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2학년 반별 어머님 모임이 있었다. 교직 3년 차인 나는 지난해까지 1학년 담임을 맡았었다. 두런두런 어머님들과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데 한 학부모 내외분이 내게 손을 내밀며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다.
"우리 애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지금도 선생님께서 주신 액자와 상장을 책상 앞에 두고 항상 본답니다."
그 녀석. 열정과 사랑은 있었지만 수줍고 어설펐던 초임 시절, 내 속을 무던히도 아프게 했던…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찌나 학급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지 한 번은 그 한 녀석 때문에 운동장에서 단체벌까지 줘야 했었다.
매일같이 화가 나고 번민까지 겪으면서 시간은 흘러 드디어 종업식이 다가 왔다. 여전히 미웠던 그 아이에게 난 상을 주어야 했다. 나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용서받기 위한 수단으로 반 아이들 전부에게 액자와 상을 만들어 주기로 한 것이다.
어떤 놈은 찍새상(수학여행 등 기타 반 행사 때마다 멋진 사진을 찍었다), 어떤 아이에게는 깜찍상(일명 스마일상) 등등. 그런데 정작 그 녀석에게는 어떤 상을 줘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그 녀석에게 준 상은 '토킹 어바웃상'이었다. 한번은 신나게 떠들고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니?"
"교실에 오면 먼저 사랑하는 친구들과 토킹 어바웃을 해야 합니다."
화가 난 내게 그 녀석은 너무도 태연하게 답변을 했다. 그래서 난 폭발했고 그날 아이들은 단체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 녀석에게 부득불 주어진 상은 토킹 어바웃상. '위 학생은 1년 동안 사랑하는 친구들과 토킹 어바웃을 하면서 우정을 나눠 반 분위기를 살렸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그렇게 받은 상을 녀석이 그토록 아끼고 곁에 두고 있다는 말씀이셨다. 이젠 다른 반 아이가 돼 떨어져 있지만 난 그 아이를 통해 소중한 것을 배웠다. 작은 사랑이 큰 사랑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음을, 시간이 흐른 후에 소중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사랑이 있음을 말이다.
오늘은 한 아이의 생일이다. 편지와 초콜릿, 샤프를 포장해 초코파이 파티를 하러 간다. 작은 것에 기뻐하며 소박한 선물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보며 난 오늘도 초코파이 케잌을 들고 교실로 간다. '우리 반 전부가 같은 샤프를 쓰는 그날까지.'