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하북성 무읍현에 사는 저소명(小明) 군은 지난 8월 북경 화공대학 '고분자 자료와 공정학과(工程學科)'의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수도권 대학 입학은 저소명 군과 같은 농촌 학생에게는 장원급제나 다름없다. 하지만 기쁨만큼 한숨 소리도 크다.
세 칸 짜리 낮은 토벽집에서 연 1500원(한화 20만원 정도) 이하의 수입으로 근근히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 소명 일가에게는 합격통지서에 적힌 '한 학기 학비 5000원(한화 70만원), 기타 잡비 3000원(한화 40만원)'은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설상가상으로 동생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현(縣) 중점고교에 입학해 1700원에 달하는 거액의 학비를 지불해야 했다. 결국 소명의 가족은 현재 외지 친척집으로 학비를 꾸러 떠난 어머니를 참담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형편이다.
중국의 국립대학들이 1995년부터 도입한 학비 징수제도가 대부분의 학교에 정착되면서 해마다 8, 9월이면 저소득 농촌지역학부모들의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국립대학들은 학비면제 뿐만 아니라 무료 기숙사, 각종 형식의 조학금과 장학금을 제공하며 학생들의 기본 생활까지 보장했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국가가 보장하던 각종 혜택이 사라지고 개인이 주택·의료·자녀교육을 책임지는 제도로 변하면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낮은 대우로 일하며 다년간 저축이 거의 없었던 노동자, 농민들은 자녀 학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2002년 한 대학생의 일년 총소비는 최저 1만 위엔(한화 140만원 정도), 4년이면 4만 위엔에 달하는데 저소득 가정의 부담능력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에 교육부와 중국 정부는 저소득층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조학대여금 제도를 도입했다. 즉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은행과 대학간 대여협정 체결을 담보로 학생에게 무이자 대여금을 제공하는 제도다. 2002년 현재 1307개 대학들이 국가의 조학대여금 신청서류를 제출했으며, 이중 은행과 계약을 마치고 대여금 제도를 실시 중인 대학이 782개다. 이밖에 178개 대학은 은행과 상담중이며, 347개 대학은 협력 은행을 찾는 중이다.
이와 관련 올 6월말까지 전국에서 조학대여금을 신청한 학생은 112만 5000명으로 전체 학생의 12.5%이며 이중 35만 1000명은 이미 대여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조학대여금 제도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우선 대여금 계약이 은행에게 별 이득 없이 번거로운 업무라는 점이다.
국가의 조학대여금 관련 규정에는 대여 액수를 학생 당 연 6000위엔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수치는 은행의 기타 상업 대출과 비교할 떄 훨씬 적은 것이며, 또 대여 수속 시 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꼼꼼이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른다. 더욱이 조학대여금 제도는 은행에게 일종의 모험행위다. 정부의 관련 법규에는 대여금을 신청한 학생들이 졸업 후 몇 년 동안 대여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업률이 날로 심각해지면서 얼마나 대여금이 반환될 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중국 정부는 조학금 대여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가난한 학생들을 지원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각 대학도 자체 재정상태에 걸맞은 조학, 장학제도를 마련해 빈곤한 학생들을 돕고 있다. 교육부 규정에 의해 실시되는 '푸른 통로' 제도는 장학금, 조학금, 대여금, 보충금, 감소금 등을 주 항목으로 한다.
성적과 품행이 우수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 일부 교내 업무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맡기고 일정한 보수를 지불하는 조학금 제도가 있다. 또 대여금이란 대학이 미리 은행에 일정 금액의 조학 대여금을 신청해 여러 이유로 대여금을 미처 신청하지 못한 학생들을 구제하는 제도이며, 보충금은 학교에서 특별히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보조금이다. 이외 감소금은 일부 극빈 지역 학생들의 학비를 면제하는 제도다.
1998년부터 '푸른 통로' 제도를 운영 중인 청화대학은 전체 학부생의 20%를 차지하는 빈곤 학생들을 돕고 있다. 청화대학의 장학금 종류는 100여종이나 되며 최고 장학금 액수는 6000위엔(한화 42만원)에 달한다. 또 청화대학은 2001년까지 아르바이트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4542만위엔(한화 63억 5880만원)의 보수를 지불했다.
사회단체에서도 가난한 이웃학생 돕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 '빈곤방조기금회'와 북경시 '불우인돕기-봄바람운동' 사무실이 연합해 수도권 대학에 입학한 빈곤 학생들을 돕는 운동이 가장 대표적이다. 개인, 기관의 기부금을 조성해 학생 돕기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기금회는 올해 처음 21명의 대학생들이 가입해 자원봉사로 전국 각지를 돌면서 학비 지불이 어려운 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 대학, 그리고 사회단체의 노력이 142만 명에 달하는 빈곤 학생들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