하기 전에 몇몇이 찾아왔다. 짧은 인사를 건네고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하여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교문 근처에서 또 몇몇을 만나 손 한 번씩 잡아보고 헤어졌다.

집에 막 도착하고 보니 나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라며 더 열심히 하겠다며 힘을 주던 여러 아이들이 저희들 용돈을 모아 케이크와 꽃바구니를 하나 샀는데 교실 문이 잠겨 있다며 전화가 왔다.

나는 학교 가까운 곳이라 집을 알려 주고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러 나갔다. 단지 안 놀이터를 지나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작년 그 아이들이었다. 작년 주소로 찾아갔더니 이사갔다고 해서 아쉬워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고 혹시 같은 단지 안에 이사갔는지도 모르니 관리실에 물어 보러 간 아이도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모두 집으로 올려 보내고 넉넉히 간식거리를 사서 올라왔다. 그리고, 간식을 먹을 수 있게 차려내 놓고 한 아이씩 얼굴을 확인하다보니 자꾸만 얼굴을 친구 등 뒤로 숨기는 녀석이 있었다. 철호였다.

나는 지난 날 녀석이 속상하게 했던 일이 떠오르며 한 편으로는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다. “철호야, 왔으면 얼굴을 보여야지. 왜 자꾸 숨어? 얼굴 좀 보여 봐.” 하고 말을 먼저 건넸다. 그제야 몸을 바로 세우며 "저는 빈 손으로 왔어요. 선물을 안 가져 왔어요.” 하며 여전히 시선을 피했다.

“선물 없으면 어때? 네가 왔으니 네 마음이 선물이고 네가 선물이지.” “선생님 잔소리가 그리워서요.” 나는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찌르르해지는 걸 느꼈다.

철호를 비롯한 남자 아이들이 한 무리 나가고 난 뒤, 남은 아이 중 하나가 철호 이야기를 하며 염치도 없이 왔다는 말과 함께 여전히 저희 반에서는 “짱”으로 통하고 전 학년을 통틀어도 오짱 안에 들 것이라고 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