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교원평가의 틀이 마련되어진 것 같다. 말많고 탈 많던 시범학교운영에 이어 시범학교들의 보고회도 치루어지고 2차년도 시범학교로 더 많은 학교들이 지원해서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교원들에 대하여 각종 언론들의 주요기조는 세상 모든 계층이 평가를 통하여 피이드백을 받고 발전하는 수순을 밟는데 오로지 교원만이 평가를 거부하면서 철밥통 지키기에 급급한 철면피한 모리배로 부각시키면서 일반국민들에게서 교원들을 격리시키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때 엄연한 평가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는 교원들에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통해 나름대로 균형 잡힌 사회여론의 형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보고자 한다. 일전에 어떤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여기서부터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네 명의 아이가 있었단다.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승재, 쌍둥이인 병훈, 병수 그리고 유일한 홍일점 성희. 네 아이가 있는 곳은 시골의 작은 분교 1학년 교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오학년 언니 5명과 함께 생활하는 복식학급 어린이들이었다.
3월 입학을 한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보건소에서 보건소장님과 간호사 한 분이 분교를 찾아오셨다. 1학년 아이들 혈액형 검사를 하시기 위해서였다. 4명 중 번호가 1번인 병훈이 손톱 밑을 바늘로 찔러서 피 한 방울을 채취하였다. “아야”하는 짧은 비명이 병훈이 입에서 나왔다.
다음은 형보다는 조금 엄살이 덜 한 병수가 선생님 앞에 서서 의젓하게 검사를 마쳤다. 걱정했던 승재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승재가 자지러지면서 울기 시작했다. 달래보았지만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결국 성희가 먼저 혈액형 검사를 마치고 다시 승재를 시도해보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작은 아이인 승재에게는 엄마가 안 계신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여러 번의 예방접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방주사를 맞는 그 끔찍한 아픔과 고통의 순간을 아이들이 금방 잊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엄마의 위대한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그 아픔을 희석시켜줄 사랑의 기제가 없기에 아픔의 기억이 다른 이들보다 깊게 각인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강행할 수 가 없었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가는데 4월 하순 경 뇌염예방 접종을 한다고 예고가 되었다.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여러 번에 걸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는 있지만 우리 1학년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늘이 없는 모형 주사기를 가지고 왼팔을 걷고 주사를 맞는 실습을 해보았다. 하나, 고개는 주사를 맞는 팔의 반대쪽으로 돌린다. 둘, 눈을 감고 맞는다. 셋, 다른 사람이 맞는 것을 쳐다보지 않는다 등.
장황한 설명과 함께 여러 번에 걸친 실습을 실시해보았다. 이 모든 것이 작고, 눈물이 많고, 여리기 만한 아이 승재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4월 어느 날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분이 학교에 오셨다.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병훈, 병수 그리고 3분 선생님이 같이 우려하고 있는 승기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승기는 용감하였다. 그리고 학교는, 승기를 위해 준비되었던 주사교육프로그램의 결과는 위대하였다.
조금은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승기는 자기의 순서때 교실에서 해보았던 대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그 어려운 순간을 견디어내는 것이었다. 주사를 맞는 순간 조금은 찡그리던 얼굴이 “이제 다 되었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앏게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나도 해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승재는 어려운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로부터 한 20일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대전 건강검진협회’라는 곳에서 두 분이 찾아오셨다. 주섬주섬 장비를 보건실 대신에 사용하고 있는 도서실에 설치를 하시고는 1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전도검사와 빈혈 검사를 하신단다.
검사는 시작되었다. 심전도 검사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검사요원으로 오신 남자 분이 자신감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 분이라 무척 보기는 좋은데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렇게 크게 말씀하시면 아이들 겁 먹습니다.”
주의를 요하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빈혈검사는 예방주사와는 다르게 많은 양의 피를 그 여리고 작은 팔에서 뽑아내는 것이었다. 선홍빛이 감도는 붉은 피가 주사기를 통해 뽑혀져 나오는 모습은 세상살이에 닳아질대로 닳아진 45세의 아저씨인 내가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인데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디디는 우리 병아리들에게는 얼마나 큰 아픔일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괜히 애려온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4명의 아이들은 용감했다. 몸무게가 20㎏도 못나가는 아이가 5㎖가 넘는 피를 뽑으면서도 울음 한번 울지 않고 그 어렵고 힘든 의식을 거뜬하게 치러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교육자로서 또 한번의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그 젊은 의사선생님에게 부탁했다. 빈혈검사를 위해 뽑은 피를 가지고 우리 승재 혈액검사까지 좀 해달라고 그 혈액 검사의 결과가 온 산에 녹엽이 넘쳐나는 5월 마지막 날 통보가 왔다.
승재는 O형이란다. 한 방울의 피를 채혈하는 의식도 참여하지 못했던 우리 승재가 초등학교 물 먹은지 2개월 만에 무지무지하게 의젓해졌다. 어른이 다되었다.
(이런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대한 교육의 힘이다.”라고 말하였다. 교원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선생님은 평소에도 아동들의 기본생활습관형성지도에 주력하시는 분이라서 학생들에게는 잔소리가 많고 엄한 선생님으로 평판이 나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님들에게 호응이 좋은 선생님도 못되고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선생님도 못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 어린이가 혼자 설 수 있도록 그 누구도 못한 훌륭한 일을 해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