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독일이 나은 위대한 인문학자인 막스베버는 근대 국가의 특징을 ‘관료에 의한 지배’라고 표현하면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관료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막스베버 보다 600여년 먼저 절대 왕정의 시기에 관료에 의한 정치를 주창했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틀을 만들었던 삼봉 정도전입니다. 그는 학설로 고담준론만을 일삼는 박학한 유생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신생국가의 국체와 국도를 직접 설계 하고 만들어나가던 위대한 실천가였으며 그 당시로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계몽사상가였습니다.
처음 정치 입문단계에서부터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 임금일지라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이 그 군주를 버릴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인이 통치의 중심이 되는 재상 중심의 새로운 통치 스타일,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가 바로 정도전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통치를 잘못하여 먹는 것이 하늘인 백성을 어렵게 하는 군주는 백성이 바꿀 수도 있다는 혁명사상을 주창하고 있었으니 14세기 초에 민주의 이념을 지니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위치에서 펼쳐보였던 거인이 그 시대에 정도전 말고 또 어디에 누가 있었단 말입니까?
삼봉 정도전. 여말선초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 하에서 조선이라는 신생국가의 국체와 국도를 설계하면서 조선 500년 사직의 청사진을 제시했던 시대의 풍운아. 평생을 준비하며 설계했던 심대한 뜻을 채 펼쳐보지 못한 채 비명에 간 그를 오늘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이유는 정도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변화와 혁신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도전이 전술한 바와 같이 재상중심의 관료지배체제를 지향하고자 한 것은 조선왕조 건국에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한 자기 자신이나 동료중신의 정치적 주도권의 확립과 권력 강화를 위한 목적도 충분히 배려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련하고 똑똑함이 일정치 않은 세습군주의 전제정치로서는 현인정치에 입각한 민본․위민정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데 대한 투철한 자기 신념에 기초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인정치․민본정치․위민정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천하 만민 가운데서 뽑힌 정수분자로 현인집단을 형성하고, 그 현인집단에서 또다시 엄정하게 능력을 시험하여 선발된 관료를 주체로 하는 관료정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 그의 평생의 지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아가야할 21세기. 변하지 않으면 정체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잊혀지고 묻혀져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평생을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서 살다간 그였기에 오늘 그가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임금 중심의 절대왕조시대에 사회의 근본을 뜯어고쳐 왕은 명목상이고 재상이 통치의 중심이 되는 오늘날의 민주국가의 입헌군주제 형태의 현인 정치의 구현을 위해 평생을 몸 바쳤던 그의 노력은 지금 혁신이 화두가 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삼봉 정도전 그는 절대 왕정의 시대에 자칫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주장을 펼쳤으면서도 태조 이성계로부터 개국공신의 칭호와 함께 유학에도 으뜸이요, 나라를 세운 공도 으뜸이라는 유종공종(儒宗功宗)의 네 글자를 경복궁의 낙성식 장에서 받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과 함께 500년 사직의 큰 틀을 마련하는 추진력 또한 갖춘 위대한 명재상이었던 것입니다.
국체와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 그의 전 사상체계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 정신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사상’이었는데 이는 당시 위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기득권을 버리는 것 이상의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 그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므로 모든 문제를 백성의 입장에서 풀어가야 하고, 백성을 위하고-爲民, 백성을 사랑하고-愛民, 백성을 존중하고-重民, 백성을 보호하고-保民, 백성을 기르고-牧民 또는 養民,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安民” 사상을 삶의 절대 가치로 확고하게 가지고 여말 선초에 새로운 국가의 제도 및 문물의 틀을 만드는 입장에서 실천력으로 새로운 왕조를 설계해나갔습니다.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한 부분은 왕자의 난 때문에 정도전이 비명횡사하면서 좌절되고만 요동정벌이라 생각합니다. 잃었던 고구려의 구토회복이 목전에 있었는데 천려일실의 우를 범하여 대사를 이루지 못하고 비명에 가게 됨에 따라 오늘날 각종 에너지 자원을 국유화 하는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그 자원의 보고 요동에 대한 간절한 염이 더욱 생기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