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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실용주의’의 허와 실

지난 해 대선 이후 우리 사회의 화두는 ‘실용주의(實用主義)’였다. 복잡한 절차와 허례에 묶여 있는 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새로운 가치와 생산성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국민적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정부조직의 슬림화 계획은 물론이고 청와대 관료 및 장차관 인선에도 실용주의가 대단한 위세를 부렸다. 정부 관료로서 품격 높은 도덕성이나 지도성보다는 생산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만이 유일한 잣대였던 것 같다. 청와대 수석과 각료 인선에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고, 국민적 비판에 부딪혀 중도에서 낙마하는 불운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토록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도 줄곧 강조해 온 실용주의가 국민의 정서와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또 일부에서는 실용주의적 사고와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혼란스럽다. 국민의 정서와 가치를 외면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청와대의 궁색한 입장이다. 경제적인 논리의 타당성을 떠나 ‘돈 많은 사람은 질 좋은 소고기를 먹으면 되지’식의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결코 실용주의가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새정부 출범과 함께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면서 쏟아져 나온 교육정책 중에도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역교육지원센터를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것이다.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의 중복 기능을 해소하고 현장지원 중심의 교육지원센터를 만드는 것이 실용주의적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센터장의 임용권을 지방자치단체에게 이관한다면 교육 주체인 교원들을 정치의 정글로 몰아넣는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소모적 갈등 양산이 과연 실용주의일지 묻고 싶다.

오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감축된 일반 공무원을 소방서에 배치하겠다는 해괴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 계획 속에 담긴 감각적인 수치 계산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것을 실용주의적 산물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의 희생적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방관이라는 자리가 그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옹졸함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이것을 상생의 슬기로운 실용주의가 아니고 오히려 공멸의 모험주의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진정한 실용주의는 상호존중과 긍정의 시각에서 나와야 한다. 국민적 감정에 반하는 것은 실용주의가 아니다. 혁신도시 개발 계획도 그렇다. 서울과 지방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 짜낸 계획이다. 어찌됐든 지금은 이해당사자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 국가발전 전략에서 보면 이는 상생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선 당장의 생산성이나 효과성에 집착하여 그 동안의 추진 경과를 무시해 버린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오도된 실용주의에 의해서 국가와 국민의 미래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소고기 수입에서 보인 편협함은 우선 당장의 경제적 이익으로는 결코 가려질 수 없는 참담한 아픔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실용의 진정성이 왜곡된 실용주의의 퇴행일 뿐, 국가와 국민을 살릴 수 있는 상생의 실용주의가 아니다. 실용주의에 담긴 보편적 진리와 가치에 대한 냉철한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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